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홍재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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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강압적 방법에 의한 원거리에서의 홍채 탐지 기법 (Iris Detection at a Distance by Non-volunteer Method)

  • 박권도;김동수;김정민;송영주;고석주
    • 한국정보통신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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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정보통신학회 2018년도 춘계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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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05-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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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현재 보안을 위해 상용화된 생체 인식 중 홍채 인식 기술은 개인마다 일치할 확률이 매우 적다. 그러나 현재 상용화된 홍채 인식 기술은 인식력은 뛰어나나 인식하기 위해 사용자의 능동적 협조가 필요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추세는 이러한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비강압적인 방식을 통해 사용자들의 홍채를 검출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며, 본 과제의 목적은 고성능 적외선 카메라를 사용하여 3m 거리 이내에서 비자발적 방식으로 확보한 영상에서홍채를 통해 사람을 식별하는 모듈을 개발하는 것이다. 고성능 적외선 카메라를 사용해 확보한 영상에서 이미지를 가져오고, 이 이미지를 식별하여 사람의 얼굴 및 눈의 위치를 가져온 뒤, 식별된 사람의 얼굴 및 눈의 위치를 허프 변환을 통해 홍채의 이미지를 잘라내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홍채 패턴과 대조하여 사람을 식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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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正祖)의 사대부(士大夫) 인식(認識)과 그 특징(特徵) (King Jeongjo's recognition on Neo-Confucian literati and it's historical meaning)

  • 박성순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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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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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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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정조는 척족이 특권세력으로 발호하던 영조대 후반의 탕평정치에서 아버지를 여읜 피해자였다. 노론의 거센 방해공작을 뚫고 왕위에 오른 정조의 목표는 왕권 강화였다. 정조는 탕평정책을 영조 50여년 치세의 대업적으로 칭송하고 척신과 탕평당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신하들에게 왕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국변인(國邊人)'이 되어줄 것을 요구하였다. 정조가 즉위 직후부터 설치 운영한 규장각(奎章閣)은 겉으로는 어제(御製)의 봉안 등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정조의 우군을 양성하기 위한 기구였다. 그만큼 정조가 외척들을 누르고 어떻게 사대부들을 포섭하는가 하는 문제는 정권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본고에서는 정조가 사대부들을 어떻게 굴복시키고 포섭하려 했는가라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조명하였다. 그것을 통해서 정조가 시도한 왕권강화책의 논리와 방법을 확인해 보고자 하였다. 정조는 경학(經學)의 본질은 성리학이 아니라 실생활과 절실하게 관련된 학문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사대부들의 이념적 근거를 붕괴시키고자 하였다. 정조가 사대부들의 풍기와 세도를 비판하고 그들의 학문인 주자성리학의 의미를 축소했던 것은 사대부들을 왕권에 복속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붕당론이나 성학론을 기본으로 하는 사대부들의 정치 이념과 학문적 근거를 반박함으로써 공론(公論)의 주체로서 국왕의 권위를 강조하려고 하였다. 정조가 영조의 '군사(君師)' 개념을 계승하고 왕호도 '홍재(弘齋)'에서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으로 바꾼 것은 그의 사대부 비판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했던 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