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조선후기의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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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와 가사의 향유방식과 그 관련양상 (The enjoyment of way on Si-jo and Ga-sa in Joseon Dynasty)

  • 류해춘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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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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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5-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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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시조와 가사는 한국의 시가문학을 대표하는 갈래이다. 우리의 시가문학에서 시조는 3장 6구 12음보의 형식을 갖추고, 한 수의 노랫말은 45자 내외의 길이를 지닌 정형시를 의미한다. 조선후기의 사설시조는 시조의 변화를 수용하여 대체로 3장의 기준만을 채택하고 그 내용과 형식을 확대하여 표현하고 있다. 한편 가사의 정의는 1행 4음보의 율격을 바탕으로 100행 내외로 연속하는 장시라고 할 수 있다. 조선후기의 가사는 내용적으로 다양한 소재를 이야기로 연결하여 행수가 훨씬 많아지는 경향을 수용하여 대상과 사물의 총체성을 읊어내고 있는 장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조선시대의 시조와 가사는 정형시와 장시로 고전시가의 두 산맥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갈래라고 할 수 있다. 조선전기에는 두 갈래의 노래가 서정을 기조로 하여 시조는 정형시의 양식을 계승했고, 가사는 장시라는 장르의 양식을 차지하여 시가문학을 융성하게 했다. 16세기 후반부터 두 갈래의 문학을 표현하는 방식의 변화와 함께 향유하는 계층이 늘어나면서 점차 이질성을 많이 드러내게 되었다. 시조는 시조창의 변화로 사설시조가 등장하며, 가사는 현실의 체험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이야기를 수용하여 길이가 길어지는 변화를 수용하여 규방가사와 서사가사가 성행했다. 그러나 단형의 정형시인 시조와 장시인 가사는 1행 4음보를 기준으로 창작되는 동질성을 조선후기까지 공유하고 있었다. 이 글에서는 시조와 가사에 나타난 향유방식과 그 상관성을 정형성과 비정형성, 은유의 수사학과 환유의 수사학, 가창의 문학과 음영하는 문학 등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조선시대의 시조와 가사에 나타난 향유방식을 살펴보는 작업은 오늘날 21세기 문화의 향유자들이 추구하는 문화콘텐츠의 다양한 글쓰기를 아우르며 화합과 소통의 새로운 세계를 항해하는 문화의 나침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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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사회적 기능 고찰 - 조선조 사회와 시조의 관계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Social Functions of Sijo)

  • 박규홍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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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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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7-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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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시의 사회적 기능이 있듯이, 조선조의 시조도 나름의 사회적 기능이 있었다. 16세기에 들면서 시조는 사대부들에 의해 특정의 기능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장르로 주목을 받았다. 유교적 이념을 전달할 적절한 도구로 본 것이다. 특히 퇴계는 시조가 온유돈후한 내용을 담아 가자나 청자가 모두 유익함이 있도록 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런 유교의 철학적 사유를 담은 시조나 훈민가는 향유자들로 하여금 이념적 동질성을 확인토록 하여 조선왕조체제유지에 기여하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했다. 당시 경기체가는 그런 기능을 갖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신분질서의 요동, 통화경제의 발달, 부의 편재, 향락 추구 등의 변화가 초래된 조선 후기에 들면 조선 전기에 억제되었던 남녀성애를 노래하는 사설시조가 성행한다. 성애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이들 시조는 당시의 향락적 분위기, 부패구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짐으로써 결국 조선조 붕괴에 일조하게 된다. 유교이념의 시조와 남녀성애의 시조, 양자는 한쪽이 성하면 한쪽이 쇠하는 상관관계는 조선조의 사회상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진행되었다. 사설시조 담당층의 문제는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성향의 문제다. 향유계층의 폭이 넓어 꼭히 어느 계층을 담당층이라고 하기 어렵다. 다만 그 작자는 전문가들일 가능성이 많은데, 현인군자의 정음을 찾기를 표방하는 박효관 쪽보다는 그가 비난한 격낮은 소리패일 가능성이 크다. 망국의 노래쯤으로 여겨지는 고려 속가에 비해 조선 후기의 사설시조가 훨씬 더 음설한 데도 사설시조를 더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시각이 용인되는 것은 고려 속가가 고려왕조의 멸망에 일조한 데 그쳤다면, 사설시조는 조선왕조의 몰락과 봉건체제의 붕괴에 아울러 영향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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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시조에 나타난 여가활동의 양상 (The Aspect on the Leisure-Activity of Sasul-Sijo)

