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由 《漂海録》 看中国文化传承的分析 (Thorough Analysis of Chinese Cultural Heritage Based on Pyohaerok)

  • 최창원
    • 산업진흥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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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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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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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Cultural heritage means a great lot to a nation's social system and its people's behavior consciousness and plays an important role in its self-development and improvement. It is essential for a nation's self-education and renewal. Improper cultural heritage will be disastrous because it may fall a nation into a loss of terrible chaos. Only the proper cultural heritage can make it always self-awaking, self-correcting and remaining vital in life. This paper, from the perspective of Choi Bu's Pyohaerok, makes a thorough analysis of the unbalance heritage of Chinese ancient culture for thousands of years. For example, many fine traditions gradually vanished in our actual life or only take half their life in heritage nowadays, such as our ancient broad and profound Confucian etiquette, ancient exquisite brocade art and architecture, ancient advanced ship-building technology and many other advanced numerous technological inventions; however, too much unwanted cultural rubbish keeps constant prevailing and takes repeated successions in the life, such as the heavy-form-and-light-content management mode, borrowing power to do evil, neglecting technological inventions long time and generally believing in ghost theory,etc.. This paper mainly focuses on the partial successions of the bad cultural heritage and its bad influence on the country, and concludes that it is just that that makes the country more and more backward. Therefore, the paper makes some pondering over these issues and proposes some related ideas of country-building to attract others participation to deal with them.

왕방(王?)의 『남화진경신전(南華眞經新傳)』 연구 - 「소요유」·「제물론」·「양생주」·「인간세」·「천하」를 중심으로 - (A study of Wang Pang's Commentary on Zhuang Zi)

  • 조한석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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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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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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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논문은 왕방의 "남화진경신전" 중 "소요유" "제물론" "양생주" "인간세" "천하"를 중심으로 논의를 구성하였다. 본론은 모두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는데 본론 1장에서는 기존의 연구 성과에서 보이는 문헌 검토상의 오류와 불명확한 주제설정에 대하여 지적하였다. 그리고 본론 2장에서는 "남화진경신전" 중 "소요유" "제물론" "양생주" "인간세"에서 목격되는 유불도 경전 인용을 정리하여 도표로 제시하였다. 현재까지 필자의 검토에 의하면, 왕방 이전 "장자" 주석서에서는 "남화진경신전"과 같이 "장자" 이외의 다른 전적을 직접 인용하는 사례는 없다. 필자는 이러한 왕방의 다양한 경전 인용을 통한 "장자" 해석에 대하여 '융복합적 "장자" 해석'으로 정의하였다. 또한 이런 융복합적 "장자" 해석의 의미에 대하여 진화론적 관점을 응용하여 '변화를 위한 융복합' 곧 '사상계의 변화 문화지형의 변동에 적응하여 진화하기 위한 사상적 시도'라고 정리하였다. 마지막 본론 3장에서는 왕방의 "장자" '신인'에 대한 해석에 대하여 정리하였다. 이 부분에서는 왕방이 "장자"의 이상적 인격을 합리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소요유" 등에서 목격되는 '신인'을 '경세자' 곧 '치세의 정치 실력자'로 해석하는 부분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궁중정재 <오양선>의 전통문화콘텐츠화 시론 - 아시아 전통춤의 전파와 변용을 바탕으로 - (A Direction of Developing a Traditional Cultural Content of Korean Court Dance Oyangseon - With a Base on the Historical Transmission, Reception of Asian Traditional Dance -)

