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조선관

검색결과 465건 처리시간 0.028초

선체운동(船體運動)에 관(關)한 Strip Method의 일고찰(一考察) (A Note on the Strip Methods associated with Ship Motion Problems)

  • 권영중;황종흘
    • 대한조선학회지
    • /
    • 제8권1호
    • /
    • pp.17-28
    • /
    • 1971
  • The coefficients of equations of heave, pitch and coupled motion are evaluated for the small typical fishing boat(KIST-MARK Fishing Boat) with transom stern in regular head sea. And the results of computations based on eight models of strip theory are compared one another for the forward speed Froude number 0.30. There are some distinctive differences among those theories for the hydrodynamic and coupling coefficients. The former seems to be caused by the effects of the transom stern and the latter of the foward speed.

  • PDF

조선시대 장보관(章甫冠)의 보존처리 (Conservation Treatment of Jangbogwan from the Joseon Dynasty)

  • 이혜린;박승원
    • 박물관보존과학
    • /
    • 제30권
    • /
    • pp.1-22
    • /
    • 2023
  • 본 연구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포제 관모인 세마관의 보존처리 기록과 손상된 문화재의 원형 회복에 따른 기존 명칭 재고를 목적으로 하였다. 포제 관모는 홑으로 된 내관에 양이 있고 내관을 감싸는 홑으로 된 외관, 머리둘레를 두르는 겹으로 된 무가 내관과 외관을 결합하는 구조이다. 소색 마직물로 만든 조선시대 남자용 관모로 표면에 오염과 이물질 제거, 부분적으로 열화되어 손상된 직물의 수리를 통한 원형 회복과 안정화 및 전시 활용을 위해 보존처리를 실시하였다. 포제 관모의 바느질 방법은 손바느질과 재봉틀 바느질이 혼합되어 있다. 전체 구성과 양식은 조선시대 동일 유형의 관모와 유사하지만 재봉틀 바느질이 사용되었으므로 제작 시기는 1900년대 초반으로 보았다. 보존처리가 완료된 포제 관모의 전체적인 구성과 형태에 대해 유생들이 평상복을 입을 때 착용하는 남자 관모의 하나인 장보관과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문헌의 기록과 도설, 선행연구, 조선시대 초상화에 보이는 장보관의 형태 비교, 현전 실물들과의 특징 비교를 통해 대상품인 포제 관모가 장보관으로 분류되어 명명되기에 적정하다고 판단하였다.

서울출판인포럼 조찬모임, 이해찬 교육부 장관 초청

  • 김지원
    • 출판저널
    • /
    • 통권238호
    • /
    • pp.16-16
    • /
    • 1998
  • 서울출판인포럼은 지난 10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가진 조찬모임에 이해찬 교육부 장관을 초청, '교육과 출판' 을 둘러싼 광범위한 의견을 나눴다. 이장관은 교육부가 초.중.고 권장도서목록을 올해 안에 선정할 수 있도록 30명으로 이뤄진 '새로운공동체추진위원회'(가칭)를 이달 25일까지 발족시키고, 이를 강력히 실천할 수 있도록 지역단위의 '새교육공동체 시민모임'의 정착에 간접지원하겠으며, 독서가 학교 교과과정의 한 형태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제도화하겠다고 밝혔다. 교육의 입장에서 바라본 이장관의 독서와 출판에 대한 시각과 함께 출판인과 나눈 대화 내용을 정리해 싣는다.

  • PDF

실학파(實學派) 학인(學人) 홍대용(洪大容)의 중국(中國) 건축관(建築觀)과 북경(北京) 조선관(朝鮮館)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Chinese Architectural View Point of Realist Hong Daeyong and Joseon Embassy in Beijing)

