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Cela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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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세척제를 이용한 도자기의 철산화물 제거 특성 연구 (Chemical Cleaning of Iron Stains on Ceramics)

  • 박대우;장성윤;남병직;함철희;임성태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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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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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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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금속산화물에 오염된 도자기 유물을 보존처리 하기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 화학적 세척과정이 필요하다. 본 연구에서는 화학적 세척과정을 침적법과 습포법으로 구분하여, 침적법에서는 옥살산과 구연산의 농도에 따른 철산화물 제거특성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나아가 앞선 침적법의 결과를 토대로 spot 테스트를 거친 후, 태안 마도에서 출토된 도자기 유물에 습포법을 적용하여 철산화물을 제거하였다. 옥살산에 60시간 침적시 도자기 빙렬 내의 철산화물은 제거되었지만, 육안관찰에서 침적 3시간 이후부터 철산화물이 관찰되지 않기 때문에 보존처리현장에서는 유물의 안정성을 고려하여 0.25M 이하의 옥살산에 1~3시간동안 침적하는 것이 적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구연산에서는 60시간 침적시 철산화물은 제거되지 않았다. 이는 옥살산과의 분자량 차이 및 산도(acidity) 등에 의한 것으로, 빙렬 내에 침투한 철산화물을 제거할 때에는 구연산보다 옥살산이 좀 더 효과적이었다. 옥살산을 용제로 제작한 습포팩(벤토나이트, 세피올라이트, 활성탄소섬유, 셀라이트)을 오염된 백자태토에 10시간동안 도포 처리하여 철산화물은 제거되었지만, 유물적용성은 벤토나이트와 세피올라이트가 뛰어났다. 그래서 앞선 침적법의 결과를 토대로, 0.25M의 옥살산과 세피올라이트를 습포 팩으로 제조하여 태안 마도 출토 청자 및 백자에 적용하였다. 습포팩 1회 처리로 유물표면의 철산화물은 대부분 제거되었으나 오염물의 형태에 따라 적용횟수는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며, 세피올라이트에 의한 2차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세척도 함께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유천리 고려백자의 조성 및 미세구조를 통한 과학적 연구 (A Scientific Study on the Composition Analysis and Microstructure of the Yucheon-ri Goryeo Whiteware)

  • 이태진;고민정;임수경;윤은영;황현성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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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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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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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연구는 고려 중기 가마터인 유천리 고려백자의 조성 및 미세구조 분석 결과를 기초로 기 연구된 서리, 중암리, 방산동 그리고 법천사지 출토 백자와 비교하여 고려백자의 원료적 특징을 확인한 것이다. 유천리 고려백자는 태토가 고려 전기 백자에 비해 실리카가 높고 융제 함량이 낮은 반면 유약은 이 반대의 특징을 보인다. 또한 철산화물에 비해 티타늄 산화물의 함량이 높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고려청자의 티타늄 산화물 함량과 비슷한 수치이다. 전기 고려백자는 각 가마별 함량의 차이를 보이나 이것이 시기에 따른 일정한 변화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며 중기 고려백자인 유천리 도편과 비교해 보아도 비슷한 양상이다. 또한 소비유적 출토인 법천사지 고려백자는 도편별 함량 차이를 보여 동일하지 않은 지역에서 제작, 수급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로 보아 각 가마별 함량의 특징 및 차이점은 고려백자의 시기적 흐름에 따른 변화라기보다 제작 환경이나 재료 수급의 차이 등에 따른 각 지역적인 특성으로 판단된다.

기장군출토 도자기의 미세구조 및 특성에 관한 연구 (Research on the Microstructure and Features of Pottery Excavated from Gijang-gun, Busan, South Korea)

