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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실크로드와 고조선 경금 제직기의 연관성 고찰 (Relationship between the Ancient Silk Road and High-technology Machine in Producing Kyung-Geum)

  • 김지수;나영주
    • 감성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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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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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7-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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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실크로드의 역사를 다시 조명하여 실크로드의 주역이었던 고조선의 아름다운 실크의 감성을 찾아보고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의 역사를 알아보고자 한다. 연구 방법은 고서, 서적, 논문, 유적지 발굴 유물들을 분석하는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였으며, 유물에 대한 자료는 다양한 서적과 논문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관련 유물사진들을 수집한 2차적 자료를 분석하였다. 연구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고대 실크로드와 고대 동양에서 발견된 고조선의 경금의 실크 생산 환경을 조사한다. 두 번째, 고조선의 경금의 고도의 제작기술에 대해 조사한다. 본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BC 4500년 홍산문화의 동이족으로부터 발견된 옥으로 만든 누에를 통해 고조선의 실크 생산 시기를 추론할 수 있다. 신장자치구 누란, 아스타나, 니야 등에서 경금이 많이 출토되었으며 가장 오래된 경금은 기원전 11세기경으로 서 발해만 고조선의 수도 중 하나였던 조양에서 발굴된 것이다. 서양의 브로케이드 및 다마스크의 기원으로 보이는 경금은 고조선의 수평 사각직기인 제화루기로 고도의 제직기술의 발전된 직기를 통해서 생산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를 통해 고대 실크로드의 특징은 기원전 5-6세기경 발해만 유역의 고조선에서 생산한 경금 견직물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한나라의 사직기나 서아시아의 수직직기로 경금 제직이 불가능하며 고조선의 제화루직기과 함께 고도의 제직기술을 통해서만 경금이 탄생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연구결과를 토대로 고대의 실크에 관한 역사 연구를 이어나가기 위해 중요한 초석이 될 것이며, 앞으로 고대 실크에 관한 후속 연구에 필요한 기초 자료로 제공되기 바란다.

밀양 금시당(今是堂) 12경의 문화경관 해석 (Interpretation of Cultural Landscape at the Geumsidang(今是堂) sibigyung(12 Landscapes) in Miryang, Gyungnam)

  • 엄태건;김수진;박정임;강한민;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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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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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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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조선 중기 밀양의 부호세력이었던 여주이씨 일가의 금시당 이광진 유적을 중심으로 그림, 시문, 기문 등에 나타나고 있는 문화경관으로서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금시당 이광진은 사회적 혼란기였던 문정왕후의 죽음 이후 중기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응천강변의 백곡에 터를 잡고 금시당을 건립하여 별서를 경영하고자 하였는데, 그가 경영한 금시당은 숙부이자 스승인 월연 이태로부터 자연관과 효행, 산수경영 등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금시당십이경도는 이경홍이 병환으로 위중한 아버지 이광진을 위로하고자 금시당 주변의 아름다운 12경관을 그린 것으로 구전되며, 꾀꼬리봉, 용두산, 무봉사, 마암산, 월연대, 사인당 마을, 영남루, 밀양읍성, 배나무 소, 밤나무 숲, 밀양강변, 삼문동들 등 당시 여주이씨 일가가 소유하고 있었던 땅과 관아를 경관 대상으로 하여 소상팔경이나 사시팔경의 관념적인 산수화가 아닌 실경을 담고 있는 산수화이다. 금시당십이경시는 금시당십이경도에 근거하여 작성된 제화시로서 이광진의 11대손 이용구가 지은 것으로 시간과 계절 그리고 기상의 변화를 노래하였다. 시 12수 모두 칠언절구로 글자 수가 모두 28자로 이루어졌으며, 단순히 그림의 외형적인 묘사가 아닌 작자의 개성에 의해 재산출되었기 때문에 그림에서 보이는 요소들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금시당십이경도는 단순히 효행의 의미뿐만 아니라 밀양의 부호세력으로서 여주이씨 일가 소유의 장원을 나타내고 있으며, 금시당십이경시는 그림을 재산출하여 특정한 명승지로 변화시켜 여주이씨 일가 소유의 영역성을 보다 강화시킬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