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를로-퐁티의 정치 사상은 서구 마르크시즘 또는 실존 현상학적 휴머니즘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메를로-퐁티의 정치 이론을 신체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2장에서 전통 정치의 주체성 이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3장에서 메를로-퐁티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새로운 주체성을 해명하고 4장에서 이를 토대로 정치에 대해 육화 또는 살의 관점에서 접근하며 5장에서 정치적 주제로서 폭력을 규명한 뒤 6장에서 결론적 평가로 마무리한다.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정치 세계를 보는 법을 새롭게 배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논문은 메를로-퐁티의 지각 이론에서 출발하여 살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살의 관점에서 타자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가를 연구한다. 먼저, 메를로-퐁티가 철학적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본다. 철학적 물음은 세계와 이성의 신비를 푸는 문제로서, 이 문제가 반성적 분석의 대상일 수 없음을 밝힌다. 반성보다 선행하는 것이 지각이며 이 지각이 보통 사람들이 말하고 이해하는 지각이 아님을 보여준다.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적 철학은 지각된 세계의 본연의 모습을 기술하는 것이 그 본질 목적이나, 사람들은 객관적 태도와 객관주의적 사고방식에 젖어 지각된 세계를 표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다. 지각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기술함으로써 그 구조가 가역성에 있음을 규명한다. 지각의 가역성을 거쳐 살의 가역성에 이르고 살로써 타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 가지 대안적 입장을 제시한다.
나와 타자 간의 적대적 대립관계로 표면화된 다원주의적 정치적 현실에서, 나와 타자 간의 상보성을 강조하는 대순사상의 대대성(對待性) 원리는 우리에게 다원주의적 정치적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인식과 태도를 제공한다. 유아론적 사고가 '완성된 '나''에서 출발하여 '타자'를 대상화 내지 도구화한다면, 대대성 원리는 우리에게 '타자'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태도를 제공한다. 대대성 원리는 존재론적으로 '완성된 '나''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나'의 자기성을 확보할 수 있고 확장할 수 있다는 논리에 기초해 있다. '나'라는 존재의 자기성은 이미 충만한 채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타자'라는 존재를 통해서만 구성될 수 있고 완성될 수 있다. 그러나 대순사상의 대대성 원리에 대한 기존 논의는 동양적 맥락의 국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양철학과 대비되는 틀 속에서 서양철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물로서 대대성 원리가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성은 한편으로 서양철학에 대한 협소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접근이라 할 수 있다. 현대서양철학의 흐름은 서양 근대의 유아론적 사고방식에 대한 자기반성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현대서양철학의 현상학적 조류는 '타자'에 대한 존재론적 의미에 집중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이원론적 대립관계의 틀 속에서 대대성 원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상반응합(相反應合)이라는 대대성 원리 그 자체의 의미를 탈구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필자는 대순사상의 대대성 원리에 대한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어울림을 모색하고자 한다. 특히, 필자는 현상학자 메를로-퐁티(M. Merleau-Ponty)의 '살(flesh)'개념에 주목한다. 그의 '살'은 '나'와 타자라는 이원화된 틀 속에서 '나와 타자와의 근원적인 연루(involvement)'를 추동시키는 모태이다. 그래서 '살'적 존재로서의 '나'는 '보면서(타자를 보는 주체) 보여지는(타자에 의해서 보여지는 객체) 이중적인 지위' 속에서 구성되어지는 애매하고 불충만한 존재이면서, 타자와의 부단한 상호교류를 통해서만 '나'의 자기성을 완성해 가는 그런 존재이다. 