  • 홍종욱;한민수
    • 보존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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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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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9-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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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조선초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자기 생산지로 유명한 부산 기장군 장안읍 일대에 산재한 도요지 중 신리, 대룡, 하장안, 상장안, 용소, 두명리에서 출토된 상감청자, 백자 및 철화백자 편 등을 대상으로 성분과 미세구조를 분석하였고, 이러한 과학기술적 고찰을 통해 6개 도요지에서 출토된 자기의 태토원료, 제작기법, 번조상황 및 도요지간 상관관계 등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6개 사이트에서 출토된 자기에서 Cristobalite, Mullite, Quarts 등이 검출되었고, 결정구조에 따른 소성 온도는 두명리>상장안>대룡리>하장안>용소리>신리> 순으로 높았음이 확인되었다. 판별분석 결과 신리와 대룡리, 상장안리와 하장안리, 용소리, 두명리로 4개 그룹으로 분류되었다. 시편에 제작에 사용된 태토원료는 4개의 유사한 특성 분포를 가지고 있다. 기장군 도자기의 유약 두께는 $40{\sim}400{\mu}m$로 시유되었고, 기포는 $10{\sim}150{\mu}m$형성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태토의 균질성 측면에서도 두명리 출토 시편이 가장 우수한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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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복원에 사용되는 에폭시계 고분자수지의 요구 특성 연구 (Study on the Demand Characteristics of Epoxy Resins Applied to the Restoration of Ceramics)

  • 남병직;정세리;장성윤
    • 접착 및 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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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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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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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연구는 도자기 복원용 에폭시수지 12종을 대상으로 복원제로서의 요구 특성(내구성, 가공성, 광택특성, 수축 팽창특성)을 조사한 후, 이를 통해 효과적인 재료 선택의 기준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내구성 분석결과 액상형은 비교적 손상 정도가 적고 재질 강도가 높은 도자기 유물에, 페이스트형은 상대적으로 손상 정도가 심하고 재질 강도가 약한 토기 유물에 적용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가공성 분석결과 액상형은 페이스트형보다 높은 표면경도를 보였고, 액상형 중에서는 일반경화형이 속경화형보다 표면경도가 높았다. 따라서 높은 표면경도로 재가공이 어려운 액상형은 향후 첨가제 혼합을 통한 물성 개선이 필요하다. 광택특성 분석결과 외관상 무색투명한 액상형이 페이스트형보다 높은 광택도를 보였고, 액상형 중에서는 일반경화형이 속경화형보다 광택도가 높았다. $700^{\circ}C$ 연질토기는 페이스트형 중 CDK-520A/520B와 Araldite SV 427-2/HV 427-1이, 청자와 백자는 액상형 중 Devcon 5 minute과 EPO-TEK 301-2, 페이스트형 중 Quik Wood가, 분청사기는 페이스트형 중 Quik Wood, 액상형 중 EPO-TEK 301-2와 Devcon 5 minute이 대상 도자기의 광택도에 가장 근접하였다. 수축 팽창특성 분석결과 에폭시수지의 대부분은 경화 중 부피 변화가 발생하였으므로, 수축 팽창률에 따른 복원면의 증감을 사전에 예측하여 형태복원 범위를 설정하여야 한다.

고려 강도궁궐의 위치와 범위 검토 (The Location and Range of Goryeo Palace in Gangwha)

  • 이상준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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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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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8-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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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강화는 비록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궁궐을 비롯한 여러 시설물이 즐비한 고려의 도성이었다. 하지만 도성의 핵심시설인 궁궐의 실체가 확인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중세도성으로서의 역사적 위상을 발현하지 못하고 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강도궁궐은 개경궁성을 모방하였다고 한다. 이 사실을 전제한다면, 강도궁궐의 실체는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개경궁성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개경궁성의 특징은 도성의 남북중심 축선에서 서편으로 치우친 곳에 입지하고, 궁성의 동편에는 '동지(東池)'가 위치한다. 그리고 궁성의 중앙부에는 탁월한 고도의 구릉이 남쪽으로 돌출되어 있고, 이 구릉을 감싸고 두 줄기의 가지하천이 흘러 주류하천에 합수된다. 강화에서 이상 개경궁성의 특징들을 적용해 볼 수 있는 곳은 관청리 '궁골'일대이다. 이곳에서는 예로부터 많은 청자들이 수습되었다고 하며, 중앙부에는 탁월한 고도의 구릉이 남아있다. 이 구릉을 감싼 두 줄기의 하천은 남쪽으로 흘러 주류하천인 동락천에 합수된다. 한편 관청리 405번지 유적의 발굴조사 결과는 이곳이 연못이었음을 추측케 한다. 그렇다면 이 유적은 궁궐의 동편에 입지하는 개경의 '동지'와 같은 성격의 유적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지적도에서 확인한 대형도로는 개경도성의 남북방향 주간선도로에 비견된다. 그러므로 강도궁궐은 개경궁성과 같이 이 두 유구의 서편에 입지하여야만 한다. 그곳이 바로 '궁골'인 것이다. 지적도에는 '궁골' 일대에 호상(弧狀)의 도로에 의해 구획된 복주머니 형태의 평면이 확인되는데, 개경의 궁성모습과 흡사하다. 이 호상도로 내부에 궁궐 전각의 일부로 생각되는 관청리 659-2번지 유적이 위치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개경궁성의 특징, 고지도 및 지적도, 고고자료의 검토를 통해 얻은 결론은 강도궁궐이 강화읍 관청리 '궁골'일대에 위치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며, 그 범위는 상기한 호상도로의 내부라는 것이다.

