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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공사의 공공윤리 실천전망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Prospect of Implementing a Public Common Practice of Ethics Based upon the Reordering Works of Heaven and Earth)

  • 김용환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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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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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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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연구는 '천지공사(天地公事)'의 공공윤리 실천전망에 관한 연구를 목적으로 한다. 천지공사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서로 이어지고 매개하는 공공작용을 통해 공공윤리 실천전망을 보여준다. 천지공사는 삼계 통래(通來)로 대순진리를 관철시키는 공사이다. 본 연구방법으로 천지공사가 소개된 문헌을 면밀히 분석하는 문헌연구와 공공윤리 전망을 모색하는 해석학적 기제를 함께 사용한다. 이는 공과 사를 이어주고 매개하는 '공사공매' 지표, 공공행복 추구의 '행복공창' 지표, 개체를 살려 공적 가치를 드러내는 '활사개공' 지표의 기제이다. 공공윤리 지표는 물질과 영혼, 초월과 내재, 성과 속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는 능동성으로 말미암아 공공책임을 수반한다. 천지공사는 '음양합덕' 담론에서 시작하여 '신인조화(調化)'의 공공소통을 이루고 '해원상생'의 존재론적 축복으로 연결된다. 도통선경으로 상호호혜의 결실을 맺기에, 천지공사와 인존사사(人尊私事)는 공공의 성상원융(性相圓融)을 이루어 천지인삼재 일원상(一圓相)을 이룬다. 이러한 공공실천 전망은 감성·이성 상관연동의 소통의 공사공매, 해원·보은 상관연동의 상생의 행복공창, 그리고 도통·선경 상관연동의 인존의 활사개공으로 연결되기에 이를 상관연동으로 고찰한다. 천지공사를 주재하는 '인신현현(人神顯現)'의 구천상제는 공공동량 구제 사업에 임하였다. '활사개공'의 공공윤리 지표는 도통군자에 나타나 있다. 천지공사로서 선천세계가 개벽되고 지상천국이 건설된다. 천지공사 공공윤리 전망으로 온 누리에 선경의 화평세상을 이룩하기에, 세계시민성·우주시민성 시대도래를 예견할 수 있다.

소설과 영화 속 '메피스토'의 사상성 미학 (The Aesthetics of Conviction in Novel and Film Mephisto)

  • 신사빈
    • 대중서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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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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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7-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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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이 글은 클라우스 만(Klaus Mann)의 소설 『메피스토(Mephisto)』(1936)와 이슈트반 사보(István Szabó)의 영화 <메피스토>(1981)의 상호텍스트성을 살펴보고, 원형 콘텐츠(소설)에서 드러난 도식적인 사상성 미학(Gesinnungsästhetik)을 파생 콘텐츠(영화)에서 어떻게 수용하고, 또 극복하는지를 모색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흔히 사상성 미학은 독일의 제3제국 시절 예술가들의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태도나 통일 이전 동독 예술가들의 체제에 대한 태도를 편파적인 도덕성의 잣대로 부정적인 평가를 할 때 적용된다. 『메피스토』도 그런 사상성 미학을 지니고 있어서, 클라우스 만의 대척점에 선 현실 속 실제 인물(구스타프 그륀트겐스)과 소설 속 허구 인물(헨드릭 회프겐) 사이의 유형적 유사성과 차이점을 시대 비평적으로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때 상호텍스트성을 통하여 내재비평(內在批評)을 한다면 대척에 선 두 인물 사이에 미적 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이러한 전제에 있어, 이슈트반 사보의 영상 미학은 원작의 도식주의를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소설과 영화에서 나타난 '메피스토'라는 사상성은 나치 시대 국가사회주의와 타협한-불가항력의 역사 앞에 굴복한-인물의 인식과 태도의 문제다. 클라우스 만은 메피스토 유형의 회프겐(현실의 그륀트겐스)을 망명문학(Exilliteratur)의 관점에서 '악으로 기우는 메피스토'라고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이때 비판을 통한 공격에는 풍자와 희화, 조롱, 패러디, 아이러니 등 다양한 표현 수단이 동원된다. 고발과 비판에 있어 자기반성이 없고 '유토피아적인 것(das Utopische)'도 배제되어 있어서 예술의 자유가 인격권을 침해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이에 비교해 이슈트반 사보는 메피스토 유형의 회프겐을 수용함은 물론 햄릿 유형의 회프겐, 즉 '선으로, 악으로 기우는 파우스트'를 추가로 등장시켜 (단순한 선과 악의 이분법 잣대가 아닌) 악의 두 유형(메피스토의 악과 파우스트의 악)을 이원적으로 접근한다. 그렇다고 '메피스토와 햄릿(파우스트)'이 혼재된 유형의 인물을 연민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훨씬 더 강화된 비극적 결말로서 사회적 책임을 추궁한다. 그래서 소설이 한 개인의 자서전에 가깝다면, 영화는 한 세대의 자서전에 가깝다. 소설과 영화에서 나타난 상호텍스트성의 아이러니로 인하여 메피스토의 사상성 미학은 역사관의 한계와 텍스트의 편중을 극복하였다. 역사가 개인이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의 힘'이더라도 '삶의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마저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상성의 문제는 비단 독일의 나치 시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이데올로기와도 연상될 문제다. 우리에게 어떤 이분법의 잣대로 비판만 일삼기에는 역사의 뿌리가 너무 깊이 박혀 있어서, 역사와 개인의 관계에서만은 중립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이 글은 우리의 메피스토와 햄릿을 찾는데 실마리를 제공한다면 또 하나의 의의를 지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