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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식 데이터 마이닝 기법을 활용한 자동차 보험사의 인입 콜량 예측 사례 (A Case Study on Forecasting Inbound Calls of Motor Insurance Company Using Interactive Data Mining Technique)

  • 백웅;김남규
    • 지능정보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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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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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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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최근 고객들의 비대면 접점 서비스 이용도가 높아짐에 따라, 비대면 채널은 다양한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고객 만족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 유용한 창구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비대면 채널의 대표적 영역으로 콜센터를 들 수 있으며, 콜센터 운영에서 고객 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상담 인력의 규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일정수준 이상의 고객 만족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상담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지만, 불필요하게 많은 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인건비 측면에서 비용의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부족하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을 정도의 적정 인력을 산출하는 능력은 콜센터 운영의 핵심 경쟁력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최근 콜센터에서는 적정 인력의 규모를 예측하기 위해 WFM(Work Force Management) 업무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콜량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콜량 예측을 위해 현업에서 주로 사용되는 방법은 담당자의 직관에 의존하는 방법으로, 일정기간의 콜량 평균을 담당자가 주관적 판단에 의해 보정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담당자의 주관적 성향에 크게 좌우된다는 한계를 갖고 있어서, 최근에는 다양한 예측 모형을 시스템화한 WFMS(Workforce Management System) 패키지가 널리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초기 도입 시 매우 고가의 구축비용이 발생하며, 신규 요인 발굴 시 이를 즉각적으로 시스템에 반영하기 어렵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본 연구에서는 데이터 마이닝의 대화식 의사결정나무 기법을 이용함으로써, 객관적이면서도 업무 배경 지식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예측 모형을 수립하고자 한다. 또한, 본 연구에서 수립한 모형의 정확성 평가를 위해, 국내 최대 규모의 한 자동차 보험사 콜센터의 4년 8개월 간의 실 데이터를 사용한 실험을 수행하고 그 결과를 제시하였다. 실험에서는 기존의 WFMS와 본 연구에서 제안하는 두 가지 모형인 대화식 의사결정나무 기반의 예측 모형, 일반 의사결정나무 기반의 예측 모형의 세 가지 모형에 대해, 다양한 오차 허용범위 하에서의 사고콜 및 고장콜에 대한 예측 적중률을 평가하였다.

독일 경제아카이브즈의 형성과 유형 (The Formation and Types of Business Archives m Germany)

  • 김영애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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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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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7-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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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The term 'Business Archives' is not familiar with us in our society. Some cases can be found that materials are collected for publishing the history of a firm on commemoration of some decades of its foundation. However, the appropriate management of these collected materials doesn't seem to be followed in most of companies. The Records and archives management is inevitable in order to maximize the utility of Information and knowledge in the business world. The interest in records management has been grown, especially in the fields of business management and information technology. However, the importance of business archives hasn't been conceived yet. And also no attention has been paid to the business archives as social resources and the responsibility of the society as a whole for their preservation. The company archives doesn't have a long history in Germany although the archives of the nation, the aristocracy, communes and churches have a long tradition. However the company archives of Krupps which was established in 1905, is regarded as the first business archives in the world, It means that Germany has taken a key role to lead the culture of business archives. This paper focuses on the process of the establishment of business archives in Germany and its characteristics. The business archives in Germany can be categorized in three types: company archives, regional business archives and branch archives. It must be noted here that each type of these was generated in the context of the accumulation of the social resources and its effective use. A company archives is established by an individual company for the preservation of and use of the archives that originated in the company. The holdings in the company archives can be used as materials for decision making of policies, reporting, advertising, training of employees etc. They function not only as sources inside the company, but also as raw sources for the scholars, contributing to the study of the social-economic history. Some archives of German companies are known as a center of research. A regional business archives manages materials which originated m commerce chambers, associations and companies in a certain region. There are 6 regional business archives in Germany. They collect business archives which aren't kept in a proper way or are under pressure of damage in the region for which they are responsible. They are also open to the public offering the sources for the study of economic history, social history like company archives, so that they also play a central role as a research center. Branch business archives appeared relatively late in Germany. The first one is established in Bochum in 1969. Its general duties and goals are almost similar with ones of other two types of archives. It has differences in two aspects. One is that the responsibility of the branch business archives covers all the country, while regional business archives collects archives in a particular region. The other is that a branch business archives collects materials from a single industry. For example, the holdings of Bochum archives are related with the mining industry. The mining industry-specialized Bochum archives is run as an organization in combination with a museum, which is called as German mine museum, so that it plays a role as a cultural center with the functions of exhibition and research. The three types of German business archives have their own functions but they are also closely related each other under the German Association of Business Archivists. They are sharing aims to preserve primary materials with historical values in the field of economy and also contribute to keeping the archives as a social resources by having feed back with the public, which leads the archives to be a center of information and research. The German case shows that business archives in a society should be preserved not only for the interest of the companies, but also for the utilities of social resources. It also shows us how business archives could be preserved as a social resource. It is expected that some studies which approach more deeply on this topic will be followed based on the considerations from the German case.

