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Korean Bronze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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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열 축열-바이오 세라믹 온돌의 난방 특성 - 온돌의 역사적 고찰 및 실험적 분석을 중심으로 - (Floor Heating Characteristics of Latent Heat Storage-Bioceramic Ondal - Focused on Historical research and Expermental Analysis -)

  • 송현갑;유영선
    • 태양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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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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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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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
  • 온돌의 효시인 화덕은 바닥에 자갈을 깔고 그 위에 진흙을 덮었으며, 주위에 큰돌을 놓아 불을 피워 돌과 흙에 열을 저장하여 이용하였으며, 이는 열저장 측면에서 주시할만한 난방법이었다. 현재의 한국식 주거용 난방시설은 연탄, 석유 및 가스 보일러를 이용한 온수순환온돌로서 전통온돌에서 사용한 돌과 흙같은 축열매체가 사용되고 있지 않다. 축열매체를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온돌바닥면과 난방공간과의 온도차가 심하게 되어 쾌적도가 떨어지므로 난방열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와 같은 현재의 난방법을 개선기 위하여, 본 연구에서는 잠열축열재와 바이오세라믹으로 구성된 온돌을 개발하였고, 그 난방특성을 실험적으로 분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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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Jericho)성(城)의 상징적 특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Symbolic Meaning of Jericho)

  • 남호현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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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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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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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know the characteristics of the ancient city through the basic composition of Jericho city. But there are little documents in the ruins of Jericho, and so there are the limit to understand the basic characteristic of the ancient city. And so this study is going to know the symbolic meaning of the ancient city of the Jericho city, through the transcriptions remains. Producing the concept that Jericho is the old city in the world, this study is significant that utilizing with the basic document of helping to understand the basic composition and characteristic in the ancient city. Also because the bible documents of Jericho is explained the city in the bronze age, this study sets bounds to BC 15C, and to know the symbolic system in Jericho. In the christian transcriptions, it is represented the Jericho city BC 15C. Jericho city here is described the type of the labyrinth is composing of the city in the center and surrounding by the walls. The circular type of the labyrinth city has symbol of the 'protect' having the magic power against the opposite party. Also the walls of labyrinth are the boundary territory of 'abstract conception' to round seven times. The center in the shape of Jericho is 'closing field' against circumferences, and this is different from the labyrinth on the floor in the medieval Cathedral is symbolized 'opening 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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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으로 본 흉노(匈奴)의 발생과 분포 (The Contemporary Researches of the Xiongnu Archaeology)

  • 강인욱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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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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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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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Archaeological research on the Xiongnu began in the late 19th century by a Russian archaeologist Talko-Grinchevich. The Xiongnu culture has been reported in the northern steppe of China and eastern part of Eurasian steppe. Mainly, Xiongnu sites, dated from the late 2nd century B.C. to the 1st century A.D., are reported on the east side of Baikal Lake(Zabaikal), east Mongolia, and the Inner Mongolia of China. Based on the historical records and the archaeological remains, the North Xiongnu culture is defined to be the remains of Zabaikal, and the South Xiongnu culture the archaeological remains of Nothern China. The expelled North Xiongnu, while fleeing to the western part of Eurasia, left traces of their own archaeological remains in the Southern Kazakhstan, Xinjiang of China, Altai, and finally appeared in the Europe as Huns. The most characteristic archaeological materials of the Xiongnu are bronze plaques and ceramics made by handicraft, and highly developed iron weapons. After the power of the Xiongnu was dissolved in 1st c. A.D., previously subordinated peoples such as Xianbi, Wuhuan, Wusun rised in the Eurasia steppes and opened medieval age in Eurasia. The "northern type" materials found in Korea are dated to the period of Xiongnu or slightly later, we need to pay more attention to the contemporary Xiongnu. research.