중국 북제(北齊) 채회유도(彩繪釉陶) 시론 (The Research on the Painted Lead Glaze Pottery in the Northern Qi Dynasty in China)

  • 김지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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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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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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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북제시기 유도 중에는 흰색 혹은 옅은 황색 유약 바탕에 녹색, 갈색, 황색 등으로 채색한 것이 있는데, 이는 "채회유도(彩繪釉陶)"로 통칭된다. 1971년 하남성(河南省) 안양시(安陽市) 홍하둔촌(洪河屯村)에 소재한 범수묘(範粹墓)에서 백유녹채삼계관(白釉綠彩三系罐)과 백유녹채장경병(白釉綠彩長頸甁)이 출토되었으나,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공반 출토된 백유기(白釉器)만이 중국에서 기년 자료가 확실한 가장 이른 백자의 증거로 제시되어 끊임없는 논쟁이 이루어졌다. 필자는 이 채회유도에 주목하여, 지금까지 무덤과 가마터에서 발견된 자료들을 정리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장식특징과 제작 기술을 파악하였다. 또한 이들이 부장된 무덤의 연대를 통한 출현 상한시점 및 피장자의 신분을 특정하여 채회유도의 사회적 가치를 알아보았다. 북제시기 채회유도는 이전 시기와 구별되는 제작특징이 확인되었는데, 구체적으로는 자토(瓷土)를 이용한 태토, 2차 소성, 유상회채(釉上繪彩) 기법이 새로 채용되었다. 이러한 특징은 이미 북위(北魏) 시기 유도에서 일부 나타난 변화로, 이것이 북제까지 이어져 백유 채회유도의 출현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채회유도의 기형은 동시기 남방지역 자기 기형과 북위시기 이래 생산된 채회의 속성이 결합되어 형성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문헌에 보이는 미얀마 흑유대호(黑釉大壺, 일명 Martaban Jar)에 대한 연구 (A Study on the Large Black Glazed Jar of Myanmar(Martavan Jar) in the Documents)

  • 김인규
    • 동남아시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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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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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9-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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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The pottery and porcelain of Myanmar is very various such as Celadon, Black glazed large Jar and White galzed Jar painted Green Colour. In these Myanmarese Ceramics, Black glazed large Jar is very important to understand the Character and Role of Myanmar Ceramics. The description on the Black glazed large Jar of Myanmar is seen in several Books such as a travel essay of Ibun Battuta, Duarte Barbosa, The book of Duarte Barbosa: A Account of the Contries Bordering on the Indian Ocean and their Inhabitants, Jan Huygen van Linschoten, Volker, T., Porcelain and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These descriptions on the Black glazed Jar in these Books are important evidence to discovery the existence of it and its Types and Price and Use. The appearance of Black glazed Jar of Myanmar is considered in the Middle of 14C with the description of the Book of Ibn Battuta. Furthermore, Excavated from the Shipwreck of China in the Sinan, Chellanamdo, it is certain that the Black glazed large Jar was already existed in the early of 14C. And it was considered that the Shipwreck of China in the Sinan, Chellanamdo was started from Ninbo(寧波) of China to the destination of Japan with the Inscrition made Bamboo. So we know that The route of $Ninbo{\rightarrow}Korea{\rightarrow}Japan$ is very important in the Trade Ceramics of East Asia in 14C. And The size of Black glazed Jar has 3 types, Large, Middle and Small. The large type is used as a Tools for Water and Oil. The small type is the personal bottle for drinking. The Price of Black glazed Jar of Myanmar was changed as times go by. The price of the late of 16C and the early of 17C is 30 prolin and the late of 17C is 8 Prolin. The price of the Black glazed Jar of Myanmar in the late of 16C and the early of 17C is estimated 3 times for the price of the late of 17C. and This change of the price of Myanmarese Black Glazed Jar is decided on the Demand and Supply. and the Black glazed Jar of Myanmar was mainly used for the tools for Morpin in the year of 1620 and for Salt and Sugar in the year of 1640 and for Water and Oil in the late of 17C.