  • 한동수
    • 건축역사연구
    • /
    • 제15권1호
    • /
    • pp.29-40
    • /
    • 2006
  • This paper is focused on Damheonseo(湛軒書), an anthology written by Hong Daeyong, and I deal with Chinese Architectural views which he had experienced in his itinerary to Beijing, and the vivid pictures of Joseonkwan (called the Koryo or Joseon Embassy) located in Beijing at that time. He was a scholar of great erudition over astronomy, mathematics, military science, politics, and so on. He was interested in practical sciences at early time, and criticized secular scholars full of vanity who had presented purposeless articles. In his age of 35, Qianlong(乾隆) 30 (1764, Youngjo 41), he, a military escort, accompanied by Hong Uk, Joseon envoy and his uncle. Before his itinerary, he self-studied Chinese. Also, during a long journey he got new experiences and information around each area, deviating his group whenever he had some times. He could get more variant experiences than others because of his character full of curiosity, and his observations from the vivid lives of the time helped us get various views between Chinese and Korean architecture. Likewise, although he denounced Qing(淸) scathingly as a barbarian, he mentioned several points about the characteristics of Chinese architecture at that time. First of all, totally Chinese architecture had strong rational and practical points. Secondly, based on bountiful products, buildings along streets shown in Chinese city had sophisticated compositions, and luxurious and magnificent appearances. Thirdly, using the brick from walls to houses was so universal. Fourthly, the layouts of building with three- or four-closed courtyard had very orderly shapes, and the structure of street was also so arranged. Finally, because of stand-up lives, the scales and appearances of interior space were even more extended, and storages were less developed than those of Joseon. As another points, I found that Joseonkwan was moved next to Shushangguan(庶常館)from Huidongnanguan(會同南館) around Hanlimyuan(翰林院), and had been remodeled into a house with Korean custom in using the inner spaces, although it was followed by a closed courtyard style. Likewise, I recognized that Ondols were sure to be established in all temporary houses during the journey to Qing, and felt their strong traditional residential custom in such mentions. Now that the past pictures have disappeared and ways of life and our values have been largely changed, this study has very important meaning in comparing the ancient Chinese and Korean architecture.

  • PDF

서양 의학의 수용과 신체관의 변화 - 최한기의 『신기천험(身機踐驗)』을 중심으로 - (The Introduction of Western Medicine and The Change of Body Conception)

  • 김문용
    • 동양고전연구
    • /
    • 제37호
    • /
    • pp.345-375
    • /
    • 2009
  • 조선에서는 서양 의학이 전래되면서 동양적인 신체관과 서양적인 신체관이 자연스럽게 습합하기도 하고, 양자가 상호 대립하면서 논점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18세기 이래로 형성되기 시작한 주요 논점으로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서양 해부학의 효과를 얼마나 긍정하는가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지각(知覺)을 주관하는 것이 심장인가 뇌인가의 문제이다. 이런 논점은 서양의 신체관을 타자화하는 것이면서, 그것을 통해 동양의 전통적 신체관을 정식화하는 것이기도 했다. 조선에서 서양 의학의 영향이나 신체관의 변화가 뚜렷한 진전을 보인것은 최한기(崔漢綺)에 이르러서였다. 그의 새로운 신체관의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신체에 대해 기계론적인 관점을 강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체의 지각 능력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기계론적 신체관은 신기론(神氣論)의 간섭을 받고, 지각설은 신기균형설(神氣均衡說)이라 할 수 있는 다소 애매한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신체관은 그가 서양 의학과 신기 개념의 접합을 통해 새롭게 확립한 것이지만, 양자 사이의 접합이 완전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면이 있었다. 이 점은 그가 의학의 기초로 생각한 물리학 방면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그는 화학원소론과 기론의 접합을 추구했지만, 궁극적으로 신기론의 유기체론적 성격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 접합은 성공하기 어려웠다. 그런 만큼 최한기의 새로운 신체관 역시 불완전한 임시 건조물의 성격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계론과 유기체론의 접합이라는 그의 시도 자체는, 그 문제가 오늘날까지 해소되지 않고 있는 거대문제라는 점에서 사상사적 가치를 부인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17~18세기 전생서(典牲署)의 관직 운영과 참하관(參下官)의 관로(官路) (The manage of a public office who 'Junsangseo(典牲署)' and Official Road(官路) of lower officials(參下官) at the 17th - 18th century)