대학생의 기록관 인식현황 및 이용 활성화 방안 연구 (A Study on a Method to Use Activation and Awareness on Archives of University Student)

  • 이정은;강주연;김은실;김용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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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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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3-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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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기록관은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으로 견학, 전시, 교육 등 다양한 기록정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기록물과 기록관의 인식 부족 문제가 늘 제기되고 있다. 기록관의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기록관의 이용자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기록관의 잠재 이용자 중 대학생을 한 범주로 설정하고 기록물 및 기록관의 인식 조사를 통하여 대학생 집단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대학생 집단은 대학도서관과 대학기록관 등의 연구에서 특정한 이용자로 연구대상이 되어 왔는데, 물리적으로도 대학 기록관과 가장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향후 기록관의 적극적 이용자로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의 목적은 대학생 집단의 기록물 및 기록관의 인식 특징을 도출하여 기록관의 이용 활성화 방안 개발에 따른 특징을 반영한 고려사항 및 이용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문헌조사 및 전북지역 J 대학교 대학생 18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설문 문항은 2003년도에 영국 MLA(Museums Libraries Archives Council)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일부로 MORI(Market & Opinion Research International)(2003)에 의해 진행된 설문조사 보고서와 조윤희(2008)의 연구에서 사용되었던 설문 문항을 참고하였다. 설문지 문항은 기록물 및 기록관에 대한 인식, 기록물 및 기록관 이용경험과 비이용 요인, 기록관 이용 요구사항, 기록관의 효율적인 홍보 방법 등 크게 4분야로 구성하였다. 조사결과 대학생 집단은 대부분 기록물에 대하여 무관심하며, 기록관의 인지도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기록물을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기록물은 역사적 가치에, 기록관은 정보적 가치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또한, 향후 기록관의 이용에 대하여는 긍정적인 의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적절한 서비스를 통하여 적극적인 이용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은 집단임을 알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대학생 집단의 기록관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고려사항을 알아보았고, 이용자교육 측면, 프로그램개발 측면, 이용자 세분화 측면에서 기록관 이용 활성화 방안을 제언하였다.

과정기반 모형을 활용한 산림의 순일차생산성 평가: 남북한 소나무 및 참나무 임분을 중심으로 (Assessing forest net primary productivity based on a process-based model: Focusing on pine and oak forest stands in South and North Korea)