문헌자료를 중심으로 한 상주백자 연구 (A study on the white porcelain in Sangju focus on the literature data)

  • 김종태
    • 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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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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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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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경북 상주지역은 조선초기에 왕실에 소용되는 상품자기의 절반을 차지하였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타 지역에 비해 연구가 대단히 미비한 실정이었다. 이에 상주지역에 관련된 여러 사료들을 살펴보고 상주지역의 한국도자사적의 위치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조선시대(朝鮮時代) 전기(前期)는 청자(靑磁), 분청사기(粉靑沙器), 백자(白磁), 상감백자(象嵌白磁), 청화자기(靑畵白磁)가 생산되었다. 세종의 명에 의하여 1424$\sim$1432년 $\ulcorner$세종실록$\lrcorner$(世宗實錄) $\ulcorner$지리지$\lrcorner$(地理志)가 편찬되었고 성종대(成宗代)에는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이 설치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더욱이 조선왕조로 교체되는 격변의 상황까지 겹쳐 강진의 요업(窯業)은 폐요되었고, 강진에서 종사하던 장인들은 보다 안전한 곳을 찾아 전국으로 흩어졌다. 이러한 지역의 하나가 상주의 중모현 기미외리와 추현리(湫縣里)(세종 당시의 지명, 현 모동면)이다. 또한 성리학(性理學)을 근간으로 하는 조선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백자제작에 필요한 원료의 조건을 갖춘 곳의 한 곳이 경상북도 상주지역이었으므로 강진의 장인들이 이곳으로 이동했으리라 사료된다. $\ulcorner$태종실록$\lrcorner$(太宗實錄)에는 경상도 상주의 중모, 화령 등의 특정지역을 열거하면서 왕실소용기명 제작을 위해 중앙에서 감독관이 파견된 기록으로 보아 15세기 초의 상주의 자기 제작상황을 알 수 있다. $\ulcorner$태종실록$\lrcorner$(太宗實錄) $\ulcorner$지리지$\ulcorner$ (地理志)에는 추현리와 이미 외리를 언급하면서 상주의 자기제작의 위상을 짐작하는 기록이 언급되면서 전국의 상품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ulcorner$경상도지리지$\lrcorner$(慶尙道地理志)에는 상주가 8곳으로 1/3의 자기 생산을 담당하고 있었다. $\ulcorner$경상도지리지$\lrcorner$(慶尙道地理志)에는 $\ulcorner$세종실록$\lrcorner$(世宗實錄) $\ulcorner$지리지$\lrcorner$(地理志)와 동년대에 동일한 목적으로 찬술되었음을 알 수 있다. $\ulcorner$경상도실록지리지$\lrcorner$(慶尙道實錄地理志)에는 $\ulcorner$세종실록$\lrcorner$(世宗實錄) $\ulcorner$지리지$\lrcorner$(地理志)와의 비교를 해보면 상 중 하품의 통합 9개소가 삭제되어 있고, $\ulcorner$동국여지승람$\lrcorner$(東國與地勝覽) 에서는 자기소와 도기소의 위치가 완전히 삭제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첫째, 15세기 중엽 경제적 태평과 함께 백자의 수요 생산이 증가하자 군신의 변별(辨別)과 사치를 이유로 강력하게 규제하여 백자의 확대와 발전에 걸림돌이 되었다. 둘째, 동기(銅器)의 대체품으로 자기를 만들어 충당해야할 강제성 당위성 상실로 인한 자기수요 감소를 초래하였을 것으로 사료된다. 셋째, 경기도 광주에서 백자관요가 운영되었으므로 지방인 상주지역에도 더 이상 백자를 조달받을 필요가 없이, 일반 지방관아와 서민들의 일상용기 생산으로 전락하여 소규모화 되었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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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음각 '○'문과 '⊙'문청자의 연구 (A Study on Goryo Celadons of intaglio '○' pattern and '⊙'pattern)

