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주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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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zzy 기반의 태양 추적기 설계 (Design of Solar tracking system based on Fuzzy Controller)

  • 김관형;전재환;강성인;오암석;조현철
    • 한국정보통신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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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해양정보통신학회 2011년도 춘계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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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77-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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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태양광 시스템의 활용에 있어서 태양전지를 활용한 시스템의 구성은 태양에너지를 흡수하기 위하여 계절별 및 실시간으로 태양의 움직임을 추적 해 주는 시스템을 필요로 하며,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태양전지(태양열 판넬)의 방향을 안정적으로 제어하여 가장 효율이 높은 상태인 태양광과 수직으로 유지해 주는 시스템이 필요로 하고 있다. 본 논문은 계절 별 및 하루의 태양의 경로를 추적하여 태양광을 항상 수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집광판(광전변환:PV(Photovoltic))의 방향을 태양의 위치 좌표에 따라 정확한 위치로 제어하는 Fuzzy 알고리즘 기반의 2축 제어시스템을 설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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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기의 포백척에 관한 연구(上) - 조선왕조실록을 중심으로 - (A Study on Pobeckchuck in the Former Period of Chosun Dynasty(First) - Focusing on the True Record of Chosun Dynasty -)

  • 이은경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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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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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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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The measurement in ruling period of King Sejong in Chosun Dynasty remained unchanged compared with that of Goyeo Dynasty. But Hwangjongchuck, the basis of measurement was amended in the 7th year in ruling period of King Sejong, Juchuck, Youngchochuck, Cholegichuck in the 12th, and Pobeckchuck in the 13th. The record of Pobeckchuck first appeared in the true record of Chosun Dynasty in the 4th year in ruling period of Sejong, and first record on the amendment of the Pobeckchuck was found in the 13th year in his ruling period. The presentation of the comparison of Pobeckchuck with Cholegichuck in volume 128 of true record of Sejong makes help the estimation of the length of Pobeckchuck. To calculate one Chuck of Pobeckchuck with this measurement comes to 44.75cm in present measurement, and the length at this time had remained unchanged to Yeonsangun period. Important fact which was newly found in the true record of Chosun Dynasty was that Pobeckchuck had been used for diverse purposes. Pobeckchuck was used to measure width, length and thickness in manufacturing wardrobe. and also to measure cloth decorating wardrobe. This is the first record(4th year of reign of Sejong) showing that Pobeckchuck was first used to measure cloth in Chosun Dynasty The record shows that Pobeckchuck was also used to measure the length of circumference of castle for its construction. to measure distances between people, the length of hook of wooden handle, and the height of man.

조선의 8척 규표(Gnomon) 복원

  • 양홍진;김상혁;이용삼;안영숙
    • 천문학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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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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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7.2-1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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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규표(圭表)는 남중하는 해의 그림자를 측정해 일 년의 길이와 절기를 알아내기 위한 관측 기기이다. 규표에 대한 우리 역사 기록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8척과 40척 크기의 규표를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종대에 간의대 서쪽에 설치한 40척 규표에 대해서는 그 구조와 크기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8척 규표에 대해서는 명종대의 관측 사실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8척 규표에 관한 국내 외 문헌과 중국에 남아 있는 유물을 조사하여 조선의 8척 규표 모델을 새롭게 복원하였다. 복원한 8척 규표는 주척(周尺, 1척=20.7cm)을 기준으로 규 21척, 표 8척의 크기이다. 오석으로 만든 규면에는 16척 길이의 눈금을 1분(2.07cm) 단위로 새겨놓았다. 청동으로 만든 표의 꼭대기에는 그림자를 명확히 나타내기 위해 길이 2척, 지름 1.2cm의 횡량(橫樑)을 설치하였다. 또한 횡량의 그림자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규면에 설치할 영부(影符)도 함께 연구 복원하였다. 규면에 새겨진 못(池)과 물홈(水渠)의 모양은 한국과 중국의 천문유물에 남아 있는 여러 자료와 구조적 기능을 고려해 결정하였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복원된 규표는 8척 규표에 대한 문헌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40척 규표의 구조를 축소해서 만들어왔다. 이번에 복원한 조선의 8척 규표는 40척 규표의 축소 모형이 아닌 새로운 모델을 연구하여 제작한 것으로 한국천문연구원 앞뜰 간의 서편에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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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의대 복원을 위한 외형 연구 및 복원 모델 제시

