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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경제사회적 여건을 고려한 황폐산림복구 기본방향 연구 (A Study on the Basic Directions for Forest Rehabilitation Programs Considering to Economic and Social Conditions of North Korea)

  • 박경석;이성연;박소영
    • 한국산림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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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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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3-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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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북한의 황폐산림 양상을 살펴보면 시기별 북한 내 정치 사회 경제적인 여건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변화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일반주민들에 의한 생존형 산림훼손은 1990년대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수년에 걸친 자연재해로 인해 경제난이 심각해지고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체제가 붕괴되면서 가속화되었다. 계획경제 체제에서의 배급제가 붕괴되면서 주민들은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산지를 무분별하게 개간하였고, 땔감을 확보하기 위해 나무를 남벌하였다. 국가 기관들도 외화를 획득하기 위해 수출용 목재 벌채량을 늘리면서 북한 산림은 빠른 속도로 황폐화 되었다. 산림황폐화로 인한 피해가 확대되면서 북한은 결국 산림복구를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는 한편 국제사회에 산림복구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남한 민간단체도 조림용 묘목생산의 기반인 양묘장 건설을 위주로 하는 물적 지원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앞으로의 북한 산림복구 지원은 현재와 같은 단순한 물적 지원을 벗어나 1970년대 남한의 치산녹화 성공 경험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북한의 경제사회적 여건을 고려한 황폐산림복구 기본방향을 설정하고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2000년 이후 북한의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체제가 붕괴된 이후 조성되고 있는 지방, 기업, 노동자간 다양한 이해관계를 고려한 산림복구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두 번째, 장기간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되는 산림복구 사업의 특성상 산림복구 현장에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여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도를 높이도록 해야 한다. 세 번째, 산림복구 사업과 병행하여 농산촌 종합개발 사업을 연계하여 주민들의 산림의존도를 낮춰가는 것이 필요하다. 네 번째, 기존의 북한 산림관리 시스템을 활용하여 단기간 대규모 집중 조림에 필요한 노동력과 행정력을 확보하는 한편, 산림복구 이후의 산림관리를 체계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시스템의 개선도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21세기 바람직한 정부조직과 정부조직법 (The Government Organization Act and the Desirable Government Structure in the 21st Century)

  • 성낙인
    • 법제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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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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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1-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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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첫째, 정부조직은 그 출발에서부터 국가형태 정부형태와 연계되어 논의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정부조직 법정주의와 비법정주의의 조화가 필요하다. 우리의 정부조직 법정주의에서 정부조직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새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새 정부가 요구하는 정부조직을 의회는 가급적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이를 통해서 정부조직 법정주의의 경직성을 완화시켜 주어야 한다. 하지만 새 정부의 정부조직이 지나치게 많은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자칫 헌법이 추구하는 정부조직 법정주의의 본질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 그런 점에서 새 정부의 지나치게 자의적인 정부조직 변경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 어떤 경우에도 정부조직은 장기적 안정성을 담보해야 한다. 둘째, 행정각부가 아닌 일반적인 행정기관은 국무총리의 통할을 받지 아니하고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해서는 아니 된다. 헌법이 대통령${\rightarrow}$국무총리${\rightarrow}$행정각부의 하이라키를 형성해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rightarrow}$집행기관을 설치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위헌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대통령실에는 대통령비서실과 특수한 임무를 가진 기구의 설치에 한정되어야 하며, 대통령실에 일반행정기관을 편의적으로 설치하는 것은 현행헌법의 정신에 어긋난다. 셋째, 국무총리실은 명실상부한 내치의 중심축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국가의 나아갈 방향을 그리는 큰 정치에 전념해야 한다면, 국무총리실을 중심으로 한 내각은 국가의 일상적인 업무를 총괄해야 한다. 넷째, 집행기관의 두 축은 총리실과 행정각부가 된다. 잦은 행정각부의 명칭 변경에 따른 혼란을 수습하고 아울러 전통적인 행정 각부의 명칭과 권위를 복원시키고, 국가의 정통성을 회복시켜야 한다. 한국적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서는 민주법치국가의 공고화를 위한 제도적 설계가 필요하다. 또한 공안부처와 경제부처도 시대적 현실에 부응한 개혁의 필요성이 높다. 또한 시대변화에 순응하는 기술과 정책의 융합을 합리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평화통일국민협약' 추진의 법제도적 과제 (Legal Issues and Tasks for the Establishment of National Contract for Peace and Unification)

