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Summary/Keyword: 1945년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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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lysis of the Aesthetics of the Human Body Portrayed in Front Cover of Women's Magazines Prior to 1945 (1945년 이전 여성잡지 표지화에 나타난 인체미 분석)

  • Lee, Soon-Jae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lothing and Texti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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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30 no.12 s.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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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37-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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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present a concrete image of the ideal beauty as shown in era preceding 1945 that effects the shaping of our aesthetic values; by analyzing its characteristics through the covers of women's magazines of that period, this research aims to promote the understanding of beauty of the human body. The scope of my research extends throughout the collection of women's magazines stored in the National Library and the Korea Magazine Information Center. The gathered research materials are: 5 kinds of Shin-Yeo-Sung (신여성), 51 kinds Yeo-Sung(여성) and 30 kinds of Ga-Jung-Ji-Woo(가정지우). The result of the research could be summarized as the followings. Before the 1920's in response to the violent opening, there was a trend of sticking to the traditional standard. In the 1920's, the prevalent images of women were meek and fragile. Japanese standard of beauty was explicitly indicated. In the 1930s, as Western movies started to be shown to the general public, western features were idealized and furthermore intelligence was required as a further condition. In the 1940s, preparation of the war led to encouragement of images of motherhood and natural beauty, and resistant to this trend led to pseudoclassicism.

Study on the Change of Armed Conflict (무력충돌 형태 변화 연구)

  • Kim, Sung Woo
    • Convergence Security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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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18 no.5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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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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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Conflicts arise as a result of war in relation to government within the country, the status and role of the state. This paper attempts to analyze the changes in the form of war after the world war in 1945. These facts lead us to three important conclusions. First, only 18% of the wars that occurred after 1945 were national-to-national wars. Second, war will take place in all regions with certain rules in a similar fashion. The realist and neo-realist predictions were missed. Finally, the most important fact is that there was no war by the a great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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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of Biology Education in Korea During the Periord of 1880-1945 (1880-1945 년간의 한국 생물교육의 역사)

  • 김훈수
    • Animal Systematics, Evolution and D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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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10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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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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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
  • The author devided th period of 1876-1945 into three epochs ; the Opening of Ports in 1876 -before the Political Reform in 1894 , the Political Reform-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in 1910 , and the Epoch of Japanese Colony during 1910-1945. As civilization through including educational reform rised. The modern school system began to be introduced nongovernmentally and governmentally to Korea in the 1880's without any school laws. Were chronologycally established school regulation by Korea Government in 1895-1893, school laws by Korean Government under the supervision of the Japanese Residency-General of Korea in 1906-1910, and the educational laws of Korea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in 1911-1943. In these epochs, the numbers of elementary , secondary and higher educational institutions and the numbers of pupils and students had increased slowly. Japanese had developed sonwhat primary education and secondary technical education, but it had checked extremely the Korean peoples to receive secondary liberal education and higher education, On the epoch of Japanese colony, Japanese occupied nearly half of elementary school teachers, almost of public secondary school teachers educated in Japan, and nearly all of professor educated in Japan in public and national colleges which were technical, and in one imperial university . Forty or more Korean teachers taught natural history chief at private secondary schools for Koreans , more than half of them being graduates of colleges of agriculture and forestry in Korea and Japan. The author mentioned curricula , and subjects and textbooks connected with biology of elementary, secondary and higher educational institutions. The pup8ls and students received biological knowledge through learning sciences at primary schools ; natural history (plants, animals and minerals ) at secondary schools including normal schools ; botany, zoology, genetics and major subjects related with biology such as anatomy, physiology, bacteriology, pland breeding at medical colleges and colleges of agriculture and forestry. There were no departments of biology , botany or zoology in Korea. Only seven Koreas graduated from departments of biology, botany or zoology at imperial universities in Japan. Some of them played the leading parts to develop education and researches of biology in the universities after 1945 Lib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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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의 병해방제와 살균제의 효과적인 사용법

