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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조약의 의미와 전망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Meaning and Future of the Moon Treaty)

  • 김한택
    • 항공우주정책ㆍ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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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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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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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1979년에 제정된 '달조약'(Moon Treaty)이 5개의 우주관련조약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주개발국가들에게 외면당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이를 다루는 문헌을 찾기 힘든 점을 고려해볼 때 달조약의 국제법과 우주법상 의미를 살펴보고 이를 전망해 보는데 이 논문의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우선 달조약의 주요내용을 설명하고 특히 1967년 '우주조약'(Space Traty)과의 관계를 분석한 후 달조약에 명시된 '인류공동유산'(Common Heritage of Mankind)개념이 국제법상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를 살펴보았다. 아울러 달조약의 현재와 미래에 관하여 그리고 한국이 현재 달조약에 가입하고 있지 않은데, 달조약에 가입하는 것이 국익에 유리한가 하는 문제도 다루었다. 1979년 달조약은 1967년 우주조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1967년 우주조약의 경우에는 우주를 자유지역, 즉 공해(公海)와 같은 res extra commercium국제공역(國際公域)으로 파악하여 모든 국가가 자유롭게 탐사하고 이용할 수 있는 반면, 달조약은 우주를 '인류공동유산'으로 파악함으로써 마치 1982년 "UN해양법협약'에서 심해저 개발을 위한 국제심해저기구(International Sea-Bed Authority)가 제시되었듯이 달의 천연자원의 개발이 가능할 시기에 국제기구를 통하여 개발할 것을 예정하고 있다. 현재 국가들은 달에 관하여 그것의 천연자원이 배분문제를 다루는 국제기구를 설정할 정도로 가치있는 것인가에 관하여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다. 실제로 달개발은 거의 30여년 동안 제자리 걸음에 그치고 있는데 만일 달에서 인간 생존에 필요한 물로 전환되는 얼음과 지구에 필요한 자원이 다량 발견된다면 자원개발과 우주기지건설을 위한 국가들의 경쟁은 치열할 것이고 마치 1982년 해양법협약 이전 심해저자원 개발의 상황이 예견될 것이다. 해양법상 심해저자원과 달조약상 달과 다른 천체의 천연자원은 바로 후자의 자원이 전자의 자원보다 아직 국가들에는 접근하기에는 너무나 멀리 있고 많은 재원과 기술이 필요하므로 심해저자원개발의 접근성을 우주자원개발과 같은 선상에서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현재 COPUOS내에서 달조약을 포함한 현행 우주관련 5개 조약은 1960-70년대에 채택된 것으로서 우주탐사 및 개발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급증하는 우주의 상업적 이용추세에 비추어 그 현실성이 다소 뒤쳐지는 문제가 있다고 여러번 제기된 바 있는데, 1995년 멕시코대표가 비공식적인 협의과정에서 우주관련 5개조약의 지위검토를 법률소위원회에 의제로 포함시킬 것을 제의하여 1998년 제37차 법률 소위원회부터 정식으로 승인받아 현재까지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우주개발 수준은 세계 20위권내에 들고 있으면서 달조약에 아직 가입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보다 우주산업이 발달한 프랑스가 달조약에 서명국이 된 점을 주목해야 한다. 달의 천연자원의 개발이 가능해질 시기에 국제제도를 수립해야 한다는 규정은 국제제도의 수립 전에는 자원개발을 금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므로 달조약에 가입하고 자원개발을 추구하는 방법도 좋을 듯하다. 