  • 허동성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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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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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09-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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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연구의 기본 취의는 역사적으로 문화적 친연성을 지닌 아시아권의 전통춤을 대상으로 한 전통문화콘텐츠 구축을 위한 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의 당악정재 곡목인 <오양선(五羊仙)>을 한 예범으로 그 역사적, 문학적 근거를 통해 그 배경서사의 연원이 고대 남월(南越; 베트남) 지역의 오양선 설화에 있음을 확인하였다. 즉, 다섯 신선이 오색의 양을 타고 오양성(五羊城; 현재의 중국 광주(廣州)에 내려와 여섯 개의 벼이삭(六穗?)을 하사하였다는 설화이다. 나아가 후대에 쓰여진 베트남의 구전설화 <월정전(越井傳)>, 중국의 전기(傳奇) 작품인 <최위(崔?)>가 이 원(原)서사에서 비롯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반면 우리나라 <오양선>의 창사에 나타난 배경서사는 원서사에 서왕모와 천도 모티프를 추가하여 군왕의 축수(祝壽)와 덕치, 나라의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의례적 모티프를 강화하였다. 본고에서는 3국 내 오양선 서사의 이러한 공통성에 주목하여 그를 소재로 한 각국 전통춤의 전승 현황을 추적한 바 중국의 경우 최근 우리나라 <오양선>을 참고하여 <오양선무>를 재창작한 반면 베트남의 경우 전승이 부재하였다. 그에 따라 전통문화콘텐츠 구축 프로젝트의 추진을 위해 베트남 공연단을 섭외하여 <월정전> 설화를 소재로 한 <치유의 쑥잎>이란 곡목을 창작케 하였다. 그 결과 오양선 설화를 소재로 한 3국의 춤을 한 무대에서 합연함으로써 아시아 악무의 공통적 서사 기반에 기초한 새로운 전통문화콘텐츠 구축의 시론적 방향성을 제시하고 나아가 춤을 통한 아시아 문화공동체 구축의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근대계몽기 한국연극사의 전통담론 연구 II (A Study on Tradition Discourse in Korean Modern Drama between 1894 and 1910)

  • 백현미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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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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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7-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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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근대계몽기 한국연극사의 전통담론은 대개 전통(연희)에 대한 내용개량의 성격이 강했다. 근대 진입기이면서 국권상실기였기 때문에 개량의 방향은 애국과 개화의 문제에 초점이 맞춰졌다. 논의의 주체는 유교적 지식인, 애국계몽론자, 그리고 식민주의에 침윤된 개화지식인으로 나눌 수 있고, 이들은 각각 상풍패속론, 극계개량론, 신연극론을 주창했다. 을사조약 체결 이듬해인 1906년, 유교적 예악론자들은 협률사의 전통연희가 민심을 어지럽힌다고 비판하면서 상풍패속론을 전개했다. 이 상풍패속론은 국권 수호를 위한 절박한 문제의식을 지닌 지식인들이 유교적 예악론을 근거로 하여 연희 일반에 대한 부정론을 편 것이다. 외래극장문화와 공연문화에 대한 한국의 전통적 의식의 충돌을 보여준 이 상풍패속론은 극장문화의 시대적 의미와 역할에 대한 사유를 보여주는 첫 예로 주목할 수 있다. 1907년 정미7조약 체결 이후 애국계몽론자들은 중국 량치차오 논의를 수용 재해석하면서 '국권 수립을 실현할 민족영웅'을 소재로 한 전통연희 개량 극의 출현을 앙망하며 '극계개량'을 외쳤다. 그리고 1908년 이인직은 판소리 전통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은세계>를 원각사에서 공연하면서 '신연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관리의 탐학과 우매한 백성들을 비판하며 개혁에 초점을 맞추는 논의를 전개했다. 이렇게 1908년을 전후해 일본 신연극과의 연관 속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신연극에 대한 논의는 곧 '연극개량' 논의와 구별 없이 사용되었고, '극계개량'이라는 용어를 대체해갔다.

전통 상단예불의 음악적 특징 고찰 - 조계종과 태고종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Musical Characteristics of Traditional-Sangdanyebul - Focusing on the Jogye Order and Taego Order -)

  • 차형석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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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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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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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연구의 기본 취의는 역사적으로 문화적 친연성을 지닌 아시아권의 전통춤을 대상으로 한 전통문화콘텐츠 구축을 위한 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의 당악정재 곡목인 <오양선(五羊仙)>을 한 예범으로 그 역사적, 문학적 근거를 통해 그 배경서사의 연원이 고대 남월(南越; 베트남) 지역의 오양선 설화에 있음을 확인하였다. 즉, 다섯 신선이 오색의 양을 타고 오양성(五羊城; 현재의 중국 광주(廣州))에 내려와 여섯 개의 벼이삭(六穗?)을 하사하였다는 설화이다. 나아가 후대에 쓰여진 베트남의 구전설화 <월정전(越井傳)>, 중국의 전기(傳奇) 작품인 <최위(崔?)>가 이 원(原)서사에서 비롯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반면 우리나라 <오양선>의 창사에 나타난 배경서사는 원서사에 서왕모와 천도 모티프를 추가하여 군왕의 축수(祝壽)와 덕치, 나라의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의례적 모티프를 강화하였다. 본고에서는 3국 내 오양선 서사의 이러한 공통성에 주목하여 그를 소재로 한 각국 전통춤의 전승 현황을 추적한 바 중국의 경우 최근 우리나라 <오양선>을 참고하여 <오양선무>를 재창작한 반면 베트남의 경우 전승이 부재하였다. 그에 따라 전통문화콘텐츠 구축 프로젝트의 추진을 위해 베트남 공연단을 섭외하여 <월정전> 설화를 소재로 한 <치유의 쑥잎>이란 곡목을 창작케 하였다. 그 결과 오양선 설화를 소재로 한 3국의 춤을 한 무대에서 합연함으로써 아시아 악무의 공통적 서사 기반에 기초한 새로운 전통문화콘텐츠 구축의 시론적 방향성을 제시하고 나아가 춤을 통한 아시아 문화공동체 구축의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중국 무이구곡 바위글씨(石刻)의 분포와 내용 및 유형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Distribution, Contents and Types of Stone Inscription of Wuyi-Gugok in China)