  • 최철영
    • 법제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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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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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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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한국 사회의 내적 신뢰위기, 특히 한반도정책에 있어 남한의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국민 사이에 존재하는 남남갈등은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한반도 평화통일정책의 추진력을 크게 약화시켜 왔다. 한반도의 새롭고 대담한 평화를 위한 남북관계의 대전환기에 지속가능한 평화통일정책의 추진기반으로서 국민적 합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 국민 모두의 안위와 미래에 직결되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문제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협의체제로서 통일국민협약이 요구되어 왔다. 평화통일국민협약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평화와 통일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의 형성을 넘어 구체화된 한반도정책의 원칙과 방향 그리고 실천적 과제에 대하여 각 참여주체가 합의하고 합의된 협약에 대하여 준(準) 입법적 구속력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비공식적 법규범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평화통일국민협약은 개념적 측면에서 과정과 결과 모두를 포함하는 '국민의 합의'로서 한반도평화번영과 통일의 '합의된 방향과 원칙'을 담고 있는 협약이며, '목표달성의 장기성과 참여주체의 개방성'을 특징으로 한다. 법적인 측면에서는 비공식적 법규범으로서 종전선언 전후에 추진되어야 할 관련 국내법제의 종합적 정비와 국제법적 합의의 정당성 근거를 제공하여야 한다. 또한 '국민의 법'으로서 평화통일국민협약의 법적 성격은 '정치적 강령'이나 사회적 합의의 차원을 넘어 합의의 내용이 관련 법제의 제정이나 개정의 법원(source of law)으로서 의미를 갖으며 조직화된 시민사회의 평가를 통해 협약으로부터의 이탈이 억제되고 구속력이 담보되어야 한다. 동시에 국민협약은 그 자체는 법규범이 아니지만 국민협약의 이행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독립적 행정조직에 의하여 이행되는 연성법(soft law) 규범으로서 역할을 하여야 한다. 평화통일국민협약의 성립과 이행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협약에 참여하는 국민적 대표의 범위결정과 협약추진 절차 그리고 협약의 추진과 협약체결 이후 이행을 위한 기구의 설립과 조직구성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 정부의 독립행정위원회 조직으로 '(가칭)평화통일협약국민회의'의 설치와 '(가칭)평화통일협약국민회의법'을 통한 평화통일국민협약 추진법제의 입법이 요구된다.

'낭자(娘子)농악'과 '소녀(少女)농악'을 통해본 여성 농악예인의 활동 (Nong-ak Artist's Activities seen from the perspective of "Maiden's (娘子) Nong-ak" and 'Girls' (少女) Nong-ak")

  • 박혜영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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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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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9-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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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낭자군(娘子軍')과 더불어 '여성농악'이 탄생했다. 본고에서는 남성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던 농악의 주체로서 여성이 등장한 내력, 특히 국극단 출신 여성농악예인의 출현이 주목된다. 이 연구에서는 낭자농악대와 소녀농악대의 활동 내력에 대하여, 새로이 발굴한 기사자료들을 전면에 제시하고 실증적으로 다루었다. 본고에 소개하는 '여성 농악예인'들은 기존에 알려진 남원여성농악단 성립 이전의 여성 농악인들과, 그 이후의 세대들을 아우른다. 여성 특유의 매력을 발산하며 인기를 누린 예인들은 각종 농악경연에 참가하고 포장걸립을 전전했다. 여성농악인들은 우도농악 명인들로부터 전수를 받아 기량을 갖추고, 화려한 복색으로 이목을 끌었다. 농악계의 여성들은 특히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여 활동무대를 넓히고, 다양한 장르와 융합하면서 융통성과 순발력을 발휘했다. 여성 농악인들은 세대와 성별, 지역과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했다. 소녀부터 기혼녀에 이르기까지 팀원으로 편성될 수 있었고, 때로는 어린 소년들을 영입하거나, 원로 남성농악인들과 연대하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지역을 넘어, 국내외의 무대를 누비면서, 해외 순방에도 박차를 가했다. 특히 어린 소녀농악인들은 한국문화의 상품성을 선보이고, '순결한 농악예술무대'를 장식하는 문화적 매개자로 동원되기도 했다. 이들은 스스로의 활동에 대한 실리와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거나, 정치적 선동을 할 수 없는 '천사 같이 춤추는 예쁜 인형'이나 다름없었고, 그 후원자는 국내외 정계 인사들이었다. 여성농악인들은 국내외 전반에 걸쳐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농악의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 해외로 파견된 소녀들의 농악공연이 대개 어린이들이나 학생들 위주였던 반면, 국내에서 기성세대와 연합하여 공연활동을 하던 소녀들은 그저 농악이 좋아서 여성농악단에 입단하여 기예를 습득하고, 공연하며 실전 경험을 쌓으면서 스스로 입지를 다져갔다. 해방 이후 낭자농악, 소녀농악이라는 이름을 걸고 농악의 무대화를 선도한 여성예인들은 대중적 인지도를 얻어 농악의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 사당패, 협률사, 낭자농악대, 소녀농악대, 여성농악단 등 한 세기를 풍미한 여성 농악예인들은, 농악판에 팽배하던 '남존여비(男尊女卑)'의 관습을 뒤틀고 농악문화의 새 전통을 일군 주인공들이다.

