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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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전통(禪佛敎傳統)에서 본 한용운(韓龍雲)의 불교관(佛敎觀) (Han Yong-un's View Point of Buddhism from the Perspective of Zen Buddhism)

  • 정연수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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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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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3-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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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고에서는 선불교(禪佛敎)의 전통(傳統) 속에서 한용운(韓龍雲)의 불교관(佛敎觀)을 고찰하였다. 한용운은 원효(元曉)의 지관쌍운론(止觀雙運論)과 지눌(知訥)의 정혜쌍수론(定慧雙修論)의 전통 속에서 적적성성(寂寂惺惺)한 선정(禪定)의 본질을 강조한다. 한용운은 당시 선객(禪客)들이 중생들을 외면하고 산림에 은거하면서 처소와 몸가짐만을 적적(寂寂)하게 하려는 행태를 비판하면서, 중생들을 제도하는 수행자의 일상 속에서 적적성성한 선정을 이루어야 함을 강조한 사상적 특징이 있다. 한편, 한용운은 김시습 이래로 조동종(曹洞宗)의 전통이 담긴 "십현담(十玄談)"을 주해하면서 조동오위(曹洞五位)에 의거하지 않고 구세정신에 입각하여 임제선풍(臨濟禪風)으로 일관하는 특성이 있다. 굳이 한용운의 "십현담주해"를 조동오위에 비춰보자면, 중생들의 편위(偏位) 속에서 진인(眞人)의 정위(正位)를 밝힌다는 편중정(偏中正)에 비중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십현담주해"에서는 조일불교동맹조약(朝日佛敎同盟條約)으로 조선불교의 정신까지 말살하려는 일본조동종 승려들의 만행을 질타하고자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한용운의 불교관을 종합해 보자면, 선불교(禪佛敎)의 전통 속에서 애국애민(愛國愛民)의 정신을 담아내는 특징이 있다고 하겠다.

신구(新舊) 관념의 교차와 전통 지식 체계의 변용 (The Conceptual Intersection between the Old and the New and the Transformation of the Traditional Knowledge System)

  • 이행훈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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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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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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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고는 서양 근대 문명 수용 초기(1890~1910)에 발생한 신구 관념의 대립과 충돌을 중심으로 전통 지식 체계의 변용을 역사의미론적으로 탐색함으로써 한국의 근대를 성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한국에서 신구 관념을 놓고 벌어진 주체 간의 투쟁은 전통개신론자들과 문명개화론자들의 주장에서 첨예하게 드러났다. 서양의 충격에서 비롯된 신구 관념의 대립과 충돌은 우주 자연으로부터 사회 정치체제, 학술?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였지만, 전통 지식 체계를 이해하는 시각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신구 관념에 따른 전통 지식 체계의 구축과 변용과정에서 문명개화론자들에게 '구(舊)'는 단순히 과거의 '지나간', '오래된' 것이 아니라 파괴하고 제거하지 않으면 새로운 문명 건설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었다. 그러나 전통개신론자들에게 '구(舊)'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이념 속에서 다시 '신(新)'으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함하고 있는 '개신(改新)'의 대상이었다. 박은식의 "유교구신론(儒敎求新論)"이나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은 전통 지식 체계를 '신학(新學)'으로 재편하려한 대표적인 시도였다. 보편성과 객관성, 합리성을 추구하는 과학적 방법을 수용함으로써 전통 지식 체계는 근대적인 학문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학(新學)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성학(聖學)으로서의 위상은 탈각되었고, 신앙과 종교적 전통 또한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전통 지식 체계의 변용과 '구학의 신학화' 과정에서 신구 관념의 교차가 발생하였다. 여기서 특히 신구 관념의 교차를 가능하게 한 '실(實)(학(學))'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전후 발간된 다종의 근대 매체는 신구 관념의 다층적 전개 양상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전통 지식 체계가 신학(新學)으로 변용될 수 있었던 계기로서 '실학'이라는 개념적 준거틀이 작동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시기 실학이 지칭하는 대상은 대체로 서양의 학문인 '신학(新學)'을 표상하고 심지어 등치되기도 했지만, 전통개신론자들은 문명개화론자들이 점유하였던 '실학' 개념과 그 의미를 재해석함으로써 전통 지식 체계를 신학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들은 과학 기술에 압도되어 점차로 거세되어가던 전통적 가치를 '신학' 수용의 토대로 인식하고, '실학(實學)'을 개념을 준거로 하여 '신학(新學)'을 재전유(再專有)(re-appropriation)하였다. 일제의 강점이 구체화 되어 전통 지식 체계의 주체적 변용 시도는 일정한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지만 '구학의 신학화'는 '동도서기(東道西器)' 논리가 지닌 모순과 문명개화론의 탈주체성을 넘어서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도덕 원리와 경쟁 원리가 충돌하고 '진화'와 '진보'가 대세인 현실에 대응하려했던 '동도서기(東道西器)' 논리는 이미 분리될 수 없는 도(道)와 기(器)를 분리 가능한 것으로 상정해야만 성립되는 모순을 안고 있었고, 문명개화론은 서양을 내면화하여 자기 비하와 멸시로 주체의 균열을 야기하고 전통 지식 체계로부터 단절됐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