  • 노재현;정조하;김홍균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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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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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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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문헌연구와 현장조사를 통해 중국 무이구곡에서 시지각되는 바위글씨의 분포와 형태 그리고 내용에 따른 바위글씨의 유형화를 시도한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무이산 무이구곡에는 1곡부터 9곡까지 모든 곡에 바위글씨가 현존하며 그 수는 총 350방으로 확인되었다. 둘째, 바위글씨의 분포 분석 결과, 제5곡에 74방(21.2%), 제6곡 67방(19.2%), 제1곡 65방(18.6%), 제2곡 60방(17.2%) 그리고 제4곡에 53방(15.2%)이 확인되어 이들 5곡에 전체 319방(91.1%)의 바위글씨가 집중됨으로써 이들 곡의 문화경관성이 풍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셋째, 바위글씨 개체수는 1곡 수광석에 41방(22.6%), 6곡 천유봉 호마간에 29방(8.3%), 4곡 제시암에 23방(6.6%), 2곡 영암에 22방(6.3%), 6곡 향성암에 21방(6%), 5곡 운와에 19방(5.4%)·복호암에 18방(5.1%)·은병봉에 17방(4.9%), 4곡 대장봉에 14방(4%), 1곡 대왕봉, 4곡 금곡암에 각각 12방(3.4%)의 바위글씨가 존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따라서 11개소의 개체 바위에 총 228방(65.1%)이 집중되는 경향을 보여 이들 바위의 지명도와 문화적 가치를 대변하고 있다. 넷째, 무이구곡 바위글씨는 무이산의 지모 및 지형지질에 대한 찬미, 무이군과 지명과 관련된 설화, 공맹(孔孟)의 사상을 담는 유가적 교훈, 주자의 무이도가와 관련된 경명과 주자의 행적 등 성리문화의 상찬 그리고 동천복지의 세계관과 도화원기의 선경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삼교와 관련된 유·불·선 명인들의 고사를 포함한 중국 전통문화와 관련한 선인고사(先人古事) 등의 매우 다양하고 다채로운 역사와 신화, 전설을 담는 역사문화 풍경을 내포하고 있다. 다섯째, 무이구곡 바위글씨의 내용을 바탕으로 분류한 결과, 경명·찬경·기유·기사·철리·서회·종교·길어·표어·서지제각 그리고 관문고시 등 11개 유형으로 분류되었다. 이 중 찬경제각(贊景題刻)이 102방(29.1%), 경명제각(景名題刻)이 93방(26.6%) 그리고 기유제각(紀遊題刻)이 61방(17.4%)의 순으로 나타나 무이구곡의 바위글씨는 경물명의 제시와 경관 찬미 그리고 유람을 기념하는 성격이 특히 강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섯째, 연구대상 6개 구곡도와 무이구곡 바위글씨 간의 상호텍스트성 분석 결과, 매체간의 전파방법은 대부분 '인용'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이밖에 확장, 반복, 연장 그리고 압축을 통해 상호매체성을 유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지역전통의 활성화와 이벤트관광 - 영암 구림리 왕인문화축제를 사례로 - (Revitalization of Local Tradition and Event Tourism - In case of Wang-In Cultural Festival in Kurim-ri, Yongam -)

