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18세기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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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 영국의 해석적 방식의 도입과 이후 영국 수학의 발전 : 19세기 초 케임브리지 대학의 '해석학회'의 의의와 그 한계 (Introduction of Analytical Method to Britain and British Mathematical Development in Nineteenth Century)

  • 조수남
    • 한국수학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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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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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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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이 논문에서는 19세기 초에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나타났던 '해석학회'를 중심으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까지의 영국 수학계의 상황을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흔히 매우 새롭고 혁신적인 사건으로 언급되는 해석학회의 등장이 19세기 이전 영국 수학계의 꾸준한 개혁 노력들이 축적된 결과 나타날 수 있었음을 보일 것이다. 그 결과 해석학회의 역할과 의의에 대해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이후 영국에서 해석적 방식이 받아들여졌던 과정과 그 경로를 통해 새로운 해석적 방식이 당시 영국의 독특한 지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 대륙과는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던 과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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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역학의 역사

  • 양보석
    • 기계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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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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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5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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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1
  • 기계역학은 자연과학에 속하는 역학을 아버지로, 기계와 이를 탄생시킨 실제적기술(technical arts)을 어머니로 하는 두 가지의 계보를 갖는다. 극히 최근까지 과학과 기술은 전혀 별개로, 다른 계층에 의해 담당되어 왔다. 약 100수십년 전까지는 과학은 기술에 힘입은 부분이 많았다. 이들이 합쳐진 것은 겨우 19세기 초, 그리고 기계역학이 학문으로서 형태를 갖춘 것은 19세기 후반부 터이다. 동역학을 포함한 기계역학의 형성과 발전의 흐름은 시대적으로 다음의 3단계로 크게 분류된다. (1) 제1기 : 자연학의 시대(~5세기) (2) 제2기 : 역학=자연철학의 시대(16~18세기) 역학의 탄생(16세기)$\rightarrow$역학원리의 형성 (17세기)$\rightarrow$역학원리의 전개와 완성(18세기) (3) 기계역학=공학의 시대(19세기~) 공학의 탄생 (19세기 전반)$\rightarrow$체계화의 시대(19세기후반)$\rightarrow$ 방법의 시대(2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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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에서의 질량운반에 관한 기초적 연구 (A Fundamental Study on Material Transport in the Littoral)

  • 유경환
    • 한국수자원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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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수자원학회 1980년도 제22회 수공학 연구발표회 논문초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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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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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
  • 유사량 조사는 최초로 17세기 초에 이태리에서 실시하였으나 기본 이념이 과학적으로 실시되기는 18세기에 이르러 불란서에서 양적인 유사량을 측정한 것이 처음이었다. 최근에 와서 Linsley(1958)는 상류에서 하류로 유하되는 유사의 60~65%가 하천에서 침전되고 나머지는 유하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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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朝鮮王室) 태실석함(胎室石函)의 현황(現況)과 양식변천(樣式變遷) (Taesil Seokham Styles of the Joseon Royal Family)

