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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궁궐, 동조(東朝)의 상징성과 $17{\sim}18$세기 대비전 조영에 관한 연구 (A Study on Symbolism of Dongjo in Royal Palaces of Choseon Dynasty and Its Way of Operation - Focusing on Donggwol in 17th-18th century -)

  • 조옥연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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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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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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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Choseon Dynasty, from many aspects, saw the institutional establishment of its royal palaces in the 17th and 18th century, with 'donggwol (east palace)' as the most representative form in the era. In that period, palaces were managed in the best way that fits the royal etiquette and order to maintain the Confucian framework of the times. While the royal palace was the place for the king to conduct state affairs, it was also a compound for the royal family to lead a life in. Since the royal family was also based on the Confucian system, women in the royal palace seldom revealed their existence to outside world. Yet daebi,(a Queen Mother) who was often called 'dongjo,' enjoyed the highest level of honor not only as a member of the royal family but in the hierarchical order of the dynasty. As they often engaged themselves in political affairs, daebi raised their reputation through rites and rituals. So, in the 16th century, they largely used Changgyeong-gung palace in the eastern part of the royal compound since they sometimes had to go out of the royal residence. While it was called 'dongjo' because it was seated in the eastern part, it was also used as a word symbolizing daebi. And, therefore, it has become a general principle of royal palaces to build the palace for daebi in the eastern wing of the compound. However, the residence for daebi was not always built in the eastern part in the 17th and 18th century and, instead, edifices for daebi were sometimes erected in several points within the royal compound. Beside, daebi's residence in this period had additional spaces for ceremonies since they had a number of official events there. Construction of daebi's residences in this era was not confined to the symbolic institutions and they became the peculiar palaces with specific characteristics for official ceremonies of the queen mothers. Consequently, it could be said that the architectural style of dongjo, which was the place of the supreme female in the hierarchical order, stemmed from donggwol where daebi spent the longest time of the royal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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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궐도상의 존덕정 영역에 나타난 무편액 건물의 조영사적 고찰 (Historical Studies on the Nameless Buildings at the Jondeokjeong Area in Donggwoldo)

  • 정우진;심우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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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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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8-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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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창덕궁과 창경궁이 공유하는 후원인 동궐 후원은 조선왕조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기술과 사상이 집약된 후원으로서 단연코 한국 조경문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왕실의 휴식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상징적 의례와 인재양성의 장이 되었던 동궐 후원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상당부분 훼철되어 과거의 면모가 일축되었다. 창경궁 북쪽의 후원권역은 일제에 의해 완전히 변형되어, 현재는 주합루에서 옥류천에 이르는 몇 개소의 영역이 후원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중에서 본 연구의 대상이 되는 존덕정 영역은 인조 연간에 옥류천 개발이 완료된 직후부터 화원(花園)으로 조성된 정원으로서, 심추정, 척뇌당, 폄우사, 망춘정, 천향각, 청심정 등의 정자가 존덕정을 중심으로 승경의 요점지에 자리 잡은 화목류와 연지 중심의 공간이었으나 현재 존덕정과 심추정, 폄우사만이 남아 있고, 그 외의 정자들은 멸실되거나 변형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각 건축물에서 감상되는 수요소, 식생, 점경물 등을 분석함으로써 원형적인 조영의도를 구명하는데 주력하였으며, 동궐 후원의 진정성 있는 복원 정비와 조경 시설물을 둘러싼 환경의 보전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정보 구축을 위하여 존덕정 영역의 정자인 심추정, 망춘정, 척뇌당, 천향각, 청연각의 5개 정자의 역사적 기록과 조영실태가 고찰되었다. 이들은 "궁궐지"와 실록에는 명칭이 언급되어 있지만 "동궐도"에는 그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데, 관련된 문헌자료가 망라되어 고증이 시도되었다. 이중 척뇌당과 심추정은 동궐도상에서 추정 건물을 뚜렷하게 밝힐 수 있었고, 존덕정 서북쪽에 위치한 용도가 불분명한 건물은 천향각 내지는 망춘정이었다고 추정하였으며, 태청문의 담장이 본래 청연각에 둘러쳐져 있었던 담장이었다는 가설도 제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제껏 동궐도와 동궐 후원연구에서 난관으로 여겨졌던 창덕궁 동북쪽 모퉁이에 위치한 용도와 명칭이 불분명한 건물일곽에 대해서는 연산군과 숙종이 사용했던 기록이 발견되었고, 궁궐 사람들 모르게 유희생활을 하는 임금만의 별당이었음을 밝힐 수 있었다.