오히려 달조약 제 11조 7항에서 동 자원으로부터 파생하는 이익을 모든 당사국에게 공펑하게 분배하되 달의 개발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공헌한 국가의 노력은 물론 개발도상국의 이익과 필요에 대한 특별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을 고려하면 달조약에 가입하고 달개발에 착수하는 방법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한국이 조만간 세계 10위권내 우주개발국을 희망한다면 우리가 먼저 달조약에 가입한 후 다른 국가들에게 달조약의 가입을 장려하는 것도 우주법과 국제법발전에 큰 기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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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해의 상공비행에 관한 국제법 (International Law on the Flight over the High Seas)

  • 김한택
    • 항공우주정책ㆍ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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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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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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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1982년 UN해양법협약 제86조에 의하면 공해는 영해와 내수는 물론이고 접속수역, 배타적 경제수역이 아닌 수역을 의미하므로 기존의 공해였던 부분이 상당히 연안국관할권 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와 같은 공해의 상공비행과 관련된 국제법에 관한 사항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첫째, 항공기의 국적에 관하여 1944년 시카고협약 제17조에 의하면 항공기는 등록한 국가의 국적을 갖는다. 여기서 항공법이 해양법과 구별되는 측면이 있는데, 선박에는 통용되는 '편의치적'(便宜置籍 또는 편의기국, flags of convenience)이 항공기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항공기에 대한 실질적 소유와 효과적 통제가 유지된다. 둘째, UN해양법협약 제95조는 공해상 군함의 면제권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공해에 있는 군함은 기국외의 어떠한 국가의 관할권으로부터도 완전히 면제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군용항공기(또는 군용기)의 경우도 이에 준하는 면책권을 향유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셋째, UN해양법협약은 해적에 관한 정의를 제101조에 명시하고 있는데, 해적행위가 공해상의 선박에 대하여 행해 질 경우, 공해상의 선박뿐만 아니라 항공기에 의해서도 행해질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넷째, UN해양법협약 제111조는 추적권에 관하여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추적권은 군함이나 군용항공기 또는 기타 정부역무에 종사함이 명백히 표시되고 식별되며 이에 대한 권한이 부여된 선박이나 항공기에 의해서만 행사되어질수 있음을 명시하여 선박 뿐 아니라 항공기에 의해서 추적이 행사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다섯째, UN해양법협약 제110조는 임검권(right of approach)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외국선박을 공해에서 만난 군함은 일정 혐의를 가지고 있다는 합리적 근거가 있는 한 그 선박을 임검하는 것은 정당화되는데, 이러한 규정은 군용항공기에도 준용되고, 이러한 규정은 또한 정부 업무에 사용 중인 것으로 명백히 표시되어 식별이 가능하며 정당하게 권한이 부여된 그 밖의 모든 선박이나 항공기에도 적용된다. 여섯째, 1982년 UN해양법협약은 해양오염과 항공기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는데, 제212조는 대기에 의한 또는 대기를 통한 오염을 규정하고, 제222조는 대기에 의한 또는 대기를 통한 오염관련 법령집행을 규정하고 있고, UN해양법협약은 제1항에서 '투기'(dumping)에 의한 오염을 규정하고 있는데 각 조항은 자국기를 게양하고 있는 선박 또는 자국에 등록된 선박뿐만 아니라 항공기에도 적용되는 법령을 채택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곱 번째, 공해상공에서 발생한 범죄에 관하여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주관하에 1963년 도쿄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이러한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한 협약인 도쿄협약이 제정되었다. 