  • 송철호;최현아;손지원;고영진;;이우균
    • 환경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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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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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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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본 연구에서는 과정기반 생지화학모형 중 하나인 BGC-MAN (Biogeochemistry Management) 모형을 남북한에 적용하여 산림생태계의 생산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순일차생산성(Net Primary Productivity, NPP)을 평가하였다. 기상자료의 경우에는 우리나라 기상청 기후정보포털의 실측 및 동아시아 시나리오 자료를 병행하여 활용하였다. 식생정보로는 소나무(Pinus densiflora) 및 참나무(Quercus spp.) 임분을 대상으로 우리나라의 광릉 및 설마천 유역과 북한 내 양묘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사리원, 서흥, 해주, 정주, 원산을 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생물리적 정보 중경위도, 고도, 사면 방향 등의 지형정보는 SRTM (Shuttle Radar Topography Mission)의 수치표고모델을 활용하였으며, 토양정보 등의 경우에는 HWSD (Harmonized World Soil Database)의 정보를 활용하였다. 관리 요인의 경우에는 1950년의 한국전쟁으로 인한 남북한 산림파괴와 이후 산림의 재조림 과정을 고려하였다. 1991년부터 2100년까지 모의된 NPP의 전체 평균 값은 5.17 Mg C ha-1이었으며, 범위는 3.30~8.19Mg C ha-1로 도출되었다. 또한 기후 시나리오의 변동성이 커짐에 따라서 산림 생산성의 교란이 커졌으며, 소나무 임분의 생장 둔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기후변화에 따라 생태계 과정기반 모형의 중요성이 커지는 시점에서 BGC-MAN 모형의 한반도 적용성이 검토되었다. 본 연구의 제한된 자료를 통해서 기후변화에 대한 교란이 산림생태계에 미치는 여러 요인들이 분석된 만큼, 향후 모델링 방법의 보완을 통해 보다 한반도 전역의 정밀한 생태계 변화를 과정기반 모형을 통해 모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국 기록관리행정의 변천과 전망 (Records Management and Archives in Korea : Its Development and Prospects)

  • 남효채
    • 한국기록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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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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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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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조선왕조의 기록관리 전통의 맥이 끊어진지 거의 한세기가 지난 1999년도에 한국은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 시행함으로써 기록관리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국사 전반에 걸쳐 오백년 간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이 기록되었다. 이것은 인류역사상 주요한 업적이며 전세계적으로 귀한 사례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실록이 누대(累代)의 사관들이 저술하고 편찬한 일차자료인 기록물을 수집, 선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근대적 기록보존소에서는 중요한 공공기록물이 원형대로 보존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기록보존을 위해 중요한 국가 기록물을 평가 선별하는 근대적 기록보존제도를 확립해야 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한 식민지화로 그 기회를 빼앗겼고 우리의 훌륭한 기록보전 전통은 계승되지 못했다. 중앙화된 기록보존제도는 1969년 총무처에 정부기록보존소를 설립함으로써 발전하기 시작했다. 정부기록보존소는 조선왕조의 사고 전통을 계승해서 1984년 부산에 현대적 사고시설을 건축했다. 1998년 정부기록보존소는 대전정부종합청사로 본부를 이전하고 첨단 시청각기록물 서고를 갖추었다. 1996년부터 정부기록보존소는 마이크로필름 보존을 보완하고 수작업 등록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하여 기록물 관리시스템 전산화를 도입했다. 소장 기록물의 디지털화는 이용자에게 디지털 이미지를 제공하기 위한 주요한 사업이었다. 이를 위해 정부기록보존소는 새로 컴퓨터/서버 시스템을 구입하고 응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이와 병행하여 정부기록보존소는 역사학 및 문헌정보학 배경을 가진 아키비스트들을 증원하여 고도의 전문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인력구조를 크게 혁신하였다. 보존연구직과 전산직 역시 채용되었다. 새로운 기록물관리법은 2000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은 한국의 기록물관리에 있어 다음과 같은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 이 법은 입법 사법 행정부, 헌법기관, 육해공군, 국가정보원 등 모든 공공기관의 기록물을 규정한다. 범국가적으로 통일된 기록물관리체계가 갖추어지게 되었다. 둘째, 각 기관의 수준별로 공공기록물 관리 기관을 두게 되었다. 중앙기록물관리기관, 국회 및 사법부에 특수기록물관리기관, 대도시 및 도에 지방기록물 관리기관, 공공기관에 자료관 또는 특수자료관, 각 과단위에서는 기록물관리책임자가 기록관리를 책임지게 되었다. 셋째, 공공기관의 기록물은 생산시에 컴퓨터에 등록된다. 따라서 인터넷이나 컴퓨터망을 통해 기록물을 쉽게 추적, 검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넷째, 기록관리학 분야에서 전문적 훈련을 받은 기록물관리 전문요원 배치를 의무화함으로써 기록물의 전문적 관리를 보장하게 된다. 다섯째, 공공기록물의 불법적 처리는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범죄를 구성한다. 앞으로 공공기록물관리는 한국정부의 '전자정부 추진정책'과 함께 발전할 것이다. 다음과 같은 변화가 예상된다. 첫째 공공기관에서는 전자결재 문서 외에 종이문서, 시청각기록물, 간행물 등도 모두 디지털화하여 행정의 효율화 및 생산성을 제고할게 될 것이다. 둘째, 국회는 이미 특수기록관을 설립하였다. 법원과 국가정보원도 뒤를 따를 것이다. 시도 차원에서 더 많은 기록관들이 설립될 것이다. 셋째, 우리 사회가 지식정보사회화 될수록 기록관리기능은 더욱 중요한 국가기능이 될 것이다. 더 많은 대학교, 학회, 시민단체들이 기록보존에 고한 인식제고에 참여하고, 기록보존운동이 범국민적 차원으로 심화될수록 한국의 기록물관리는 현재보다 눈에 띄게 발전할 것이다.

