• 제목/요약/키워드: Presidential Records Serv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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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와 민원에 기반한 기록정보서비스 활성화 방안 (Directions for Vitalizing Archival Information Services based on the Analysis of SNSs and Civil Petitions)

  • 정혜정;이해영
    • 한국기록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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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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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5-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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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국가기록원 등 일부 기록물관리기관에서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이용자들과 소통하고 있으며, 이용자들은 또한 국민신문고 등을 통해 이러한 기관과 소통하고, 정보를 얻고자 한다. 이러한 채널에 제시된 댓글이나 민원의 분석을 통해 이용자들이 어떤 요구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소통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서비스 제공에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에 이 연구에서는 국가기록원 소셜미디어와 국민신문고를 통해 나타난 이용자의 인식 및 정보요구를 분석하였다. 국가기록원 대표 페이스북, e-기록 페이스북, 부산기록관 페이스북, 대통령기록관 페이스북의 게시물 및 댓글과 국민신문고의 민원에서 '국가기록원'과 '대통령기록관'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였을 때 나온 글을 대상으로 내용을 분석하였다. 이러한 분석 결과를 반영하여 기록물관리기관에서 이용자 중심의 기록정보서비스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한국 기록관리의 사적 고찰과 그 특징 (Historical Observation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Records and Archives Management in Korea)

  • 이영학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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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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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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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이 글은 조선시기부터 현재까지 한국 기록관리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면서 그 특징을 소개한 것이다. 조선시기에 기록관리 제도가 구축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1894년 갑오정권에서 근대적 기록관리 제도가 성립하였으며,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미국의 행정학과 기록관리 방식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기록관리제도가 정립되게 된 과정을 소개하였다. 끝으로 1999년 이후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후 현대 기록관리제도가 확립되게 된 과정을 설명하였다. 조선시기에 기록을 잘 관리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관료제를 기반으로 한 조직사회이어서 기록을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둘째 조선왕조의 성립과정에서 왕권과 신권이 대립하였는데, 그 대립과정의 타협물로서 "조선왕조실록" 등 기록이 남게 되었다. 셋째 현재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비슷한 일을 치룰 때에 참조하도록 하였다. 넷째 당대의 역사적 사건을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후세에 역사적 평가를 받고자 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조선왕조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록을 많이 남겼다. 1894년 갑오정권은 권력을 장악하자 군국기무처를 설치하면서 개혁정책을 실시해갔다. 그것은 기록관리 부문에서도 나타났다. "명령반포식"을 공포하면서 법령의 제정과정을 규정하였고, 공문서 형식을 변화시켰다. 공문서 형식에서는 중국의 연호 대신에 '개국기년'을 사용하였으며, 사용 문자를 한자로부터 한글 혹은 국한문 혼용으로 바꾸었으며, 공문서 양식을 인쇄하여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정권의 독자성 및 자립성을 드러내도록 하였다. 1910년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을 식민지로 병탄하면서 조선의 기록관리 전통은 단절되고, 일제는 식민통치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기록관리제도를 구축하였다. 1945년 한국은 일본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고,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였다. 1950년대에 한국 정부는 일제의 기록관리제도를 그대로 원용하였다가, 1950년대 후반 이후 미국의 행정학과 기록관리 방식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문서관리방식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러나 관료들의 기록관리에 대한 인식은 희박하였으며, 대통령기록 등 중요한 역사기록은 많이 파기되거나 유실되는 등 기록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한국에서 기록관리가 제대로 행해진 것은 1999년 이후였다. 1999년에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기록관리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었고, 2005년 "국가기록관리혁신 로드맵"이 작성되고 추진되면서 한국의 기록관리제도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2005년 이후 기록관리 프로세스와 시스템의 정비, 기록관리 표준의 제정, 법과 제도의 정비,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의 배치 등이 이루어지면서 한국의 기록관리는 한 단계 진전되게 되었다.

기록 기술과 콘텐츠 서비스의 상호보완적 고도화 방안 연구 (A Study on the Complementary Advancement Plan for the Archival Description and Content Service)

  • 고은지;이해영
    • 한국기록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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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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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1-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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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기록 기술은 기록의 검색과 이용에 필수적인 도구로써 기록의 활용에 있어 핵심적이다. 콘텐츠 서비스는 기록의 활용과 콘텐츠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현대 사회에서 핵심적인 서비스다. 이 연구에서는 기록 기술과 콘텐츠 서비스를 다른 영역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관계로 보았다. 기록 기술이 풍부하게 갖추어져 있으면 이를 기반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고, 이렇게 만든 콘텐츠를 다시 기록 기술과 연계하여 기록 기술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기록 기술과 콘텐츠 서비스의 상호보완적 관계 밝히고, 이를 기반으로 한 고도화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국가기록원과 대통령기록관 웹사이트의 기록 기술 및 콘텐츠 서비스 현황과 문제점을 분석했고, 이와 비교할 모범사례로 영국의 TNA와 미국의 NARA, 서울기록원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를 선정하였다. 6개의 기관을 분석한 시사점을 바탕으로 기록 기술과 콘텐츠 서비스 각각의 고도화방안과 상호보완적 발전방안을 함께 제안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기록 기술과 콘텐츠 서비스가 상호보완적 방향으로 발전하길 기대해본다.

기록의 역운 <포스트1999>를 전망하며 (Postmodernism and Korean National Archives System since 1999)

  • 이영남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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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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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9-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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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이 글에서는 지난 15년 동안 공공기관에서 형성된 아카이빙 방식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을 해보려고 했다. 이를 통해서 구체적이고 대안적인 내용까지는 다루지 못했지만 <포스트1999>를 전망해보고자 했다. 먼저, 1999년 공공기록물관리법 제정 이후 지난 15년의 변화를 세 개 층위에서 짚어보았다. 우선 담론의 측면에서는 민주화담론, 기록실천에 대해서는 제도실천, 맨 아래 영역에서는 표준아카이빙에 대해 각각 살펴보았다. 민주화담론은 정보공개제도와 연결되어 작동되면서 1999년 이전의 '능률행정'이라는 담론을 교체하면서 합리적 기록권력을 형성하는 효과가 있었다. 제도실천은 1999년 이전의 '문서관리제도'를 기록물관리 제도로 교체하는 효과가 있었다. 기록물관리제도는 법령의 각 조항별로 삽입되기 시작했고, 이런 조항은 전문지식, 전산시스템, 기록종사자들과 연계되면서 실질적으로 기록의 버팀목이 되었다. 표준아카이빙은 공공기관 공적 행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의성을 최대한 줄여나가면서 일관된 기록시스템을 형성하는 효과를 낼 수 있었으며, 기록행위를 일목요연하게 하나로 통일시킬 수 있었다. 이상의 기록실천은 현재의 기록시스템 흐름을 형성한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성장에는 '구조적 그늘'도 함께 성장했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역운프레임으로 접근해보았다. 역운은 단순히 단점이나 부정적 측면이 아니라 상관적으로 구성되면서 공동운명체라는 구조적 맥락을 함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