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Joseo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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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mapping' in-situ U-Pb 탄산염광물 연대측정법의 원리 및 적용 (Principle and Application of 'Image-mapping' in-situ U-Pb Carbonate Age-dating)

  • 김하;홍성식;박채원;오지혜;김종욱;송윤구
    • 자원환경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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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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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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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본 연구는 Drost et al. (2018)이 제안한 LA-ICP-MS를 이용한 새로운 'image-mapping' in-situ U-Pb 연대측정법을 소개하고, 국내 전기고생대 조선누층군 시료를 대상으로 처음 적용하여 결정한 절대연대 결과 사례를 통해 이 방법의 특성과 활용성을 알리고자 한다. 탄산염광물을 대상으로 하는 'image-mapping' in-situ U-Pb 연대측정법은 미세조직 관찰을 기초로 미소영역의 'image-mapping' 법을 적용하여, 기존의 점 분석(spot analysis) in-situ 분석법과는 달리, 신뢰성 높은 절대연대를 결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생성 이후 일어난 복수의 지질학적 '사건' 절대연대도 결정할 수 있다. 막골층과 대기층 탄산염광물로부터 퇴적연대와 함께 복수의 퇴적 이후의 연대를 결정한 적용 사례에서 이를 확인하였다. 따라서 이 같은 'image-mapping' in-situ U-Pb 연대측정법이 전 지질시대에 걸쳐 다양한 지질학적 환경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탄산염광물 절대연대 결정에 적용된다면, 새로운 지질학적 연대정보 확보가 가능할 것이다.

영화 <궁합>에 나타난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표현 (Embodiments of Traditional Cultures in South Korean Films : Taking The Princess and the Matchmaker as an Instance)

  • 진역우
    •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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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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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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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영화는 세인이 다 알고 있는 성취를 거두었다. 예술적으로는 국제영화제에서 빈번하게 수상을 하였고 상업적으로는 아시아는 물론 전세계의 영화시장을 신속하게 점령하였다. 높은 입소문과 함께 흥행가작들이 쏟아져 나와 영화 관람 붐을 일으키고 문화 현상을 형성하여 "한류"문화의 중요한 힘이 되었다. 이런 상황은 한국 정부의 문화정책이 대대적으로 뒷받침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한국 영화인들의 높은 문화적 자각에도 관계된다. 바로 한국 영화가 보여주는 한국 문화가 동양의 문화적 정취를 담아 관중들의 사랑을 받고 세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 홍창표 감독이 연출하고 심은경, 이승기 주연의 한국 로맨스 코미디 <궁합>은 2018년 개봉하였다. 영화는 조선시대 최고의 기예를 가진 역술가 서도윤이 궁합풀이를 통해 송화옹주를 위해 부마를 선택하여 혼인을 해결하고 연이는 가뭄으로 인한 민원을 회복하여 나라 위기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썼다. 이 논문은 궁합의 예를 들어, 문화의 물질적 측면과 제도적, 행위적 측면, 심리상태적 측면에서 영화 속 표현의 "팔자", "합혼(閤婚)"등의 전통풍속과 이런 풍속 뒤에 내포된 음향오행문화의 관념을 분석하고 전통문화가 영화라는 현대 문화 예술 형식에서 보여 지는 방식, 방법, 규율을 탐구함으로써 더 나아가 세계화 시대에 어떻게 하면 더욱 자각적이고 자신 있게 서로 다른 인류문명에 대해 파악 할지에 대해 탐구하였다.

석재 서병오(1862-1936)의 1889년작 난죽석도 연구 (A Study on the 1889 'Nanjukseok' (Orchid, Bamboo and Rock) Paintings of Seo Byeong-o)