  • 류해춘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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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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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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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본고에서는 조선후기 사설시조에 나타난 여가활동의 양상을 분석하여 우리민족의 여가문화의 한 단면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조선조 사설시조에 나타난 여가활동은 기분전환과 유홍지향, 건강관리와 신체회복, 자기계발과 생활변화 등의 양상으로 주제화되어 작품에 나타나고 있다. 기분전환과 유흥지향의 시조는 소년시절의 여가활동을 주로 표출하고 있으며, 건강관리와 신체회복의 시조는 노년시절의 여가활동을 주로 표출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계발과 사회적응의 시조에는 소년시절과 노년시절의 여가활동이 함께 나타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사설시조에 나타난 여가의 양상은 크게 소년시절의 여가활동과 노년시절의 여가활동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그런데 소년시절의 여가활동은 건전한 여가와 위험한 여가가 함께 어우러져 있으나, 노년시절의 여가활동은 건전한 여가가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사설시조에 나타난 가장 완전한 여가활동으로는 개인의 기분전환, 신체회복, 자기계발, 창조정신 등의 내용이 함께 어울러져있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는 2004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옛 시조에 나타난 여유와 느림의 미학에 바탕을 둔 선조들의 여가활동을 음미해봄으로써 심신이 건강한 맛과 멋의 여가활동을 함께 즐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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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와 궁중 악장의 관계 (A Study on the Correlation of Sijo with Akjang)

  • 조규익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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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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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5-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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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이 논문은 시조와 궁중악장의 관련양상을 통시적으로 살펴본 결과다. 조선시대에도 민간음악과 궁중음악의 교섭은 활발했다 정치적 목적이 전제된 일이긴 하나 순조 대에 대거 시행된 각종 진연 진작 등 예연의 정재들에 민간음악의 대표격인 가곡이 도입된 것은 괄목할만한 일이었다. 가곡의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노랫말은 시조였다. 조선조 후기의 각종 예연에 명시적으로 사용된 시조는 분명 '민간음악이 궁중악으로 도입된' 모범적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고려 시대의 각종 정재들이 조선조에도 거의 그대로 수용되었고, 자연스럽게 그것들에 올려 부르던 대부분의 속악가사들도 답습되었다. 그 가운데 <북전>은 <정과정>을 올려 부르던 진작조로 가창되었다. 그런데 $\ulcorner$악학궤범$\lrcorner$에 실린 <북전>은 3강 8엽의 '장가'이나, $\ulcorner$금합자보$\lrcorner$$\ulcorner$양금신보$\lrcorner$에 실린 그것들은 시조 형태의 비교적 '짧은 노래들'이다 조선 초기 어느 시점부터는 시조시형이 궁중악의 노랫말로 도입되었음을 암시한다. 특히 <북전>은 시조 형태의 노랫말로 교체된 후 조선조 후기까지 지속되었다. 이렇게 <북전>은 고려조 이래 최소한 조선조 전기까지는 궁중에서 사용되던 노래였고. 이것이 민간으로 번져 나가 가곡의 레퍼터리 안에 정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장가 북전>이 <단가 북전>으로 바뀐 것은 사실상 민간의 음악이 궁중 음악에 영향을 준 결과로 보아야 한다. 어전풍류(御前風流)의 송도지사(頌禱之詞)였던 <북전>(<후정화>)이 조선 전기에는 곡연(曲宴) 관사(觀射) 행행(行幸)에는 물론 정전에서 임금과 신하가 만날 때에도 사용되었다. 이런 점은 가곡으로 편입, 조선조 후기까지 지속된 우리말 노래가 원래 궁중악으로도 쓰였다는 사실의 단서라고 할 수 있다. 엄격한 틀을 벗어날 수 없었고. 궁중악과 민간음악은 확연히 구분된다고 생각해왔던 종래의 상식과 다른 점을 시조시형과 악장의 관계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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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씨니[네]~' 시조의 검토와 "각시니 내 첩이 되나"의 해석 (A examination of 'Gakssi (각씨)~' Sijo and interpret of $\lceil$Gaksine nae cheobi doena(각시니 내 첩이 되나)$\rfloor$)

  • 이영태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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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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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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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이 글은 '각씨니[네]$\~$' 계열의 사설시조(평시조 포함)를 검토하는 데 목적을 둔다. '각씨'라는 단어가 술과 안주, 그리고 음악이 있는 공간과 밀접하다는 점은 조선후기 이전 기록에도 있었고 그것이 시조에 그대로 재현되었다. 시조에 등장하는 '각씨'는 '주연석이나 풍류장‘에서 가창공간의 분위기를 돋우게 하는 재미있는 '허튼소리'와 관계하는 인물이지 일반 아녀자를 지칭하는 게 아니었다. '각씨니[네]$\~$' 시조에서 가장 앞서는 $\lceil$각시네 내 첩이 되나$\rfloor$($\#48$)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이를 통해 보건대 '각씨니[네]$\~$' 시조는 태생적으로 '주연석이나 풍류장‘이라는 공간과 밀접하다고 규정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48$ 이후의 '각씨니[네]$\~$' 시조도 그런 공간을 출입할만한 여건을 갖춘 자들과 관련된 노래로 판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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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金錢)을 매개(媒介)로 한 사설시조(辭說時調)의 성담론(性談論) (A study on the Pecuniary mediated Sexual Discussion in Saseol Sijo)

