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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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보호법 제정 이전 '문화재' 개념의 형성과 변화 (Forming and Changing the Concept of 'Cultural Property' before the Enactment of the Cultural Heritage Protection Act)

  • 오춘영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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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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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88-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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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이 글은 소멸이 예상되는 '문화재'라는 개념어의 역사를 살피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하였고, 이 개념어가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이전의 역사를 주 연구 대상으로 하였다. 문화재라는 단어는 1920년대에 등장하였는데, 문화적 자원이라는 의미 속에서 문학·역사·음악·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까지 문화재의 의미는 '문화적 자원'이라는 범위에서 많이 쓰였고, 이 시기에는 일제강점의 현실과 역사를 극복하려는 취지에서 사용된 사례가 많았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전쟁으로 인한 문화적 자원의 복구'라는 취지에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일본의 문화재보호법 영향을 직접 받은 문화재 인식은 1950년대부터 등장한다. 1960년대 초 문화재 관련한 각종 법령 제정과 문화재관리국 설치는 문화재의 의미가 '문화유산'으로 한정되는 현상의 원인이 되었다. 이렇게 국가가 주도한 문화재의 정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문화재 개념이 문화재보호법처럼 일본에서 수입되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여러 일본 유학생들이 문화재 개념을 한국에 소개한 사례들은 이 개념이 일본에서 수입되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하지만 '여러 한자를 사용한 조어', '1920년대 문화관련 복합어의 발생 현상', '비 일본권 유학자들의 문화재 개념 사용 사례' 등은 자체적인 발생 가능성도 열어준다. 문화재 개념의 수입 여부와는 별도로, 당시 지식인들은 이 개념을 사용하여 식민지 조선의 내적 발전과 극복을 도모하였다. 이 글에서 문화재라는 개념어는 일반적인 인식보다 더 오래되고 폭넓은 시작의 역사가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문화재'라는 개념어의 역사는 문화재보호법 제정을 기준으로 하면 60여년이 되지만, 그 발생인 1925년을 기준으로 하면 100년 가까운 역사가 된다. 일반적으로 단어의 생성과 소멸은 사회적 변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진행되기도 하지만, 국가적 정책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사라질 수도 있다. 사라질 예정인 단어의 시작이 어떠했는가를 알아보는 것은 이 단어의 역사적 의미를 정리하는 일에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천연기념물 합천 백조도래지의 지정과 해제과정 (The change of designation and release of Hapcheon (Gyeongsangnam-do) Swan Sanctuary as Natural Monument)

  • 심근정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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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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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2-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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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백조는 신의 전령사로 여길 만큼 서조이자 귀중한 겨울 철새이다. 백조도래지는 처음 천연기념물로 지정될만큼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본 연구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합천 백조도래지에 대한 지정과 해제과정을 살펴보고자 했다. 합천 백조도래지는 지정 이전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된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 일본왕에게 새해 인사로 합천군 용주면에서 생포한 백조를 진상하였던 것이 계기가 아니었을까 한다. 이러한 사실은 5여 년 뒤 천연기념물을 지정할 때, 합천 백조도래지 선정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추론된다. 합천 백조도래지는 1934년 8월 27일, 처음 우리나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그 흔적으로 용주면 해곡마을 입구에는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부에서 만든 석표가 유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천연기념물 합천 백조도래지는 1973년 8월 14일 해제되었다. 전쟁과 다양한 개발을 통한 과도한 인간의 간섭, 불법 포획, 그리고 그들을 잡기 위한 독극물 사용으로 인해 겨울 철새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백조도래지의 기능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 지정 당시 합천군 백조도래지는 3개소였다. 청덕면 가호(嘉湖)는 완전히 매립되어 사라져 농지로 전환되었고, 용주면 박곡지(朴谷池)는 상류의 댐 건설로 인해 습지가 사라져 가고 있으며, 대양면 정양지(正陽池)만이 습지가 존속되면서 백조 등 겨울 철새가 날아들고 있어 많은 시사점을 남기고 있다.

