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초기철기시대

검색결과 20건 처리시간 0.025초

선사시대의 우리나라 건축

  • 장경호
    • 건축사
    • /
    • 8호통권221호
    • /
    • pp.66-71
    • /
    • 1987
  • 우리나라에서 선사시대라고 하면 대체로 구석기 신석기시대를 비롯하여 청동기와 초기철기시대를 포함한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그 시대의 건축을 논함에 있어서는 통틀어 원시시대의의 건축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 PDF

초기철기시대 청동기의 제작기술 - 충주 호암동유적과 부여 청송리유적 출토 청동기의 비교 연구- (Bronze Production Technology in the Early Iron Age: A comparative study of bronze artifacts recovered from the Hoam-dong site in Chungju and Chongsong-ri in Buyeo)

  • 한우림;황진주;김소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51권4호
    • /
    • pp.224-233
    • /
    • 2018
  • 충주 호암동유적 및 부여 청송리유적 출토 청동기 33점의 분석을 통해 초기철기시대 청동기의 제작기술과 납의 산지를 연구하였다. 휴대용X선형광분석기를 이용한 비파괴 성분분석 결과 출토된 청동기 33점은 인위적으로 납을 첨가한 구리(Cu), 주석(Sn), 납(Pb)의 3원계 합금으로 판단된다. 4점의 청동기(동경 2점, 동검 1점, 동모 1점)의 전자탐침미소분석기를 이용한 성분분석 결과 충주 및 부여 출토 동경은 30%의 주석(Sn)과 10% 미만의 납이 포함된 고주석청동기로 확인되었으며 동모와 동검에서는 20% 내외의 주석과 5%의 납(Pb)이 검출되었다. 미량원소로는 철(Fe), 아연(Zn), 비소(As), 은(Ag), 니켈(Ni), 황(S) 및 코발트(Co)가 검출되었다 청동기 4점은 기능적인 면을 고려하여 합금되었으며 주석함량이 높아 주조 이후 열처리는 하지 않았다. 열이온화질량분석기를 이용한 충주와 부여 출토 청동기의 납동위원소비 분석을 통해 초기철기시대 청동기 33점은 Zone 1을 제외한 한반도 남부 전 지역에 걸쳐 분포함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충주와 부여에서 출토된 청동기는 경상도 지역의 납 원료를 사용하지 않고 한반도 내 다양한 산지의 납 원료를 사용했음을 판단하였다. 출토지가 달라 제작기술과 원료산지의 차이점이 존재할 것이라 추정하였으나 분석결과를 통해 이 시기의 청동기의 제작기술은 일반화되어 있었으며,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산지의 원료를 이용하여 청동기를 제작하였음을 추정하였다.

경주 지역 지석묘 문화의 특징과 종말기의 양상 (The Characteristics of Dolmen Culture and Related Patterns during the End Phase in the Gyeongju Region)

  • 이수홍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53권4호
    • /
    • pp.216-233
    • /
    • 2020
  • 경주 지역 청동기시대 무덤 문화를 검토하고 지석묘의 종말기 양상을 살펴보았다. 청동기시대 무덤 유적 18곳, 초기 철기시대 이른 시기 즉 종말기의 무덤 유적 9곳을 분석하였다. 경주는 검단리 문화 분포권에 포함된다. 현재까지 경주 지역에서 청동기시대 무덤은 약 120기 조사되었다. 주거지의 수에 비해 무덤의 수가 부족한 편인데, 검단리 문화권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무덤의 수는 부족해도 매장주제부의 구조는 다양하다. 경주 지역 청동기시대 무덤의 특징은 토광묘와 묘역식지석묘·적석제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축조된다는 점이다. 토광묘는 동산리유적 부장품인 방추차를 통해서 볼 때 북한 동북 지역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묘역식지석묘와 적석제단은 송국리 문화권에 주로 분포하는데, 특이하게도 검단리 문화권인 경주 지역에서 많이 확인된다. 초기철기시대가 되어도 청동기시대의 영향이 이어진 묘역식지석묘와 적석제단이 계속 축조된다. 새롭게 이주한 점토대토기 문화인들은 목관묘를 축조하였다. 초기철기시대가 되면 새로운 고소의례가 등장하는데 국읍(國邑)에서 주재하는 천신제사(天神祭祀)의 장소일 가능성이 있다. 화천리 산251-1유적과 죽동리유적은 고소의례의 양상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이러한 고소의례에도 묘역식 지석묘와 동일한 형태의 적석제단이 축조되고 지석묘의 상석과 유사한 바윗돌이 이용되었다. 초기철기시대에도 청동기 시대 전통을 유지한 묘역식지석묘와 적석제단이 계속 축조, 이용되는 것은 새로운 시대가 되었어도 지석묘가 가진 권위가 계속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청동기시대로 알려진 묘역식지석묘나 적석제단 일부에서는 초기철기시대까지 의례 행위가 지속되었을 것이다. 기원전 2세기 후반이 되면 목관묘가 군집하기 시작한다. 철기 문화가 확산하고, 중국 중원의 유물이 유입되는 등 경주 지역을 비롯한 남부 지역이 동아시아 네트워크에 포함되는 시점이다. 이때 지석묘 문화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제주지역 유적에 대한 고고지자기학적 연구 (Archaeomagnetic Study on Archaeological Sites in Jeju Region)

