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Joseon Dynasty fabr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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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의 수분 흡착성능 연구 (A Study on Moisture Adsorption Capacity by Charcoals)

  • 김대완;안기선;곽이구;김홍건;유승곤;이영석
    • Korean Chemical Engineering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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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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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7-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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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우리나라 전통 숯가마로부터 제조된 숯의 표면형상과 흡착특성을 분석한 후,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면서 이들의 수분 흡착성능을 측정하고 황토, 활성탄소섬유 직포 및 활성탄소섬유 종이의 수분 흡착성능과 비교하였다. 숯은 소수성이므로 45% 이하의 습도에서는 수분을 잘 흡착하지 않지만 습도가 증가하면 흡착성능이 서서히 1차식에 비례하여 증가하였다. 황토 분말도 낮은 습도에서는 숯과 유사했지만 습도가 증가하면 흡착성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Type V 등온흡착곡선을 보였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기상청 직원들이 숯과 황토의 수분 흡착능력을 일기예보에 적용하였다는 기록을 실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활성탄소섬유 직포와 활성탄소섬유 종이는 수분 흡착능력이 월등하고 신속한 반응을 보이므로 습도측정 센서에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숯 조각의 등온흡착 및 탈착곡선 측정에서 흡착질인 질소의 탈착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낮은 압력 이력현상(low-pressure hysteresis)이라는 독특한 Type I과 Type IV의 혼합형태를 보이는데, 이는 질소입자가 흡착시에 숯 세공의 틈새를 비비고 들어가 단단히 끼었다가 탈착시에 빠져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숯을 분말로 분쇄하면 이러한 틈새들이 분쇄되어 비표면적이 증가하고 낮은 상대압력에서 흡착질의 탈착량이 증가되었다.

1910년대 고종 탄신 기념 연회의 공연 양상 (Performance Style of the Emperor Gojong' Birth Anniversary Memorial Banquet in the 1910s)

  • 이정희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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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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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87-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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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1910년대 고종 탄신 기념 연회는 예악의 조화로운 장엄미가 빛나는 조선시대의 공연 연출방식과 다르게 이행될 수밖에 없었다. '예식 - 오찬 - 공연'의 구도로 분리 이행되어 예악의 분화를 분명히 드러내는 형태를 드러냈다. 공연은 만찬 석상에 수반되거나 저녁 여흥에서 가볍게 구현되었다. 여흥이란 용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이에 속하는 공연 종목들은 그저 즐길거리, 오락, 재미, 놀거리 정도로 전락하게 되었다. 공연의 컨텐츠들이 연회 전체와 긴밀한 짜임새를 지니지 못한 채 개별화 되었고,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연행되는 방식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러므로 공연의 전체적인 완성도와 탄탄한 구성력은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공연 종목은 궁중에서 연행된 전통 악무(樂舞)보다는 오히려 이전에 고종 친림 전통 연향에서 상연되지 않았던 양악, 민간 성악곡, 민간 기악곡, 마술, 영상이 각각 배치되었다. 즉 궁중 전통 악무로 일관될 수 없었고 민간 공연물과 신예술이 넘나드는 향연장으로 변환되었던 것이다. 궁중 공연의 외연 확장이라기보다는 전통을 망각시키고 유흥적인 분위기로 일제가 몰고 가는 형세에 처해 있었다.

국가민속문화재 제29호 사명대사의 금란가사와 장삼의 과학적 조사와 보존 (Conservation of Buddhist Monk Samyeong's Geumran-gasa and Jangsam, the National Folklore Cultural Heritage No.29)

  • 정영란;안보연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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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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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4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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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사명대사의 금란가사와 장삼은 역사적 인물의 유품이자 조선시대 불교 복식으로 1973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었다. 1984년 세척과 형태 유지를 위한 보존처리를 거쳐 표충사호국박물관에 보관되다가, 2013년 문화재청에서 실시한 정기조사 결과 재처리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금란가사는 본래 25조인데 두 조각으로 분리된 상태로 결실된 부분이 많고, 장삼 또한 깃의 일부가 남아있지 않아 원형 복원이 필요했다. 재처리 과정은 처리 전 조사, 세척, 보강직물 염색, 보강 및 복원, 훈증소독의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새로운 보존처리 재료와 방법을 적용하여 손상되거나 결실된 부분을 보강, 복원하여 원형을 최대한 회복시키고자 하였다. 이번 보존처리는 보존처리의 가역성이라는 기본 원칙 하에 노후화된 보강 재료를 교체하고 발전된 방법을 적용한 직물 문화재의 재처리 사례에 대한 연구결과이다.