이처럼 그의 '살'개념은 서양 근대철학에서 배제되어 왔고 소외되어 왔던 '타자'에 대한 존재론적 의미를 복원함으로써, 우리에게 '타자'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이 연구는 메를로-퐁티의 실존적 역사 이론에 의거해서 헤겔과 마르크스의 역사관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결론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헤겔에서 역사적 경험은 절대 정신의 자기 전개 과정으로서 이해되고 이것은 변증법적으로 서술된다. 그리고 헤겔의 역사는 절대 정신의 실현을 향해 달려가는 보편적 목적론의 역사이다. 이러한 헤겔의 목적론적 역사관은 인간이 역사에 의미를 줄 수 있고 이성에 목적을 줄 수 있었던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문제, 바꾸어 말해서 의미가 어디서 나오는가 하는 문제 즉 의미 가능성의 문제를 전제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헤겔은 역사의 의미와 목적의 지각적 토대 즉 육화된 자기 의식에서 해명하지 못했다. 마르크스에서 역사의 주체는 프롤레타리아 또는 계급 의식이다. 그리고 계급은 생산 관계에 의해서 산출된 사회적 실재이다. 그러나 계급은 체험된 실재로 존재하지 않으면 현실화할 수 없다. 계급 없는 사회를 가져오는 계급 투쟁 역시 우리 자신이 우리에게 프롤레타리아 의식으로 가치 부여하는 의식이 없으면 촉발될 수 없다. 계급 의식의 탄생과 투쟁의 시작은 노동자가 타자의 주체성 및 물질적 대상 세계와 만나고 협력하고 대결하면서 자신의 생활 세계의 구조와 의미를 지각하기 시작하고 이해하며 혁신하게 되는 시간적 경과를 거치면서이다. 결론적으로 그것은 우리의 육화된 실존이 세계와 교섭하는 데서 구성되는 의미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기정체성의 확립이 '상생적 관계'에 기초해 있다는 점에서, '상생적 관계형성'은 자기존재의 안정성과 확증성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타자와의 포용성을 지향하는 상생적 관계보다는 타자를 대상화하려는 행위로 대부분 채워져 있다는 점에서, 타자와의 상생적 관계형성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타자와의 상생적 관계형성은 타자를 대상화하려는 자기욕망을 조절하거나 통제할 도덕성에 기초해 있어야 한다. 이성 중심의 초월적·선험적 철학은 자기욕망에 대한 자기제어를 이성과 신체라는 이원화된 틀 속에서 이성에 의한 신체의 지배(支配)로서 기술한다. 하지만 이 실천철학이 가지는 한계점은 선험적 이성의 도덕적 명령이 우리에게 그것을 실천할 도덕적 행위의 내적 동기를 자명(自明)하게 제공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선험적 이성의 도덕적 명령의 현실적용은 자기중심적인 삶의 입장이나 자기이해관계의 맥락에서 선험적 이성의 도덕적 명령이 재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공감적 성향'은 새로운 도덕적 규범으로서 자리매김한다. 감성형태로 주어지는 '공감적 성향'은 사유 이전의 느낌이라는 점에서 직접적이고 즉각적이고 항상적이다. '공감적 성향'은 이성적 판단 이전에 작동하는 본능적 반응이라는 점에서 직관적이다. 이런 점에서 자연 도덕정감으로서의 '공감적 성향'은 학습, 사유에 의하지 않고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를 알고 있고 실천할 정도로 자명하게 주어진다. 그러나 '공감적 성향'에 대한 기존 연구들은 '현상적 접근(現象的 接近)'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점을 가진다. 기존 현상적 접근들은 '공감적 성향'을 이성이 아닌 신체에 토대한 자연적 감정으로 제시하고는 있지만, '공감적 성향'의 토대를 철학적으로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자연 도덕정감으로서의 '공감적 성향'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도덕적 규범으로서 해석 내지 규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필자는 메를로-퐁티(M. Merleau-Ponty)의 '살' 개념에 입각하여 신체에 토대한 자연적 감정으로서의 '공감적 성향'이 인간의 보편적인 도덕적 규범임을 밝히고자 한다. 신체적 차원에서 나와 타자 간의 교차배어로 형성되는 '살'은 '공감적 성향'에 그 철학적 단초를 제공한다. 다시 말해서 나와 타자 간의 신체적 교차 내지 얽힘으로 형성되는 '살'은 '공감적 성향'을 일으키는 물질적 토대가 된다. 필자의 이러한 접근은 '공감적 성향'에 대한 '현상학적 접근(現象學的 接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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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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