또한 ICAO의 주관 하에 하이재킹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70년 12월 16일 헤이그협약이 체결되었으며, 사보타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ICAO에 의해서 1971년 9월 23일 몬트리올협약이 체결되었다. 도쿄협약, 헤이그협약, 몬트리올협약 모두 공해상에서 발생한 범죄에 대하여 항공기의 기국관할권(flag State jurisdiction)을 인정하고 있다. 여덟 번째, 공해상에서 연안국의 영토에 진입하지 않고 실시하는 정찰행위는 국제법 위반행위가 아니다. 이는 관련항공기의 공해상 정찰행위는 연안국 영토를 침범하지 않고 행해지는 것으로 공해상공비행의 자유가 우선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아홉 번째, 연안국에 의한 공해상 설치된 '방공식별구역'(또는 방공확인구역, Air Defence Identification Zone: ADIZ)이 국제법상 합법적인가 하는 문제가 있는데, 이에 관하여 합의된 결론은 없고, 실제로 실행국가의 국내법에 따라 규율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북극해는 얼어있는 바다가 대부분이므로 북극해의 상공비행은 공해의 상공비행과 유사하다. 20세기후반부터 아시아, 북아메리카, 유럽을 잇는 항공로가 북극을 경유하도록 고안되었는데, 매우 추운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북극 항공노선에서 사고가 발생한 경우는 없다. 그러나 최근 기후온난화로 얼음이 녹기시작하면서 북극을 이용한 선박의 해로가 개발되면서 북극에 대한 자원개방을 둘러싼 연안국가들의 관할권주장이 열기를 띠고 있으므로 배타적 경제수역(EEZ)과 같은 연안국들의 해역선포는 북극해 비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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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시대(李朝時代)의 임지제도(林地制度)에 관(關)한 연구(硏究) (A Study on the Forest Land System in the YI Dynasty)

  • 이만우
    • 한국산림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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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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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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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
  • 토지국유원칙(土地國有原則)을 표방(標榜)하고 "공사(公私) 공리(共利)"를 기본원칙(基本原則)으로 하고 있었던 고려조(高麗朝)의 시전과제도(柴田科制度)도 집권력(執權力)의 약화(弱化)로 인(因)하여 조만간(早晩間), 붕괴(崩壞)되고 말았던 것이나 임지제도(林地制度)에 있어서는 분묘설정(墳墓設定)의 자유(自由)와 개간장려(開墾奬勵)를 이용(利用)한 삼림(森林)의 광점(廣占) 및 전시과제도(田柴科制度)로 인(因)한 시지(柴地)의 수조권위양(收租權委讓)으로 유래(由來)된 사적수조권(私的洙組權)이 결부(結付)된 삼림(森林)의 사점현상등(私占現象等)이 점차(漸次) 발전(發展)하여 고려중기(高麗中期)의 국정해지기이후(國政解地期以後)에는 대부분(大部分)의 삼림(森林)이 권력층(權力層)의 사점지(私占地)로 화(化)하여 왔었다. 고려조(高麗朝)의 모든 제도(制度)를 그대로 계승(繼承)한 이조(李朝)는 건국후(建國後) 국가소용(國家所用)의 삼림확보(森林確保)를 위(爲)한 삼림수용(森林收用)의 제도확립(制度確立)이 긴요(緊要)하였음으로 전국(全國)의 삼림(森林)을 국가권력(國家權力)에 의(依)하여 공수(公收)하고 국가(國家)와 궁실소용이외(宮室所用以外)의 모든 삼림(森林)은 사점(私占)을 금(禁)한다는 "시장사점금지(柴場私占禁止)"의 제도(制度)를 법제화(法制化)하였고 도성주변(都城周邊)의 사산(四山)을 금산(禁山)으로 함과 아울러 우량(優良)한 임상(林相)의 천연림(天然林)을 택(擇)하여 전조선용재(戰漕船用材)와 궁실용재(宮室用材)의 확보(確保)를 위(爲)한 외방금산(外方禁山)으로 정(定)하고 그 금양(禁養)을 위(爲)하여 산직(山直)을 배치(配置)하였다. 