송대(宋代) 『선화화보(宣和畵譜)』를 통해 본 화론미학(畵論美學) (A Study of painting theory Aesthetics of "Xuanhehuapu")

  • 장완석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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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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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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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중국 역사에 있어서 송(宋)는 금(金)이라고 하는 강대한 북방 이민족의 압력 하에서도 사회 경제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큰 발전을 이룩한 시기이다. 송대는 전대의 문벌세족 장원경제가 철저히 와해되고 새로운 문인사대부가 대두되던 시기였다. 경제적으로는 조선, 야금, 방직, 염색, 인쇄 제지, 자기, 제염 등과 같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수공업이 상당히 발전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상업의 번성과 도시의 발전, 남북지역 간의 교류로 발전을 이루었다. 상업의 번영과 도시의 발전은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데, 저자거리에서 유행하는 민간문학인 "화본(話本)"소설의 등장이라든지, 문인 사대부들의 사(詞)를 비롯하여 회화에 있어서는 문인화라는 새로운 장르가 대두된 시기이다. 또한 철학적으로는 리학(理學)이라는 새로운 신유학(新儒學)이 사회적으로 깊게 퍼져 나아가던 시대였다. 또한 송대 이래로 중국미학은 유 불 도(儒佛道) 3가(三家)가 합류되는 추세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는 물론 회화 및 화론미학에서도 두드러진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즉 유학(儒學)이 주도하는 유불도 사상의 합류는 이론가들이 회화이론체계 내지는 그림을 평론하는 화평(畵評)이나 화감(畵鑑)을 구성하는 데 중요한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 "선화화보(宣和畵譜)"는 송대(宋代) 휘종(徽宗)의 명에 따라 선화(宣和)2년(1120년)에 편찬된 중요한 회화이론 저작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 책의 중요한 의의나 그 가운데에 포함된 풍부하고도 복잡한 미학사상을 보지 못하여, 이로 인해 "선화화보"를 매우 낮게 평가하거나 심지어는 부정하기까지 했다. 휘종이 주제하던 화원(畵院)에서 회화는 어떤 면에서 있어서 휘종의 심미적 요구와 일치하는 풍격(風格)이나 기교, 법도로써 표현하기를 요구 받았지만, 이는 결코 다양한 소재나 스타일의 발전을 완전히 배척하였던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것의 발전을 촉진하고자 힘썼다. 이는 송대 회화 스타일, 유파의 다양성에서 분명히 보여주고 있으며, 그 이전 시대를 훨씬 능가하고 있다. "선화화보"는 풍부하고 다양한 미학사상을 내포하고 있으며, 일부 학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 간단하거나 협소하지 않다. 이 책은 유가(儒家), 특히 리학(理學)과 도가(道家) 중, 특히 장자(莊子)의 미학사상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이를 종합하여 "주역"을 통해 발현되고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측면에서 "선화화보"의 미학사상을 분석해 볼 것이다. 첫째, 서화 "동체"(서화동체(書畵同體))사상. 둘째, 회화의 "감계현우(鑑戒賢愚)"의 정치 교육적 작용과 순수예술의 가치와의 관계(시와 회화의 통일). 셋째, "예(藝)"와 "도(道)"의 통일. 넷째, "선화화보"는 중국 고대회화사에 있어서 가장 완전한 회화 분류학(分類學)을 세웠다. 다섯째, 회화평론의 방법에 있어서, "시대의 선후에 따라" "회화의 부문별로 그림을 나누고, 그림에 따라 사람을 분류하고, 사람에 따라 시대를 논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복지국가 트릴레마 양상의 변화 - 퍼지셋 이상형 분석의 적용 - (Revisiting the trilemma of modern welfare states - Application of the fuzzy-set ideal type analysis -)