근대 시기(1920~1980) 전라남도 구례군의 전통 삼베 수공업 생산 방식의 특징과 변화 (The characteristics and changes of traditional hemp textile production of Gurye at Jeollanam-do in modern times (1920s~1980s))

  • 최승연
    • 복식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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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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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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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This study investigated the characteristics of and changes in hemp textile production practices at Gurye in Jeollanam-do in modern times. To do this, in this study, both a literature review and fieldwork research were utilized as research methods. The literature review focused on Gurye's hemp data, and the fieldwork research involved two separate trials. Male and Female residents of Gurye who had experience in the area of hemp production from the 1920s to the 1980s participated in this study. The results were as follows. First, regarding hemp fiber cultivation in Gurye, hemp cultivation continued to the 1970s and there were no changes in hemp cultivation practice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era. Second, there have been very important changes in hemp kilns over time. In the 1950s, there were both single-body kilns and separate-body kilns in Gurye. Later, specifically in the 1950s, a new type of kiln using an iron pot appeared, and the most modern kilns were concrete structures. Third, in Gurye, women cooperatively removed hemp husks immediately after stemming, subsequently bleaching the hemp by soaking it in lye or caustic soda. Over time, there have been changes in ash types and in soaking periods. Fourth, loom types changed from the traditional Korean back-strap loom to the treadle loom in the 1930s- to 1940s. Fifth, since the 1970s, the hemp textile output levels of Gurye have been reduced due to the westernization of clothing styles, the inflow of Chinese hemp fiber and government regulations pertaining to hemp cultivation.

한국의 광산 지반침하방지기술 연구개발 동향 (Research and Development Trends for Mine Subsidence Prevention Technology in Korea)

  • 김수로;박주현
    • 터널과지하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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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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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08-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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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광물자원 채굴을 위한 지하 채굴공동의 붕괴는 인간이 생활하고 있는 지역의 지반침하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 및 1960년대 광산 활황기에 수많은 광산이 무질서하게 개발되었다. 복잡한 지질학적 여건 및 광산개발 방식으로 인하여 한국에서는 지표 천부에 급경사의 위험한 채굴적이 발생되었으며, 이러한 여건으로 인하여 외국의 광해방지기술을 광산 채굴공동 현장에 그대로 기술을 적용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한국의 지하 채굴적 및 공동에 효과적인 지반안정화 기술을 개발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 및 한국광해관리공단은 대학 연구자 및 전문광해방지사업자 등 관련자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실용화 연구개발을 수행해오고 있으며, 다양한 실용화 조사 및 탐사기술, 공동 충전재료 및 보강방법이 개발되어 현장에 적용되고 있다. 본 보고에서는 향후 연구 및 기술개발 방향을 수립하기 위하여 과거와 현재의 지반침하분야 기술개발 동향을 검토하였다.

현대 한의학의 이해 - 한의학의 정체성 문제 고찰을 위한 예비 연구 (Understanding Current Traditional Korean Medicine - Preliminary Study for Discussion on the Identity Issue of TKM)

  • 이충열
    • 동의생리병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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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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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58-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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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This is a preliminary study for examining the identity issue of the current Traditional Korean Medicine(TKM). In order to examine the identity issue, it is necessary to understand "what" current TKM is. The current TKM has been formed in the complicated historical settings and the newly formed academic geography of modern times, completely different from those of the traditional era. This paper took diachronic and synchronic approaches in order to understand the current TKM. In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and scientization of the TKM-which had begun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the western medical knowledge merged into the TKM. Also, as the College education of the TKM began after the Liberation from the Japanese colonial rule, the TKM scholars accepted the western medical department system to develop the TKM into professional knowledge. Meanwhile, since the late 1970s, the TKM has been influenced by the modern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TCM), and the TCM knowledge also merged into the TKM. And recently, the research methodology of the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CAM), and the clinical research technique of the western medicine-like Evidence based Medicine (EBM)-are affecting the scientization and clinical study of the TKM. The current TKM has been formed as a result of the hybridization of these different knowledges. These changes in the TKM were inevitable for the survival of it in the fast changing world. But these changes brought with them problems. Among those, the identity issue is the most important and crucial.