  • 나영훈
    • 동양고전연구
    • /
    • 제69호
    • /
    • pp.45-82
    • /
    • 2017
  • 본 논문은 17~18세기 전생서의 관직 운영을 통해, 조선후기 참하관(參下官)의 관로 여정에 대한 구체적인 실증을 목적으로 한다. 지금까지 조선시대 중앙정치제도 연구는 주로 정치적으로 중요한 관료였던 당상관을 중심으로 연구되었고, 관로를 연구하더라도 문과 출신과 이와 연결된 '청요직(淸要職)'을 중심으로 검토되었다. 이는 이들의 중요성에서 기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조선은 문과 출신과 청요직으로 분류되는 관직 외에도, 수많은 관직과 그들의 관로가 존재했다. 따라서, 이들 이른바 '비청요직(非淸要職)' 관원의 관로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종7품에서 종9품으로 구성되는 참하관은 모든 관료들이 관로를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관로로서, 참하관을 검토하는 것은 관직 운영 이해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이 연구는 이러한 관심의 일환으로, 조선후기 비청요직 관원 가운데 참하관의 관로를 해명하고자 한다. 2장에서는 전생서의 법제적 성격과 "전생서선생안"의 사료적 가치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전생서선생안"에는 1627년(인조 4)부터 1797년(정조 21)까지, 약 170년간에 이르는 기간의 종6품 주부부터, 종7품 직장, 종8품 봉사, 정8품 부봉사, 종9품 참봉까지 모두 507명의 인원이 기록된 것을 확인하였다. 이들은 연대기와의 교차검토를 통해, 대부분 그 신뢰성을 확인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3장에서는 전생서 관원의 출신과 관로, 재직기간을 구체적으로 검토하였다. 그 결과 전생서 관원의 출신은 대부분 생원진사를 거친 문음 출신(42.4%)이거나, 출신을 알 수 없는 경우(45.7%)가 다수였음을 확인하였다. 출신을 알 수 없는 경우 대부분 문음 출신일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를 제외하면 10% 가량의 과거 출신자들이었는데, 이는 모두 종6품의 주부에서 발견되는 출신이었다. 참하관은 단 1명도 과거 출신이 없었다. 이어 전생서의 전직과 이직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참상관인 주부는 전직은 49%가 평서되었고, 45%는 승서되었으며, 6%는 강등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직에서는 46.8%가 평서되었고, 50%는 승서되었다. 주로 반은 평서되고 반은 승서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참하관은 80% 가량이 승서되었고, 이직에서도 70~80%가 승서되었다. 특히 종7품 직장은 80% 이상이 승육(陞六)되어 참상관으로 진출하였다. 즉, 전생서 참하관은 대부분 계서적인 단계를 거쳐 순차적으로 승진하였음을 실증하였다. 재직일수 역시, 참상관인 주부는 약 6개월(180일)이었던 것에 비해, 참하관은 대략 1년(360일)을 전후하여 근무하였다. 특히, 법전의 규정에 의하면 참상관은 900일, 참하관은 450일에 사만(仕滿)되어 천전(遷轉)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참하관은 대체로 법정 재직일수를 채우고 승서되어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4장에서는 전생서 참하관을 참상관, 그리고 '참하청요직'인 세자시강원의 종7품 설서(設書)와 비교하여 그 관직 특성을 드러내었다. 동일한 참하관에서도 청요직인 설서와 직장은 분명한 차별이 존재하였다. 청요직인 설서는 모두 문과 출신이었고, 전생서 직장은 모두 문음 출신이었다. 또한 설서는 평균 연령이 34세로, 48세인 전생서 직장보다 13살이나 어렸다. 관로 역시 설서는 대부분 청요직 관로였던 것에 비해, 직장은 청요직 관로는 하나도 거칠 수 없었다. 이는 전생서 한 관서에 국한된 분석이지만, 전생서의 참하관은 여타 관서의 참하관과 대체로 유사한 출신과 관로를 거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참하관에는 청요직도 있지만, 감역이나 별제, 도사 등 일반적인 참하관 이외의 수많은 층위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 모든 직종에 대한 검토는 필수적이다. 이를 확언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례분석이 필요하며, 이에 따라 전국적으로 산재한 수많은 선생안 데이터가 DB화될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 나주(羅州)의 인쇄문화에 관한 연구 (A Study on Printing of Naju in the Chosun dynasty)

  • 안현주
    •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 /
    • 제43권1호
    • /
    • pp.417-438
    • /
    • 2012
  • 이 연구는 현재의 전라남도 지역의 인쇄문화를 파악하는 연구의 일환으로 수행되었다. 일찍이 고려시대부터 서적을 간행했던 나주에서는 조선시대에 89종이 간행되었다. 조선시대 중종조 이후부터 서적간행이 활발해졌고 특히 16세기와 19세기에 간행활동이 두드러졌다. 조선전기에는 유가류, 후기에는 별집류와 계보류의 서적이 많이 간행되었다. 조선전기의 간행의 주제는 왕명에 의한 경우와 관찰사나 목사 등 지방관의 의지, 개인 등이었는데 후기로 갈수록 개인이나 문중이 문집과 족보를 발간하는 경향으로 변화하였다. 또한 전기에는 대부분 목판본으로 간행하였으나 후기에는 목활자의 사용이 점점 대중화되었다.

수동화재보호 재료가 적용된 구조부재의 화재하중에 대한 강도 특성 (Strength Characteristics of Passive Fire Protection Material Applied Structural Members on Fire Load)

  • 조상찬;유승수;서정관
    • 대한조선학회논문집
    • /
    • 제59권1호
    • /
    • pp.29-38
    • /
    • 2022
  • In offshore installations, fires cause the structure to lose its rigidity and it leads to structural integrity and stability problems. The Passive Fire Protection (PFP) system slows the transfer rate of fire heat and helps prevent the collapse of structures and fatality. Especially, intumescent epoxy coating is widely used in the offshore industry, and not only is the material cost expensive, but it also takes a lot of time and cost for construction. Several studies have been conducted on the efficient application and optimal design of the PFP system. However, the mechanical properties and the strength of the PFP material have not been considered. In addition, researches on the correlation between the thickness of PFP and the structural behavior were insufficient. Therefore, this study aims to analyze the thermal and mechanical effects of the PFP on the structure when it is applied to the structural member. In particular, it is intended to resolve the change in strength characteristics of the structural members as the thickness of the PFP increases.