  • 이민수;전준혁;김상혁;이용삼
    • 천문학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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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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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3.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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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세종대 간의대(簡儀臺)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대규모로 수행된 천문 관련 국책사업의 일환으로 축조된 조선시대의 국립천문대이다. 지금까지 세종대 간의대에 대한 선행 연구는 주로 궁내 위치 및 변화, 개보수 상황 및 중수 여부, 규모와 관련한 주척(周尺) 또는 영조척(營造尺)에 대한 논의 등에 천착하고 있으나 간의대의 외형, 구조, 기능, 역할 등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편이다. 이 중 간의대의 외형에 대한 선행 연구들에서는 원대(元代) 북경 사천대(北京 司天臺, 1279년 전후 축조) 또는 명대(明代) 북경 관성대(北京 觀星臺, 1442년 축조, 現 古觀象臺) 등을 간의대의 원형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간의대 복원을 위하여 외형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였으며, 이를 위하여 1997년 소더비(Sotheby) 경매 출품본 "경복궁도(景福宮圖)"를 비롯한 각종 경복궁 궁궐도(宮闕圖)를 분석하였다. 또한 구조와 축조 방식의 규명을 위하여 제단(祭壇) 등의 각종 석축물(石築物)을 분석하였으며, 이와 함께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각종 사료(史料)에 대한 조사를 병행하였다. 이와 같은 연구를 통하여 원대 북경 사천대 또는 명대 북경 관성대와는 다른 세종대 간의대의 독자적인 모델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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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행궁도(溫泉行宮圖)>(1795)의 온양행궁지 추정 및 온양행궁 변천 고찰 (A Study on the Transitions and Site of temporary palace(Onyanghaenggung) according to the <Oncheonhaenggungdo>(1795))

  • 이정수;김일환;이경미;지원구;최재성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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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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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4-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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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온양행궁(溫陽行宮)은 <온궁영괴대(溫宮靈槐臺)>, 『온궁사실(溫宮事實)』<온천행궁도(溫泉行宮圖)>, 『영괴대기(靈槐臺記))』 등 문헌기록과 영괴대(靈槐臺)와 신정비(神井碑) 등 온행 유적 등을 통해 왕의 온행을 확인가능한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현재 온양행궁지로 추정되는 곳은 온양관광호텔이 입지하고 있어, 온양행궁 복원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그 정체성마저 위협받고 있다.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 훼손 이전 『온궁사실』<온천행궁도>(1795)에 나타나는 온양행궁의 위치를 추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첫째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온행관련 기록을 고찰하고, 둘째 조선시대 온양행궁의 건축물 변화 및 일제강점기 훼손과정 등을 정리한 후, 셋째 <온천행궁도> 및 읍지, 고지도 그리고 지적원도 등을 현재 온양관광호텔 및 주변 지역 변화와 비교분석하여 온양행궁의 위치를 추정하였다. 이상의 연구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온양군읍지」 및 「호서읍지」의 1,758척을 주척(周尺)으로 환산하면, 온양행궁의 범위는 지적원도(1914년)의 대(垈)로 표현된 부지 내측 둘레와 근접하고 있다. 둘째, 지적원도의 온양관 남측 잡(雜)으로부터 온천천으로 나가는 물길, <온천분포견취도(溫泉分布見取圖)>(1925, 1928)의 온천공, 그리고 <온천행궁도>의 내동문(內東門), 비각(碑閣), 신정(神井), 답도 등의 관계를 종합하면, 헤르만 산더(Hermann Gustav Theodor Sander, 1906) 및 한국저작권위원회 온양온천 사진의 건축물을 『온궁사실』<온천행궁도>의 온천(溫泉) 즉, 탕실(湯室)로 추정할 수 있다. 셋째, 경남철도회사가 온양행궁지 유원화(遊園化) 과정에서 관유재산인 영괴대 부지의 양도 및 이전(1927)을 요청하나 충청남도는 국유 영괴대기념비 및 영괴대를 괴수(회나무)를 함께 현 위치에 영구보존(1928) 하도록 한 기록과 <조선경남철도연선명소교통도회(朝鮮京南鐵道沿線名所交通図絵)>(1929)를 참고하면, 영괴대비각(靈槐臺碑閣)은 현 위치로 판단되며 신정비는 신정관(神井館) 전면으로 이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온양행궁 둘레범위, 『온궁사실』<온천행궁도>의 온천(溫泉) 즉, 탕실(湯室) 및 영괴대 위치 등을 기초로, 일제강점기 및 근대기 필지변화, 그리고 최근 주변 유구 등의 자료를 종합하면, <온천행궁도> 온양행궁지의 범위 및 주요 건축물 위치는 현재의 시민로 및 온양온천시장까지 확대하여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