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1949년에서 2000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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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이후 중국 여성복 변화와 디자인 특성 -20대 상하이 상해(上海)여성을 중심으로- (The Changing Dynamics of Young Shanghai Ladies' Fashion and Aesthetic Styles from 1949 to 2000)

  • 왕탁졸;이연희
    • 한국의상디자인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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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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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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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This study will focus on research and analysis covering the period of time since the creation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to current day China, with an emphasis on 20-something year-old women living in Shanghai. In conducting this research, historical evidence of fashion was derived from books, photographs, and Internet resources pertaining to the specific periods of interest. Furthermore, each set of data has been organized in approximately decade-long segments that best reflect the transformation of Chinese fashion from 1949 to 2000. As a result of the countrywide emphasis placed on revitalization of the newly created Chinese state during the period of 1949 to 1965, detail to fashion was largely ignored, in preference to the successful upstart of a working economic foundation. This neglect of fashion is evident by the scarcity of new and daring styles during this period. The following the period of 1966 to 1977 ushered in a cultural revolution that was aptly demonstrated in the changing fashion tastes. When compared with the previous period, the blandness of clothing, authorized by the Chinese government clearly reflected the rules and regulations strictly enforced by a government mandate of conformity and obedience. These orthodox changes were so drastic, that women wearing these clothes could hardly be differentiated from men in the same style wear. After Mao Ze Dong's death in 1976 and the end of the sternest period of the Chinese Revolution, a new era of Chinese culture and fashion was made possible by a more lax and tolerant government. During the later palt of the seventies through the eighties, this new governmental policy fostered more openness and self-expression, both of which led to a newfound interest in expressing one's desires and personality through the clothes he or she chose to w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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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수학교육사 (A Study on the History of Mathematics Education of China)

  • 전영주
    • 한국수학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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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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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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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중국의 수학교육을 실험시기(제1기, 1949년~1965년), 침체시기(제2기, 1966년~1976년), 수정시기(제3기, 1977년~1999년), 발전시기(제4기, 2000년 이후)로 구분하여 시기별 변천 과정을 고찰하고, 수학교육의 변천 원인 등 몇 가지 특정과 시사점을 도출하였다.

STEP-NC를 기반으로 하는 생산 시스템 (STEP based NC for Manufacturing System)

  • 김선호;김동훈
    • 한국정밀공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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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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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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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NC(Numerical Control)는 1949년 미 공군이 Parson (Fig. 1 (a))이라는 사람에게 프로펠러 (Propeller)용 블레이드(Blade)의 윤곽을 검사하기 위한 판 게이지(Gauge)(Fig. 1 b)) 개발을 의뢰한 것이 계기가 되어 발명되었다. 이후, 신시나티 미라크론(Cincinati Miracle)이라는 공작기계 업체가 NC 사업에 참여하게 되고, 1952년 최초로 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의 서보기구연구소(Servo-mechanism laboratory)에 의해 NC 공작기계가 탄생(Fig. 1 (c)) 되었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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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체개발' 최고를 향해 뛰는 사람들

  • 이용우
    • 프린팅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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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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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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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활자 종주국 국민답게 많은 사람들이 현존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을 묻는 질문에 어렵지 않게 1377년 발간된 '직지심체요절'이라고 답을 한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을 발간한 나라가 근대 인쇄의 핵심이 되는 서체를 1980년 즈음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특히나 해방 직후에도 계속해서 일본이 판매하는 활자를 그대로 쓸 만큼 인쇄 종주국 대한민국은 서체개발에 있어 후진국이었다. 하지만 2002년 현재 우리는 2000여 가지가 넘는 다양한 서체를 보유하고 있다. 20여년만에 이룩한 장족의 발전 밑바닥엔 알아주지 않지만 신념 하나로 서체 개발에 매달렸던 이들의 노력이 있었다. 1949년 공병우 박사의 3벌식 타자기부터 일본의 서체에 대항해 우리의 서체를 지켜내고 세계가 함께 쓰는 다국적어 서체를 개발해 내고 있는 글꼴 9단들과 또 다른 서체 중독자들을 길러내기 위해 교단을 누비는 이들의 힘겨운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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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와 독재의 교환에 관한 동독과 북한의 비교연구 (A Comparative Study on Welfare-Dictatorship Exchange in the East Germany and the North Korea)

