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후기근대

검색결과 62건 처리시간 0.026초

조선후기(朝鮮後期) 농업(農業)과 사회발전(社會發展)의 역사적(歷史的) 성격(性格) (The Development of Agriculture and Society in Late Chos$\hat{o}$n Dynasty, 1700-1870)

  • 이호철
    • Current Research on Agriculture and Life Sciences
    • /
    • 제13권
    • /
    • pp.1-7
    • /
    • 1995
  • 1700~1870년간(年間)의 조선(朝鮮)의 봉건사회(封建社會)는 그 내부적(內部的)인 모순(矛盾)에 따른 농민봉기(農民峰起) 발발(勃發) 등(等)의 심각(深刻)한 사회경제적(社會經濟的) 갈등(葛藤)을 겪고 있었다. 다른 측면(側面)에서 볼 때, 이 시기(時期)에는 농업(農業) 및 사회발전(社會發展)에 새로운 변화(變化)의 계기가 주어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변화(變化)가 반드시 근대자본주의(近代資本主義) 사회(社會)를 지향(指向)하는 것으로 단정(斷定)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不拘)하고 당시(當時) 조선(朝鮮)의 사회(社會)와 농업(農業)은 매우 열악(劣惡)한 여건(與件)에도 불구(不拘)하고 발전(發展)하고 있었으며, 특히 이는 토지생산성(土地生産性)과 인구(人口)가 지속적(持續的)으로 발전(發展)하고 있었음에서 단적(端的)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歷史的) 배경(背景)을 검토(檢討)해 볼 때, 제(第) 2차대전(次大戰) 이후(以後) 한국(韓國)의 급속(急速)한 공업화(工業化)는 이러한 조선사회(朝鮮社會)의 발전(發展)이 가져다 준 역사적(歷史的) 경험(經險)과 결코 무관(無關)할 수가 없다. 농민(農民)들의 정직(正直)한 도덕성(道德性)과 유교사상(儒敎思想)에 바탕을 둔 교육투자(敎育投資)는 확실(確實)히 인간자원(人間資源)의 축적(蓄積)에 크게 기여(寄與)했으며, 이는 결국(結局) 한국(韓國) 근대화(近代化)에 가장 중요(重要)한 영향(影響)을 미쳤기 때문이다.

  • PDF

전(前)자본주의 분배체계의 해체 - 환곡을 중심으로 1910년 강제병탄까지 - (The Dissolution of Pre-capitalistic Distributional System - From 1876 to 1910 -)

  • 윤홍식
    • 한국사회복지학
    • /
    • 제68권2호
    • /
    • pp.79-105
    • /
    • 2016
  • 본 연구는 1876년 개항을 전후한 시기부터 1910년까지의 분배체계를 검토하면서 전자본주의 사회의 분배체계를 정치와 경제의 연관성 하에서 이해하려고 했다.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지만 분배체계는 한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특성과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명제가 전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통용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경제적 변화에 조응하지 못하는 분배체계는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는 사실을 환곡이 세금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통해서 확인했다. 이를 통해 이 연구는 몇 가지 중요한 함의와 질문을 도출해 냈다. 하나는 일제강점기 이전 조선사회의 분배체계에 대한 새로운 서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른 하나는 대부분의 사회복지 문헌들에서 근대이전의 조선의 분배제도로 '계'와 '향약' 등 민간에서 이루어진 자조적 제도를 언급하지만 이는 조선사회의 분배체계, 특히 조선후기 분배체계의 특성을 적확(的確)하게 설명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제도가 진공상태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선이 자본주의 세계체계에 편입된 개항을 전후한 조선후기의 분배체계에 대한 이해 현재 한국사회의 분배체계(복지체제)를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다시 복원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PDF

로버트 스미슨의 작품에 나타난 근대 경관미학의 개념화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Artistic Development of Rogert Smithson as Means of Investigating His Conceptualization of a Modern Landscape Aesthetics)