16세기(十六世紀)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畫) 이해의 확장 : <경포대도(鏡浦臺圖)>, <총석정도(叢石亭圖)>를 중심으로 (Broadening the Understanding of Sixteenth-century Real Scenery Landscape Painting: Gyeongpodae Pavilion and Chongseokjeong Pavilion)

  • 이수미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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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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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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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기증을 받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특별전(2019년)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작품인 <경포대도>와 <총석정도>는 조선시대 회화사 이해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매우 지대하다. 두 작품이 1557년의 관동 유람을 계기로 그려진 병풍의 일부였음을 알 수 있어서 16세기 산수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획기적인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요성을 밝히기 위해서 본고에서는 <경포대도>와 <총석정도>에 담긴 경물의 내용을 살펴보고 제작시기와 양식상의 특징을 분석한 후, 다른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서 이 작품에 담긴 회화사적인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 작품의 제작 배경은 <총석정도>의 발문으로 알 수 있다. 본고에서 박충간(朴忠侃)(?~1601)으로 비정한 정상일로(商山逸老)가 1557년 봄에 홍연(洪淵)(?~?)과 함께 금강산(풍악산)과 관동 지역을 유람하고 유산록(遊山錄)을 작성하였으며 시간이 흐른 뒤 그중 몇몇 명승지를 그려 병풍을 만든 것을 알 수 있었다. 홍연은 자가 덕원(德遠)으로 1551년에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1584년까지는 생존했던 인물이다. 박충간은 호가 남애(南崖)로서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역을 고변하여, 그 공으로 형조참판으로 승진되고 평난공신(平難功臣) 1등에 책록된 후 상산군(商山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이 글로 작품의 제작 시기를 1557년의 유람 후이자, 발문을 쓴 박충간이 50대 이상이 되는, 1571년 이후 곧 16세기 후반경으로 보았다. 산수나 나무 표현 등의 화풍을 기준으로도 16세기 후반의 시대 양식과 부합한다. 전술한 발문의 내용으로 <경포대도>와 <총석정도>가 병풍의 일부였던 것을 알수 있으며, 발문이 써 있는 <총석정도>가 마지막 폭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경포대도>를 보면 구도면에서 조선 초기 안견파(安堅派) 산수화에서 볼 수 있는 편파(偏頗) 3단 구도의 요소를 찾을 수 있으나 실경(實景)을 대상으로 하여 그 배치와 화법이 현실화된 양상을 볼 수 있다. 시점(視點)에 있어서도 여러 경물간의 관계나 경관의 특징이 효과적으로 표현되도록 사선각(斜線角)의 부감시(俯瞰視), 정면시(正面視) 등을 활용하여 경포대의 넓은 영역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다각적(多角的)인 관점(觀點)을 보여준다. 산의 형태나 태점(苔點)의 사용은 1557년작 <의순관영조도(義順館迎詔圖)>(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와 매우 유사하다. 16세기 안견파의 특징인 짧은 선이나 점으로 질감을 내는 단선점준(短線點皴)과 구름 모양 운두준(雲頭皴)은 현장감 있게 변모되었다. 조선 초기 산수화의 전통적인 구도와 연결성을 찾을 수 있는 <경포대도>와 달리 <총석정도>는 그 구도가 매우 파격적이다. 화면에 중심축을 두고 돌기둥들이 첩첩이 도열하여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데 근경(近景)의 돌기둥, 중앙의 사선봉(四仙峯), 절벽 위의 사선정(四仙亭)을 삼단계 정도의 깊이감으로 배치하여 화면에 공간감을 조성하였다. 