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조총

검색결과 18건 처리시간 0.027초

조선총독부 도서관 분류표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Chosun Government-General Library Classification)

  • 여지숙;오동근
    •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 /
    • 제35권3호
    • /
    • pp.293-319
    • /
    • 2004
  • 이 연구는 우리나라 최초의 관립도서관이며 국립중앙도서관의 전신인 조선총독부도서관에서 사용한 분류표에 관한 것이다. 조선총독부 도서관 분류표는 신서부, 고서부, 양서부의 세 개 분류표를 편찬하여 사용하였다. 이에 이 연구는 일제강점기 당시 관립도서관이었던 조선총독부도서관분류표의 특징에 대해 분석하였다. 또한 조선총독부 도서관 분류표와 관련 있는 분류표를 비교 분석하여 그 영향관계를 파악하였다.

  • PDF

신종 조충 Taenia asiatica sp.n.의 형태학적 기재 (Morphologic descritions of Taenia asiatica sp. n.)

  • 엄기선;임한종
    • Parasites, Hosts and Diseases
    • /
    • 제31권1호
    • /
    • pp.1-6
    • /
    • 1993
  • 현재 인체에는 기새하는 Taenia 조충으로는 돼지고기 유구낭미층(Cysticercus cellulosae)을 먹어서 감염되는 Taenia solium Linnaeus 1785과 쇠고기의 무구낭미층(Cysticercus bovis)을 먹어서 감염되는 Taenia saginata Goeze 1782 두 종이 알려져 있다. 한편 인체에 기생하는 제 3의 Taenia 조충으로 최근 타이완, 한국, 인도내시아, 태국, 필리핀 등 아시아국가를 중심으로 발견되는 Asian Taenia saginata 조충은 돼지나 소의 간 또는 내장에 있는 내장형낭미충을 먹어서 감염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사상의 구분에도 불구하고 형태하적으로는 본충이 Taenia saginate Groeze 1782와 유사하기 때문에 아직 신종으로 인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에 연구자들은 Asian Taenia saginata 조충의 형태학적 구분점을 새로이 발견하고 학명으로서 Taenia asiatica sp.n.(한국명:아시아조총)을 제시하고자 한다. 감별적으로는 1.선충의 두절에 있는 액취의 존재, 2. 성충의 수태편절에서 관찰되는 자궁세지의 수, 3.성충의 수태관절에서 관찰되는 미돌기의 존재 및 4.유추의 낭벽표면에서 관찰되는 사마귀양 구조가 광학 및 전자현경적으로 관찰되었다. 이중 '자궁세지'와 '미돌기'는 새로이 관찰하여 기재하는 구조물로서 처음으로 Taeniid의 종감별에 사용하였다.

  • PDF

조선시대 금속제 탄환의 특징과 제작기법 검토 (An Examination of the Characteristics and Manufacturing Techniques of Joseon-era Metal Bullets)

  • 최보배;이혜진;김명훈;정현진
    • 박물관보존과학
    • /
    • 제28권
    • /
    • pp.65-88
    • /
    • 2022
  • 탄환의 특성과 거동은 화기 성능과 직결되므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전통 탄환과 관련된 연구 성과는 사실상 적은 편이다. 본고에서는 육군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금속제 탄환의 재료와 제작 공정을 알아보기 위해 과학적 분석을 실시했다. 또한 탄환 직경에 따라 사용 가능한 조선시대 화기 종류를 분류하여 정리했다. 그 결과 탄환은 철환, 납환 및 수철연의환으로 구분되었다. 대부분의 철환과 납환은 주조로 제작되었다. 일부 철환은 단조로 제작되었다. 수철연의환은 철환을 주형에 넣은 후 용융된 납을 부어 주조하여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탄환은 재료에 따라 비중이 확연히 구분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조사 대상 탄환은 소형 총통, 조총, 불랑기포, 현자총통, 대위원포, 소포, 홍이포 등에 사용 가능했다.