  • 성형미
    • 보존과학회지
    • /
    • 제33권3호
    • /
    • pp.181-188
    • /
    • 2017
  • 제주지역 8군데 유적의 소토를 동반하는 다양한 유구로부터 16점의 귀중한 고고지자기 측정데이터를 구할 수 있었다. 서력기원전 시기의 데이터 12점과 서력기원후 시기 데이터 4점을 통해 고고지자기학적인 연구를 진행하였다. 먼저 서력기원전 시기는 고고지자기 데이터의 차이를 통해 A, B, C의 3개의 그룹으로 나눌 수 있었는데 국내의 다른 지역에서 축적된 데이터와의 비교 검토 및 고고학적 편년을 참고하여 A그룹(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rightarrow}$B그룹(원형점토대토기가 출토하는 초기철기시대)${\rightarrow}$C그룹(삼각형점토대토기가 출토하는 초기철기시대)의 선후관계를 설정할 수 있었으며, 즉 A가 가장 빠른 시기의 데이터 그룹이고 C가 가장 늦은 시기의 데이터 그룹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서력기원후 시기의 데이터를 통해 고고유적에 대한 고고지자기 연대를 결정할 수 있었다. 제주지역 유적에 대한 고고지자기 연대측정을 통해 서력기원전 시기에 대해서는 유적들의 상대적인 선후관계를 결정하였고 서력기원후 시기에 대해서는 유구들의 절대연대를 부여할 수 있었는데, 제주지역 편년연구에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상주 공검지 일대의 고대 이후 고기후 변화와 농경활동 (Paleoclimate changes and agriculture activitiessince ancient times around Gonggeomji, Sangju-si, Gyeongsangbuk-do, South Korea)

  • 윤순옥;안은정;김효선;황상일
    • 한국지형학회지
    • /
    • 제20권4호
    • /
    • pp.147-163
    • /
    • 2013
  • 상주 동천 상류부 산간분지의 출구에 위치하는 공검지는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공검지 제방이 축조되기 이전에는 분지에 넓은 습지가 형성되었으며, 갈수기에는 공기 중에 노출되면서 대단히 치밀한 실트층이 퇴적되었다. 청동기시대 초기와 초기철기시대의 분지에는 주로 밭에 기장을 재배하였다. 삼국시대에는 논농사와 밭농사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퇴적층이 발견되지 않았다. 제방이 축조되면서 분지 내 밭에는 기장을 재배하며 논농사를 병행하였을 것이다. 공검지 일대의 청동기시대 초기기후는 냉량하였고 초기철기시대 동안의 기후는 대체로 온난하였다. 제방이 축조된 통일신라시대 말기부터 고려시대 중기까지도 역시 온난하였으나, 이후 냉량, 온난한 시기를 반복하다가 고려시대 말부터 점차 냉량해진다.

조선시대 이전의 식생 간섭사 (Vegetation Disturbance of Korea during the Pre-Chosun Dynasty Period)

  • 공우석
    • 한국제4기학회지
    • /
    • 제14권1호
    • /
    • pp.33-48
    • /
    • 2000
  • 한반도에서 구석기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자연식생 간섭사를 시공간적 관점에서 복원하였다. 자연식생 간섭은 신석기시대에 본격화되었으며, 간섭은 초기에 저지와 해안에서 이루어졌으나, 후기에는 내륙으로 확산되었다. 청동기시대에는 밭의 개간이 활발해지고, 특정 수종에 대한 선택적 이용에 따른 간섭이 있었다. 철기시대에는 밭농사를 위한 개간이 한반도 전역에서 이루어져 자연식생의 파괴가 계속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별채, 목재 가공, 철제 농기구 사용, 가축에 의한 땅 갈기 등이 도입되면서 경작지 확대를 위한 자연식생의 간섭이 계속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개간이 장려되면서 다락밭이 조성되고, 땔감, 조선, 광업, 목판 인쇄, 개간 등으로 자연식생의 간섭이 심각해졌다. 자연식생 간섭을 가져온 주된 요인은 농경 및 벌채와 관련된 인간의 활동이었고, 그 외 일상생활과 산업에서도 산림 식생의 간섭은 발생했다. 신석기시대 전기의 괭이농사, 후기의 보습농사, 청동기시대의 가축에 의한 보습농사, 철기시대의 농기구를 이용한 농사와 삼림 벌채 등으로 농경에 의한 자연식생의 간섭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고구려의 밭농사, 백제의 논농사와 밭농사, 신라의 밭농사, 통일신라 때 밭의 확대 개간, 고려 때 개간 장려에 따라 다락밭이 확산되면서 전국에서 산림 훼손 피해가 심하였다 벌채는 신석기시대 초기부터 본격화되어 후기에는 섬이나 내륙으로 확산되었다. 밭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벌채는 계속되었고,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에는 목공구가 발달하면서 자연식생의 제거가 쉬워졌다. 고구려의 밭농사, 백제의 앞선 목재 가공 기술, 신라와 가야의 광물 생산, 목재 가공, 개간에 따라 식생 파괴가 심했다. 고려 때에는 연료와 개간으로 나무가 벌채되었고, 대신 산에 소나무 등을 심으면서 마을 주변에서 소나무 숲 경관이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자연식생 간섭을 가져온 기타 활동으로는 구석기 전기의 석기와 불, 신석기시대의 정착생활과 관련된 활동, 청동기시대의 제련, 철기시대 철제 생활용구 제작, 고조선의 온돌난방, 삼국시대의 아궁이·굴뚝을 갖춘 온돌방, 신라의 많은 숯 사용, 고려의 선박 건조, 전란, 목판 인쇄, 연료, 경제작물 재배, 전면적인 온돌난방 보급 등이 있다.