  • 이두형
    • The Bimonthly Magazine for Agrochemicals and Plant Prot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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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5 n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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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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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4
  • 우리나라에 제일 먼저 도입된 과수는 사과이며 그후 경제적인 과수원이 조성된것은 1901년이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시험연구사업이 시작된 것은 1906년부터이다. 과수병의 연구는 1910년 부터 배나무 붉은별무늬병을 비롯하여 몇가지 병에 대한 약제방제시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농약으로서의 살균제는 석회보르도액이며 1945년 이전까지 주로 과수원에서만 사용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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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standing Contemporary Interstate Rivalries: Consensus Rivalries and Rivalry Termination (숙적관계 국가들에 대한 연구 - 숙적관계 종식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들을 중심으로 -)

  • Oh, Soon-Kun
    • Strategy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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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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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2-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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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서구 근대 국제관계학의 태동은 "전쟁의 원인"을 밝혀내려고 했던 유럽 지식인들의 학문적 도전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1, 2차 세계대전의 잔혹함을 겪으면서 이들은 전쟁(특히 전쟁의 원인)에 대한 좀 더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어떻게 하면 국가들 간의 전쟁을 예방할 수 있을까에 집중해 왔다. 이러한 학문적 경향을 반영한 것이 잘 알려진 미국 미시간 대학의 "전쟁 상관성 연구 프로젝트(Correlates of War Project)"이다. 이는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비엔나체제가 시작된 1815년 이후 국가들 간 발생한 모든 전쟁 관련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하여,국제관계학자들이 전쟁(Interstate War)이나 군사분쟁(Militarized Interstate Disputes)을 정량 또는 정성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 Paul F. Diehl, William R. Thompson과 같은 학자들은 전쟁을 분석단위로 하는 전쟁의 원인(Causes of War)을 연구하는 학풍에서 벗어나, 국가들 간의 분쟁과 전쟁을 연구하기 위해 숙적관계(Rivalry)라는 새로운 분석의 단위를 제시하였다. 숙적관계는 국제관계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분쟁 또는 전쟁을 일으키는, 즉 무력분쟁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두 국가를 일컫는다. 국가들 간의 숙적관계는 학자들에 따라 Interstate Rivalry, Enduring Rivalry, Strategic Rivalry 등 다양한 정의와 성격을 갖고 있다. 이러한 국가들의 사례로는 2차대전 이전까지 프랑스-독일 관계, 2차대전 이후 중동지역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간의 관계, 냉전기 미소관계, 인도-파키스탄 및 남북한 관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렇게 널리 알려진 숙적관계 외에도 남미의 칠레-아르헨티나, 에콰도르-페루와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에티오피아 등 학자들에 따라 1815년 이후 약 200개의 숙적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숙적관계에 대한 연구는 기존의 전쟁의 원인 중심이었던 정량적 국제분쟁 연구에 두 국가의 분쟁역사를 포함시키는 정성적 연구를 접합시키고 있다. 본 연구는 1945년 이후 숙적관계 국가들의 관계종식과 관련하여, 거시론적이고 전체론적 접근방법(Macro - level Holistic Approach)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1945년 이후 발생한 국가들 간의 숙적관계 종식(Rivalry Termination)을 이해하기 위해, 거시적 관점에서 숙적관계를 발생시키게 된 역사적 원인을 살펴보고 있다. 특히 1945년 이후 숙적관계와 관련된 중요한 요인들 중에서 전쟁, 영토분쟁, 그리고 근대국가 형성에 대해 살펴보고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명제(proposition)를 제시한다. 첫째, 1945년 이후의 숙적관계 형성과 지속에는 2차대전 이후 독립국가 형성, 헌팅턴이 주장한 제3의 물결(민주화), 그리고 냉전기 미소경쟁 등의 역사적 배경이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둘째,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더하여 1945년 이후 숙적관계는 전쟁에 의해 시작된 숙적관계와 전쟁 없이 시작된 숙적관계 등 2가지로 나눌 수 있으며, 전쟁에 의해 시작되고 영토분쟁과 근대국가 형성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숙적관계가 그렇지 않은 숙적관계에 비해 오랫동안 지속되며 관계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앞서 제시된 2가지 명제들과 관련하여 본문에서는 다양한 학자들이 제시한 숙적관계 정의들에 일치하는 23개의 숙적관계(Consensus Rivalries)를 선정하여 이들에 대한 비교분석(Descriptive Analysis)을 실시하였다. 이들 사례들을 1945년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숙적관계 형성과 종식에 있어 핵심요소인 국가들 간 힘의 차이(Power Relations), 분쟁의 주요 원인(Primary Conflict Issue), 숙적관계에 있어 다른 국가들과의 연계성(Rivalry Linkage), 전쟁의 횟수와 시기 등을 통해 비교하였다. 숙적관계의 종식과 관련하여 약소국 간의 숙적관계(Minor Dyad)가 오래 지속되고, 영토분쟁(Territorial Disputes)이 숙적관계를 지속시키는 주요인이며, 다른 숙적관계와의 연계성이 적은 숙적들이 오래 지속된다는 비교분석 결과가 나왔다. 또한 전쟁의 횟수는 숙적관계 종식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시작된 숙적관계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욱 오래 지속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끝으로 2차대전 이전의 숙적관계는 대부분 전쟁을 통해 종식되었지만, 1945년 이후에는 전쟁 없이도 숙적관계가 종식된 경우가 많았음을 보여 주고 있다. 본 연구의 주목적은 "1945년 이후 형성된 숙적관계를 어떻게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규범적 논제를 통해, 23개의 주요 숙적관계를 발굴하여 거시적, 역사적 관점에서 비교분석함에 있다. 이는 특히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과 관련하여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다. 남북관계가 갖는 특수성보다는 1945년 이후 국제정치 역사속에서 발생한 숙적관계 현상이라는 일반성의 틀에서 남북관계를 이해하고자 했다. 남북관계를 베트남, 예멘, 독일 등 분단국가의 사례들과만 비교 연구하는 제한된 시각에서 벗어나, 인도-파키스탄, 그리스-터키, 에콰도르-페루 등 유사한 숙적들 간의 관계들과 비교하는 새로운 연구의 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따라서 앞으로 숙적관계 종식에 대한 더욱 다양화된 사례연구를 통해 한반도 분쟁해결에 필요한 새로운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2차대전 이후 발생한 국경을 접하고 있는 비강대국들의 평화적인 숙적관계 종식에 대한 사례연구는 남북한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본 연구는 특정한 정책적 함의를 도출하기 보다는 숙적관계와 관련된 하나의 거시적 이론를 제시하고, 주요 숙적관계 국가들에 대한 비교설명을 통해 현존하는 숙적관계 해결을 위한 하나의 분석의 틀을 제시하는 것으로 국제분쟁 연구에 기여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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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ographical Study on Microorganisms of Nuruk(Until 1945) (누룩 미생물의 문헌적 고찰 (1945년 이전을 중심으로))