창덕궁 성정각 출토 모담(毛毯) 직물 분석 (A Textile Analysis of Woolen Carpet Excavated from Seongjeonggak Hall, in Changdeokgung Palace)

  • 박성희;이량미;안보연;조미숙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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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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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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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조선 말기 방한용 깔개인 모담(毛毯)이 창덕궁 성정각의 해체 공사 중 발견되었다. 문헌기록에 비해 현전하는 조선시대 모직물 유물이 많지 않아 유물로서 가치가 높다. 특히 1907년 창덕궁 성정각을 수리한 기록이 있어, 모담은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출토 모담은 자적색 계열의 바탕 직물로 위에 황색, 홍색 등으로 선염한 색사를 표면에만 삽입하여 문양을 시문하였다. 모담의 식서부분은 S연의 면사가 확인되었으며, 지경사는 Z연의 황마사, 지위사는 S연의 황마사, 문경사는 S연의 모사를 사용했다. 특히 무늬는 루프파일의 색사로, 색사의 경계면에서 일부 컷 파일이 확인되나 지위사로 고정되어 표면에 거의 드러나지 않는 다. 황마사와 모사를 사용한 것은 18세기 중엽 유럽의 브뤼셀 카펫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모담의 문양을 밝히는 데 한계가 있으며 다만 문양이 부분적으로 반복됨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연구내용을 도출하기 위해 문헌과 회화자료 외에 현미경 분석, 적외선 분광분석을 실시하였다. 또한 유물에 사용된 염료를 밝히기 위해 색도측정을 토대로 자외-가시광 분광분석을 실시하여 천연 염색한 직물 샘플에 대한 교차분석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모담의 녹색 모사는 쪽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자적색의 바탕조직은 소목으로 염색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7세기 전식(全湜, 1563~1642)의 조복 유물 고찰 (A Study on Jeon Sik(1563~1642)'s Jobok Relics from the 17th Century of the Joseon Dynasty)

  • 이은주;김미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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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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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6-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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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이 연구는 2021년 경북 유형문화재 <상주 전식 조복 및 공예품 일괄>로 지정된 유물 중 전식(全湜, 1563~1642)의 조복 구성물인 3점(의·상·대대)의 유물을 17~18세기 5건(신경유, 권우, 화산군 이연, 밀창군 이직, 이익정)의 출토 조복 구성물과 문헌자료를 비교하면서 유물의 조형적 특징과 제도와의 차이점을 밝히고자 함에 목적을 두었다. 전식의 조복 구성물 3점은 색상을 확인할 수 있는 최고(最古)의 조복 유물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붉은 색 능직물로 제작한 상의(上衣)는 아쉽게도 가선이 소실된 상태이지만 흔적이 남아 있는 부분에 대해 기록이나 초상화 등의 자료에 근거하여 흑색 가선[黑緣]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흑선과 바탕 옷감 사이에 끼우는 흰 장식선은 아직 사용되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 하상(下裳)은 전3폭 후4폭 중 전3폭과 후1폭만 남은 상태이다. 그러나 후4폭의 형태를 유추할 수는 있었다. 주름 흔적으로 볼 때 허리 부분에만 주름을 잡았음을 알 수 있었다. 18세기의 밀창군, 이익정 묘 조복 상은 허리말기에 간격을 두고 연결되어 있으나 신경유, 권우, 화산군 이연 묘 조복 상 등 17세기 조복 상은 전상 아래로 후상이 겹쳐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전식의 조복 상 역시 전상 아래에 5cm 전후로 후상을 겹쳐 연결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화산군 이연(李渷, 1647~1702) 이후 흑선과 바탕과의 사이에 백색 장식선을 끼운 뒤 허리부분에서 밑단까지 주름을 잡은 형태였다. 대대는(大帶)는 '경(冂)' 모양인데 소색(素色)의 주(紬)에 녹색 문사(紋紗) 선을 둘러 긴 띠를 만든 후 모서리를 접어 요(腰)와 신(紳)을 만들었다. 18세기 밀창군과 이익정, 정휘량의 조복본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대대의 색상과 일치하였다. 18세기 초 화산군 이연 묘 대대 이후는 요와 신 부분을 따로 재단하여 이은 형태였으나 전식의 대대를 포함한 17세기 신경유 묘, 권우 묘의 대대는 긴 띠를 접어 요와 신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허리에 매기 위해 양 끝에 가는 끈을 달았다. 전식의 조복 유물은 색상이나 형태면에서 17세기 조복제도를 구체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국조오례의 서례』·『경국대전』조복제도의간략하거나부정확한기록을보완해주는사료로서의중요한가치를지니고있다고하겠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신부 가마덮개의 특성과 양식 변천 (Characteristics of Bridal Palanquin Covers and Changes in Style from the late 19th Century to the early 20th Century)

