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Changkyung Pa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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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후원 이용의 역사적 고찰 (Historical Studies on the Uses of the Rear Garden at Changkyung Palace)

  • 정우진;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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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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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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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의 목적은 창경궁 복원을 위한 후원의 물리적 형태와 인문학적 경관에 대한 고찰에 있다. 이 연구에서는 동궐도,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연구대상지에 관련된 도상자료와 문헌자료들의 종합적인 분석을 실시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이곳 후원에서 행하여졌던 행위의 실재와 구체적 장소 간의 연결을 시도하여 창경궁 후원에 내재된 고유의 특질과 정체성을 조명하고자 하였다. 창경궁 후원은 왕실의 휴식과 왕과 계비의 사생활을 위한 금원으로서의 공간뿐만 아니라, 국가의 다양한 행사를 수용하는 공적인 공간이었다. 최초 조영 당시에는 친경과 친잠을 위해 조성되었고, 이후 왕실의 정치적 행위인 과거시험과 활쏘기 경기(시사(試射)), 군사훈련, 친경(親耕), 신하인견의 행위들이 이곳에서 이루어 졌다. 창경궁 후원에서는 춘당대, 관풍각, 관덕정이 특정행위의 거점이 되며, 이들 영역 내에서는 기능, 용도, 형태, 구조, 식재, 수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밝힐 수 있었다.

한국과 중국의 궁궐어원(御苑)의 상석(賞石) 비교연구 (A Study on the Stone Figures in the Palace Gardens of the Palaces in Korea and China)

  • 박경자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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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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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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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Korea and China can find the common feature derived from the mutual cultural exchanges, belonging to the same cultural sphere of the East Asia. It also applies to the stone figures of the palace gardens of both countries. In case of Korea in the stone figures of the palace gardens, there are few of them existing in Kyungbok Palace, Changduk Palace, and Changkyung Palace of the Chosun Dynasty, and most of them were washed away, there are hardly any records remaining and transmitted, and there are hardly any materials of drawings and pictures of them. On the contrary, in case of China, although there are those washed away, there are vast numbers of real objects, and records and materials of them. Therefore, for the study on the stone figures of Korea, the method to analogize the research lacking regarding the stone figures of the palace gardens of Korea from those of China after conducting the comparative study between those existing and those of China, may be available. I consider that although the restoration of the palaces of Chosun Dynasty of Korea had been the restoration project oriented toward the buildings until now, it will be the phase where one should have more interest toward the restoration of the palace gardens in the future, and that the restoration of the palace gardens should be made centered on the landscape architectural structures, deviated from the restoration project attaching weight to the restoration of the trees. Above all, I consider that the interest should be turned to the restoration of the stone figures where the view toward the nature of the Orientals are expressed well. For the restoration of the stone figures in the Changduk and Changkyung Palaces, it is considered that the restoration of the rough locations and shapes is possible based on the Dongkwol Drawings being transmitted, and that the research on the shapes, characters, pedestals, characteristics, etc. of the specific stone figures is possible as far as it is based on the study of the stone figures of the palace gardens of China.

조선시대 궁궐 후원 농경지(農耕地) 조영의 특성 (Studies on the Construction Characteristics of Rear Garden Farmland at Joseon Palace)

  • 정우진;심우경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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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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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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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연구는 조선시대 궁궐 내에 조성된 농경지 조영의 양상과 공간적 특성을 분석하여 유교적 농본 중심의 시대상이 궁궐 안에서 특수한 권농의 공간으로 반영되었음을 구명하고자 하였다. 대상지는 경복궁 후원, 창경궁 후원과 경복궁 신무문 밖 후원이 되며, 문헌조사를 중심으로 수행되었다. 궁궐 후원 농경지는 "농사직설"의 편찬, 친경례와 기곡제의 설행으로 대변되는 조선 통치집단의 권농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임금이 자신의 거주지인 궁궐 안에 한 해 농사의 풍흉을 가늠할 포지를 조성한 것이며, 국초부터 일제 강점기 직전까지 각 궁궐에서 운영되었다. 조선시대 후원 농경지 4개소에 대한 분석 결과로는 첫째, 세종 때 조성된 경복궁 후원 농경지는 현 향원지 내부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선진농법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포지로 조성되었다. 성종이 조영한 창경궁 후원 농경지는 조선 최초의 친경례 직후에 조성되어 적전친경의 맥락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인조는 경덕궁이 임시로 거처했던 시어소임에도 불구하고, 체류의 기간이 장기화되자 정전의 뜰을 파고 농포로 조성하였는데, 조선시대 정치사에서 후원 농경지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고종이 조성한 경농재 일곽의 농포는 선대의 권농행보를 계승하면서 창경궁 후원 농경지의 공간 구성을 그대로 가져온 특성을 보이고 있다. 둘째, 관수와 수체계, 관경대의 명칭, 입지에 있어서 일정한 공통점이 도출되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농본공간의 보편적 형식으로 판단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후원 농경지 외에 궁궐 내에서 내관들에 의해 관리되던 채전과 국가의 큰 제사에 쓰일 과일을 위한 궁궐 내 과수원의 운영 양상을 고찰하여 조선시대 궁궐 조경이 엄숙함, 질서정연함이나 장식성에만 치중되지 않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 생산적 조경공간으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밝힐 수 있었다. 또한 궁궐에서 왕실의 주도로 생산적 조경의 다양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었고, 임금이 솔선수범하여 선진농법을 시험하였다는 점은 우리의 고유한 궁궐조경의 일면이 되며, 조선의 독자적인 궁궐문화로서 그리고 여타의 유교 국가에는 없었던 유일한 애민농본의 조경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창경궁 통명전 목부재의 연륜연대 측정 -방에서 마루로 변형된 시기규명을 중심으로- (Tree-Ring Dating of Wood Elements Used for Tongmyungjeon Hall of Changkyung Palace - The Year of Transforming from Ondol Rooms to Wooden Floors-)