  • 최경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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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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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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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서병오(徐丙五, 1862-1936)는 서구적 '미술' 개념의 도입으로 일본화 내지 서양화로 기울던 일제강점기 시서화일치의 대구 문인화단이 형성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1879년 이하응(李昰應, 1820-1898)과의 만남을 계기로 서화계에 입문하였으나, 문인화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부터이다. 그의 예술세계는 세 시기로 구분되며, 학습기인 1879년부터 1897년까지는 관직 진출을 목표로 하였던 때문인지 중국 화보를 임모하거나 이하응의 영향 아래 사군자화를 여가에 그리는 정도였다. 발전기는 1898년부터 1920년까지로 그는 애국계몽운동 등 사회적 지도자로 활동하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삶의 방향을 문인화가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중국 여행에서 다시 만난 민영익(閔泳翊, 1860-1914)의 운미란과 포화(蒲華, 1830-1911)의 묵죽법을 근간으로 새로운 화풍을 적극 모색함과 동시에 산수, 화훼, 기명절지 등의 화목도 다루었다. 완숙기인 1921년부터 1936년까지는 대구와 한양을 오가며 근대 한국 화단의 서화가로 왕성하게 활동하였으며, 묵란과 묵죽에서 윤묵의 호방한 필법을 특징으로 하는 개성적 화풍을 완성하였다. 특히 학습기의 경우 관련 기록이나 현전작품이 드물어 서병오의 창작활동이나 화풍 등에 관한 것은 추론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본고에서 집중적으로 분석한 서병오의 1889년작 난석죽도 11점은 학습기의 화풍 연원이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1889년작 난죽석도 가운데 묵란도는, 이하응이 1882년 7월 청군에 의해 체포되기 이전에 그린 초기 군란도와 석란도에서 영향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묵죽도는 한양에 널리 알려진 양주화파 정섭(鄭燮, 1693-1765)과 김정희의 제자 허련(許鍊, 1809-1892)의 화법을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하응의 석란도 형식을 응용하여 변화를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괴석도의 경우 직접적인 관련성은 찾지 못하였으나, 19세기 후반 청나라의 괴석화가 주당(周棠, 1806-1876)과 여항화가 정학교(丁學敎, 1832-1914) 등에게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결론적으로 서병오의 1889년작 난죽석도는 학습기에 그려진 것으로 운현궁을 찾았던 허련과 정학교 같은 동시기 화가들이나, 한양에 작품이 유입되었던 정섭과 주당 등의 중국 작품을 실견하며 이들의 화풍을 수용하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판소리의 영화적 해석과 변모의 과정 (The cinematic interpretation of pansori and its transformation process)

