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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정재 <오양선>의 전통문화콘텐츠화 시론 - 아시아 전통춤의 전파와 변용을 바탕으로 - (A Direction of Developing a Traditional Cultural Content of Korean Court Dance Oyangseon - With a Base on the Historical Transmission, Reception of Asian Traditional Dance -)

  • 허동성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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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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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09-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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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연구의 기본 취의는 역사적으로 문화적 친연성을 지닌 아시아권의 전통춤을 대상으로 한 전통문화콘텐츠 구축을 위한 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의 당악정재 곡목인 <오양선(五羊仙)>을 한 예범으로 그 역사적, 문학적 근거를 통해 그 배경서사의 연원이 고대 남월(南越; 베트남) 지역의 오양선 설화에 있음을 확인하였다. 즉, 다섯 신선이 오색의 양을 타고 오양성(五羊城; 현재의 중국 광주(廣州)에 내려와 여섯 개의 벼이삭(六穗?)을 하사하였다는 설화이다. 나아가 후대에 쓰여진 베트남의 구전설화 <월정전(越井傳)>, 중국의 전기(傳奇) 작품인 <최위(崔?)>가 이 원(原)서사에서 비롯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반면 우리나라 <오양선>의 창사에 나타난 배경서사는 원서사에 서왕모와 천도 모티프를 추가하여 군왕의 축수(祝壽)와 덕치, 나라의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의례적 모티프를 강화하였다. 본고에서는 3국 내 오양선 서사의 이러한 공통성에 주목하여 그를 소재로 한 각국 전통춤의 전승 현황을 추적한 바 중국의 경우 최근 우리나라 <오양선>을 참고하여 <오양선무>를 재창작한 반면 베트남의 경우 전승이 부재하였다. 그에 따라 전통문화콘텐츠 구축 프로젝트의 추진을 위해 베트남 공연단을 섭외하여 <월정전> 설화를 소재로 한 <치유의 쑥잎>이란 곡목을 창작케 하였다. 그 결과 오양선 설화를 소재로 한 3국의 춤을 한 무대에서 합연함으로써 아시아 악무의 공통적 서사 기반에 기초한 새로운 전통문화콘텐츠 구축의 시론적 방향성을 제시하고 나아가 춤을 통한 아시아 문화공동체 구축의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전통 상단예불의 음악적 특징 고찰 - 조계종과 태고종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Musical Characteristics of Traditional-Sangdanyebul - Focusing on the Jogye Order and Taego Order -)

  • 차형석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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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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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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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연구의 기본 취의는 역사적으로 문화적 친연성을 지닌 아시아권의 전통춤을 대상으로 한 전통문화콘텐츠 구축을 위한 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의 당악정재 곡목인 <오양선(五羊仙)>을 한 예범으로 그 역사적, 문학적 근거를 통해 그 배경서사의 연원이 고대 남월(南越; 베트남) 지역의 오양선 설화에 있음을 확인하였다. 즉, 다섯 신선이 오색의 양을 타고 오양성(五羊城; 현재의 중국 광주(廣州))에 내려와 여섯 개의 벼이삭(六穗?)을 하사하였다는 설화이다. 나아가 후대에 쓰여진 베트남의 구전설화 <월정전(越井傳)>, 중국의 전기(傳奇) 작품인 <최위(崔?)>가 이 원(原)서사에서 비롯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반면 우리나라 <오양선>의 창사에 나타난 배경서사는 원서사에 서왕모와 천도 모티프를 추가하여 군왕의 축수(祝壽)와 덕치, 나라의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의례적 모티프를 강화하였다. 본고에서는 3국 내 오양선 서사의 이러한 공통성에 주목하여 그를 소재로 한 각국 전통춤의 전승 현황을 추적한 바 중국의 경우 최근 우리나라 <오양선>을 참고하여 <오양선무>를 재창작한 반면 베트남의 경우 전승이 부재하였다. 그에 따라 전통문화콘텐츠 구축 프로젝트의 추진을 위해 베트남 공연단을 섭외하여 <월정전> 설화를 소재로 한 <치유의 쑥잎>이란 곡목을 창작케 하였다. 그 결과 오양선 설화를 소재로 한 3국의 춤을 한 무대에서 합연함으로써 아시아 악무의 공통적 서사 기반에 기초한 새로운 전통문화콘텐츠 구축의 시론적 방향성을 제시하고 나아가 춤을 통한 아시아 문화공동체 구축의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조선후기 궁궐의 전각(殿閣) 월대(月臺)와 의례 - <동궐도>와 <서궐도안>을 대상으로 - (The Palaces Weoldae(月臺) structure, in the latter half period of Joseon, and related rituals)

