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3대 명필로 지칭될 만큼 독자적 서풍을 창안한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1770~1845)은 '법고(法古)'를 중시하였는데, 한위대(漢魏代) 서예를 근본으로 하고, 동국진체(東國眞體)를 완성한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를 마음의 스승으로 삼아 수련하였다. 만년에는 올바른 필법 전수를 위해 『창암서결(蒼巖書訣)』을 저술하여 보편적 서예의 기본원리와 자신의 서예관을 피력하였다. 창암(蒼巖)이 지향하는 서체는 해서(楷書) 근골(筋骨)의 확립을 통한 초서(草書)로 완결된다. 이를 위해 한위(漢魏)의 서체를 전범(典範)으로 제안하였는데, 온후간원(穩厚簡遠)한 한위근골(漢魏筋骨)은 무위자연적(無爲自然的) 무법(無法)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로 보아 창암(蒼巖) 서예론의 핵심이자 궁극적 지향점은 '자연(自然)'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법의 극치에 이르러 다시 무법(無法)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여기에서 음양(陰陽)이 생성되고 형(形)·세(勢)·기(氣)가 부드러움을 도모하면 기괴(奇怪)함이 생겨난다고 보았던 것이다. 한편, 고법(古法)에 얽매이지 않고 우졸(愚拙)한 자연천성(自然天成)을 발현하면 장법과 포치가 일운무적(逸韻無跡)한 득필천연(得筆天然)을 이룬다고 강조하였다. 우리는 이 연구에서 그의 서체가 자연을 예술로 승화하면서, 조선 고유의 서예미를 끊임없이 접목·시도하였음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하여 근골이 풍부하고 생명력과 역동감이 넘치는 형세를 이룬 일운무적(逸韻無跡)을 체화(體化)하였고, 득필천연(得筆天然)한 극공(極工)의 심미경지를 이루어 독창적인 '행운유수체(行雲流水體)'로 구현하였고 마침내 호남지방에 동국진체(東國眞體)의 서풍과 서예정신을 더욱 창달시켰다.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1770~1845)은 조선 후기 3대 명필로 일컬어지며, '행운유수체(行雲流水體)'라는 독자적 서체를 창안하고, 호남지방에 동국진체(東國眞體)의 서풍을 계승·창달시킨 대서백(大書伯)이다. 그는 '서여기인(書如其人)'적(的) 인품고(人品高)와 사고법(師古法)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통령(通靈)의 경지를 추구하였다. 저서 『창암서결(蒼巖書訣)』를 통해 기본적으로 한위(漢魏) 해서를 숙련하여 근골이 확립되면 행서와 초서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서(書)는 무릇 '자연'에서 비롯되었음을 자각하고, 법천귀진(法天貴眞) 정신을 통하여 유법(有法)의 단계, 나아가 무법이법(無法而法)의 통령(通靈)의 경지를 발현하였다. 또한, 노장(老莊)의 '우(愚)'의 철학과 거기에 근간한 '졸박미(拙樸美)'를 추구하여 신묘함을 얻을 수 있다는 심미관을 드러내었다. 이는 자연천성을 드러나게 하는 순자연(順自然)의 철학이자, 무지무욕(無知無欲)의 상태에서 자신의 진우(眞愚)를 지키는 미학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미추(美醜)와 선악(善惡)을 불분(不分)한 순자연적(順自然的)인 우졸미(愚拙美)를 지면에 발현하였다. 한편, 창암(蒼巖)은 모든 필법에 력(力)을 통하여 천연미와 생명미를 도모하였고, 력(力)을 적절히 운용하여 힘 있게 밀고 나가는 한대(漢代)의 추전(推展)이라는 용필법을 제시하였다. 특히 『창암서정운시(蒼巖書停雲詩)』에서 일운무적(逸韻無跡)한 필의는 음양대대(陰陽對待)의 조화를 이루면서 신체비동(神體飛動)한 생명력과 기괴적(奇怪的) 역동감이 넘친다. 또한, 포역함세(抱力含勢)의 추전미(推展美)가 위이불범(違而不犯)하여 득필천연(得筆天然)의 심미경지를 이루었으니, 창암(蒼巖)이 "해동제일(海東第一) 초서(草書)의 거장(巨匠)"이라는 진면목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사유(思惟)와 지향(志向)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동안 창암(蒼巖)에 대한 연구는 서론과 작품의 형태미를 중점적으로 논의하였을 뿐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사유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창암의 작품은 이광사(李匡師)의 서풍을 계승하면서 복고주의적 성향이 매우 강해서 같은 시기 활동하던 북학파의 영향이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본고에서는 창암의 이러한 서풍을 '복고적 성향'이라고 명명하고, 그의 이러한 복고적 사유가 학서(學書) 과정과 작품에 나타난 구체적 양상을 살펴보았다. 