  • 송소라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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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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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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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 연구는 판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대상으로 영화 속에서 판소리가 수용된 양상을 살핌으로써, 판소리에 대한 현대사회의 인식과 기대의 변화를 탐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선후기 상하층의 사랑을 두루 받았던 판소리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으며 그 위상이 꺾이게 된다. 일본에서 유입된 신문물의 영향과 미국 문화의 유입으로 대중적 관심을 잃게 되며, 고루하고 낡은 전통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이에 국가는 점차 사라지는 판소리를 보호 및 계승하기 위해 1964년 판소리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지만 1980년대까지도 판소리의 자생적 대중성 확보는 어려웠다. 그러나 판소리는 국가의 꾸준한 지원과 명창들의 판소리 전승 노력,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우리의 것을 세계화하자는 사회문화적 담론 속에서 점차 동시대의 대중과 호흡하는 노력을 해왔고, 문화콘텐츠의 주요 소재로도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팝밴드 '이날치'와 현대무용그룹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선보인 뮤직비디오 형식의 'Feel the Rhythm of KOREA'가 보여주듯 현재의 주목받은 대중문화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현대사회 속에서 점차 변화해가는 판소리에 대한 대중적 인식과 판소리의 위상은 영화라는 대중매체 속에서도 엿볼 수 있다. 본 연구는 1993년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를 비롯하여 최근의 <소리꾼>까지 판소리를 소재로 한 6편의 영화를 선별하여 이와 같은 변화의 추이를 탐색하였다. 먼저 1990년대에 제작된 영화 <서편제>와 <휘모리>이다. 이 두 편의 영화는 모두 당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대의 판소리, 즉 20세기 초중반 전승의 위기와 대중적 관심에서 멀어진 판소리의 현실을 보여주며, 그 속에서도 판소리 자체의 예술적 완성을 위해 치열하게 분투하는 소리꾼의 모습을 영화에 담아내었다. 판소리가 가진 정서로써 '한'과 북과 소리의 조화를 통한 판소리 미학을 강조함으로써 우리 소리의 숭고함과 특수함을 대중에게 선보였다. 판소리에 관해 관심이 적었고, 따라서 이의 가치를 잘 모르던 대중은 즉각 이에 화답하며 우리 음악과 우리의 정서에 대한 폭발적 지지를 보여 이른바 '<서편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서편제>와 <휘모리>는 우리 소리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부족한 시기, 그러나 그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요청되던 199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이 영화의 내용과 구성에 반영되며 당대 판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기대를 드러내었다. 다음으로 2008년에 제작된 영화 <소리, 아이>와 2012년의 <두레소리>이다. 두 영화는 판소리와 국악을 하는 동시대의 어린이, 학생을 주인공으로 하여 예술을 하는 아이들의 성장기를 그려나가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들 영화에서 판소리는 '요즘 세상에 누가 그것을 하냐'의 소리를 듣는 옛 음악도 아니고, 혹독한 수련과 고통 속에서 완성이 되는 숭고한 음악으로 묘사되지도 않는다. 부모님의 권유, 집안의 사정 속에서 판소리를 시작한 아이들이 소리를 익히고 성장하고, 갈등하고, 고민하는 이야기를 통해 판소리는 동시대의 하나의 자연스러운 예술로 그려질 뿐이다. 판소리를 비롯한 국악의 정통성을 신념화하여 강조하지 않고, 교조적으로 이를 대중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이는 동시대의 예술로 판소리를 바라보는 2000년대의 달라진 대중적 인식을 반영하는 속에서 판소리가 해석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2015년의 <도리화가>와 최근 상영된 2020년의 <소리꾼>이다. 흥미롭게도 두 작품 모두 판소리가 민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던 조선후기를 영화의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영화의 이야기를 판소리의 역사를 토대로 구성하였는데, <도리화가>의 경우는 실존 인물인 신재효와 진채선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덧붙인 서사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소리꾼>의 경우는 광대의 소리가 판소리 사설의 원류가 되었다는 판소리 이론과 판소리 <심청가>의 서사를 활용하여 당대 존재했을 법한 소리꾼의 삶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두 영화는 판소리의 역사에서 이야기의 소재를 찾아 이를 영화화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전통을 문화콘텐츠의 소재로 삼고자 하는 시대적 분위기와 연결된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국가 간의 문화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때에, 콘텐츠의 소재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역사를 활용한 이야기가 그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통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문화콘텐츠의 소재로 삼고자 하는 시도는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되었고, 판소리의 음악뿐만 아니라, 판소리의 역사 또한 활용 가능한 콘텐츠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의 판소리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옛것도, 낡은 전통도 아닌 동시대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예술이자, 다양한 콘텐츠의 소재로 활용 가능한 자리에 온 것이다. 상기 영화들은 현대 판소리가 걸어온 길과 변모하는 위상, 그리고 이에 따라 달라지는 대중적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판소리 문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기초가 될 수 있다.

식물원에 대한 개항기 한국 지식인의 인식 고찰 (A Study on the Perception of Korean Intellectuals on Botanical Gardens during the Open Port Period)

  • 김정화;조경진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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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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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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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는 창경궁 내 식물원이 조성되기 이전에 나타난 한국 근대 식물원의 효시를 찾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를 위해 1876년부터 1910년의 개항기에 일본, 러시아, 영국에 파견된 사절단이나 윤치호 및 유길준과 같은 해외 유학생이 작성한 기행문 형식의 글을 실마리 삼아 당시 한국 지식인들이 식물원을 이해하고 전유하는 양상을 읽어내려 하였다. 연구 결과, 식물원에 관한 내용은 18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기행문에 등장하지 않았다. 여러 식물원을 안내하려고 했던 일본 측의 계획과 달리 일본에 파견된 조선 사절단들은 식물원을 방문하지 않고 관련 기록도 남기지 않는 등 식물원에 대한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반면, 1890년대 이후 러시아, 유럽, 미국 등지에 파견된 사절단이나 유학생들은 식물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식물원을 문명국인 서구의 대표적 문물이자 필수품으로 판단하고 학문 발전과 계몽의 도구로서 국내에 도입하고자 노력하였다. 비록 개항기 한국 지식인들의 식물원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및 주장이 실제 식물원 조성으로 이어지지는 못하였으나, 이들의 기록과 견해는 문명의 표상으로서 식물원의 이미지를 공고히 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본 연구는 한국 근대 식물원 개념의 태동을 구체화하고 1909년 창경궁 내 식물원의 설립을 이해하는 데 밑거름을 제공하는 기초연구로서 의의를 갖는다.