  • Yu, Tae-Shick;Kim, Hyun-Soo;Hong, Jin;Ha, Hyun-Pal;Kim, Tae-Young;Yoon, In-Wha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Food Science and Nutr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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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25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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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0-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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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
  • 누룩은 생소맥을 조분쇄하여 물로 혼합시켜 자연적으로 공지중의 여러 종류의 미생물을 배양시켜 만들었다. 그러므로 누룩에서는 많은 종류의 사상균, 호모와 세균이 증식하였다. 누룩의 당화력은 원료 생소맥의 당화력과 대부분의 사상균의 당화력과 알붕의 세균성 당화력에 기인하여, 발효력은 누룩효모와 극소수의 사상균애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1945년 이전까지 누룩으로부터 12속 59종의 사상균이, 8속 29종의 효모와 4속 16종의 세균이 분리 되었다. 누룩사상균은 Aspergillus 속이 주종을 이루었고 Rhizopus속, Absidia속, Nucor속의 순으로 분포하고 있었고, Aspergillus속과 Rhizopus속은 중요한 누룩 당화균으로 작용하였다. 누룩의 대표적 효모는 Saccharomyces cerevisiae 이며 , 이균이 알코올 발효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며, Saccharomyces cerevisiae도 전통 민속주의 탁주와 약주의 발효역에 깊이관여한다고 사료된다. 누룩 중에 증식하는 세균은 양조학상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지않지만 Bacillus 속 과 젖산세균이 많이 분리되었으며, 젖산세균은 담금초기에 pH의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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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50년, 책의 사회사(1)-해방공간의 출판