  • 추명희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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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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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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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최근 한국의 지역사회에서는 지역전통과 문화적 자산 등이 재발견되고 자원화됨으로써 이를 이벤트관광으로 활성화시키려는 노력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본 연구는 해당지역내 독특한 지역전통과 문화적 자산 등을 축제주제로 부각시켜 전남지역의 대표적인 이벤트관광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영암 구림리의 왕인문화축제를 사례로 초기 왕인문화축제의 추진배경과 이후 현재까지의 성장과정을 축제내용 분석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왕인문화축제는 1993년 제1희 왕인벚꽃축제의 5천만원 예산규모로 출발하여 2000년 현재 3억 4천 만원의 예산규모와 약 50만명이 방문하는 대형축제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규모의 성장과 함께 축제 프로그램의 구성과 내용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가장 큰 변화는 1997년부터 '왕인박사춘향대제'라고 하는 유림들의 제사가 왕인문화축제의 핵심적인 프로그램으로 포함되면서부터이다. 이후 왕인박사와 관련한 축제프로그램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는데, 이러한 축제의 규모와 프로그램 구성에 있어서의 결정적인 변화는 왕인축제의 추진체계가 초창기(1993년${\sim}$1996년)의 군서청년회에시 1997년 영암군으로 전면 이양되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순수 민간주도형 지역축제로 출발했던 광인문화축제는 그러나 1997년 영암군이 강력한 주도집단으로 등장하면서 축제의 규모와 내용면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축제를 통한 지역문화가 지역내로 자연스럽게 뿌리내리는데 필요한 제도적 장치나 과정이 제대로 고려되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년 내내 축제 개최와 관련된 준비를 하는 민간주도의 상설기구가 요구된다. 그리고 지역축제를 통해 지역의 총체적인 성장을 도모하고 지역문화환경의 내적 성장을 위해서는 지역내 역량있는 문화단체를 발굴, 육성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과제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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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 경전에 나타난 충효관 연구 - 『문창효경(文昌孝經)』과 『정명충효전서(淨明忠孝全書)』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Concept of 'Loyalty and Filial Piety' in the Taoist Scriptures)

  • 조민환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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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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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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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이 논문은 『문창효경(文昌孝經)』과 『정명충효전서(淨明忠孝全書)』에 나타난 충효관을 중심으로 하여 도교가 지향하는 충효관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한대(漢代) 이후 유학이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동한 이후 효 관념은 국가와 사회를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덕목으로서 황제에서부터 한 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해당하였다. 도교에서도 충효를 강조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도교의 종파에 따라 효 그 자체를 중시하는 경우도 있고 효를 충과 함께 중시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도교를 '세속에서의 인간관계망에서 요구되는 바람직한 행동거지를 잊어버리고 삶을 살아가면서 맞닥트리는 다양한 사물과의 관계를 끊는 것[絶世遺物]'으로 규정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충과 효를 강조하는 '정명충효도(淨明忠孝道)'의 효도관 및 충효관은 유가의 충효관의 영향 관계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도교의 효도관과 충효관을 보여준다. 도교가 지향하는 가장 근본적인 것은 불로장생하는 신선 되기 혹은 우화등선(羽化登仙)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신선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충효(忠孝), 화순(和順), 인신(仁信)을 행할 것을 요구한다. 충효, 화순, 인신을 강조하는 것은 유가와 동일하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신선 되기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유가에서 신선을 부정하는 것과 차별화된 사유에 속한다. 특히 정명충효도에서는 '절세유물'로 이해되는 도교관을 거부함과 동시에 충효를 통한 제가(齊家)와 치국(治國)은 물론 모든 만물에까지 충효의 이념과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 유가의 효도관과 대비하여 본 도교 효도관의 특징은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도교가 추구하는 장수(長壽)하면서 성선(成仙)하는 것을 효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짓는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장수성선(長壽成仙) 신앙을 가미해 유가의 효도관을 개조하고 제고시킨 점이 있다. 다른 하나는 도교의 효도관에는 천인감응(天人感應)의 사상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효행을 하면 천지신명과 감응한다는 도리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불효하고 불충한 경우 하늘로부터 재앙을 받는다는 사유를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친소(親疏)의 구별을 하지 않고 부모부터 천지 만물에 이르기까지 효도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조의 변이 양상 (The Aspects of Change of Sijo)