국내 역사공원의 지정 및 조성 경향 분석 (Analysis on Trends in the Designation and Development of Historical Parks in Korea)

  • 길지혜;박희성;박재민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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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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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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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2005년 도시공원법 개정 이후 국내에는 역사유산의 보전은 물론 도시민의 휴식과 교육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역사공원이 등장하였다. 이제는 역사공원의 운영 실태를 통해 국내 역사공원의 특성을 알고 그에 따른 제도적 보완을 모색할 때이다. 본 연구는 주요 국가의 역사공원 제도의 특성과 국내 역사공원의 지정 및 조성 경향을 분석하여 역사공원의 기능과 역할을 점검하고 향후 대응 방향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연구는 문헌고찰을 중심으로 하되, 역사공원 현황과 조성 과정을 관계 공무원과 전문가에게 전화 및 이메일로 확인하였다. 연구 결과, 역사자원은 주로 조선시대 유적에 집중되어 있지만 인물, 사건, 장소 등의 유산도 포함되며 근대기 유산도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역사공원은 기존도시와 신도시, 대도시와 지방도시 사이에 차이가 있으며 지방도시는 최근 경제 활성화와 정체성 강화를 위한 중요한 자원으로 역사공원을 이용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공원의 종류를 역사공원으로 변경한 경우, 기존 기능과 일부 상충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국내 역사공원은 역사유산공원, 역사기념공원, 역사주제공원과 역사적공원의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세부적 유형분류는 향후 역사유산의 보전과 활용을 위한 전략적 토대가 되며 역사공원의 구체적인 운영 방향을 제시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18세기 함경도 관찰사의 순력(巡歷) 노정과 주요 업무 (The 18C Hamkyung-Gamsa's Sulryeok Routes and major duties)

  • 여상진
    •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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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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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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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논문은 함경감사가 작성한 감영(순력)일기인 윤양래의 "관북일기"와 "순력일록", 심수의 "동북안사록" 중 '북행일록', '북순일기'를 통해 함경도 관찰사의 순력 노정과 기간, 순력 중의 주요 업무 및 함경도 순력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함경도 관찰사의 순력은 조선시대 6대로 중의 하나인 경흥로를 거의 그대로 이용하며, 따라서 경흥로 상의 역참이 중요한 경유지가 된다. 대로를 이용한 순력은 산세가 험한 함경도의 지역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감영처 함흥을 중심으로 북순과 남순으로 나누어 시행하는데, 남쪽에 치우친 함흥의 위치로 말미암아 행영과 두만강 하구 관방지역 진, 보에 이르는 북순의 경로가 긴 것에 비하여, 안변에 이르는 남순은 경로와 기간이 짧다. 북순은 관문 취점, 윤조, 길주 별과, 유생백일장과 무사 시사 등이 순력의 주요 업무이며, 남순은 영흥의 준원전, 문천의 숙릉, 안변의 지릉 등 왕실사적과 능침의 봉심이 주요 업무가 된다. 한편 순력 중 경승의 유람을 포함한 행로를 잡기도 하였는데, 북관10경이 유람의 주요한 대상이 되었다.

전통즙장 - 전통 즙장에 대한 연구 - (Traditional Jeupjang - A Study on Traditional Jeupjang (Succulent Jang) -)