정조대 <서장대야조도(西將臺夜操圖)> 장용영(壯勇營) 하급 군사(軍士)의 군복(軍服) 고증 (Features of the Military Uniforms of the Low-Ranking Soldier Belonging to Jangyongyoung in the King Jeongjo Period Seojangdaeyajodo)

  • 이경희;김영선;이은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54권4호
    • /
    • pp.90-111
    • /
    • 2021
  • 1795년 윤2월 12일 정조가 친림하여 행한 장용영 외영의 군사 훈련을 그린 <서장대야조도>를 중심으로 장용영 하급 군사들의 위치와 역할, 역할별 군복의 구성과 특징을 고찰하였으며 결과는 다음과 같다. <서장대야조도>에서 정조가 자리한 서장대 앞에 2열로 마주보도록 배치된 등롱군·뇌자·순령수·대기수와, 서장대를 둘러싸고 정조를 호위한 군사들은 모두 장용영 소속 하급 군사들이었다. 정조 앞에 배치된[御前前排] 등롱군의 군복은 전립, 흑색 협수, 홍색 괘자, 남색 전대, 백색 제비행전, 흑혜로 고증하였다. 하급 군사들의 협수는 기존 학계에 알려진 관직자들의 무가 있는 협수와는 달리 소창의형 협수일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등롱군은 칼을 차고 손에는 홍사촉롱을 들었다. 뇌자는 신전수와 주장수가 있었다. 왕 앞에 배치된 뇌자의 군복은 주전립, 흑색 협수, 홍색 괘자, 남색 전대, 백색 제비행전, 흑혜로 고증하였다. 뇌자는 칼을 차고 신전기 또는 주장을 들었다. 왕 앞에 배치된 순령수는 순시기수와 영기수가 있었다. 순령수의 군복은 전건, 흑색 협수, 홍색 괘자, 남색 전대, 백색 제비행전, 흑혜로 고증하였다. 순령수는 칼을 차고 홍순시기 또는 홍령기를 들었다. 왕 앞에 배치된 대기수의 군복은 전건, 흑색 협수, 청색 괘자, 남색 전대, 백색 제비행전, 흑혜로 고증하였다. 왕 앞에 배치되는 다른 군사들과 달리 대기수는 정조대에 와서야 왕 앞에 배치됨으로써 괘자의 색상이 청색인 점이 달랐다. 대기수는 칼을 차고 대기치를 들었다. 서장대를 둘러싼 군사들은 전초군과 좌초군이었고, 성곽을 방어하는 군사들은 좌·우·전·후 초군으로 보았다. 초군의 군복은 전립, 흑색 협수, 호의, 남색 전대, 백색 제비행전, 짚신으로 고증하였다. 호의는 방위에 따른 색을 사용하였기에 좌초군은 청색, 우초군은 백색, 전초군은 홍색, 후초군은 흑색이었다. 초군이 소지하는 무기는 조총과 칼이었다. 성정군들은 조총과 칼 외에도 훈련 상황에 따라 횃불이나 등이 달린 기창을 들기도 하였다. 이상의 고증 결과를 반영한 시각화의 기본 원칙은 3D 콘텐츠 제작뿐만 아니라 실물 제작까지 가능하도록 시대와 신분에 적합한 형태·색상·재질 기준을 제안하였다. 역할별 복식 착장도에 무기와 군기(軍器)를 갖춘 앞·옆·뒤 모습으로 표현하고 색상을 RGB와 CMYK로 제안하였다.

화약기술발전의 사적고찰에 관한 연구 (한국의 고대 화약기술) (A Study of the Korean Historical Development of Explosives Technology(Korean Traditional Explosive Technology))