  • 류해춘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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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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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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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인간의 삶을 반영하고 있는 사설시조에서는 애정과 관련된 재화(財貨)나 금전(金錢)이 등장하여 그 당대 사람들의 애정과 경제의 상관성을 보여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부란 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는 가장의 아내로서 여성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설시조에 나타난 물질문제나 금전문제는 물질적 궁핍을 강요하는 사회와의 투쟁이 드러나지 않고 오락성이나 유흥성의 측면에서 재화나 금전의 과소비를 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나타난 사설시조의 성담론은 여성의 성적억압을 상상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욕망의 투사체이거나 혹은 대리 만족으로 여성의 성적 욕망을 다루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후기 우리 사회의 풍류방이나 유흥의 산물로 흥행한 사설시조에 담겨있는 주부의 모습은 유교적 질서가 확고했던 조선시대에도 여성이 가정 내에서 그 역할이 점차 변해가고 있었으며 현대 사회의 주부들 못지 않게 자유롭고 발랄한 성담론을 구사하고 있었다. 사설시조에 나타난 금전을 매개로 한 주부들의 성담론이라는 주제는 현재 무너져 가는 가족관계와 천민자본주의 그리고 성(性) 산업의 노예가 되고 있는 21세기 현대인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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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옥의 '장시조론'과 작품 해석의 한 방향 - "고장시조선주"를 중심으로 - (A direction on the analysis of the literary work and 'the Theory of Jangsijo' of Gojeong-ok)

  • 김용찬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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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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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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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이 논문은 국문학자인 고정옥의 저서 $\lceil$고장시조선주$\rfloor$를 검토하여, 그것의 특징과 문학사적 중요성을 자리매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동안 고정옥은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월북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한국문학사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국문학 연구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그의 저서들은 아직까지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고정옥과 그의 저서들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며, 국문학 연구사에서도 그의 연구 업적에 걸맞는 평가가 내려져야 할 것이다. 본고는 이러한 관점에서 그의 저서인 $\lceil$고장시조선주$\rfloor$를 통해서 그의 문학적성과를 다루고자 한다. 고정옥이 '장시조'라 칭한 사설시조는 조선 후기문학사를 해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갈래이다. 그는 이 책에서 사설시조 50수를 뽑아 주석을 붙이고 작품의 분석을 시도하였다. 이와 더불어 당시로서는 독창적인 사설시조에 대한 이론을 제출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는 $\lceil$고장시조선주$\rfloor$와 다른 저서들에 드러난 고전 시가에 대한 그의 인식을 살펴보고, 특히 '장시조'에 대한 이론이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가를 검토하기로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의 문학관이 자연스럽게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또한 주석과 함께 소개되어 있는 작품 분석을 검토함으로써, 구체적인 작품 해석의 면모를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작업을 통하여, 고전시가에 대한 그의 관점을 보다 정밀하게 검토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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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가곡의 사설시조 가창 양상 (Saseol-sijo singing aspect of current Gagok)

  • 김영운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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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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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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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시조는 조선 후기 한국의 문학작품 중 단형시가를 대표하는 문학 장르이다. 시조의 기본형식은 3장 6구 12음보의 형식을 갖춘 평시조로, 평시조 한 수의 노랫말은 45자 내외의 길이를 지닌다. 그러나 시조의 한 종류인 사설시조는 노랫말의 글자 수가 많이 늘어나 100여 자를 넘는 작품도 있다. 이 같은 사설시조 중에는 한문 어휘를 많이 사용하고, 심지어는 한시에서 몇몇 구절을 차용한 '엄숙하고 우아한 느낌'의 작품도 있으나, '외설스럽고 노골적인 내용'의 작품도 많이 있다. 문학작품인 시조는 가곡과 시조창이라는 성악곡의 노랫말로 사용되는데, 동일한 시조시가 가곡과 시조의 노랫말로 활용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나 성악곡인 가곡 중에서 사설시조를 노랫말로 사용하는 악곡 중에는 '외설스러운 작품'은 거의 부르지 않고, '엄숙한 느낌'의 노래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논문은 현재 전승되는 가곡 중에서 사설시조를 노래하는 악곡은 대부분 '엄숙하고 우아한 느낌'의 노랫말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외설적이고 노골적인 내용'의 사설시조를 가곡에서 노랫말로 사용하기 어려운 이유를 살펴보았다. 그러한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불규칙하게 늘어나는 노랫말과, 그에 따르는 반주 때문으로 보인다. 가곡은 악보에 기록되어 전하는 정해진 선율을 다수의 악기가 반주 한다. 따라서 사전에 선택된 노랫말에 따라 일정하게 만들어진 노래선율과 반주선율에 의하지 않으면 연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문학작품의 감상은 개인적인 독서활동을 통하여 사적으로 이루어지지만, 가곡은 다수의 인원이 열린 공간에서 공개적인 연주를 통하여 연행하는 것이다. 특히 조선 후기의 사회적 제도와 관습 속에서 신분이 다른 남녀가 함께 모여 외설스럽고 노골적인 노래를 부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글을 통하여 사설시조의 문학적 특성으로 일컬어지던 서민적이고 통속적인 성격은 가곡으로 불려진 사설시조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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