  • 안용근;문영자
    • 한국식품영양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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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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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35-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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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즙장은 중국의 조리서에 수록되지 않은 순수 우리나라 속성장으로 많은 종류가 있었으나, 보존성 문제로 대부분 맥이 끊겨서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조선시대 및 1950년 이전 조리서의 즙장을 조사하여 밝혔다. 그 중 가지와 오이 등의 채소를 넣는 즙장은 34 가지, 넣지 않는 즙장은 9가지였다. 즙장의 주재료는 콩과 밀기울이며, 보리, 메밀도 쓰였다. 즙장메주는 빨리 뜨게 하기 위하여 일반메주보다 작게 만들었는데, 작은 알 형태가 가장 많고, 납작하거나 둥근 칼자루 형태도 있다. 즙장은 메주가루를 소금과 물로 이겨서 담그는 것이 가장 많다. 함께 쓰는 것으로는 누룩가루, 밀기울, 밀가루, 술, 말장, 간장, 엿기름, 탁주 등이 있다. 즙장메주는 용기에 넣어서 띄우는 것도 있고, 넣지 않고 띄우는 것도 있는데, 용기는 섬과 둥구미가 가장 많고, 버드나무그릇, 치룽, 독도 사용하며, 즙장메주의 깔개 및 덮개는 닥나무 잎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그 외에 짚, 북나무잎, 뽕잎, 가랑잎, 솔잎, 콩잎도 사용한다. 즙장은 다른 장과 달리 말똥, 두엄, 풀더미에 묻혀서 이들이 썩으면서 내는 $60{\sim}65^{\circ}C$의 열로 가열하여 숙성시킨다. 즙장은 맥이 끊기거나 쩜장, 지례장, 무장, 빠금장, 막장, 집장, 토장 등의 형태로도 변하였다. 이들 장은 즙장에서 사용하지 않는 쌀, 엿기름, 고춧가루 등을 사용하고 있는 점에서 다르다.

황장목의 부후 및 흰개미 저항성 (Decay and Termite Resistance of Yellow-Hearted Pine (Pinus densiflora for. erecta Uyeki))

  • 이애희;장재혁;황원중;김남훈
    • Journal of the Korean Wood Science and 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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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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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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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황장목(黃腸木)은 적황색을 띠는 심재부의 비율이 높고 연륜폭이 매우 조밀하며 최소 수령이 100년 이상 되는 귀중한 소나무 자원이다. 조선시대에는 황장목을 궁궐, 사찰 등 중요 건축물에 사용하였다. 하지만 황장목의 재질특성에 관한 연구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본 연구에서는 황장목의 천연내구성을 검토하기 위하여 부후균 및 흰개미 저항성을 조사하였다. 공시균은 갈색부후균(Fomitopsis palustris)과 백색부후균(Trametes versicolor) 균주를 사용하였고, 공시 흰개미는 일본흰개미(Reticulitermes speratus)를 사용하였다. 그 결과, 갈색 및 백색부후균에 의한 중량감소율은 심재부에서 3.7~5.6%, 변재부에서는 16.1~26.3%로 나타났다. 또한, 흰개미 사충률은 심재부에서 약 47%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를 통하여 황장목의 심재부는 부후균 및 흰개미에 대한 저항력이 뛰어난 것을 알 수 있었다.

삼강행실도의 만화칸과 칸 사이 형태 분석 (An Analysis on Shapes of the Gaps between Comics frames and Frames of 'The Three Bonds And The Morals in Human Relations')

  • 박경철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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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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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74-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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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조선 시대 인쇄물인 삼강행실도는 세계 만화역사에서도 이른 시기인 1434년에 간행되었다. 삼강행실도에는 만화기호인 '만화칸'과 '칸과 칸 사이'가 등장한다. 만화기호인 만화칸의 상징성 못지않게 칸과 칸 사이도 만화기호에서 상징적 의미가 있다. 만화역사의 측면에서 보면 칸이 등장한 후, 칸과 칸 사이가 등장한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 상징적 근거들을 찾아 밝힘으로써 국내 만화역사의 역사적 근거가 다져질 것이다. 삼강행실도에서는 칸과 칸 사이의 형식적인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구름칸과 구름칸 사이'이며, 두 번째는 '구름칸과 배경칸 사이'이다. 삼강행실도의 두 가지 유형인 칸과 칸 사이는 현대 만화와 비교할 때 모양이나 연출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칸과 칸 사이의 의미는 유사하다고 하겠다. 이처럼 본 연구는 삼강행실도의 칸과 칸 사이의 형태를 분석함으로써 국내 만화역사의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는 데 의미가 있다. 만화기호 중에서도 칸과 칸 사이에 초점을 맞추어, 삼강행실도의 칸과 칸 사이의 형태를 증명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