중앙의 사선봉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비중을 점하고 있으나 수직적인 돌기둥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분질적(分節的), 평면적(平面的)인 양상으로 그려져 아직 입체적이고 자연스러운 공간감을 조성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기둥의 아랫부분은 희게 하고 윗부분은 어둡게 하여 고원(高遠)의 상승감을 고조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각 기둥을 묘사하는 준법을 보면 기둥으로 설정된 면에 담묵을 바르고 그 위에 농묵의 가는 선들을 그어 총석의 질감과 쪼개짐을 묘사하였다. 붓끝을 사선으로 누르며 수직으로 내려 긋고 있어서 부벽준(斧劈皴)의 초기적 양상을 보인다. 일관되게 보이는 이러한 흑백의 대조, 수직적 준법의 구사는 앞으로 전개될 절파계(浙派係) 화풍의 유행을 예시해준다. 한편 기둥의 윤곽 및 균열문이 각각 다 달라서 실제의 특징을 살리려고 한 것을 알 수 있다. 기둥 위에 올라앉은 새들의 묘사, 파도와 흰 거품의 표현 등에서 반복적인 붓질을 찾을 수가 없고 매우 생생한 묘사력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포대도>와 <총석정도>의 경물 배치는 이후 변화를 보인다. <경포대도>는 아래쪽에 죽도(竹島)를 두고 경포호를 넘어 위쪽에 위치한 경포대 건물과 오대산 일대를 올려보는 구도였다. 이러한 배치는 경포대를 화면 아래쪽에 두고 위쪽의 바다를 향하는 18세기 이래의 전형적인 구성과 차이를 보인다. 바다 쪽에서 총석을 바라보며 그린 <총석정도> 역시 이후의 작품에서는 내륙에서 바다를 향하는 것으로 관점의 변화를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정선(鄭敾)(1676~1759)과 김홍도(金弘道)(1745~1806 이후)의 작품이 제작된 이후, 두 사람의 구도를 따라 관동도의 유형이 정착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사라진 듯 했던 16세기 <경포대도>의 구도가 조선 말기 <강릉 경포대도>에서와 같이 민간 회화에서 전승된 것도 확인해 볼 수 있다. 관동 지역의 명승도는 이른 시기부터 그려져 고려 김생(金生)(711~?)의 관동도(關東圖), 조선 초 안견(安堅)(15세기 활동)의 낙산사도(洛山寺圖) 등 여러 화가가 단폭이거나 여러 폭의 관동도를 병풍이나 첩 형태로 그렸던 것을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기록은 많으나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작품이 없었는데 본고에서 고찰하는 이 두 점은 현존하는 관동도 중 연대가 가장 올라가는 예로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관동도(關東圖) 병풍(屛風)의 제작 양상을 알게 해주어 회화사적인 의미가 크다. 특히 발문의 내용에 따라 8폭 병풍일 것으로 생각되어 16세기 후반에 이미 관동팔경도(關東八景圖) 형식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성격에 있어서 현존하는 16세기 실경산수화의 예로 거론되는 작품들이 모두 실용적, 공적인 목적의 계회도나 기록화로 제작되어 실경산수화적 요소가 부분적으로 나타난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실제 경관을 대상으로 자연의 변화무쌍함과 아름다움을 담고자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발문을 쓴 박충간은 유람할 때 지었던 감상시를 곁들여 자연의 진면목을 반추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 점은 기존에 알려진 실경산수화의 성격과 그 양상을 달리하는 것으로 순수 감상을 목적으로 한 본격적인 실경산수화의 예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높다. 이처럼 <경포대도>와 <총석정도>의 두 작품은 유람의 결과를 시화(詩畫)로 제작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현존 작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예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지대하다. 또한 그간 확인할 수 없었던 16세기 실경 산수화의 다양한 형태와 구도 및 시점의 면모를 보여주어 한국 실경산수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한 점에서도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고군산 선유팔경(仙遊八景)의 설정과정과 집경(集景) 특성 (A Study on the Setting Process and Formational Characteristics of the Seonyu Eight Scenic in Gogunsan Islands)