동궐(東闕) 추경원(秋景苑)의 조영과 변천에 관한 고찰 (A Study of the Construction and Change of Chugyeongwon in Donggweol)

  • 오준영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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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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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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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연구는 동궐(東闕)에 실존했던 추경원(秋景苑)의 조영과 변천 양상을 실증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세부적으로는 추경원의 조영 위치와 범위, 조영 배경과 의도, 소속 체제와 공간적 변화 양상을 고찰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추경원은 창경궁 함인정(涵仁亭) 주변 또는 시민당(時敏堂)과 진수당(進修堂) 사이의 공간으로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관련 사료에 따르면 추경원은 도총부(都摠府) 서쪽, 협상문(協祥門) 안쪽, 숭문당(崇文堂) 인근에 위치했다고 전해진다. "동궐도형(東闕圖形)"을 통해서도 각각의 조건에 부합하는 추경원의 조영공간을 확인할 수 있다. 근대적 실측도 형식의 "창경궁배치도(昌慶宮配置圖)"에 따르면 오늘날 추경원은 창경궁 문정전(文政殿)과 숭문당 남쪽의 녹지공간에 해당한다. 둘째, "동궐도(東闕圖)"에서 추경원은 담장으로 한정된 대지에 수목들이 생육하던 녹지공간으로 묘사되어 있다. 내부에 일체의 인공적 시설은 도입되지 않았다. 또한 추경원은 주변 대지보다 표고(標高)가 높은 지형에 입지했다. 특히 추경원의 구성 형식과 입지 특성은 한양에 소재했던 궁궐 외원(外苑)과도 유사한 면모를 보인다. 궁궐 외원의 운영 양상을 고려하면 추경원 역시 지세(地勢)의 보존과 배양(培養)을 위해 조영되었다고 판단된다. 셋째, 조선 후기에 걸쳐 추경원은 동궁(東宮)과 함께 창덕궁 또는 창경궁 소속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추경원은 동궁 영역에 포함된 왕실정원으로 운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본래 담장과 협문(夾門)으로 구성되었던 추경원의 서쪽 경계부는 이후 담장과 행각(行閣)이 결합된 형식으로 변모했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추경원은 각종 개발행위로 인해 점차 변질되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소실(消失)되어 실체를 찾아볼 수 없다.

<동궐도(東闕圖)>의 러버쉬팅변환을 통한 창덕궁 돈화문 지역의 입체적 식생 경관 추정 (Estimation of the Three-dimensional Vegetation Landscape of the Donhwamun Gate Area in Changdeokgung Palace through the Rubber Sheeting Transformation of )

  • 이재용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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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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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8-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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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동궐도(東闕圖)>의 분석을 통해 창덕궁 돈화문 지역의 식생 경관을 입체적으로 규명하고자 하였으며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동궐도>에 묘사된 수목은 17세기에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수목 표현 입문서인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을 토대로 유형의 구분이 가능하였다. 분류 결과에 따라 <동궐도>의 돈화문 지역에 표현된 수목은 10종 50주로 확인되었다. 둘째, <동궐도>의 입면 제작 축척을 이용하여 그림에 묘사된 수목의 실제 크기를 산정할 수 있었다. 산출된 수목의 수고는 최소 4.37m에서 최대 22.37m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동궐도> 제작 이전부터 창덕궁에 생육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노거수와의 비교를 통해 그림에 묘사된 수목들이 과도하지 않게 현실감 있는 크기로 제작된 것이 확인되었다. 셋째, <동궐도>의 러버쉬팅변환(Rubber Sheeting Transformation)을 통해 현재 수치지형도에 <동궐도>의 식재 평면도 제작이 가능하였다. 특히, 변환 지역의 세분화와 통제점 추가를 통해 제작된 평면도의 정밀도를 향상시킬 수 있었다. 작성된 <동궐도>의 식재 평면도를 통해서 수목의 위치와 밀도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동궐도>에서 취득된 수목의 형상 정보와 식재 평면도를 이용하여 3차원 식생 모델의 제작이 가능하였다. 3차원 모델은 실제 사람의 눈높이에서 조망축, 스카이라인, 주변으로의 개방과 차폐 정도 등 현황과의 입체적 경관 비교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당시의 조망 특성을 검토하는데 유용하였다. 본 연구는 기존에 논의되어 온 <동궐도>의 사실적 표현을 입증하고 이에 근거하여 기록화에 묘사된 동궐의 식생 경관의 원형을 규명하기 위한 가능성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근현대기 창덕궁 내 주요 점경물의 실상과 변형 (The Actual State and Transformation of Major Garden Ornaments in Changdeokgung Palace during the Modern and Contemporary Period)