일본군 '위안부' 영화의 자매애와 증언전수 가능성 (The Signification of Sisterhood and Testimony in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Films)

  • 권은선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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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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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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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관객들의 관심 속에 소개된 두 편의 영화 <귀향>과 <눈길>은 모두 '위안부' 소녀들의 우정을 다루면서 살아 돌아 온자가 살아 돌아오지 못한 자를 고향과 저승으로 보내는 해원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기존의 '위안부' 서사들과는 다르게, 이 두 영화는 '위안부' 여성의 전장에서의 로맨스 플롯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일종의 여성공간을 구축하고 있다. 현실에서의 새로운 젊은 여성의 존재는 개인적 우정의 이야기를 자매애의 공동체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특히 <눈길>은 '위안부' 할머니가 새로운 후속 세대 여성에게 증언을 전수하는 증언작업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영화적 현재에서는, 이렇듯 일본군 '위안부' 서사를 여성주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과거 식민지 시절의 재현은 많은 부분 기존의 가부장제적인 민족주의적 관점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주인공들이 여전히 '순수하고 순결한' 조선소녀들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불온 통신'의 계보와 '트위터' 박정근 사건에 대한 담론 분석을 중심으로 (The Genealogy of Rebellious Communication and Twitter A Discourse Analysis of the Park Jung-geun Case)

  • 홍남희
    • 한국언론정보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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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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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9-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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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2002년 6월 27일 '불온통신' 규제 제도가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불온통신' 규제가 용어상으로는 사라졌다 해도 '불온'에 대한 규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불온'은 '안보'와 '풍속 통제'의 목적으로 활용되어온, 한국 근현대사를 꿰뚫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시기에 마련된 검열 제도를 비롯하여 미군정기, 박정희 정권의 유신 집권기 등을 거쳐 민주화 이후 보수 정권의 집권이 이어진 지난 몇 년간 '불온'의 의미는 집권 세력에 의해 적극적으로 규정, 활용되면서 다양한 지점에서 증폭, 변형되어 왔다. 이 연구는 북한 관련 게시글이나 북한 트위터 계정을 리트윗하는 등의 행위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어 재판까지 받은 박정근 사건에 대한 판결문 및 신문 기사를 통해 '불온'과 관련하여 뉴미디어인 트위터의 매체적 특성이 어떻게 규정되어 가는지, 종북 담론과 정부 비판적 활동, 사회 참여 활동 등과의 연관성 속에서 박정근이 어떻게 '불온한 존재'로 규정되어 가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뉴미디어 시대에 '불온'이 어떻게 규정되어가며,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불온의 계보학'을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지를 모색해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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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朝鮮後期) 상한(傷寒) 연구(硏究)의 일면(一面) - 조선후기(朝鮮後期) 상한(傷寒) 연구서(硏究書) "상한경험방요촬(傷寒經驗方要撮)"의 구성과 내용 - (Composition and Contents of the Monograph on Theory of Cold Damage - "Sanghankyeongheombangyochal"(傷寒經驗方要撮) in the Late Joseon Dynasty)