  • 강명혜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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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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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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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시조는 발생초기부터 당대의 역사 시대적 배경에 따라 그 틀과 내용이 조금씩 변하면서 융통성 있고 유연하게 적응해 왔다. 이런 점이 당대의 시대적 배경이나 사상, 실태 등을 반영해서 당시의 독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시조를 시조답게 하는 시조성만은 그대로 고수해 왔기에 '시조'라는 장르가 현재까지도 생존할 수 있었다. 어느 시대나 어떤 배경에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3장이라는 정형성은 지켜졌으며, 3, 3조나 3, 4조를 유지했고, 또 종장의 첫 구 3자도 고수했다. 이러한 시조성은 시대적인 간극에도 불구하고 '시조'라는 공분모 안에 모두 수렴시킬 수 있는 동인을 마련했다. 한국시가에 있어서 시조는, 공적 기능에서 사적 기능으로 변모가 이루어진 최초의 양식으로서. 그 변이과정을 살펴본 결과. 고려말${\sim}$조선조의 평시조는 그 당시 조류에 부합해서 시조 텍스트를 재도지기(載道之器)로 보아 이중적인 의미의 채색, 상징성 부여, 다채로운 문장 수식 등은 나타나지 않지만, 명천도(明天道) 정인륜(正人倫) 지향하는 성현의 가르침을 온유돈후(溫柔敦厚)하게 나타내고자 노력했다. 주제는 주로 그 당시 상황과 부합되는, 송축, 절의, 정쟁, 훈민, 한정, 강호도가, 안빈낙도, 애정 등이었다. 조선조 후기에 오면서는 사설시조(辭說時調)가 활성화하기 시작한다. 사림파의 득세와 양란(兩亂), 실학의 도입 등으로 조선조 후기에는 인식의 변화를 겪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가 시가 양식에도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설시조는 당대의 봉건주의 파괴, 유교적 모랄에 대한 반발, 근대적 특성 보유 남녀평등등 사상, 지배층에 대한 고발 및 저항정신 둥이 주축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저항적 리얼리즘적 현실지향적인 성향을 띠며 특히 고발문학 저항문학의 지반을 형성하는 장르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무엇보다도 잡다한 일상사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현실 생활에 대한 깊은 관심, 그에 대한 사실적, 구체적 표현은 사실주의 정신의 매개항이 된다는 점에서 근대성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았다. 1905년 이후 신문에, 형식이나 내용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기존의 평시조나 사설시조에서 변이된 형태를 취하는 일군의 시조가 등장했다. 변이된 형태는 시조 텍스트의 형식과 내용뿐만이 아니라, 수용적 측면에서도 일어났다. 이때부터 시조는 '읊고 부르는 형태'에서 주로 '읽는 기록물'로 인식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변이 된 시조 형태란, 당대의 시대를 풍자하는 '흥, 내지 흐응'이 삽입된 것, 종장의 어미가 생략된 것 등을 말한다 이러한 형식은 긴박한 상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특성을 지니기는 하지만, 고시조의 틀, 즉 율격이나 자수에서 많이 이탈되어서인지, 그 생명은 길지 못했다. 그러다가 192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해서 시조부흥운동이 일어나면서부터 시조 창작은 다시 활기를 띠게 되는데, 시조부흥운동은 최남선에 의해 주도되었다. 시작(詩作) 초기에는 서구지향의 시와 시조들 병행해서 쓰던 육당 최남선이, '조선국민문학(朝鮮國民文學)으로서의시조(時調)'라는 글을 통해 시조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언급하면서 시조부흥 운동을 선도한다. 그는 시조집, '백팔번뇌'도 출간하는데. 그의 전 시조집을 관통하는 것은 '조국 사랑'이라는 일 주제였다. 결국 육당은 고시조를 민족정신의 일환으로 보고, 시조양식을 채택하여 그 당시의 역사 사회적인 상황에 부합되는 주제를 표출한다. 결국 육당도 시조 텍스트를 재도지기(載道之器)로 여겼음을 알 수 있었다. 현대의 시조는 현대성(現代性)과 시조성(時調性)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는 어려움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전자에만 치중한다면 자유시와의 변별성이 문제가 되며, 후자를 고수하려니 고루하고. 시적 묘미가 없다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많은 작가들에 의해 평시조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시조가 지니는 원형성에 대한 매력을 감지해서일 것이라고 보았다. 그들 중 특히 선정주의 작품에 주목했는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특히 근대의식, 사회비판정신, 고발의식, 사실주의 정신 구현, 서민의식, 산문체 ·일상어 지향 등, 사설시조의 특징 및 성향을 잘 구현, 반영하면서 그 맥을 잇고 있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렇듯이 현대의 시조 작가들은 우리의 고시가 형식을 다양하게 선택해서 다양한 주제를 표출하고 있었다. 여기서 추정할 수 있는 사실은 이러한 시조의 유연성은 앞으로 시조의 생명을 항구적으로 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역사 시대적 변화와 상황 하에서 다시 새로운 양상을 취할 가능성을 보인다는 것, 그리고 이 '시조'는 한국인의 '영원한 정형시 장르'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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