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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관영수공업에서 입사장(入絲匠)의 직무 유형과 역할 (Joined in the government-owned handicraft industry during the Joseon Dynasty Job type and role)

  • 김세린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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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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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6-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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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공예품의 표면에 홈을 파고 금속 재료를 감입하는 시문 기법인 입사(入絲)는 조선시대 왕실의 일상 생활용품, 의례품, 관청의 공적 기물에 두루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관영수공업은 중앙관청에 소속된 경공장(京工匠), 지방의 외공장(外工匠)으로 구성된 관장(官匠)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입사장은 경공장에 편입되어 왕실과 중앙관청의 공예품 입사시문을 담당했다. 현재 전해지는 조선시대 입사장에 대한 기록은 관영수공업에 집중되어 있다. 관영수공업에서의 입사장의 배속 관청은 공조와 상의원, 군영으로 나눌 수 있으며, 여기에 앞의 두 소속 장인의 도감 차출이 있다. 입사공예품을 사용하는 관청과 군영에 입사장을 배치하고, 제작 마감 기한이 촉박해 평소보다 세밀한 분업과 협업이 전개되었던 도감에서는 입사장을 입사장, 은입사장으로 나누어 공역에 투입했다. 이를 통해 제작 상황과 보유 기술을 고려해 유동적으로 장인을 배치해 공예품 제작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제작 체제의 운영은 장인의 손기술로 모든 공예품을 제작해야 했던 근대 이전 조선 사회에서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본 논문은 입사장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관영수공업에서 장인의 역할과 직무 형태를 유형을 나누어 살펴보았다. 직능의 특성과 재료, 인력 수급 등 세부적으로 적용되는 내용은 다르지만, 조선이 추구했던 기본적인 관영수공업 정책의 틀 안에서 장인의 기술을 통한 다양한 목적의 공예품 구현을 위한 여러 제도적 장치는 거의 공통적이었다. 앞으로 의궤에 기록된 재료와 도구, 소수이지만 문헌에 기록된 관장과 사장의 기록을 더해 기술 문화를 분석한다면 조선시대 공예를 보다 입체적으로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1957년부터 1959년까지 한국공예시범소(KHDC)의 활동과 성과 (The Activities and Accomplishments of the KHDC from 1957 to 1959)

  • 김종균
    • 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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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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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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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1957년에 미국의 지원 하에, 미국인에 의해서 한국에 설립되어 3년간 운영되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디자인 진흥기관인 '한국공예시범소'의 행적을 살펴본다. 1장에서는 미국 Smith, Scherr & McDermott Industrial design, Arkon Office의 한국지원 활동내용을 연대기순으로 개괄하고, 2장에서는 한국내 KHDC의 설립, 과정과 구성, 기능을 살펴본다. 3장은 KHDC의 활동내용을 살펴본다. 수공예 프로젝트와 경공업 프로젝트, 전시, 현지답사 연구와 현지산업 지원활동, 교육 프로그램, 언론의 보도내용 등을 살펴봄으로써 실제로 한국 내에서 행했던 활동들을 구체적으로 다뤘다. 4장에서는 공예시범소의 활동성과를 살펴본다. 수공예 프로젝트와 경공업 프로젝트를 통하여 이뤄낸 성과들과 개발된 상품들, 그리고 대외적인 활동의 성과를 살펴보고, 5장에서는 제 활동들의 성과를 살펴보고 종합적인 평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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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고려홍삼 무역량의 변동과 의미 (The changes and meanings in the volume of Korea red ginseng trade in late chosun dynasty)

  • 이철성
    • 인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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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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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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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이 논문은 1797년 고려홍삼 무역이 포삼제(包蔘制)라는 공식적인 제도로 시행된 이후 그 수출량과 홍삼세의 규모를 살핌으로써 고려홍삼 무역의 변동과 그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19세기 조선의 고려 홍삼무역은 조선 정부가 받아들이는 세금만으로도 공무역의 비용을 능가하였다. 조선은 인삼을 재배하는 농업기술과 저장 기간을 늘리는 홍삼 증포 기술을 바탕으로, 은화의 유출을 막고 중국의 완제품 및 원료를 들여와 국내 상업계와 수공업 및 광업부문을 자극했다. 더우기 조선정부는 고려 홍삼수출로 19세기 후반 매해 20만 냥에 달하는 재정 수입을 올릴 수 있었고, 한때는 중국에서 말굽 모양의 은을 사와서 호조에 비축하기도 했다. 세도정권하에서도 상업계가 전반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개성상인 의주상인 서울상인의 활동이 두드러진 것은 이러한 사정에 따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