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Eupseong (county seat)

검색결과 2건 처리시간 0.016초

조선후기 읍성 취락의 경관 요소와 경관 구성 - 태안읍성, 서산읍성, 해미읍성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Landscape Elements and Construction of Eupseong (county seat) in the Late Joseon Dynasty)

  • 전종한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 /
    • 제21권2호
    • /
    • pp.319-341
    • /
    • 2015
  • 조선시대의 읍성 취락은 중앙 정부가 지방의 각 고을에 계획적으로 건설한 행정 타운으로서 우리나라의 전통 도시를 대변한다. 읍성에는 객사, 동헌과 내아, 질청을 비롯한 다양한 행정 및 통치 시설들이 들어서 있었고 일반 백성들의 민가가 들어서 있는 경우도 많았다. 본 연구는 조선후기 읍성 취락의 주요 경관 요소와 경관 구성의 특성을 고찰하고 그 결과를 지적원도(1913)에 재현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현재적 재현을 위한 복원 대상 시기를 설정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연구자는 조선 읍성 경관의 완성기를 19세기 전반기로 규정하고, 이 시기 전국의 읍성 분포 및 주요 읍성 경관 요소의 전국적 보편성과 지역적 특수성을 파악하였다. 이 작업을 토대로, 태안읍성, 서산읍성, 해미읍성을 사례로 읍성 경관 완성기의 읍성 내 주요 경관 요소와 그들의 위치, 전체적 공간 구성을 1910년대의 지적원도 위에 나타내 보았다.

  • PDF

내포지역 읍성 원형과 읍치경관의 근대적 변형 -읍성취락의 사회공간적 재편과 근대화 - (Original Form of Castle Town and Modern Transformation of Eupchi(county seat) Landscape in Naepo Area, Korea)

  • 전종한
    • 대한지리학회지
    • /
    • 제39권3호
    • /
    • pp.321-343
    • /
    • 2004
  • 이 글은 내포지역의 읍성 연구를 사례로 음성취락의 사회공간적 재편과 근대화에 접근한 것이다. 한반도의 서 남해안 일대는 방어상의 이유와 넓은 하안 충적평야, 해안 저지대의 농경제적 가치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우선적으로 읍성 축조가 이루어졌다. 내포지역은 그러한 대표적인 공간이다. 내포지역의 읍치경관 원형은 방위와 길흉의 연관성에 대한 전통적 관념이나 권력의 자연화 전략을 반영하며 일정한 원칙 하에 조형되면서도 국지적 단위의 시 공간성을 반영하고 있었다. 조선시대동안 초기 읍성이 지닌 공간성은 군사적 공간으로부터 점차 정치 행정적 중심지로 변화하여 갔다. 일제강점기가 되면, 전통시기의 읍치가 통치 행정 치소로서의 기능을 넘어 자본 축적의 중심, 경제와 교육의 거점, 촌락 공간의 중심지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내포지역에는 개항지가 설치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의 읍성안 토지 장악은 주요 개항지의 그것보다 훨씬 더 전면적이었다. 더욱이 읍성 공간을 천한 공간으로 여기던 전통적 인식은 조선인들의 신속한 읍성 이탈을 부추긴 반면, 읍성 공간이 갖는 정치, 경제, 사회적 중심성과 서비스업에 종사함으로써 얻은 풍부한 자본력은 일본인들의 광범위한 토지 점유를 가속화한 흡입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미 1920년대부터 구읍성 일대는 통치 기능 외에 금융, 상업, 교육, 교통 기능의 중심지이자 새로운 도시 문제의 발원지로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공간성을 갖게 된다. 이와 같이 일제강점기 동안의 경관 변형은 기존 거주민(조선인)에 의해서가 아닌 대체 거주민(일본인)을 통해 주도되었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형태와 기능상의 변혁이었음은 물론이고 매우 급격한 사회공간적 재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