우리나라 건축물에 사용된 목재 수종의 변천 (Changes in the Species of Woods Used for Korean Ancient and Historic Architectures)

  • 박원규;이광희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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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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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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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We investigated the changes in the species of the woods used for Korean ancient and historic architectures, which include prehistoric excavated relics and existing wooden buildings in South Korea. The species data were collected from various sources such as excavation and repair reports, journal papers, and a few unpublished documents. We divided the building Periods as Paleolithic, Neolitic, Bronze Ages, Iron Age/Three Kingdoms, Koryo, Joseon (early, middle, late) and modem periods. In prehistoric periods, hardwoods were major species. Oak (Quercus spp.) woods dominated (94 percent in average); the others (5%) were Juglans mandshurica, Platycarya strobilacea, Castanea crenata, and few softwoods(1%). During Iron Age and Three Kingdom periods, oaks remained as a major species (57%) and others Platycarya strobilacea(21%), Castanea crenata(13%), and Pinus spp. (6%). The oak woods decreased in Koryo period and they occupied only 1.1%. Instead of oaks, pine (Pinus spp., 71%) and Zelkova serrata (22%) dominated in Koryo. In early and middle Joseon periods, pine woods (73%) remain as a major species and the others were oaks (14%) and Zelkova serrata (9%). As late Joseon came, the pine woods occupied more than 88%. In the late 19th and early 20th centuries, a few boreal species such as larch (Larix spp.) and spruce (Picea spp.), which grow in cold area, were found. We believe they were transported from northern Korea. The existing buildings in Korea are mainly from Joseon period and a few from late Koryo periods. During these periods, pine woods were used for most buildings. For such reason, pine woods were known as 'representative materials for historic buildings'. but earlier times, broad-leaved trees, i.e., oak and Zelkova woods were major materials. The changes in building materials resulted from both climate and human impacts. The dry climate and disturbed forests induce more pines in the mountains. We also compared the wood qualities of the species and found that Zelkova woods were superior ones and deserved more planting for future demands in the repair for historic build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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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össbauer spectroscopy를 이용한 제주도 무문(無紋)토기의 연구 (Mössbauer Spectroscopic Study of Non-figure Plain Coarse Pottery from Jeju Island)

  • 윤태건;고정대;홍성락
    • 한국자기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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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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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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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제주도 무문토기의 연구는 제주도의 청동기 시대 및 초기 철기시대 토기의 성격을 밝혀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본 연구에서는 제주도에서 발굴된 무문토기들을 대상으로, X-선 형광 분석법 및 X-선 회절 분석법을 이용하여 화학적 조성을 분석하고, Mossbauer분광법을 이용하여 토기에 함유된 광물과 산화철의 종류, 원자가 상태 및 자기적 성질을 분석하였다. 제주도 무문토기에는 SiO$_2$와 같은 규산염 광물이 주성분을 이루고 있으며, 비결정질 ferrihydrite함량은 약 5~10 wt% 이하이고, 제주도 무문토기들은 중성 화산암에서 부분적으 로 생성된 제주도 찰흙으로 만들어졌다고 여겨진다. 또한 제주도 무문토기편에 존재하는 철의 원자가 상태는 Fe$^{2+}$와 Fe$^{3+}$ 임을 알 수 있고, 초미세 자기장 값이 순수 goethite값보다 작게 나타나는 것은 찰흙을 빚어 만든 토기를 가열할 때 그 결정구조가 변화되어 Fe이온들의 결합상태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고대 한국인이 선호한 기본도형의 의미와 유형 (Meaning of Basic Geometry Patterns to Ancient Koreans and Its Classification)

  • 박선화;김지수;나영주
    • 감성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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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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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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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연구의 목적은 오래전부터 한국인이 애용해 온 기본 도형을 분석하여 의미와 상징성을 밝히고 그 유형을 분류하는 것이다. 선조들은 원, 네모, 세모 형태를 선호하였는데 한글에 'ㅇ, ㅁ, ㅅ'가 존재하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를 위해 고조선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복식과 유물 등에 나타난 기본 도형을 고찰하였다. 연구방법으로는 도서, 인터넷 및 사진자료 등을 분석하였으며 도자기, 청동기, 복식 등 다양한 곳에 나타난 도형의 연결고리를 찾았다. 그 연구결과 첫째, 원은 하늘, 해, 달, 별, 청동거울, 얼굴 등을 상징하는데 일찍이 천문관측이 발달했던 사실과 원형제단이나 제사장의 표징인 원형 청동거울이 이를 뒷받침한다. 둘째, 땅(地)을 상징하는 것은 네모라고 보았다. 하늘과 땅신에게 모두 제사를 지냈었고 네모는 부족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담은 현실을 의미하는 형태이다. 마름모형이 더 많이 애용되었는데 이는 힘을 상징하는 세모가 두 개나 들어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셋째, 빗살무늬 토기에서도 나타나지만 뫼 '산(山)'과 사람 '인(人)' 및 모자나 마늘의 형태 또는 나 '사(?)' 등으로부터 세모가 파생되었다고 보는데 하늘, 땅 다음으로 사람이 중요하다는 고대인의 사고에서 발생한 것으로 본다. 아름다운 유산인 기본 도형의 연구를 통해 한국역사의 오랜 전통과 정신을 이해하고 새로운 창조문화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송국리유적 재고 (Reevaluation of the Songguk-ri site)