  • 나윤호;손선관
    • 기술사
    • /
    • 제12권1호
    • /
    • pp.12-20
    • /
    • 1979
  • 화약(흑색화약)의 최초로 발명된 사실은 초석 의 제법 및 그 정제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인들은 이미 11세기초부터 초석의 제법을 알고 있었으며, 그들이야말로 화약원료인 초석의 제법을 세계에서 가장 최초로 발명해 낸 사람들이다. 에지프트인들은 그것을 중국의 눈이라고 불럿으며, 초석이 유럽에 전파된 시기는 성길은오이 1218년 서정작업중 패르시아의 성첩를 공격하기 위하여 화약을 사용한데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에 화약 및 초석의 제조기술이 중국으로부터 도입된 시기는 1374년이며 화약을 최초로 한국에서 만들어낸 사람은 최무선이였다. 이조시대에 접어 들면서 초석, 화약 및 화포의 제조기술은 최해신에 의해서 매우 발전해 나갔다. 그러나 1597년 일본의 왜군이 한국을 침공해 왔을때(임진란) 왜군은 성능좋은 조총으로 한국군을 괴롭혔으며 이에 맞서서 이순신장군이 이끄는 한국의 수군은 거북선에 장비한 성능좋은 화포로서 일본수군을 전멸시킬 수 있었다. 한국의 근대화약기술은 1930년부터 1945년 사이에 4개의 화약공장이 건설됨으로서 매우 발전했다. 본 연구는 한국에 화약기술이 전래된 경위를 조사하였으며 차후화약기술에 대해서 연구하고져 하는 연구자에게 연구 자료를 제공 하고져 시도했다.

  • PDF

한국사 최초의 망원경 I. 정두원(鄭斗源)의 "서양국기별장계(西洋國奇別狀啓)" (The First Telescope in the Korean History I. Translation of Jeong's Report)

  • 안상현
    • Journal of Astronomy and Space Sciences
    • /
    • 제26권2호
    • /
    • pp.237-266
    • /
    • 2009
  • 1631년에 명(明)에 사신으로 다녀오던 정두원은 산둥(산동(山東)) 반도의 덩저우(등주(登州))에서 예수회 선교사인 조앙 로드리게스를 만났다. 로드리게스는 정두원에게 많은 다수의 서양 문물을 전해주었다. 정두원의 "서양국기별장계(西洋國奇別狀啓)"는 이 사건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사료이다. 이 문헌은 고전 한문으로 되어 있으므로, 이 논문에서는 현대 한국어로 역주를 하였고, 그 과정에서 이전 연구자들이 오해한 여러 가지 사실들을 바로 잡았다. 이 문헌에 따르면, 정두원이 받아온 것은, 중국어로 저술된 서양 서적 네 권, 명(明) 조정에 홍이포(紅夷砲)를 바친 경위에 대한 보고서, 망원경, 수발총, 폴리오트식 기계 시계, 마테오 리치가 그린 세계지도, 천문도, 해시계 등이었다. 우리는 이 물품들이 한국 과학기술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논의한다. 특히 정두원의 서양 문물 전래는 한국 천문학사에서도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가 가져온 망원경이 한국사상 최초의 망원경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의 임금과 관리들은 망원경, 홍이포, 신식 조총과 같은 새로운 기술들이 군사적으로 유용함을 잘 알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이를 재빨리 수용하여 국방력을 강화하지 못했다. 우리는 당시 동아시아 과학기술사의 일반적인 역사에 비추어 보아 그 까닭을 재고해보려한다.

일본 '한국문학사'에서의 한국고전문학사 인식과 서술양상 (The Perceptions and Description Patterns of the History of Ancient Korean Literature in Two Books on the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Written in Japanese)

  • 류정선
    • 비교문화연구
    • /
    • 제48권
    • /
    • pp.1-30
    • /
    • 2017
  • 본 연구는 일본에서 저술된 한국고전문학사를 중심으로 일본문학사와 남북한 문학사와의 문화횡단적 양상을 살핌으로써 한국문학사에 대한 인식과 서술양상을 규명하고자 했다. 그 분석대상은 일본인과 재일조선인을 대상으로 일본어판 "조선문학사"를 저술한 김동욱과 변재수이다. 일본문학과의 비교문학적 관점인 김동욱의 "조선문학사"(1974)와 재일조총련계로서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저술한 변재수의 "조선문학사"(1985)는 자국문학사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과 인식이 서로 달랐다. 이것은 무엇보다 분단체제로 인한 남북한의 문학사가 이질적으로 전개되는 현실에서 그들의 "조선문학사"는 남북문학사의 균열상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 한편으로 한문문학의 가치와 향가, 한글창제, 그리고 판소리의 독자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한국문학으로서 한글문학과 한문문학이 서로 상호작용 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본어판 "조선문학사"의 저술의의는 민족주의적 시각하에 일반적으로 한국문학을 중국문학의 아류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한국문학의 가치를 재정립시키고, 일본인에게는 한국문학의 우수성을 재일동포에게는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춤의 해외전파 :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North Korea's Overseas Transfer Dance - Focusing on Japan and China -)