  • 신동면;최영준
    • 한국사회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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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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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9-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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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이 논문에서는 복지국가 트릴레마 개념이 최근 복지국가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개념인가를 검토한다. 이를 위하여 퍼지셋 이상형 분석(fuzzy-set ideal type analysis)을 활용하여 1980년대부터 2010년까지 서비스경제에서 복지국가가 소득 평등, 고용 증대, 건전 재정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어떻게 달성하고 있는지를 분석하였다. 지난 30여 년 동안 복지국가의 성과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복지국가 트릴레마 -세 가지 목표 중에서 두 가지만을 선택하여 달성하고 나머지 한 가지는 희생시키는 상황가 서비스경제에서 복지국가가 추구하는 목표와 성과를 설명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단지, '자유주의 모형'에 속하는 국가들의 경우 소득 평등을 희생하고 고용 증가와 재정 건전성의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트릴레마 개념이 설득력을 지녔다. 그러나 보수주의 복지체제에 속하는 국가들은 고용 확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에 더하여 1980년대 초반까지 양호한 성과를 기록하였던 소득 평등과 재정 건전성 문제가 악화되며 다양하게 분화하고 있다. 보수주의 복지체제에 속하는 대표적 국가인 독일은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파견직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고용이 증가하여 '자유주의 모형'으로 근접해 갔고, 프랑스는 소득 평등, 고용 증가, 건전 재정의 세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하지 못하는 '위기 모형'으로 근접해 가며 최근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과 같은 모형으로 분류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모형'에 속한 복지국가들은 2000년대에 들어와 재정 건전성을 달성하면서, 세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하는 '완전 모형'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리고 세 가지 목표들 중에서 어느 한 가지만을 달성하고 나머지 두 개의 목표를 희생하는 복지국가들, 이 연구에서 '고용형 모형', '평등형 모형', '재정 건전형 모형'에 속한 국가들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Iversen & Wren이 서비스경제에서 복지국가들이 트릴레마 상황에 처해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복지국가 트릴레마는 서비스경제에서 복지국가의 목표와 분배정치의 결과를 설명하는 데 더 이상 적절한 개념이 될 수 없다.

범진과 사마광의 악(樂)·율(律) 논쟁 (A Debate of Fan-Jin(范鎭) and Sima-Guang(司馬光) about Le(樂) and Lu(律))