지반변형률에 의한 매설관의 지진차 거동 해석 (Analysis of Buried Pipelines Using Ground Strain Input from Seismic Waves)

  • 김문겸;조우연;어준;이강원
    • 한국지진공학회논문집
    • /
    • 제4권4호
    • /
    • pp.15-26
    • /
    • 2000
  • 지진파 전파로 인한 매설관에 작용하는 지진하중은 지진특성 및 지반조건에 따른 지반변형률로부터 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존에 사용되고 있는 경험적인 방법에 의해 계산된 지반변형률 모형은 지진 및 지반의 지역적 특수성을 고려할 수 없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지진특성 및 지반조선을 반영할 수 있는 수정된 지반변형률 모형을 제안하고 개발된 모형을 매설관로의 지진해석에 지진하중으로 적용하였다. 여기서, 지반변형률을 예측하기 위한 지진판 전파속도는 지반조건을 고려할 수 있도록 파 에너지분포에 근거한 분산곡선을 제안하여 산정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얻어진 지반변형률 산정방법에 타당성을 파악하기 위해 예측한 지반변형률과 과거 지진으로 실측된 지반변형률을 비교하였다. 타당성이 입증된 지반변형률 모형을 매설관의 하중으로 적용하여 지진해석을 실시하였으며, 계산결과는 범용 유한요소해석을 통한 동해석 및 응답변위법에 의한 결과와 비교하였다. 이를 통해 지반 변형률 모형을 적용한 매설관 지진해석의 타당성을 검증하였다. 또한, 지진 및 지반환경이 다른 다양한 관의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지진 지반 및 관의 영향 인자에 대해 매개변수 해석에 실시되었으며, 이로써 본 연구의 활용성을 검토하였다.

  • PDF

활자와 이미지로 읽는 할리우드 -1920년대 조선극장의 영화관 프로그램과 미국 '특작'영화 경쟁 (Hollywood in Print -Movie Programmes of a Korean Theater in Ethnically Segregated Kyǒngsǒng in the 1920s and the Reception of Hollywood Prestige Pictures)

  • 안세정
    • 대중서사연구
    • /
    • 제27권1호
    • /
    • pp.53-98
    • /
    • 2021
  • 본 논문은 초창기 스튜디오 시스템의 설립과 함께 본격적으로 상품화한 미국영화와 할리우드라는 산업적 표상이 1920년대 경성의 조선인 극장가에 수용되었던 한 양상을 검토한다. 특히, 고급영화상설관을 지향했던 조선극장의 영화관 프로그램과 홍보 전략에 초점을 맞추어 특작영화 수입을 둘러싼 조선인 상영업자들의 경쟁을 살펴보고 그와 함께 초래된 관객성 분화의 단초를 추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한 본 논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제작비가 많이 투입된 특작영화 제작의 역사적, 경제적 배경을 할리우드 거대 영화사들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추구했던 규모의 경제를 통해 비교영화사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영화라는 상품이 브랜드가 되고, 계획된 홍보와 마케팅을 바탕으로 전략적으로 판매될 수밖에 없었던 경제적 동기를 분석할 것이다. 둘째, 경성의 조선인 극장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장편영화로의 이행을 감행했던 조선극장이 미국 파라마운트 회사의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브랜드 인지도를 전용하여 고급상설관으로서 차별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려 했던 노력을 주보와 전단지 읽기를 통해 재구성한다. 기존의 일제 강점기 영화와 극장문화 연구에서 홍보와 마케팅의 역할은 단편적인 언급 외에는 상대적으로 연구가 미진한 영역이었다. 본 논문은 주보와 전단지가 수행한 홍보와 매개의 기능에 주목하여, 활자와 이미지를 통한 할리우드 특작 영화 '읽기'를 시도한다. 주보와 전단지는 영화를 홍보하고, 관객에게 영화 선택을 도울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상영업자들이 주도적으로 발행한 선전 홍보물이다. 개봉될 영화에 대한 줄거리와 그 밖의 다양한 내용을 글과 이미지를 이용해 구현했던 인쇄물은 관객들의 영화'보기'를 보완하는 독립적인 '읽기'의 매체이자 영화상품의 유통과정의 양쪽 스펙트럼에 존재하는 생산과 수용을 연결하는 매개적인 매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