  • 김채원
    • 공연문화연구
    • /
    • 제22호
    • /
    • pp.185-221
    • /
    • 2011
  • 본 연구는 해외교포사회에 북한춤이 전파되는 과정과 그 발전양상을 살펴보는데 목적을 둔 것으로, 해외에 거주하는 민족집단으로서의 재외동포들의 무용문화, 특히 재중, 재일조선인들의 무용문화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 필요성을 생각해보았다. 문헌연구 중심으로 살펴본 논점의 결과, 재일조선인사회와 중국조선족자치구의 무용문화의 출발점엔 공통적으로 최승희춤이 있었으며, 두 민족집단은 최승희로부터 직접·간접적으로 춤을 배우거나 작품을 전수받았으며, 최승희가 정리한 조선무용기본을 기초훈련으로 하여 무용을 습득했다. 또한 무용전수 및 훈련기관은 재일조선인사회의 경우 북한의 체계와 같이 무용소조를 따로 두고 그곳에서 무용훈련을 통해 재능있는 인재를 배출하여, 전문예술단에서 활동하게 하는 시스템을 유지해 왔다. 이에 반해 중국조선족자치구는 연변대학과 중앙민족대학내에 무용학과가 배치되어 있어 그곳에서 조선춤을 전수 교육함으로써 재능있는 무용인재들을 배출해 왔으며, 한국의 무용교육체계와 유사한 면을 볼 수 있다. 무용기초훈련과 작품의 경향면에서는 재일조선인사회에서는 북한에서 실천하고 있는 무용기초훈련과 기본훈련을 그대로 전수하고 있으며, 작품도 북한춤을 대표하는 명무나 민속무용을 그대로 전수받아 공연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조선족자치구에서는 최승희가 정리한 조선무용의 기초와 작품을 그녀로부터 직접 훈련받거나 전수받았으나, 최승희의 제자들은 그녀가 세운 무용기초를 발전시켜 중국소수민족의 춤기법 등을 접수하면서 중국조선족만의 무용훈련체계를 세워나가면서 한국춤과의 교류도 성사시켜 북한춤보다는 자유롭게 창작성을 가미한 중국조선족 무용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전수된 시기로 보면, 재일조선인사회는 1960년대부터 시작되어 1970년대에 들어서는 직접적인 평양방문을 통해 전수와 교육을 받았고, 1990년대에는 북한무용가를 직접 일본으로 초청하여 무용기초훈련을 교육받음으로써 북한춤에서 볼 수 있는 스펙터클한 양상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하겠으나, 중국조선족자치구에서는 1950년대에 평양과 북경에서 최승희로부터 직접적인 지도를 받았고, 이후에는 북한무용가들로부터의 직접적인 지도보다는 북한예술단의 중국방문을 계기로 무용영향을 받는 한편, 1990년대 이후부터는 한국춤을 흡수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조선족만의 색다른 무용문화를 창조해 왔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살아가는 지역과 그 지역을 구성하는 민족집단의 구성체계 및 정치체제에 따라 북한춤의 전수과정 및 발전양상도 유사하지만 각각의 아이덴티티를 보장하는 독자적인 특색을 지닌 무용문화를 형성하며 발전시켜 왔음을 알 수 있으며, 재일조선인사회의 무용문화는 조총련의 통제하 강제적 문화접변에 의한 무용문화의 변동을, 중국조선족자치구의 무용문화는 자발적 문화접변에 의한 자유로운 차용과 발전으로의 변동을 살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