창암은 진적(眞跡) 친필(親筆)자료들을 중시하면서 행초서(行草書)를 즐겨 썼다. 그러나 학서 과정에서 항상 필력을 강조하여 한위(漢魏)의 글씨에 근본을 두었고, 행초서를 쓰더라도 반드시 해서(楷書)를 먼저 익혀 그 필력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창암은 평생 동안 왕희지(王羲之) 서풍의 소해(小楷)로 된 작품들을 많이 남겼는데, 이는 조선후기 동국진체(東國眞體)의 서가들이 왕희지의 해서, 특히 소해를 전범으로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경향은 마음의 스승인 이광사의 영향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창암은 또한 왕희지의 법첩(法帖) 글씨에 부족한 필세를 보완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흔적들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다른 서가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는 먼저 서예이론에 있어서는 한위(漢魏)의 고법(古法)을 중시하여 채옹(蔡邕)과 종요(鍾繇)를 근본으로 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대해(大楷)에 있어서는 <구루비(??碑)>의 필세가 가미된 <예학명(?鶴銘)>과 위(魏) 무제(武帝)의 글씨, 안진경(顔眞卿)의 <대당중흥송(大唐中興頌)>과 김생(金生) 글씨 등을 끊임없이 연마하였다. 특히, <구루비>와 <예학명>의 필의(筆意)를 이용한 그의 말년 작품은 기본적으로 해서인 <예학명>의 자형(字形)에 <구루비>의 구불구불한 형세(形勢)를 취해 자신의 독특한 서풍을 보여주는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이 논문은 최근에 공개된 "원교진적"에 대한 소개와 서예비평적 고찰이다. "원교진적"은 한말의 실학자이자 문인이었던 석정 이정직(1841-1910)이 원교 이광사(1705-1777)의 글씨에 대하여 비평해 놓은 것이다. 먼저 석정 이정직의 서예 활동과 함께 그의 글씨가 동국진체와 맺고 있는 관련성에 대하여 탐색해 보았다. 석정이 동국진체의 흐름에 서 있는 지에 대해서는 이 분야 전문가들의 몫으로 남아 있지만, 본고에서는 "원교진적(圓嶠眞跡)"과 "송하진적(松下眞跡)", 그리고 "창암서첩(蒼巖書帖)"을 통해서 그가 동국진체를 접하고 있었고, 한편으로 그것의 영향권에 있었던 것으로 보았다. 이번에 공개된 "원교진적"은 원교가 부령으로 유배된 다음 해인 1756년 6월을 전후로 지었던 18수의 한시 작품을 초서로 쓴 필첩이다. 여기에는 원교가 함경도 부령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그리움과 절망감으로 점철된 그의 내면이 담겨 있다. "원교진적"은 석정이 원교의 글씨에 대하여 앞뒤로 비평적 제발을 덧붙인 자료라는 데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석정은 "원교진적"의 제발을 통해 서예사적 맥락을 염두에 두고 원교의 글씨에 대하여 비평을 하였다. 석정은 원교가 왕희지 이전의 글씨에 모범을 두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도, 석정은 원교가 우리나라의 풍기에 갇혀 조화(造化)하지 못한 한계를 보인다고 보았다. 석정의 이 언급은 원교의 글씨가 외면상으로 굳세지만 최고의 예술적 경지로서 '진숙'을 넘어서는 '조화'의 경지에 들어서지 못했다는 평가로 보인다. 그동안 연구자들은 석정의 서예 비평이 주로 중국 작가들에 대해서 이뤄졌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석정이 직접 비평을 하였던 "송하진적"이나 "창암서첩"과 함께 이번에 "원교진적"이란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면서 그가 우리나라 동국진체의 작가들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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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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