  • 정우진;황국웅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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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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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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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연구는 고군산 선유팔경이 설정된 경위와 각 경점의 경관특성을 고찰한 것으로 요약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1969년 이래 설정된 경점은 수차례 그 내용과 순서가 바뀌었고 표제어 또한 일정한 변천과정이 확인된다. 70년대까지 알려진 팔경은 공식적인 팔경명이 없거나 고군산팔경으로 명명된 경우가 많았으며, 무산십이봉이 제외된 구성을 보인다. 또한 팔경의 경점이 시기별로 제각각인 유형도 나타나는데, 따라서 선유팔경의 초기 형태는 인근 지역의 팔경을 참조하되, 고군산군도 특히 선유도의 경승이 취사선택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현재와 같은 팔경 요소가 모두 충족되어 나타나는 2000년대 초의 선유팔경은 순번이 명시되어 있고 표제어가 네 글자로 정제되어 있어 전통적인 팔경의 명명법을 따르고 있다. 이때 제1경이 망주폭포로 설정되고 선유낙조가 제8경으로 구분되기도 하였는데, 현재는 제1경이 선유낙조, 제2경이 망주폭포의 순서로 확정되었다. 이러한 경처 순서의 변화는 시기별 대표 경관자원이 달랐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셋째, 정체성과 완결성이 약한 점은 선유팔경에 내재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무엇보다 설정주체와 설정시기가 모호하며, 선행되는 옥구팔경, 임피팔경 등 인근 지역의 팔경사례를 답습한 흔적이 역력하다. 또한 경관대상에 대한 지식정보, 조망하는 시점의 명시, 역사·문화적 배경 등이 모호하여 정제되지 않은 불완전한 체계를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넷째, 제1경 선유낙조는 전체 경점을 대표하는 것을 넘어 팔경 전체를 지배하는 주도적인 이미지를 갖는다. 일시적 경관인 낙조가 제일의 경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선유도의 아름다운 자연적 요소들이 융합하여 만들어진 경관의 총체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선유낙조를 기점으로 선유도 및 고군산군도 전체 경관을 탐색해 보고자 하는 기왕의 인식을 활용하여, 다른 고군산군도 경관자원의 가치 고양시킬 여지는 충분하다고 판단되며, 이를 위해서 각 경점의 정체성과 완결성을 강화하는 작업이 추가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중위도 기압골과 태풍 산바의 이동속도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예측에서 모델 바이어스 경향분석 (An Analysis of Model Bias Tendency in Forecast for the Interaction between Mid-latitude Trough and Movement Speed of Typhoon Sanba)