  • 김도경
    • 한국조경학회지
    • /
    • 제24권2호
    • /
    • pp.62-73
    • /
    • 1996
  • 본 연구는 환경예술운동의 선구자격이며 가장 대표적인 작가로 평가되는 로버트 스미슨의 작품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의 경관미학의 개념화에 대하여 고찰해 보고자 하였으며 궁극적으로 본 연구가 환경예술운동이 현대 조경설계에 미친 영향에 대한 기초 연구라는데 본 논문의 의의를 찾고자 한다. 스미슨의 작품이 조경에서 다루는 경관의 여러 가지 관점을 다루었으며, la국을 중심으로 조경설계에서 공간의 시각적 표현을 시도한 몇몇 조경설계가의 작품배경 또한 환경예술로 불리어지는 일련의 작품군과 작가의 주장에 많은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조경분야에서 연구의 대상으로 활발하게 다루어지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본 연구에서는 스미슨의 경관미학의 개념화를 그의 작품을 통해 살펴보았으며, 스미슨의 작품과 조경설계와의 연관성, 그리고 현대 조경설계에 미친 스미슨의 공헌등을 조명해 보았다. 스미슨의 초기작품들은 개발로 인한 환경 및 경관의 남용 혹은 황폐화에 대한 비평적인 관점을 예술적 형태로 묘사한 반면, 후기 작품들에서는 환경 및 경관에 대한 예술적인 조작에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하고자 한 것이었다. 스미슨의 작품이 현대 조경에 미친 가장 큰 공헌은 무엇보다도 경관 및 환경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으로서 예술을 활용했다는 것일 것이다. 환경예술가들의 주장과 그들의 작품이 현대 조경설계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규명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판단된다.

  • PDF

조선후기의 기녀 복식이 사회에 미친 영향 (The Impact of Clothings of Kisaengs in the later Choson)

  • 김혜영
    • 자연과학논문집
    • /
    • 제8권2호
    • /
    • pp.289-321
    • /
    • 1996
  • 조선 후기는 임진.병자 양난을 계기로 사회전반에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근대 사회로의 전환기를 맞는다. 즉 전쟁으로 인한 국가제도의 문란과 혼란해진 사회구조 속에서 신분제도가 해이해졌고, 상업경제체제와 화폐경제의 발달로 인한 부유한 중인 계층이 대두되었고, 사상적으로는 유교가 공리공론에 빠지면서 유교윤리의 약화현상이 나타나면서 현실치중 의식을 보이는 실학사상이 등장 하였다. 또한 서민문예의 대두로 서민의식을 가진 서민계층(서민의식을 가진 양반계층 포함)이 등장하게 되었다.이 서민 계층의 등장은 복식에 있어서의 대중복식문화를 부각시키면서 유행현상이 출현되었다. 그리고 대중은 이 전환기 사회에서 변화된 그들의 역할과 가치관은 이제 더 이상 지배층에게서 영향력 행사할 충분한 권력이나 매력을 찾지 못했다. 따라서 이들은 새로운 상징적 선도자(Symbolic leaders) 즉, 모범을 보여주는 새로운 대상을 찾았고, 그들의 상징적 선도자는 바로 '자유분방하고, 사회활동을 하는 독립된 여성, 그리고 시와 가무를 즐기는 풍류가이고 또한 신체적으로 매력을 지닌 멋장이인' 기녀들 이었다. 선도자 그룹인 기녀계층에 의해 제시된 새로운 Fashion과 Style인 Erotic Mode와 사치 Mode는 그 시대 사조를 반영하면서 대중이 의식과 기호에 크게 맞아 떨어지자 큰 호응을 얻고 수용되었다. 즉 이들대중은 선도자 그룹을 모방 함으로써 그들과 자신들의 동일시를 성취하고 선도자의 Prestige를 나누어 가지고자 했던 것이다.이러한 이유로 해서 기녀들은 하류계층임에도 불구하고 조선후기 시대의 "패션의식적인"사회집단으로서 대중으로부터 주목받고 대중의 기호를 장악하며, 그들의 복식행동은 대중으로부터 강한 수용을 받게 되면서 대중의 의복 행동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유행선도자(Fashion leader)였음을 보게 된다.