  • 오준영;이재용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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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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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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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 연구는 낙선재, 주합루, 존덕정, 대보단지를 중심으로 근현대기 창덕궁 내 주요 점경물의 실상과 변형 양상을 고찰하였다. 전각, 식생, 구조물과 달리 상대적으로 관심이 저조했던 점경물에 대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변화상을 조명하기 위한 의도이다. 본 연구의 성과는 향후 창덕궁 내 점경물의 복원정비계획 수립에 요긴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의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1901년 체코인 브라즈가 촬영한 사진에 따르면 당시 낙선재 후원에는 석지(石池)와 괴석을 비롯해 총 6기의 점경물이 소재했다. 후원의 지면에는 금사연지(琴史硯池)로 불리는 석지와 괴석 2기, 화계 1단에는 괴석 3기가 배치되어 있었다. 해방 이후부터 괴석의 임의적인 재배치가 빈번하게 발생했으며, 그 과정에서 본래 화계 1단에 위치했던 괴석 2기는 경훈각(景薰閣) 후원으로 이설된 상태이다. 둘째, 「동궐도」가 제작된 조선후기와 달리 1900년대 초반 주합루 후원에는 괴석 2기가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외형, 규격, 의장이 유사한 전통적 양식의 점경물이었다. 하지만 주합루 후원의 괴석은 모두 1970~1980년대에 타지로 이설되어 현재는 고유위치를 벗어난 상태이다. 1기는 빙천(氷泉) 입구와 금천교 인근을 거쳐 애련정 후면에, 또 다른 1기는 연경당 장락문(長樂門) 앞에 남아 있다. 셋째, 과거 존덕정 일곽에 소재했던 점경물 중 괴석 1기는 현재 구성 부재가 분리된 상태로 정자 주변 석교와 영화당 인근에 분산 배치되어 있다. 영화당 인근의 대석은 1990년 무렵 앙부일구 모조품을 설치하기 위한 용도로 이설되었다. 또 다른 괴석 1기는 후원 정문으로 이설된 이후 현재는 소재 파악이 어려우며, 본래 위치에는 완전히 상이한 형태의 점경물이 새롭게 배치되어 있다. 넷째, 대보단지에 현존하고 있는 대석 2기는 일제강점기 당시 이왕직청사(李王職廳舍) 현관 기둥의 초석으로 사용되던 건축 부재였다. 해방 이후 이왕직청사가 구황실재산사무총국으로 개편되고, 1960년 무렵 사무총국 건물이 전소되자 기단 위에 배치되어 있던 석상(石像)과 대석이 대보단지로 이설되었다. 대보단지의 대석은 건축부재가 점경물로 오인되고 있는 대표적 사례이다.

동궐도(東闕圖) 판장(板墻)의 공간통제 효과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Spatial Control Effect of Panjang in Donggwoldo)

  • 하유정;김충식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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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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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6-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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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연구는 공간구문론(Space syntax)을 이용하여 조선 후기에 제작된 <동궐도(東闕圖)>의 판장의 설치에 따른 주요 권역별 공간변화를 비교하여 판장의 공간분할 기능과 역할을 재해석하였다. 연구방법으로는 <동궐도>의 공간을 단위 공간으로 분해하기 위한 설정 기준을 마련하였고, 판장의 설치 전·후에 따라 2개의 볼록공간도를 작성해 공간구문변수인 연결도, 통제도, 통합도 값을 산출하여 비교분석하였다.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동궐도> 내 가림시설은 전각공간에 대한 변수의 평균값을 비교하였을 때, 동궐의 전체적인 배치에서 통제와 연결은 영향이 크지 않았다. 다만 특정 권역 내 공간의 접근성 측면에서 영향을 주었다. 가림시설이 집중적으로 설치된 내전과 동궁 그리고 후원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을 중심으로 이동과 접근에 제한을 주었다. 둘째, 판장은 내전과 동궁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공간의 활용방식에 적극적으로 이용된 시설로 판장의 설치에 따른 공간의 특성이 뚜렷하게 나타났으며 기능에서도 차이가 확인되었다. 내전의 수정전 권역과 희정당 권역 그리고 동궁의 성정각 권역에 판장을 설치함으로써 개방적이고 통제성이 높았던 공간이 통제성이 낮은 폐쇄적인 공간으로 변모하였고 사적인 공간이 조성되었다. 동궁의 완영당 권역은 판장을 여러 방향으로 설치함으로써 공간의 깊이를 증가시켰다. 이는 거쳐서 오는 공간의 수가 증가됨으로써 자유롭고 은신이 가능한 공간이 조성되었다. 셋째, 판장은 기존 선행연구에서 밝혔던 '시선차단·공간분리·동선조절'의 기능 이외에 '접근통제가 용이한 공간'을 조성하였다. 일정한 공간으로 유도함과 동시에 동선이 집중됨에 따라 접근 통제가 가능한 공간이 되었으며, 판장의 개수와 배치에 따라 집중형 통제공간과 분산형 통제공간을 조성하였다. 본 연구는 그 간 가림시설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연구 외에 판장에 대한 기능을 수학적 모델로 분석하여 특정 공간속에서 판장이 어떠한 양상으로 공간을 통제하였는지 수치적으로 확인하였고, 공간의 통제와 연결, 은신과 개방성 등의 해석으로 연구의 방법을 확장한 것에 의의가 있다. 또한 연구의 방법론이었던 공간구문론을 <동궐도>에 적용하기 위해 궁궐의 건축 및 조경요소의 단위공간 분할 및 연결 유형에 따른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궁궐과 유사한 전통주거단지에서도 적용이 가능한 분석툴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그러나 공간구문론의 분석을 통해 결과적으로 제공되는 것은 공간조직이 가지는 구성적 특질을 표현하는 숫자들로 제한된 체계 내에서만 의미를 가진다는 한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