  • 최기선;;박상욱;차유미;이우정;오임용;이재신;정상부;김동진;장기호;김지영;윤왕선;이종호
    • 한국지구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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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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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3-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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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중위도 기압골과 태풍 이동속도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예측에서 한국기상청 전구자료동화예측시스템(GDAPS) 모델 바이어스 경향을 알아보기 위해 태풍 산바 사례가 선정되었다. 이 연구는 태풍 분석 및 예측 시스템(TAPS) 및 기상정보시스템-3(COMIS-3)에 저장된 태풍자료로부터 2012년 9월 15일 00UTC로 초기화 된 한국 기상청 GDAPS 분석장과 예측장을 사용하였다. 먼저 해면기압장은 500 hPa 제트구역과 연관하여 중위도 하층 저기압이 발생됨을 보여주었다. 이후 태풍 산바가 중위도 지역으로 들어온 후, 태풍의 이동속도가 증가될 것이라 예측되었다. 특히, 태풍 산바가 9월 17일 00UTC와 06UTC에 전향을 할 시점에 태풍 산바는 중위도 기압골 전면에서 중위도 서풍대와 상호작용을 하였다. 반면, 기상청 GDAPS 해면기압 예측장은 하층 중위도 저기압의 강도를 분석장보다 약하게 예측하였다. 결국 태풍 산바의 이동속도에 영향을 주는 중위도 순환은 분석장보다 느리게 나타났다. 이 순환은 500 hPa에서 제트가 약화됨으로서 증명되었다. 이런 이유로, 기상청 GDAPS 예측장은 태풍 산바가 중위도 기압골과 상호작용함으로써 느린 이동속도의 바이어스를 나타내었다.

"무역상무(貿易商務)에의 역사적(歷史的) 어프로치와 무역취인(貿易取引)의 전자화(電子化)" (E-Commerce in the Historical Approach to Usage and Practice of International Trade)

  • 춘홍차
    • 무역상무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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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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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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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The author believes that the main task of study in international trade usage and practice is the management of transactional risks involved in international sale of goods. They are foreign exchange risks, transportation risks, credit risk, risk of miscommunication, etc. In most cases, these risks are more serious and enormous than those involved in domestic sales. Historically, the merchant adventurers organized the voyage abroad, secured trade finance, and went around the ocean with their own or consigned cargo until around the $mid-19^{th}$ century. They did business faceto-face at the trade fair or the open port where they maintained the local offices, so-called "Trading House"(商館). Thererfore, the transactional risks might have been one-sided either with the seller or the buyer. The bottomry seemed a typical arrangement for risk sharing among the interested parties to the adventure. In this way, such organizational arrangements coped with or bore the transactional risks. With the advent of ocean liner services and wireless communication across the national border in the $19^{th}$ century, the business of merchant adventurers developed toward the clear division of labor; sales by mercantile agents, and ocean transportation by the steam ship companies. The international banking helped the process to be accelerated. Then, bills of lading backed up by the statute made it possible to conduct documentary sales with a foreign partner in different country. Thus, FOB terms including ocean freight and CIF terms emerged gradually as standard trade terms in which transactional risks were allocated through negotiation between the seller and the buyer located in different countries. Both of them did not have to go abroad with their cargo. Instead, documentation in compliance with the terms of the contract(plus an L/C in some cases) must by 'strictly' fulfilled. In other words, the set of contractual documents must be tendered in advance of the arrival of the goods at port of discharge. Trust or reliance is placed on such contractual paper documents. However, the container transport services introduced as international intermodal transport since the late 1960s frequently caused the earlier arrival of the goods at the destination before the presentation of the set of paper documents, which may take 5 to 10% of the amount of transaction. In addition, the size of the container vessel required the speedy transport documentation before sailing from the port of loading. In these circumstances, computerized processing of transport related documents became essential for inexpensive transaction cost and uninterrupted distribution of the goods. Such computerization does not stop at the phase of transportation but extends to cover the whole process of international trade, transforming the documentary sales into less-paper trade and further into paperless trade, i.e., EDI or E-Commerce. Now we face the other side of the coin, which is data security and paperless transfer of legal rights and obligations. Unfortunately, these issues are not effectively covered by a set of contracts only. Obviously, EDI or E-Commerce is based on the common business process and harmonized system of various data codes as well as the standard message formats. This essential feature of E-Commerce needs effective coordination of different divisions of business and tight control over credit arrangements in addition to the standard contract of sales. In a few word, information does not alway invite "trust". Credit flows from people, or close organizational tie-ups. It is our common understanding that, without well-orchestrated organizational arrangements made by leading companies, E-Commerce does not work well for paperless trade. With such arrangements well in place, participating E-business members do not need to seriously care for credit risk. Finally, it is also clear that E-International Commerce must be linked up with a set of government EDIs such as NACCS, Port EDI, JETRAS, etc, in Japan. Therefore, there is still a long way before us to go for E-Commerce in practice, not on the top of information manager's de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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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인터넷 이용자들의 한국영화 이해에 관한 비교 연구: <엽기적인 그녀> 영화 사이트의 관람후기 게시판을 중심으로 (A Study on Understanding about the Korean movie of Internet user in China: Focused on the Reply of Movie Web-site in China and Korea)