  • 주용성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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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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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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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제왕의 정치에서 악(樂)은 중요하다. 북송 시대에도 악은 중요했다. 북송의 태조부터 악에 대한 제정 작업이 이루어진다. 5대 10국이란 혼란기를 겪은 탓인지 몰라도 북송시대에 악에 대한 개정 작업이 6번 이루어진다. 그 당시 인종시기부터 철종시기까지 악에 대한 연구를 했던 인물이 바로 범진이다. 그는 인종 때부터 악에 대한 상서를 올리고, 철종 때는 자신이 만든 악기 및 음악을 올리기까지 한다. 한편 범진과 더불어 악 율에 대해 논쟁했던 인물이 사마광이다. 둘 사이의 논쟁은 30여 년이 지속된다. 논쟁은 끝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 범진은 도량형의 기준을 율(律)로 두며, 율의 기준을 황종(黃鍾)으로 본다. 반면에 사마광은 율의 기준을 도량형으로 본다. 범진은 당시에 통용되던 누서법(累黍法)과는 다른 적서법(積黍法)을 주장한다. 사마광은 당시에 통용되던 누서법을 주장하나 그것이 선왕(先王)의 법도는 아니라고 본다. 범진의 적서법은 기존의 도량형 기준을 정하는 방법과 다르다. 하지만, 그의 방법을 통해 얻은 도량형은 당시에 통용되던 제도들과 합치한다. 범진은 자신의 방법이야말로 올바른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 방법을 통해서 선왕의 악을 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범진은 또한 당시 남아 있던 문물들이 선왕시대의 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적서법을 통해 황종을 구하고, 황종을 통해 율을 구하고, 율을 통해서 악을 만들면, 선왕의 법도를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에 사마광은 선왕의 도량형은 모두 없어졌다고 여기며, 선왕의 악 또한 없어졌다고 여긴다. 선왕의 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중화(中和)를 얻는 것 밖에 없다. 그가 보기에 범진의 방법은 이미 틀린 것이다. 사마광은 틀린 방법으로 악을 구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는 범진의 방법으로는 그 당시의 악도 이룰 수 없는데, 선왕의 악은 더욱 찾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또한 범진은 중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천자이며, 일반 사람들은 할 수 없다고 보는 반면, 사마광은 중화를 모든 사람 및 만물이 해야 하며 또한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논쟁의 핵심은 율과 중화다. 범진은 율을 악의 근본으로 보지만 사마광은 중화를 악의 근본으로 본다. 율은 유형의 법칙이고, 중화는 무형의 법칙이다. 둘 사이의 논쟁은 비록 일치점을 보지 못한 채 끝났지만, 유형과 무형의 법칙만들기의 대립이라는 측면에서, 당시 학자들의 견해차를 엿볼 수 있다. 아울러 이 논쟁을 통해서 북송 시대에 사마광을 중심으로 하는 중화 논의의 시작점도 짐작해 볼 수 있다.

내단도교 남·북종의 단법 비교 -장백단과 왕중양을 중심으로 - (A Comparative Study on the Method of Internal Alchemy in Southern and Northern Schools of Taoism - Centering on Zhang Bo-duan and Wang Chung-yang)

  • 김경수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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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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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7-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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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도교는 처음부터 매우 정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내단 도교는 여러파가 있었지만 남종과 북종이 대표적이다. 남종은 북송 때에 장백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북종은 금나라의 지배 아래서 왕중양에 의해 창립되었다. 남종은 교단을 만들지 않았으나 북종은 처음부터 교단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도교는 근본적으로 장생불사를 추구한다. 내단 도교는 내단으로만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고자 독특한 수련법을 만들었다. 남종의 수련법은 치밀한 논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반하여 북종의 수련법은 그 논리가 다소 부족하다. 남종은 육체적 수련으로부터 정신적 수련을 거쳐 궁극적 목적을 이루는 방법을 취했다. 반면에 북종은 정신적 수련으로부터 육체적 수련을 거쳐 목적을 이루는 방법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북종의 수련법은 순수한 내단법이라고 보기 어려운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또한 그 수련에서 고행의 과정을 강요하고 있는 것도 남종과는 다른 방법이다. 이러한 차이점들은 그들이 유교와 불교를 이해하는 관점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남종은 유교와 선불교를 수련의 첫 단계와 두 번째 단계로 포섭하는 이론을 만들어, 삼교가 마침내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에 반해서 북종은 세 종교가 처음부터 하나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남종은 개인적 수련이 일차적인 목적이고, 북종은 민중의 구제에 근본 목적을 두었다. 이것은 남종과 북종의 주요 인물들의 수명으로 알 수 있다. 남종의 인물들이 대단한 장수를 누렸으나 북종 인물들은 장수를 누렸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엄밀하고 장기간의 수련이 필요한 남종은 그맥이 단절되었고, 북종은 거대한 조직을 형성하여 이후 중국 도교의 중심이 되었다. 남종이 북종으로 흡수되었다.