  • 박윤미;오준석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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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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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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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조선 말기에 혼례를 마치고 신부가 시댁으로 가면서 가마를 타고 가는데 그 때 가마 위에 벽사의 뜻이 담긴 호피를 덮는 풍습이 있었다. 상류층을 중심으로 호피나 표피를 사용했으나 서민들 사이에서는 호랑이무늬를 그린 모포를 덮었다. 그 모포는 호탄자, 호구, 호구욕 등으로 불리었다. 신부 가마덮개가 처음 사용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략 19세기 말부터 1930년대까지 성행하다 점차 사라졌는데 신식혼례의 등장으로 신부의 가마가 필요 없어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호랑이무늬 모포는 신부 가마 위에 덮는 것뿐만 아니라 상 위에 덮거나 바닥에 깔기도 하였는데 모두 혼인식에 사용되었다. 호랑이무늬 모포 9점에 대한 성분 분석 결과 겉감과 안감의 경사는 무명실, 위사에는 모사(毛絲)가 사용되었다. 겉감의 위사에 사용된 모사는 2종류인데 중국의 비미종 양모와 중국 허베이성 카펫용 염소모로 밝혀졌다. 러시아에서 '호랑이 그린 무늬의 담요'가 수입되었다는 것과 중국에서 모물을 사들인 후 우리나라에서 깔개를 만들었다는 내용, 그리고 여러 기법의 모깔개를 제작했다는 사료를 고려해보면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완제품으로 수입하기도 했고 국내에서 생산하기도 했다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물 조사한 호랑이무늬 모포 13점의 겉감은 직물의 조직과 실꼬임 방향에 따라 6종류가 있으며 안감은 3종류, 그리고 가선은 4종류로 분류되었다. 안감과 겉감은 한 폭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직물의 폭이 최소 135cm의 광폭으로 직조하였다. 호랑이 무늬를 표현하는 방법은 공판화 기법이다. 빨간색 겉감 위에 호랑이 몸통과 꼬리의 도안을 대고 흰색을 칠한 후 호랑이의 바탕색인 노란색과 얼룩무늬인 갈색, 검은색의 순서로 칠한다. 호랑이무늬는 조금씩 달라서 여러 공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호탄자의 무늬는 호피처럼 엎드린 상태로 그렸는데 서 있는 자세도 생겨나고 호랑이무늬는 작아지면서 가장자리에 화려한 꽃무늬를 그려 넣었다. 이같이 호탄자는 무늬에 장식적인 요소가 가미되는 변천을 겪다가 가마덮개로서의 기능이 상실되면서 점차 사라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남아 있는 호랑이무늬 모포 중 수입품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과 당시 유행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여러 생산지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 『오주연문장전산고』에 기록된 자연건조쇄경식 제섬 기술 재현 실험 연구 (A Study on the Reproduction Experimental of Breaking of dried stalks technique of Recorded in Oju-Yeonmunjang jeon-Sango in the late Joseon Dynasty)

  • 공상희;이지원;김하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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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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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0-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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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제섬(製纖)이란 원료에서 섬유를 갈라내거나 뽑아내는 일로 식물의 섬유질을 추출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용어의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제섬은 식물 재료에 행해지는 1차 재료 가공 기술로 인피 섬유가 발달한 식물에 행해진다. 대표적인 인피식물로는 모시풀(苧麻), 삼(大麻), 아마(亞麻), 닥나무(楮) 등이 있는데 그 중 삼은 재배의 역사가 길고 분포 지역도 광범위하여 인류의 생활과 문화의 재료로서 매우 보편적이고 일반화된 식물이다. 본 연구는 『오주연문장전산고』에 기술되어 있으나 현재 국내에서 전승되고 있지 않은 자연건조쇄경식 제섬 기술을 재현 실험하여 기술의 이행 가능성과 특징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문헌에 기록된 방식으로 인피를 채취하고 실험한 결과, 실제로 삼 섬유를 얻을 수 있었다. 삼 줄기에서 속대와 껍질을 분리하기 위한 요인은 변색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조의 정도였으며, 완전히 누렇게 변색된 면적에 한해서 속대와 껍질을 분리할 수 있었다. 일조량과 기온은 건조를 보다 가속시키는 조건이었다. 다만 오랜 시간 동안 노출되기만 한다면 일조량과 기온에 상관없이 인피를 채취하기에 적합한 상태가 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도리깨질의 물리적 힘을 이용하는 자연건조쇄경식은 함경도 육진 지역 제섬 기술의 핵심 공정으로 여겨진다. 삼의 껍질과 속대는 두드릴수록 분리되었고, 인피는 가늘게 쪼개지며 외피는 벗겨져 실로 채취하기에 적합한 상태가 되었다. 물리적인 힘을 가하여 섬유를 채취하는 방식은 섬유에 잔털이 피는 현상을 유발하는 탓에 인피섬유직물인 삼베나 모시제작에서는 일반적으로 지양되었다. 그러나 함경도 육진의 제섬법은 이 원리를 역이용하여 섬세한 직물을 만드는 방식에 적용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방식은 현재 우리나라 안동 지역에서 확인되는 증열식 피마 제섬법과는 구분되며, 삼을 방적하여 직물을 제작하는 서양의 사례와 유사함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