  • 박원규;손병화;한상효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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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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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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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Tree-ring chronologies can be used to date historical buildings by matching them with the chronologies of living trees or previously dated samples. Tree-ring dating gives a calendar year to each tree ring and produces the felling dates of logs or woods which had been used for buildings. In Korea, several chronologies of Japanese red pine(Pinus densiflora Sieb. et Zucc., 'sonamu' in Korean), a major species for the wooden building materials, have been developed and used for dating historical buildings. In this study, Tongmyungjeon Hall of Changkyung Palace in Seoul was dated by tree rings. The present Tongmyungjeon Hall was known to be reconstructed in A.D. 1834 after burned-out in A.D. 1790. We sampled total of 122 wood samples which were replaced during the repair process in 2002-2003. Felling dates of the samples were determined by the dendrochronological crossdating method. Crossdating method employs graphic comparison of the master patterns (ring-width chronologies of known dates) with those of the sample chronologies of unknown dates. Tree-ring dates confirmed that the reconstruction of 1834 utilized second-handed timbers as well as fresh-cut ones. The felling dates of wooden floor frames were mostly A.D. 1913, indicating the 'Ondol' floors were changed to the wooden floors around 1914 when the Japanese rulers brutally destroyed the royal Korean Palaces and transformed palace buildings to their offices or exhibition halls after occupying Korea in 1910. This study proved that tree-ring dating was a useful and accurate method to identify the critical dates for the history of Korean traditional build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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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궐도상의 존덕정 영역에 나타난 무편액 건물의 조영사적 고찰 (Historical Studies on the Nameless Buildings at the Jondeokjeong Area in Donggwoldo)

  • 정우진;심우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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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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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8-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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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창덕궁과 창경궁이 공유하는 후원인 동궐 후원은 조선왕조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기술과 사상이 집약된 후원으로서 단연코 한국 조경문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왕실의 휴식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상징적 의례와 인재양성의 장이 되었던 동궐 후원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상당부분 훼철되어 과거의 면모가 일축되었다. 창경궁 북쪽의 후원권역은 일제에 의해 완전히 변형되어, 현재는 주합루에서 옥류천에 이르는 몇 개소의 영역이 후원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중에서 본 연구의 대상이 되는 존덕정 영역은 인조 연간에 옥류천 개발이 완료된 직후부터 화원(花園)으로 조성된 정원으로서, 심추정, 척뇌당, 폄우사, 망춘정, 천향각, 청심정 등의 정자가 존덕정을 중심으로 승경의 요점지에 자리 잡은 화목류와 연지 중심의 공간이었으나 현재 존덕정과 심추정, 폄우사만이 남아 있고, 그 외의 정자들은 멸실되거나 변형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각 건축물에서 감상되는 수요소, 식생, 점경물 등을 분석함으로써 원형적인 조영의도를 구명하는데 주력하였으며, 동궐 후원의 진정성 있는 복원 정비와 조경 시설물을 둘러싼 환경의 보전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정보 구축을 위하여 존덕정 영역의 정자인 심추정, 망춘정, 척뇌당, 천향각, 청연각의 5개 정자의 역사적 기록과 조영실태가 고찰되었다. 이들은 "궁궐지"와 실록에는 명칭이 언급되어 있지만 "동궐도"에는 그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데, 관련된 문헌자료가 망라되어 고증이 시도되었다. 이중 척뇌당과 심추정은 동궐도상에서 추정 건물을 뚜렷하게 밝힐 수 있었고, 존덕정 서북쪽에 위치한 용도가 불분명한 건물은 천향각 내지는 망춘정이었다고 추정하였으며, 태청문의 담장이 본래 청연각에 둘러쳐져 있었던 담장이었다는 가설도 제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제껏 동궐도와 동궐 후원연구에서 난관으로 여겨졌던 창덕궁 동북쪽 모퉁이에 위치한 용도와 명칭이 불분명한 건물일곽에 대해서는 연산군과 숙종이 사용했던 기록이 발견되었고, 궁궐 사람들 모르게 유희생활을 하는 임금만의 별당이었음을 밝힐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