  • 심현용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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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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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8-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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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 고는 조선시대 왕실의 태실에 유존하는 태실 석함(이하 태함)의 현황을 살펴보고, 제작연대를 바탕으로 형식을 분류하여 고고학적인 태함의 양식을 설정하고 그 편년을 시도한 것이다. 태함은 태실을 처음 조성할 때 매납하는 유물이지만 명문이 각자되지 않으므로 태함 자체만으로 연구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태실 조성 시 함께 제작하는 태지석과 아기비의 명문을 찾아 살펴보고 문헌기록을 대조하여 그 제작시기를 밝힘으로 인해 태함의 제작시기도 밝혀 낼 수 있다. 먼저, 편년의 결정적 요소는 태함을 구성하는 함개와 함신 모두임을 알 수 있었으며, 또한 태함의 변화와 양식은 크게 4단계로 구분할 수 있었다. 조선 왕실의 태함의 변화는 조선 초기에는 고려시대의 양식을 이어받아 상자형으로 만들었으나, 15세기 중 후엽에 과도기를 거쳐 15세기 후엽에 반원형 함개 원통형 함신이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16세기 후엽에는 앞 시기의 양식에서 발전하여 태함에 돌기가 부착되는 등 장식성이 가미되나, 이는 예술성보다는 기능성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반원형 함개 원통형 함신이 다시 17세기 초에 재현되며, 17세기 중엽 후부터는 함개에만 돌기가 있거나 무보주의 원추형 함개 또는 절구형의 함신 등 다양하게 나타나는 과도기의 현상이 발생한다. 그러나 다시 보주가 부착된 원추형 함개라는 새로운 양식이 18세기 전엽~18세기 중엽 초에 출현하며, 이것이 다음 시기인 18세기 중엽까지 지속되나, 함신의 감실이 일단벽호형의 방형으로 바뀐다. 계속해서 18세기 중엽에는 함개는 앞 시기의 양식을 유지하나 함신은 감실이 다시 한 면이 ㄷ모양의 열쇠구멍형으로 변화한다. 하지만, 18세기 말에 와서 다시 가장 전형적인 양식인 반원형 함개 원통형 함신의 태함이 재출현하여 태함의 양식이 이 형태가 가장 정형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19세기 중엽에는 함개가 반원형에서 상부가 편평한 장방형의 새로운 양식이 출현하여 쇠퇴기를 맞는다. 그리고 이를 다시 양식상 크게 4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조선 초에는 태함이 아직 정형화되지 않아 고려시대의 양식을 이어받았으나(I단계; 1401~15C 중엽), 15세기 후엽부터는 자체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정형화되고(II단계; 1477~1641), 시기가 지나면서 다시 일부 돌기나 보주가 부착되는 등 장식성이 가미되나(III단계; 1660~1754), 결국 18세기 말에는 정형화된 양식이 재출현하다가 조선 말기인 19세기 중엽에는 간략화되어 쇠퇴과정을 겪게 되는 것(IV단계; 1790~1874)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태함의 양식과 편년 결과는 문헌기록이 부족한 상태에서 앞으로 태실지에서 태함만 확인되더라도 그 조성시기와 주인공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20세기 초와 20세기 말의 전통한복 착용 비교 (Comparative Analysis of Traditional Korean Costume Hanbok Worn in the Early and Late 20th Century)

  • 김찬주;홍나영;유혜경;이주현
    • 대한가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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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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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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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Korea huts been dramatically changed during the last century in many aspect of society, with the introduction of western culture in the beginning of 20th century. This study aims at understanding the changes in our traditional culture shown by costume as well as examining the aspects of the changes of traditional clothing according to age, by comparing the differences of our traditional dress Hanbok between ear1y and the late of the 20th century. Analysis of photographs showing Hanbok of both ages was used. 155 photographs of people wearing traditional Hanbok in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were collected from the photo collection books portraying various living conditions of common people at that time. 748 Photographs of Hanbok worm today were obtained by taking pictures of various occasions like wedding ceremonies in 5 big cities during 1997. The process of analysis consists of 3 stages: setting standards, sorting, and grouping by positioning. The results showed that traditional Hanbok room in the early 20th century has maintained its basic silhouette and design during the century, but the methods of color coordination, ornamentation, construction have underdone many changes in detail. Consequently, traditional frame exits, but actually there are many variations of tradition produced by individual tastes and fashion trend. These changes show that continuing influx of the western culture which has made enormous social changes in Korea had an influence even on Hanb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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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항복 종가 기증 운보문단 보자기 무늬의 특징과 연대추정 (Wrapping Cloth with Cloud and Treasures Pattern Donated by the Head House of the Descendants of Lee Hangbok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Dating and Analysis of the Cloud and Treasures Pattern)

  • 황진영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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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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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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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운보문단 보자기(증9393) 유물의 전시와 안전한 보호를 위한 보존처리를 실시하였다. 이후 보존 처리한 직물 무늬의 시대를 추정하기 위하여 함께 기증 된 이항복(1556-1618)의 17세기 활동시기와 후모본(後模本) 초상화의 제작시기인 18세기의 유물과 비교하여 운보문단 보자기 무늬의 구성과 연대를 추정하였다. 운보문단의 시대 추정을 위해 시대가 확실한 유물과 비교한 내용을 확인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항복의 생몰년(1556-1618)을 기준으로 유사한 시기의 출토복식과 의궤의 표지의 무늬와 비교하였으나 운두와 꼬리크기의 비율에서 확연히 차이가 보여 이항복의 생몰년 대에 제작한 직물로는 추정되지 않다고 판단되었다. 둘째, 이항복의 호성공신과 위성공신 초상 후모본의 제작시기인 18세기 운보문단 직물 무늬와 비교한 결과 가장 유사한 1702년 『숙종인원왕후가례도감의궤』 표지의 운보문단이 확인 되었으며, 이외 1730년대까지의 의궤표지와 출토직물에서 배열, 크기, 비율 등 유사한 구성양식을 나타내고 있었다. 보자기의 정확한 용도는 확인 할 수 없었지만 함께 기증 된 후모본 초상화와 유사한 18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