  • 오준호;박상영;김현구;권오민
    • 한국한의학연구원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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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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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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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Objective : This study was carried out with focus on written by Joh, Taek-seung (曺澤承) and Joh, Byeong-who(曺秉矦) in the relation of father and son in 1933. This book is a medical book including rare data, which has never been reported to academic circles all this while. Method : First, this study looked into the authors of this book and its history of publication. Further, this study analyzed the composition and contents of this book. Lastly, this study summed up the meaning of this book from the standpoint of medical history. Result : The authors were Confucian doctors who were active in the latter era of the Joseon Dynasty and also in the period of Japanese colonial rule. They lived in Haenam district of Jeonlanam-do, and cured its neighboring local residents while studying. They published the book of by putting together their own medical experiences. The authors suggested their remedial prescription according to gender and age whereas Zhang Zhongjing(張仲景) suggested the remedial prescription according to Six-Meridian Pattern Identification & Syndrome Differentiation(六經辨證). In addition, the authors of gave weight to the relationship with internal damage. Additionally, the authors not only thought much of the relationship between internal damage and external damage but also thought of the weakness and strength of the healthy qi, and the new and the old of a disease as an important clue to medical treatment. It seems that such contents was influenced by (東醫寶鑑). Conclusion : shows the results of the research on which was spontaneously conducted in Joseon.

전주 수원백씨인재공파 종가 학인당의 '모심상' 상품화 연구 (Development of Mosim Dining Table's Menu for Head House of Suwon Baek Clan and Injaegong Group in Jeonju)

  • 김미혜;정혜경
    •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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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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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7-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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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This study aimed to develop a new commercialization model for theindustrialization of head family food as a gentry families' complex food culture product. We tried to develop a head family food and propose a city sightseeing style's head family product by interviews with 'Hakindang' as the center, the head house of the Suwon Baek clan, and Injaegong group in Jeonjoo. Hakindang (in Jeonju) was confirmed as an improved model Korean-style house in the enlightenment period and the twentieth style modern head family as emerging capitalist. Hakindangsupported independence war funds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was widely known as gate of filial piety in Jeonju. Representative seasonal foods of Hakindang include pan-fried sweet rice cake with flower petals in the spring, hot spicy meat stew and polypus variabilis in summer, hanchae in autumn, and napa cabbage kimchi with salted flatfish seafood in the winter. When parents-in-law had a birthday, there were party noodles, sliced abalone stuffed with pine nuts, brass chafing dish, fish eggs, slices of blilde meat, and matnaji. Daily, there were mainly salted seafood, slices of raw fish, grilled short rib patties, braised fish, baked fish, syruped chestnut, grilled deodeok root, bean sprouts, radish preserved with salt, dongchimi, soy sauce-marinated horseshoe crab, butterbur, perilla seed stew, salted clams, raw bamboo shoot, agar, fried kelp, etc. The most basic virtue of the head family is filial duty, and they developed mosim dining as a representative food of Hakingdang's head family. The mosim menu is composed of 65% carbohydrates, 20% protein, and 15% fat because it is table for parents-in-law like more than 75 years old. The sensory evaluation showed a chewy texture that is easily swallowed.

칠백의총 중봉조헌선생일군순의비의 과학적 보존처리와 복원 (Scientific Conservation Treatment and Restoration of the Monument for Jo Heon and the Soldiers in Chilbaeguichong (Chilbaeguichong Jungbongjoheonseonsaengilgunsunuibi))

  • 이주완;이명성;최용석;오정현;김재환;김사덕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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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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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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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이 연구는 약 2년에 걸친 칠백의총(사적 제105호) 중봉조헌선생일군순의비의 보존처리와 복원에 대한 것이다. 이 비는 일제시대(1940년)에 폭파되는 수난을 겪은 후 1971년에 복원되었으나 형태왜곡, 이질감, 구조적 안정성 등의 다양한 문제가 나타났다. 따라서 이 비의 원형을 복원하고자 다양한 과학적 연구와 함께 보존처리 및 복원이 이루어졌다. 특히 유실된 비좌를 복원 제작하고 이수와 비신을 다시 한 몸체로 접합하였으며, 이수 결실부위는 산지해석을 통해 신석으로 대체한 후 복원안을 수립하여 원형의 모습을 재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