  • 손준호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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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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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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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송국리유적은 1974년 비파형동검이 부장된 석관묘가 발굴됨으로써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1975년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통하여 한반도 청동기시대에 획기를 이루는 중요한 유적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개된 송국리유적 보고문에는 전체 평면도조차 제시되지 못하고 있어 유적의 전모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송국리유적의 보고서와 관련 보고문을 재검토하여 발굴된 전체 유구의 배치도를 작성함으로써 연구의 기초자료를확보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과 개별 유구및 출토유물에 대한 분석결과를 최근의 발굴.연구성과와 비교 검토함으로써 송국리유적의 시기와 성격에대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였다. 송국리유적에서는 주거지, 부속유구, 저장공, 요지, 목책렬, 녹채, 굴립주건물지 등의 생활 유구와 석관묘, 옹관묘, 토광묘 등의 분묘 유구, 그리고 대지조성면과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의 증거들이 확인되었다. 이들은 유구의 분포 양상이나 유물상의 유사성 등을 통하여 볼 때 동일시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되는데, 구체적인 시기는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치에 의하여 대략 B.C. 850-550년의 범위로 산정되었다. 한편,송국리유적에서는 논농사의 집약화를 통하여 생산량을 증대시켰으며,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력자또는 유력 집단이 등장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고 더 많은 잉여생산물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하여 방어 취락을 형성하였으며, 이를차지하기 위한 빈번한 전쟁이 있었던 것으로추정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였으리라 생각되는데, 이는 인구 증가에 의한 주거 공간의 확대를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송국리유적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주변의 여러 취락과 관련을 맺으면서 그 정점에 위치하는 중심취락으로 성장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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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역 유적에 대한 고고지자기학적 연구 (Archaeomagnetic Study on Archaeological Sites in Jeju Region)

  • 성형미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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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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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1-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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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제주지역 8군데 유적의 소토를 동반하는 다양한 유구로부터 16점의 귀중한 고고지자기 측정데이터를 구할 수 있었다. 서력기원전 시기의 데이터 12점과 서력기원후 시기 데이터 4점을 통해 고고지자기학적인 연구를 진행하였다. 먼저 서력기원전 시기는 고고지자기 데이터의 차이를 통해 A, B, C의 3개의 그룹으로 나눌 수 있었는데 국내의 다른 지역에서 축적된 데이터와의 비교 검토 및 고고학적 편년을 참고하여 A그룹(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rightarrow}$B그룹(원형점토대토기가 출토하는 초기철기시대)${\rightarrow}$C그룹(삼각형점토대토기가 출토하는 초기철기시대)의 선후관계를 설정할 수 있었으며, 즉 A가 가장 빠른 시기의 데이터 그룹이고 C가 가장 늦은 시기의 데이터 그룹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서력기원후 시기의 데이터를 통해 고고유적에 대한 고고지자기 연대를 결정할 수 있었다. 제주지역 유적에 대한 고고지자기 연대측정을 통해 서력기원전 시기에 대해서는 유적들의 상대적인 선후관계를 결정하였고 서력기원후 시기에 대해서는 유구들의 절대연대를 부여할 수 있었는데, 제주지역 편년연구에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여수반도 지석묘 사회의 계층구조 (Hierarchy of the dolmen society in Yosu Peninsula)