  • 이제영;최정기
    • 한국언론정보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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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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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6-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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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한국 대중문화의 유행현상은 "한류(韓流)"라는 이름으로 중국 및 범아시아 지역에 퍼져나가고 있다. 그러나 "한류"에 대한 지금까지의 논의는 경제 논리의 수준에서 한정적인 연구들이 성행해 왔다. 이에 본 연구는 기존의 논의에 문제를 제기하고 대상이 되는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와 이를 받아들이고 있는 수용자들의 대상에 대한 이해를 알아보는 것이 "한류"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임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 중국 인터넷 이용자들의 한국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 대한 이해를 알아보고 문화교차 연구의 한 가지 사례 제시를 주된 목적으로 하였다. 영화<엽기적인 그녀>에 대한 중국 인터넷 이용자의 관람후기 게시판을 분석한 결과 반응의 특징을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영화의 현실감과 감정의 세밀하고 현실적인 묘사, 남자 주인공이 보여주는 순수하고 자기희생적인 태도에 대한 호감, 다른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는 의견, 배역의 개성에 호감, "엽기적 행동"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의견이 있었다. 이 영화가 "한류"와 한국의 이미지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 결과 긍정적인 의견이 많았지만 이면에 저항감도 적지 않았다. 또한 중국 인터넷 이용자들과 한국 인터넷 이용자의 이 영화에 대한 이해를 비교해본 결과 한국의 인터넷 이용자들은 영화의 희극성을, 중국 인터넷 이용자들은 현실적이고 신선하다는 의견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인터넷 이용자는 이 영화에 대해 신선함과 현실감, 창의성, 내면의 감동에 이끌려 호감을 갖는 것이지 겉으로 드러난 형식이나 방식에 이끌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중국의 인터넷 이용자들은 이 영화를 한국의 인터넷 이용자와 다르게 이해하고 있으며 이러한 차이는 구성주의와 해석학에서 이야기하는 사회문화적, 역사적 상황이 다른 문화에서는 같은 대상에 대한 이해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예시를 보여준 것이다. 이렇듯 "한류"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각 문화의 다양성과 특수성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고 현재의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문화적 욕구들이 어떻게 생성되고 있는지 현장에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 덧붙여 한국의 대중문화가 이러한 욕구에 잘 부합되고 있는지,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은지 연구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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