  • PDF

조선후기 '님' 담론의 특성과 그 의미 : 사설시조와 잡가를 중심으로 (The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Nim' Texts in the Late Chason Period: Focused on Saseol-sijo and Chap-ga)

  • 신은경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 /
    • 제20집
    • /
    • pp.113-139
    • /
    • 2004
  • 사설시조에서는 남성화자가 여성 님에 대한 그리움과 연모의 정을 토로하는 작품들이 급증하고 이 현상은 잡가에서 극대화된다. 이런 텍스트들은 근대 이후의 시에서 '여성예찬' 혹은 '여성의 초점화'와 같은 주제가 활성화되는 내적 토대가 되며 여성에 대한 당대의 시각변화를 반영하고 있어 사설시조가 내포하는 '근대성'을 규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님'에 대한 애정을 노래한 사설시조는 애정의 성격에 따라 '상사형'과 '육정형'으로 나뉠 수 있는데 사설시조에서 특별히 부각되기 시작하는 유형은 '남성 상사형' 즉 남성화자가 여성 님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유형이다. 남성 상사형 사설시조는, 이전의 한국 시가의 전형적 패턴이 되어 온 '여성상사형' 즉 여성화자가 남성님을 향한 그리움과 연모의 정을 표현하는 유형과는 달리 ‘여성'이 발화와 가치의 중심에 놓인다는 특징을 지닌다. '상사형' 텍스트에서 '님'은 시적 화자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의 총체이자 발화의 중심이 되는데 '남성 상사형'은 곧, 남성만이 차지하던 '님'의 자리에 여성도 위치하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징표가 된다. 본고에서는 이를 '여성의 초점화'라는 용어로 포괄하여 사설시조 및 잡가를 통해 그 구체적인 양상을 살폈으며 근대 이후의 시에서 '마돈나' '그대' '당신'으로 지칭되는 여성 님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내적 토대가 된다는 것을 검토하였다.

  • PDF

여성의 지위에 따른 간호사의 위상 변화 II -중세 이후부터 근대 후기까지- (The Change of Nurse호s Status According to the Status of Women II -From the post medieval epoche to late modern epoche-)

  • 최순옥
    • 대한간호학회지
    • /
    • 제29권1호
    • /
    • pp.139-149
    • /
    • 1999
  • It is very important to establish precisely the historical phases of nursing. We nurses should try to acquire the central social position in the health management system in the near the future, the 21st Century. Therefore my treatise aims to orient the desirable phases of the history of nursing through the feministic survey of the history of nursing from the post medieval epoche to the modern epoche. During the time of the renaissance which gave morning light to the modern epoche, the antique Athenian thinking of sex was again revived. Athenian excluded the women from the public and autonomous regions. All the medical activity, once dominated by the women, was misfortunately regarded as superstition acted by witches. Accordingly, the nursing women were to hunted as witches. In short, in the early modern epoche, women began to be excluded from the history of medical activities. In the middle modern epoche characterized by the enlightenment movement and early capital economic system, capitalistic patriarchal system began to be formed by change in the economic system. The status of women began to be greatly dropped below by the social distinction of the private dimension of home and the Public dimension of job. The woman was deprived of even the occasion to get the official license of medicine and medical institutions were handed to the state or the powerful and rich merchants. Accordingly, nursing acted mainly in the nunnery as the total approach to the patients was destructed wholly and transformed into the means of earning the money. Therefore unprepared low class -women began to engage in nursing only for the money. From then on, nursing activity was tunneled through the dark age for 200 years. In the late modern epoche characterized by the contrast of the accumulated vast capital by industrialization and vast poverty of the peoples, feminism began to float over the surface for the acquisition of equality of men and women from England. A feminist, Nightingale insisted that the women as nurses should be responsible for the healthy life of man. She tried the professional nursing education for women. Accordingly she not only contributed to the intellectual progress of women but also inspired in women the consciousness of the professional job. She tried to realize the ideal of at-that-time-feminists by engaging in nursing all through life. She really paved the road to contemporary nursing. In the near the future, I will write to describe how the late modern epoche nursing has fallen into the dilemma through the 1st and 2nd world wars and matured capitalism and to consider contemporary nursing with the status of women. All these papers aim to give proper recognition of nursing and right orientation of the future 21st Century nursing.

