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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志山) 김복한(金福漢)의 파리장서운동과 그 사상적 배경 - 화서학파(華西學派)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 (Kim Bok-han's Petition Movement to Paris Peace Conference and Its Idealogical Background)

  • 박성순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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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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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8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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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파리장서운동은 1919년 3월에 곽종석(郭鍾錫) 등 유림 137명이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요청한 독립청원운동이다. 김복한(金福漢)은 호서본 작성의 모든 과정을 주도하였다. 여러 판본들을 비교해 보면 호서본은 영남본에 비해 좀더 보수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호서유림들의 보수적 입장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서본의 보수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파리장서운동을 기획 실행했다는 사실 자체가 김복한의 능동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본고에서 해명하고자 하는 것은 그가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이 능동적인 입장에서 파리장서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는지 그 배경을 규명하는 일이다. 특히 그동안 도외시되었던 유학사상사의 전개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함으로써 김복한의 역사적 위상이 드러나도록 시도하였다. 김복한이 파리장서운동을 주도할 때 유림계의 보수세력으로부터 오랑캐와 동사(同事)한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김복한의 대국적 태도는 남당학파와 경쟁관계에 있던 화서학파에 대해서, 특히 1903년 '최익현 문제'가 야기된 이후에도 김복한이 최익현에게 보여준 포용적 태도에서부터 두드러져 보였다. 이것이 파리장서운동을 추진할 때의 대승적 태도로 연결되었다. 이는 '사공(事功)'을 중시한 김복한의 역사의식에서 발현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