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한시의 공연예술화

검색결과 3건 처리시간 0.016초

석북 한시의 공연예술화에 대한 소고 (A Study of the Hansi Poem by Seokbuk Shin Gwang-su as Performance Art)

  • 송지원
    • 공연문화연구
    • /
    • 제33호
    • /
    • pp.9-31
    • /
    • 2016
  • 석북 신광수는 시창(詩唱) "관서악부(關西樂府)"의 작가로 잘 알려진 조선후기의 시인이다. "관서악부"는 조선시대의 음악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시창이다. 그것을 통해 신광수의 한시에 선율을 붙여 노래 불렀던 전통이 이미 조선시대에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는 조선시대의 한시가 노랫말로 사용되었던 증거의 하나이다. 석북 외에도 조선시대의 문인들은 한시를 짓고 직접 노래했다. 이 경우 노래의 소통 공간은 작자 개인의 사랑방이 된다. 그러나 석북의 작품처럼 그것이 음악인들에 의해 노래로 불려질 때, 이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음악으로 공개된다. 이 글은 이미 조선시대에 사람들의 인기를 얻었던 석북 신광수의 한시와 음악을 이 시대의 무대에서도 소통될 수 있는 음악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새로운 시도이다. 그의 한시를 일정 선율에 얹어 실제 무대를 통해 음악화한 작업의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한시의 공연예술화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기 위한 것이다. 신광수의 한시는 그 작품 수도 많지만 한시 하나하나에 그의 삶을 조망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그의 한시 작품을 통해 그의 삶에서 있었던 주요한 사건을 이야기하는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진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신광수의 음악적 삶을 조명하고 그의 한시를 공연예술화하는 방식과 그 내용에 대해 소개해 보고자 한다.

아시아의 중심, K-Musical의 역할과 가능성 (Center of Asia, The Role and Potential of K-Musical)

  • 이은혜
    •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 /
    • 제14권2호
    • /
    • pp.73-84
    • /
    • 2020
  • 한국의 뮤지컬 산업은 'K-Musical'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브랜드화 되어 급성장하고 있다. K-Musical의 성장은 단기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한류 문화 콘텐츠가 성장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 영향으로 한류의 바람이 한국의 뮤지컬에 불고 있으며 새로운 문화의 거점을 이루고 있다. 큰 성장세를 보였던 2012년 상반기에는 공연시장 상승규모 중 뮤지컬이 24% 상승되었고, 하반기에도 최소 20% 성장하여 2013년 3000억 원대에 진입하였다. 이는 신설된 뮤지컬 전용 공연장에서 좋은 성과를 이루었고 창작 뮤지컬의 성공에서 기인한 것으로 국내 뮤지컬 작품을 해외에 수출하는 기반이 되었다. 나아가 2018년 집계된 국내 뮤지컬 판매액은 2571억 원을 기록하여 전년에 비해 29%로 대폭 상승한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뮤지컬 시장을 아시아로 확대하고 아시아 뮤지컬 산업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에 K-Musical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일본과 중국의 현황을 파악 하고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본 연구를 통해 아시아의 중심으로써 한국의 뮤지컬 산업이 지속적으로 뮤지컬 산업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전략과 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의 뮤지컬 콘텐츠 산업이 아시아 뮤지컬 산업과 함께 공존하고 발전하여 한시적이 아닌 지속적인 산업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판소리 패트론으로서의 대원군과 박유전 <적벽가>의 변모 (Pansori Patronage of Daewongun and His Influences on Park Yujeon's Jeokbyeokga)

  • 유민형
    • 공연문화연구
    • /
    • 제38호
    • /
    • pp.143-191
    • /
    • 2019
  • 이 논문은 판소리의 발달 과정에 영향을 미친 역사적 요소 중 판소리의 '패트론'의 비중을 점검하고자 시도되었다. 문화예술의 향유계층인 동시에, 후원자로서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인 패트론은, 서양 예술의 역사를 분석함에 있어서는 그 존재가 적극적으로 논의되어 왔다. 여러 장르의 예술에 있어서 패트론의 영향력은 언제나 중요하게 연구되었다. 판소리의 패트론은 좌상객으로 통칭되는 양반층이었는데, 판소리가 양반층 사이에 애호되면서 왕실 패트론도 생겨나게 된다. 흥선 대원군은 판소리 애호가로 유명했으며, 또한 판소리 명창의 패트론으로서 후원했다. 대원군은 통인청대사습을 통해 판소리를 후원함과 동시에, 판소리의 선발 과정에 개입함으로써 패트론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리고 운현궁을 중심으로 활동한 가객 안민영과 함께 판소리 명창으로 박유전을 후원하였다. 대원군이 아직 세도를 잡기 전 전주에서 머무를 때 전주의 토호였던 백진석에게 도움을 받았다. 대원군은 세도를 잡게 되면서 전주에 통인청대사습 운용에 관여 하였고, 백진석의 청을 들어서 전주에 판소리 감상용의 저택인 학인당(學忍堂)을 지을 수 있게 하였다. 대원군이 특히 후원했던 판소리 명창으로 박유전을 들 수 있다. 박유전은 대원군의 운현궁에서 좌상객들의 영향아래, 자신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판소리의 텍스트와 음악을 변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박유전은 순창출신의 명창으로 서편제의 비조로 불렸고, <심청가>와 <적벽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제자로는 이날치를 들 수 있고 초기 박유전의 소리는 이날치를 통하여 서편제로 전승되었다. 박유전이 한양으로 와서 운현궁에 머무르게 되면서 그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소리는 창곡과 사설에서 많은 변화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박유전의 판소리는 이원성을 띠게 된다. 대원군은 박유전 판소리의 변화과정에서 크게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박유전이 운현궁에서 다듬어 정제화한 판소리가 이른 바 강산제이다. 박유전이 한양으로 오기 전의 소리인 서편제와, 한양에서 다듬어 새롭게 완성한 강산제와는 완전히 구별될 수 있을 정도로 음악, 사설, 그리고 이념적 기반에서 차별화되어 있다. 그 변화의 모습을 동편제 및 서편제 <적벽가>와 강산제 <적벽가>의 비교분석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강산제 <적벽가>는 사상적으로는 유교적인 이데올로기를 일관적으로 띠게 되며, 조조에 대한 야유와 비하의 수위가 동·서편제 적벽가에 비하여 훨씬 약화되어 있다. <삼국지연의>에서 장수들의 전투장면을 사설에 재인용하여 포함시킨 부분과, 한시의 적극적인 인용을 늘린 것 또한 양반좌상객의 취향에 부합하여 변화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