  • 이동희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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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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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9-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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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본고는 위세품이 풍부하고 타 지역보다 많은 지석묘가 발굴조사 된 여수반도를 대상으로 지석묘사회의 계층구조에 대해 살펴보았다. 여수반도에서는 약 20개소의 지석묘 군이 발굴조사되었다. 지석묘의 수.상석.무게.입지 부장유물 등을 분석해 보면 지석묘군집별 위계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대개 지석묘의 수가 많아 집단이 크고 상석이 대형이며 입지가 곡간 평지나 구릉의 하단부에 자리잡은 집단이 부장유물이 풍부한 중심적인 집단으로 추정된다. 다만, 개별상석의 크기와 부장유물은 상호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상석의 규모와 부장유물의 관계에서는 개별 상석보다는 지석묘군 전체를 검토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집단별로 어느 정도 크기의 상석을 옮길 수 있는지는 그 집단의 위상을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단위 지석묘군내에서도 상석, 매장주체부, 부장품 등의 차이에 의해 지석묘간의 차별성을 확인 할 수 있다. 지석묘가 청동기시대 일부 주민의 무덤이라는 점에서, 유물이 출토되지 않은 석곽에 비해 동검이나 옥, 석검이 부장된 석곽묘의 존재는 하나의 친족집단내에서도 부나 권위에 근거하여 한 세대를 대표하는 유력자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지석묘 피장자 중 상석이나 매장주체부가 크고 위세품이 부장된 경우가 상층으로, 석곽이 비교적 작으면서 부장품이 없거나 빈약한 경우가 중층으로, 지석묘에 피장되지 못하는 다수의 계층이 하층으로 각기 자리매김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이 3계층은 각기 삼한시대의 대인, 하호, 생구와도 연계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여수반도 지석묘사회는 단위 지석묘군내에서 계층구분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집단간에도 서열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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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전의 식생 간섭사 (Vegetation Disturbance of Korea during the Pre-Chosun Dynasty Period)

  • 공우석
    • 한국제4기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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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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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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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한반도에서 구석기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자연식생 간섭사를 시공간적 관점에서 복원하였다. 자연식생 간섭은 신석기시대에 본격화되었으며, 간섭은 초기에 저지와 해안에서 이루어졌으나, 후기에는 내륙으로 확산되었다. 청동기시대에는 밭의 개간이 활발해지고, 특정 수종에 대한 선택적 이용에 따른 간섭이 있었다. 철기시대에는 밭농사를 위한 개간이 한반도 전역에서 이루어져 자연식생의 파괴가 계속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별채, 목재 가공, 철제 농기구 사용, 가축에 의한 땅 갈기 등이 도입되면서 경작지 확대를 위한 자연식생의 간섭이 계속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개간이 장려되면서 다락밭이 조성되고, 땔감, 조선, 광업, 목판 인쇄, 개간 등으로 자연식생의 간섭이 심각해졌다. 자연식생 간섭을 가져온 주된 요인은 농경 및 벌채와 관련된 인간의 활동이었고, 그 외 일상생활과 산업에서도 산림 식생의 간섭은 발생했다. 신석기시대 전기의 괭이농사, 후기의 보습농사, 청동기시대의 가축에 의한 보습농사, 철기시대의 농기구를 이용한 농사와 삼림 벌채 등으로 농경에 의한 자연식생의 간섭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고구려의 밭농사, 백제의 논농사와 밭농사, 신라의 밭농사, 통일신라 때 밭의 확대 개간, 고려 때 개간 장려에 따라 다락밭이 확산되면서 전국에서 산림 훼손 피해가 심하였다 벌채는 신석기시대 초기부터 본격화되어 후기에는 섬이나 내륙으로 확산되었다. 밭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벌채는 계속되었고,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에는 목공구가 발달하면서 자연식생의 제거가 쉬워졌다. 고구려의 밭농사, 백제의 앞선 목재 가공 기술, 신라와 가야의 광물 생산, 목재 가공, 개간에 따라 식생 파괴가 심했다. 고려 때에는 연료와 개간으로 나무가 벌채되었고, 대신 산에 소나무 등을 심으면서 마을 주변에서 소나무 숲 경관이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자연식생 간섭을 가져온 기타 활동으로는 구석기 전기의 석기와 불, 신석기시대의 정착생활과 관련된 활동, 청동기시대의 제련, 철기시대 철제 생활용구 제작, 고조선의 온돌난방, 삼국시대의 아궁이·굴뚝을 갖춘 온돌방, 신라의 많은 숯 사용, 고려의 선박 건조, 전란, 목판 인쇄, 연료, 경제작물 재배, 전면적인 온돌난방 보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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