  • PDF

'서발턴(subaltern)'의 관점에서 본 한국의 자생 신종교 사상 - 수운, 증산, 소태산의 비교를 중심으로 - (A Comparative Analysis of the New Religious Thought Generated by Indigenous Korean Religions from a Subaltern Perspective: Focusing on Choi Je-woo, Kang Il-sun, and Park Jungbin)

  • 박종천
    • 대순사상논총
    • /
    • 제37집
    • /
    • pp.141-190
    • /
    • 2021
  • 근대 한국의 자생 신종교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 증산 강일순, 소태산 박중빈 등은 모두 몰락한 양반 출신의 '잔반'(殘班)으로서, 본격적인 종교활동에 앞서 시골 서당의 훈장, 농민, 장사꾼, 술사(術士) 등의 활동을 통해 생계를 꾸려나갔으며, 상층 양반으로부터 하층 상놈으로 전락하여 주변화된 서발턴적 위상으로 인해 다양한 서발턴들의 표현할 수 없는 염원과 원한을 종교적으로 대표/재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성 질서의 질곡을 폭로하고 일탈하면서도 새로운 대안 질서를 이념으로 제시하지 않았던 조선 후기 '밀레니엄적 주변종교' 운동과는 달리, 이들은 모두 지배층의 서발턴적 규제와 억압을 전복시키고 기성질서를 대체할 수 있는 '후천개벽'의 새로운 대안적 비전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실천한 '유토피아적 대안종교'로서 탈-서발턴(post-subaltern)적 종교를 제시하였다. 이 글에서는 이들의 사상이 서발턴을 대표/재현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종교적-사회적 주체로서 탈-서발턴의 사회적 비전을 구현하는 다양한 양상을 비교하여 분석함으로써 근대 한국의 자생적 신종교가 유토피아적 대안종교 사상임을 논증하였다.

최초의 영상기구, 카메라 옵스쿠라의 문화사적 의미 (The Cultural Meanings of the first optical insturment, Camera obscura, in the pre-modern Age)

  • 이상면
    • 영상문화
    • /
    • 제16권
    • /
    • pp.131-161
    • /
    • 2010
  • 본 논문은 그동안 국내에서 연구가 미흡했던 최초의 영상기구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를 영상이론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근대문화에서 그것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르네상스 이후 카메라 옵스쿠라의 역사·문화·과학적 발전과정을 추적하고, 화가들의 미술작업과 연관되며 사용된 사례를 검토한다. 카메라 옵스쿠라의 원리는 중세이후 천문학자들의 개기일식 관찰과정에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르네상스 이후 다 빈치와 델라 포르타의 영상 실험, 아타나지우스 키르허, 요하네스 차안 등과 같은 과학자들에 의해 이론적으로 발전되었다. 17세기 후반에는 '휴대용 카메라 옵스쿠라'가 제시되고 실용화되기 시작했으며, 화가들이 스케치와 드로잉할 때 사용하기 시작했다. 카메라 옵스쿠라는 인간 스스로 세계상(世界像)을 관찰하려는 점에서 탈중세적이고 시각중심주의적인 근대 과학정신을 반영하는 매체이며, 자연세계의 모습을 인공적 이미지로 보여주는 점에서 최초의 영상기구이다. 국내에 카메라 옵스쿠라는 조선 후기 정조(正祖) 때 북경(北京)을 갔다온 연행사(燕行使)들에 의해 유입되었으며, 정약용을 비롯한 서구 학문에 개방적인 실학자들에 의해 적극 수용되었고, 당시 초상화의 대가 이명기는 카메라 옵스쿠라를 이용해서 공신상(功臣像)을 그리기도 했다.