그리고 연병(練兵)과 국왕(國王)의 수렵(狩獵)을 위(爲)한 강무장(講武場)과 관용시장(官用柴場), 능원부속림(陵園附屬林)의 금벌(禁伐), 금화(禁火)를 제정(制定) 등(等) 필요(必要)에 따라 수시(隨時)로 삼림(森林)을 수용(收用)하였으나 고려조이래(高麗朝以來)로 권력층(權力層)에 의(依)하여 사점(私占)되어온 삼림(森林)을 왕권(王權)으로 모두 공수(公收)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이조초기(李朝初期)에 있어서의 집권층(執權層)은 그 대부분(大部分)이 고려조(高麗朝)에서의 권력층(權力層)이었던것 임으로 그들은 이미 전조시대(前朝時代)로부터 많은 사점림(私占林)을 보유(保有)하고 있었던 것이고 따라서 그들이 권력(權力)을 장악(掌握)하고 있는 한(限) 사점림(私占林)을 공수(公收)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그들은 오히려 권력(權力)을 이용(利用)하여 사점림(私占林)을 확대(擴大)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왕자(王子)들도 묘지(墓地)를 빙자(憑藉)하여 주(主)로 도성주변(都城周邊)의 삼림(森林)을 광점(廣占)하고 있던 터에 성종(成宗)의 대(代) 이후(以後)로는 왕자신(王自身)이 금령(禁令)을 어기면서 왕자(王子)에게 삼림(森林)을 사급(賜給)하였음으로 16세기말(世紀末)에는 원도지방(遠道地方)에 까지 왕자(王子)들의 삼림사점(森林私占)이 확대(擴大)되었고 이에 편승(便乘)한 권신(權臣)들의 삼림사점(森林私占)도 전국(全國)으로 파급(波及)하였다. 임진왜란후(壬辰倭亂後)에 시작(始作)된 왕자(王子)에 대(對)한 시장절급(柴場折給)은 삼림(森林)의 상속(相續)과 매매(賣買)를 합법화(合法化)시켰고 이로 인(因)하여 봉건제하(封建制下)에서의 사유림(私有林)을 발생(發生)시키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권신(權臣)들도 합법적(合法的)으로 삼림(森林)을 사점(私占)하게 되었고 따라서 이조시대(李朝時代) 임지제도(林地制度)의 기본(基本)이었던 시장사점금지(柴場私占禁止)의 제도(制度)는 건국초(建國初)로부터 실행(實行)된 일이 없었으며 오로지 국가(國家)의 삼림수용(森林收用)을 합법화(合法化)시키는 의제(擬制)에 불과(不過)하였던 것이다. 금산(禁山)은 그 이용(利用)과 관리제도(管理制度)의 불비(不備)로 인(因)하여 산하주민(山下住民)들의 염오(厭惡)의 대상(對象)이 되었음으로 주민(住民)들의 고의적(故意的)인 금산(禁山)의 파괴(破壞)는 처음부터 심(甚)하였고 이로 인(因)하여 국가(國家)에서는 용재림확보(用材林確保)를 위(爲)한 금산(禁山)의 증설(增設)을 거듭하였으나 관리제도(管理制度)의 개선(改善)이 수반(隨伴)되지 않았음으로 금산(禁山)의 황폐(荒廢)는 더욱 증대(增大)되었다. 영조(英祖)는 정국(政局)을 안정(安定)시키기 위(爲)하여 경국대전이후(經國大典以後) 남발(濫發)된 교령(敎令)과 법령(法令)을 정비(整備)하여 속대전(續大典)을 편찬(編纂)하고 삼림법령(森林法令)을 정비(整備)하여 도성주변(都城周邊)의 금산(禁山)과 각도(各道) 금산(禁山)의 명칭대신(名稱代身) 서기(西紀) 1699년(年) 이후(以後) 개칭(改稱)하여온 봉산(封山)의 금양(禁養)을 강화(强化)시키는 한편 사양산(私養山)의 권한(權限)을 인정(認定)하는 등(等) 적극적(積極的)인 육림정책(育林政策)을 퍼려하였으나 계속적(繼續的)인 권력층(權力層)의 삼림사점광대(森林私占廣大)는 농민(農民)들로부터 삼림(森林)을 탈취(奪取)하였고 농민(農民)들 이 삼림(森林)을 상실(喪失)함으로써 국가(國家)의 육림장려등(育林奬勵策)은 효과(効果)를 나타내지 못하였던 것이다. 임진왜란후(壬辰倭亂後)의 국정해이(國定解弛)로 인(因)한 묘지광점(墓地廣占), 왕자(王子)에 대(對)한 삼림(森林)의 절급(折給) 권세층(權勢層)에 대(對)한 산림사점(森林私占)은 인허(認許)하는 입안문서(立案文書)의 발행등(發行等)으로 법전상(法典上)의 삼임사점금지조항(森林私占禁止條項)은 사문화(死文化)되었고 이조말기(李朝末期)에 있어서는 사양산(私養山)의 강탈(强奪)도 빈발(頻發)하고 있음을 볼수 있다. 이와 같이 이조시대(李朝時代)의 시장사점금지조항(柴場私占禁止條項)은 오로지 농민(農民)에게만 적용(適用)되는 규정(規定)에 불과(不過)하였고 이로 인(因)하여 농민(農民)들의 육림의욕(育林意慾)은 상실(喪失)되었으며 약탈적(掠奪的)인 삼림(森林)의 채취이용(採取利用)은은 금산(禁山), 봉산(封山) 및 사양산(私養山)을 막론(莫論)하고 황폐(荒廢)시키는 결과(結果)를 자아냈으며 권력층(權力層)의 삼림점탈(森林占奪)에 대항(對抗)한 송계(松契)의 활동(活動)으로 일부(一部) 공산(公山)이 농민(農民)의 입회지(入會地)로서 보존(保存)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不拘)하고 일제(日帝)는 이조말기(李朝末期)의 삼림(森林) 거의 무주공산(無主公山)이 었던것처럼, 이미 사문화(死文化)된 삼림사점금지조항(森林私占禁止條項)을 활용(活用)함으로써, 국가림(國有林)으로 수탈(收奪)한후(後) 식민정책(植民政策)에 이용(利用)하였던 것이나, 실제(實際)에 있어서 이조시대(李朝時代)의 삼림(森林)은 금산(禁山), 봉산(封山), 능원부속림등(陸園附屬林等)의 관금지(官禁地)와 오지름(奧地林)을 제외(除外)하고는 대부분(大部分)의 임지(林地)가 권세층(權勢層)의 사유(私有) 내지(乃至)는 사점하(私占下)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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