  • 한성욱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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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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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3-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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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문과 '⊙'문청자는 굽안바닥 중앙에 부호를 새긴 것으로 제작자(공방)를 표기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들 청자가 생산된 곳은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8.23.27호 가마터인데 'e'문청자는 23호와 27호에서만 확인되고 있어 그 생산지가 더욱 한정적이다. 기종은 완과 대접, 접시, 잔, 병, 합, 퇴주기 등이 확인되는데 접시가 수량도 많고 기형도 다양하다. 이들 청자는 대부분 전성기 청자의 문양과 같은 도범을 이용한 압출양각 기법으로 시문하고 있는데, 이는 문양과 크기 등 장식의장을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는 제작방법으로 양질청자를 생산하는데 적합한 방법이다. 또한 이 시기 상감기법이 보편화되지 않았으며, 압출양각 기법을 이용하여 유사한 청자를 다량 생산하여 공급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들 청자는 내화토 비짐이 일부 있으나 대부분 전면 시유 후 U자형 굽의 안바닥에 규석을 받쳐 갑번하였다. 이들 청자는 강화 희종 석릉과 파주 혜음원지, 일본 겸창시 약궁대로 무가 가옥 출토품 등을 통해 1230년대를 중심으로 한 13세기 2/4분기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 청자는 비색청자를 대부분 12세기로 편년하면서 오는 13세기 청자의 공백을 메워줄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자료이다. 그리고 이 시기는 몽고에 의한 외세의 충격이 있었으나 중앙통제가 원활하게 이루어져 비색청자가 계속 생산되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또한 강화의 갑곶리와 관청리, 행궁의 역할을 하였던 성주 혜음원, 지방의 대찰이었던 경주불국사와 남원 실상사, 대구소와 인접한 장흥의 유력층 유적 등에서 출토되고 있어 상류층을 위해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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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궁성 출토 명문·기호 청자 고찰 (A Study on Inscribed Celadons Excavated from the Goryeo Palace Site)

  • 박지영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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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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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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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고려궁성은 개성에 위치하고 있다는 유적의 특수성으로 인해 유물에 대한 단편적인 접근만이 가능하였으나, 본고에서는 고려궁성 내 전각군의 배치와 역사 기록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출토 자기들을 해석해보았다. 그중 명문 기호 자기는 유적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정보들을 제공하므로 해당 건물지의 시기와 성격, 궁궐의 운영 등을 종합적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8차에 걸쳐 진행된 고려궁성의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자기들의 전반적인 양상을 살펴보았으며, 고려궁성에서 출토된 18종의 명문 기호 청자들을 특징 시기별로 분류하였다. 본고에서는 13세기 후반으로 편년되었던 '소전(燒錢)'명 청자들을 고려궁성 발굴조사 결과와 문헌 기록에 근거하여 13세기 전반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았다. 이는 '소전'명 청자와 공반하는 기호(${\circ}$, ${\odot}$) 청자, '성(成)'명 청자의 편년, 그리고 이들 청자가 중앙건축군의 선경전(宣慶殿, 회경전) 뒤편에서 출토되었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이다. 13세기 후반에는 초제가 서부건축군의 강안전(康安殿, 대관전)에서 대부분 행해졌고, '소전'명 청자가 출토된 선경전 구역에서 초제가 거행된 것은 강화 천도(1232~1270) 직전인 13세기 전반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8차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소전'명 청자 잔을 비롯한 다수의 잔과 잔탁은 13세기 전반 선경전에서 거행된 초제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