지방 정기시장의 변화과정과 지역사회 - 장성 황룡장을 중심으로 - (Transformation of Local Community and Local Marketplace)

  • 홍성흡
    • 한국경제지리학회지
    • /
    • 제7권2호
    • /
    • pp.297-313
    • /
    • 2004
  • 이 글은 장성군 황룡장을 소재로 지방 장시의 변화과정을 구술과 기억자료에 의해 재구성한 것이다. 장시에 대한 기존연구는 대부분 역사학에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이 연구는 새로운 방법론을 검토하는 시도이다. 황룡장은 18세기 중엽에 장시가 처음 있었다는 것이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 이외에 시장 출현의 구체적 원인에 대해서 규명할 수 있는 자료는 없는 상태이다. 조선 후기경 이미 인근 6개군의 주민들이 황룡장을 찾는 장시로 성립되어 있었고, 특히 우시장으로서 성가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조선 후기를 거쳐 일제시대에 접어들어 장시가 번성하게 된 데에는 세금 징수와 1차 산품의 매집이라는 외부적 변수가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가 황룡장으로서는 전성기였고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적,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지역사회의 중심 고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해방 이후의 정치적 혼란기에는 경제적 측면에서 시장의 경제적 기능은 약화되었지만 정치적 기능은 오히려 강화되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 후 정치적 이유로 장터가 없어질 수 있는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주민들과 시장 상인들의 힘으로 이를 저지시키면서 다시 장이 활성화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근대화라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물결이 밀려 오면서 독자적인 상권을 유지하지 못한 채 광주권에 편입되어 쇄락을 길을 걷고 있는 상태이다. 특히 호남고속도로를 비롯한 각종 도로의 확충과 이농에 따른 농업의 기계화는 우시장으로서의 황룡장의 정체성이 흔들리게 되는데 결정적 타격을 입혔다. 지금은 인근에서도 규모가 작은 시골 장터로 변했고 개점휴업상태의 상설 상점들도 많은 상태이다. 앞으로 황룡장은 지역 축제 등의 이벤트성 행사라든지, 특산품의 유일한 유통 경로로 자리매김되는 등의 큰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 한 지금의 추세는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PDF

이능화의 전통사상 연구와 그 의미 (A Study on the Research of tradition thought and its implications of Lee Neung Hwa)

  • 조한석
    • 한국철학논집
    • /
    • 제52호
    • /
    • pp.185-211
    • /
    • 2017
  • 이능화는 일제강점기 한국학 연구의 선구자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의 한국학 연구 분야는 유 불 도는 물론 기독교 등 종교 분야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민속학분야에까지 걸쳐있으며, 그 영향력은 현재도 유효하다. 이 논문에서 이능화의 종교 연구 가운데 전통사상으로서 유교와 불교에 대한 그간의 연구를 정리하고 그 의미에 대하여 재평가했고, 그가 주장했던 '조선민족 고유의 종교'인 '단군신교'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마련해보았다. 다른 구한말의 개화 지식인의 경우처럼 이능화도 근대화 실패에 대한 역사적 반성에 고뇌하였고, 그 원인을 조선후기 정권과 주자학에 돌리면서 '주자만능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조선후기 주자학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역사적 반성을 시도하였다. 또한 이능화는 일제 강점기 거사불교 운동에 영향력을 미쳤던 불교인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불교계에서도 정치계의 경우처럼 친일행보를 보이며 현실적 이득과 세력을 넘보는 승려들이 더러 있었지만, 이능화는 이런 문제에 중립적 태도를 보이면서 학문적 성과를 세간에 선보이게 된다. 특히 그의 "조선불교통사"는 그의 대표적 업적으로 꼽힌다. 이능화는 조선불교를 거론하는 과정에서 조선불교의 일본 불교에 대한 독립성과 장점을 지적하면서 '민족주의적 성향'의 단초를 표출하였다. 한편 그의 조선민족의 정체성과 독립성에 대한 민족주의적 성향은 단군신교 연구를 통해서 여과 없이 표출된다. 이능화에게 있어서 건국신화와 문화적 정체성은 단순히 역사적 실증과 학문적 고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국가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성립에 대한 이념적 문제였다. 이능화의 단군신교는, 건국신화와 조선민족의 문화적 독립성과 정체성을 확보하여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대응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구축의 측면에서 재평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