『의례』와 선진 제자서의 상례 비교 (The Comparison between "the Book of Etiquette and Ceremonial" and the Hundred Schools of the Contents about Funeral Rites)

  • 윤무학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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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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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5-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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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 글은 "의례"에 보이는 상례 관련 내용을 선진 제자서의 내용과 비교한 것이다. 고대 상례에 관련된 가장 직접적이고 체계적인 문헌은 "의례"이다. 이것은 내용상에서 "좌씨전", "묵자", "순자" 등의 선진 제자서에 반영된 것도 있고 반면에 상호 어긋나는 내용도 있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이유는 고대의 "의례"를 비롯한 예경(禮經)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일부 내용이 이미제자서에 반영되기도 하고, 반대로 제자서의 내용이 후대 유가에 의해 예경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의례" 상복 편의 기본 내용은 선진 제자서에 대체로 반영되어 있고 공통적인 내용이 많다. 대표적으로 부모와 군주를 위한 삼년상은 유가에서 공통적으로 선양한 것이다. 비록 묵가에서 유가의 후장구상(厚葬久喪)에 대해 반대하지만, "의례"의 상복제도는 적어도 춘추시기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보편적 인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의례"와 제자서에 반영된 내용에서 공통적으로 복상(服喪) 대상이 성인인가의 여부에 따라 상복에 차이를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선진 제자서에 반영된 상례 관련 내용은 "의례"의 규정과 다른 주장도 많다. 특히 제자서에 반영된 부모를 위한 상복은 "의례"의 규정과는 달리 사회적 지위의 다름에 따라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부모와 군주를 위한 상복제도와는 달리 아내와 첩을 위한 제도는 "의례"의 규정과 다른 내용이 많이 보인다. 현행본 "의례" "상복" 편에 나열된 규정은 복상 주체와 대상의 신분에 따라 상복과 상기를 달리하기 때문에 당시에는 물론 역사적으로도 엄밀하게 시행되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친친"의 부자관계에 기초해서 자식을 위한 상례는 비교적 분명하고, 군주와 부모를 위한 상례는 명확히 규정되고 강조된 반면에 신하와 아내를 위한 상례는 규정이 없거나 모호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삼강"(三綱)이라는 용어가 한대(漢代) 정치윤리 이념을 반영한 동중서(董仲舒)의 "춘추번로"(春秋繁露)에 처음 보이는 것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이미 "의례"에 반영된 것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성리학(性理學)과 산수화(山水畵)의 발전에 관한 연구 - 송대를 중심으로 - (Research of the Neo-Confucianism and the development of Landscape painting in Song Dynasty)

  • 장완석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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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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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9-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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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성리학과 문화예술이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데에서 출발하며, 특히 송대에 흥성한 산수화의 발전에 이론적 근거가 되었음을 연구하였다. 성리학은 고대 동양사회의 정치, 경제, 사상, 문화 예술 심지어 생활에 전반에 걸쳐 근간을 이루어 왔던 유학의 새로운 경향이다. 성리학은 중국의 북송(北宋)대 다섯 학자인 주돈이, 소옹, 장재, 정호, 정이가 그 기틀을 새우고 남송(南宋)의 주희가 집대성한 학문이다. 중국의 원(元)나라를 통해 고려후기에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조선의 건국의 기틀이 되었고, 퇴계 이황, 율곡 이이를 거쳐 '문화 전반'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게 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성리학과 예술론과 관계하여 격물치지, '리', 우주의식, '생의', '기상', '예'와 '도'의 관계 등이 산수화와 산수화론을 통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연구하였다. 산수화나 화조화에서도 신유학에서 말하는 천지의 '생의'의 미와 '어진 사람은 만물과 더불어 하나'라는 사상을 화폭에 표현하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시와 회화의 통일을 주장하였다. 동양에서는 송대 이전부터도 시와 회화의 관계를 중시했지만, 송에 이르러 시와 회화의 통일을 이루게 된다. 예를 들어, 명나라 때 조성된 졸정원(拙政園)과 같은 강남 정원 문화는 송대 산수화로부터 기인했다. 산수에서 등장하는 산속의 작은 정자나 가옥들이 정원에 옮겨진 것이다. 이는 곽희가 "임천고치"에서 말한 "가볼 수 있고, 바라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닐 수 있고, 살 수 있는 곳"을 화폭 속에 그려야 한다는 것이 명 청대에 이르러서는 현실로 옮겨진 것이다. 또한 현대에 있어서는 환경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지속적인 연구는 앞으로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디자인 발전 연구, 더 나아가 문화산업의 기초자료로서 복합학문, 학제간 교류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