  • PDF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 유적 일대의 지형 발달과 고환경 분석 (Geomorphological Development and Paleoenvironment around Sinsong-ri, Gobuk-myeon, Seosan-si, South Korea)

  • 황상일;김효선;윤순옥
    • 한국제4기학회지
    • /
    • 제24권2호
    • /
    • pp.23-34
    • /
    • 2010
  •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 일대의 지형면을 분류하여 지형면의 특징과 지형발달을 규명하였다. 또한 트렌치 1, 2, 3지점의 토양층 퇴적상을 파악하고 유기질층에 대해 화분분석을 행하였다. 지형면은 구릉지, 곡저평야, 선상지 및 하안단구로 구분된다. 연구지역은 대부분 낮은 구릉지가 중심이 되고, 소규모 하곡에는 곡저평야가 하류부 간석지와 연결된다. 또한 산록에는 선상지가 분포하며, 곡저평야와 구릉지 사이를 흐르는 소정천을 따라 하안단구가 하류쪽으로 길고 폭넓게 나타난다. 구릉지 주변에는 최종빙기동안 낮아진 해수면에 대응하여 깊은 하곡이 형성되었고, 홀로세에 곡저평야가 퇴적되었다. 퇴적층에서는 조립의 기저역층과 상대적으로 두꺼운 청동기 문화층, 그리고 상부의 얇은 초기철기시대 퇴적층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청동기시대에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구릉지를 벌채하면서, 초기철기시대에 비하여 토지이용이 집약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 PDF

점토대토기의 실연대 -세형동검문화의 성립과 철기의 출현연대- (The Calendar Date of Pottery with Ring-Rim -Appearance Date of the Slim Bronze Dagger Culture and Ironware-)

  • 이창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43권3호
    • /
    • pp.48-101
    • /
    • 2010
  • 이 논문은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 서반부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있어서 금속기의 생산과 유통이 활발했던 시기의 실연대를 $^{14}C$연대측정을 통해 추정한 글이다. 이 시기의 일상용기였던 점토대토기의 실연대를 구축하여, 토기와 금속기의 고고학적 출토양상을 통해 세형동검문화의 성립과 철기의 출현연대를 밝히고자 하였다. 연구사를 통해 점토대토기 기원전 300년 상한설이 학계의 대세임을 알 수 있는데, 이는 현재에도 계속해서 지지되고 있다. 이것은 세형동검문화의 성립연대와 초기철기시대의 개시연대와도 연동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세형동검문화와 원형점토대토기문화의 성립을 동일시하는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 연구자도 있으며, 목탄의 $^{14}C$연대를 통해 점토대토기의 출현시기를 올려 보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연구사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필자가 직접 조사를 통해 채취 처리한 시료를 중심으로 $^{14}C$연대측정을 실시,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점토대토기의 실연대를 구축하였는데, 그 시료는 약 100점에 달한다. 원형점토대토기는 기원전 6세기에 출현했을 가능성이 높고, 삼각형점토대토기는 기원전 300년 전후에 출현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철기는 원형점토대토기의 가장 늦은 단계에 출현하기 때문에 그 출현연대를 기원전 4세기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실제로 철기와 원형점토대토기가 공반된 유적의 $^{14}C$연대와도 정합적이었다. 이를 통해 기원전 4세기 초~중엽일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초기 철기가 출토된 유적보다 확실히 이전 단계에 해당되는 초창기의 세형동검문화는 기원전 5세기 후반으로 파악하였다. 이렇게 파악된 실연대는 야요이토기와의 병행관계 및 $^{14}C$연대와도 정합적이며, 고고학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가능성 높은 연대라고 할 수 있다. $^{14}C$연대를 통한 한일 공통의 편년이 처음으로 구축된 것이다. 새로이 구축된 점토대토기의 실연대에 의하면, 현재 학계의 일반적인 시대구분과는 맞지 않기 때문에, 연대의 조정을 통해 새로운 수정안을 제시하였다. 철기의 출현시기(기원전 4세기 초~중엽)부터 초기 철기시대로 하여, 청동기시대는 원형점토대토기 단계의 상당 부분과 세형동검문화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를 청동기시대 후기로 설정하여, 송국리식을 중기로 하는 안을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