  • Gang, Cheol-Ju
    • The Korean Publising Journal, Month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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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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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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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일제 36년이 강압통치를 종식시킨 1945년 8월 15일의 해방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가장 큰 선물은 '문화의 광복'이었다. 38선을 기점으로 남북이 분할되고, 남북지역 각각에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하는 바람에 주권과 영토의 회복은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었던 데 반해 문화의 광복만큼은 비교적 온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까지 이른바 해방공간은 문화에 관한 한 백가쟁명의 시대였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질서와 체계를 추스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탓에 한편으로 혼란상을 빚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마저 활기의 또다른 표현으로 해석될 만큼 문화의 광복은 대단한 활기를 띠고 진행됐다. 그리고 그것을 주도한 것이 바로 출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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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방 매장문화재의 발굴과 보존

  • 강창화
    • KOMUN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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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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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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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제주도 고고학 발달사를 크게 4기로 구분하여 보았다. 제1기는 1945년 이전 일제강점기에 유적과 유물을 단순하게 보고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시기이고 제2기는 1945년에서 1983년 기간으로 향토사가와 한국 본토의 고고$\cdot$역사학자들의 부분적인 학술조사가 있었던 시기이다. 따라서 1$\~$2기는 제주 고고학의 기본적인 틀을 잡지 못한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제3기는 1984년부터 1995년까지로 제주고고학에 있어 본격적인 발굴이 진행되지만 대부분이 긴급 발굴에 해당하고 소규모적인 발굴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와서 그 동안 발굴했던 자료와 그 이전의 발굴자료를 모아 나름대로 제주고고학의 시대 편년, 문화 변천 등의 기본적인 틀과 방향을 설정한 시기이기도 하다. 제4기는 1996년 이후 현재까지로 제주고고학의 기본적인 틀 속에서 이를 보완하고 새로운 선사문화의 단계를 설정하는 연구들이 진행 중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계기는 제주 고산리유적, 삼양동유적 등이 연차적, 계획적, 대대적으로 발굴되면서 많은 자료가 나왔기 때문이다. 또한 고고학의 범위가 선사시대에 국한되지 않고 제주목관아지, 성읍객사지, 법화사지, 존자암지, 수정사지, 고내현청터 등 역사유적의 출토자료에 대한 관심이 더욱 집중되기에 이르렀다. 제주도내 매장문화재는 발굴된 유적 대부분이 지정되어 있는 상태이다. 제주목관아지(사적 390호), 항파두리성(사적 396호), 고산리유적(사적 412호), 삼양동유적(사적 416호)로 지정되었다. 제주도 지석묘는 총 24기가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발굴했던 선사유적 중 곽지패총, 북촌리바위그늘집자리, 용담동무덤유적이 지정되어 있다. 역사유적 중 법화사지, 존자암지가 지정되었고 일부 유적지는 복원 중이다. 제주도 문화재를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강화된 새로운 문화재법의 적절한 활용, 매장문화재 발굴 전문기관 설립, 발굴된 문화재의 원상보존, 문화재 주소록 작성, 문화재 행정 전문인력의 확보, 제주문화재의 상징물 선정과 활용, 지역문화재홍보위원의 위촉과 다양한 문화유산 프로그램의 개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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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농약의 변천사 -살균제를 중심으로-

  • 이두형
    • The Bimonthly Magazine for Agrochemicals and Plant Prot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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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3 no.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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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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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2
  • 살균제가 어느 시대부터 사용되어 왔는지는 확실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농사가 시작된 오래전부터 재배된 작물을 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사용되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19세기 이전에 사용된 살균제로서는 황(黃)에 의한 훈증, 승홍(昇汞) 및 황산구리(黃酸銅)에 의한 종자소독 등 이라고 추정할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서의 확실한 기록이 없어 무엇이라 말 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의 과학적인 영농방법이 시작된 것은 1905년 이후 권업모범장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살균제의 변천과정을 1945년을 전후로 나누어 작물과 주성분에 따른 적용범위와 사용상의 문제점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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