  • 황규성
    • 한국사회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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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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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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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이 글은 동독과 북한에서 복지와 독재를 대상으로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맺은 교환관계를 비교한다. 시장결과에 대한 사후교정이 성격을 가지는 자본주의 복지와는 달리 사회주의에서 복지는 인민대중의 기본욕구를 사회적으로 충족한다는 목표를 두었지만 독재를 지탱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복지와 독재의 관계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복지의 성격에 따라 교환이익의 등가성이 있는 경성 교환관계와 비대칭적인 연성 교환관계로 구별된다. 동독에서 복지와 독재의 교환관계는 형성(1949~1970년대), 위기(1980년대), 해체(1989년~1990년)의 수순을 밟았다. 복지는 인민이 가지는 권리로 만들어졌고 이를 기반으로 정치적 지배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경성 교환관계가 성립했다. 경제위기가 소비재의 불충분한 공급이라는 온건한 형태를 띠고 있었고 복지수준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음에도 교환이 경성이었기 때문에 체감되는 복지수준의 후퇴는 독재의 정당성에 타격을 주었고 전면적 해체 과정을 거쳐 서독모델을 수용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북한에서 교환관계는 형성(1948~1980년대), 위기(1990년대~2000년대), 전환(2010년~) 단계를 거쳐 왔다. 동독과 달리 북한의 복지는 권리가 아니라 선물로 구성되었다. 선물로서의 복지에 입각하여 복지와 독재는 느슨하게 결합되는 연성 교환관계로 굳어졌다. 경제위기는 동독보다 훨씬 심각했지만 북한 지배세력은 인민대중의 원자적 생존투쟁을 활용하여 핵심계층과 인민대중의 분리 및 독재의 복지의존도 탈피를 내용으로 하는 이중적으로 분절적인 교환관계를 창출함으로써 '독재 중립적 복지 소멸'에 성공했다. 북한에서는 교환관계가 전환됨에 따라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복지는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천연기념물 제주 삼도 파초일엽 자생지 생육 및 관리 현황 연구 (The Study on Conservation and Management of Natural Habitat of Spleenworts on Samdo Island (Asplenium antiquum Makino), Jeju (Natural Monument No. 18))

  • 신진호;김한;이나라;손지원
    • 한국환경생태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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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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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80-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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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파초일엽 자생지는 1949년 제주도 삼도에서 최초 발견된 이후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1962년 12월 천연기념물 제18호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삼도에서만 자생하며, 해방이후 땔감, 도취 등으로 자생지가 크게 훼손되어 거의 멸실에 이르렀으나 이식, 복원을 통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상지는 2011년부터 공개제한구역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2000년대 자생지 복원 이후 약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파초일엽 생육실태 변화상에 대한 모니터링과 자생지 관리를 위해 이식, 복원의 기원 등 주요 관리이력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본 연구 결과 지정초기부터 현재까지 자생종 판별, 이식 복원 기록 등 문화재 관리이력을 확보하였고, 복원 이후 약 20년이 지난시점에서 파초일엽 생육변화상을 살펴보았다. 파초일엽 자생지 복원 이력을 살펴보면 1970-80년대에 이식된 개체들은 공식문서가 없었으며 1974년 복원 이식한 개체는 당시 일본 개체로 판단되어 자생종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파초일엽 자생종 판별 연구를 통해 유전적으로 자생종으로 판명된 개체를 증식하여 2000년 156본, 2001년 150본을 이식하고 육묘장을 2004년 조성하여 파초일엽을 증식하였다. 자생지 내 파초일엽 생육지는 2곳으로 지점 1은 석축 위에 65개체가 3단에 나누어 밀식하여 자라고 지점 2는 29개체가 2열로 자라는 형태로 조사되었다. 파초일엽이 생육하고 있는 지역의 식생은 참식나무가 우점하는 상록활엽수림지대이며, 조사지점 외 자생 파초일엽 개체는 발견하지 못하였다. 본 연구의 특기할 만한 사항은 복원 후 최초로 자연 발생한 파초일엽 치수의 분포현황을 확인한 점이다. 치수 개체는 약 300개체 이상이었으며, 이 중 밀도가 높은 지점을 중심으로 모니터링을 위한 고정조사구 3개소를 선정하였다. 모니터링 1지점의 파초일엽 치수는 23개체로 개체당 잎수는 4~17장, 길이는 0.5~20 cm이었으며, 2지점은 88개체로 개체당 잎수는 5~6장 길이는 1.3~10.4 cm이었으며, 지점 3은 22개체로 잎 수 5~9장, 잎 길이 4.5~12.1 cm로 나타났다. 파초일엽 자생지는 2011년 공개제한 지역으로 설정되었으나 낚시, 스쿠버행위 등 일부 행위가 허가됨에 따라 자생지의 훼손 발생가능성이 크므로 법의 엄격한 적용과 함께 문화재 보존을 위해 충분한 교육과 문화재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