  • 이현진;손신영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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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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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9-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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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조선시대 궁궐에 조성되어 있는 월대는 정전(正殿)과 같은 위격이 높은 건물 앞에 놓인 평평한 대(臺)이다. 법전이나 국가전례서에는 월대의 정의나 조성관련 규정이 수록되지 않았다. 조선후기 대표적인 궁궐 그림인 <동궐도(東闕圖)>와 <서궐도안(西闕圖案)>에는 외전(外殿)의 정전(正殿) 편전(便殿) 정침(正寢) 침전(寢殿) 동궁(東宮) 등에 월대가 조성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월대가 마련되어 있는 이 건물들은 왕실 구성원 중 국왕이나 왕후 세자 세손 등과 관련 있다. 이들은 법전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 법의 규정 밖에 있는 왕실의 사람들이다. 살아 있을 때 그곳에서 정무를 보거나 거처하고, 죽은 뒤에는 신주(神主)를 봉안하는 혼전(魂殿) 또는 어진(御眞)을 봉안하는 진전(眞殿)으로 활용된 공간이다. 조선은 신분제적 질서가 엄격한 유교 국가였고, 이는 궁궐의 전각에도 적용되었다. <동궐도>와 <서궐도안>에 월대가 묘사된 전각들은 월대의 존재만으로도 여타 전각과는 위상이 달랐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월대가 있는 전각 중 의례를 거행한 곳은 외전의 정전이 대부분이다. 외전의 정전에서 국왕이 직접 맹세를 한다거나, 제사를 지낼 때 향(香)을 직접 전한다거나, 명나라 세 황제를 위해 조성한 황단(皇壇)에서 망배례(望拜禮)를 올리는 등의 의례를 거행하였다. 다음은 월대와 거기에서 행한 의례를 통해 본 양궐(兩闕)의 관계이다. 조선전기에는 경복궁과 동궐(東闕)을 양궐로 보았는데, 임진왜란 이후로 경복궁이 불타면서 동궐 및 서궐(西闕)이 양궐을 형성하면서 법궁(法宮)이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바뀌었다. 일반적으로 국왕이 다른 궁궐로 옮겨가면 혼전의 신주나 진전의 어진도 함께 가기 마련이다. 따라서 옮겨간 궁궐에 있는 전각을 혼전이나 진전으로 삼아 의례를 행하였다. 그런데 영조의 경우는 경희궁으로 옮겨간 뒤에도 창덕궁에 있는 진전에 배알(拜謁)하였다. 경희궁으로 옮겨갔다고 해서 경희궁 중심으로 궁궐을 운영한 것이 아니라 창덕궁 창경궁과 유기적으로 궁궐을 운영하였다.

연행록의 계보적 독해 - 18세기 전반 노론 사대신 전주이씨 집안 연행 기록의 개관과 관심지향 분석 - (Genealogical reading on YeonHangrok : A general survey on a series of YeonHang documents of 18th Century No-Ron Jeon-Ju Lee's Family(老論 全州李氏) and an analysis on their points of concern)

  • 김현미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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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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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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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고는 개인적으로 지어진 한문 산문 연행록(燕行錄)이 본격적으로 창작되기 시작한 18세기 전반의 구체적인 창작층과 창작된 산문 연행록의 관심지향 양상을 살피기 위하여 쓰여졌다. 실지적인 작품을 다수 남겼으나, 문헌군 형성 전에 주목받지 못하였던 작자층 중에 '서인 노론 사대신' 중 소재 이이명, 그 아들 일암 이기지, 한포재 이건명의 사적(私的) 한문 산문 연행기록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우선 현전하는 문집에 수록되어 있는 그들의 연행 관련 글을 살핀 결과, 소재와 일암, 한포재의 연행 의식은 '연행의 중요성'을 의식하며 연행의 임무를 경험 대상에 대한 '관찰과 주목'이라는 태도로 실행해야 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연행 의식이 구체적으로 그들의 한문 산문 연행기록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가를 살핀 결과는 다음과 같다. 소재 이이명과 일암 이기지 부자의 1720년 사행 결과로 나온 "연행잡지"와 "일암연기"는, 공통적으로 노가재 김창업과 그의 저작 "노가재연행일기"(1712)가 창작의 원인이 되었지만 서술 방법에 있어 화소의 편성을 보면 일암은 천주당을 중심한 서양 문화, 길에서 본 문물의 번성 관찰, 역관 등에게서 들은 현재의 정세 등 자신의 관심사에 따른 직접 체험들의 영역을 편성하고 있으며, 그와 함께 노가재의 교유 인물과 견문을 구비하는 방식을 띤다. 한편 아버지 소재는 자신이 직접 관찰하고 경험한 현상과 일들을 통하여 그의 연행 기록을 작성하는 원칙으로 조선에 영향을 준 청(淸)의 정세, 세법(稅法) 등 제도에 대한 관심지향성을 보인다. 1721년 세제 책봉을 위한 주청사로 간 한포재 이건명의 "한포재 사행일기"에서는, 앞선 두 개의 연행록처럼 자신의 연행 기록을 촉발시킨 사람이나 작품을 거론하지 않지만 서술의 곳곳에서 소재와 일암의 기록, 혹은 전해 들었을 그들의 경험 견문이 반영되어있다. "한포재사행일기"는 등장화소의 성격상 '공무' 와 '사신의 사명'을 중시하고 그 과정을 충실히 소개하고 분석한다는 점에서 소재의 연행기록인 "연행잡지"와 가깝다. 그러나, 자신의 심정 술회를 하기 위해 "일암연기"의 점술 화소를 유입하기도 하고, 공무 외의 견문과 체험에 대해서도 자신이 경험한 것을 간략하게 기록한다. 결국 18세기 전기 한문 산문 연행록의 주 작자층인 서인 노론계 전주 이씨의 작자들은 경험으로서 '사행의 중요성'을 공통적으로 인지한 채로, 자신들이 직접 경험한 영역을 주목하고 관찰하면서 연행록의 내용을 제시하였다. 소재와 한포재는 '공무'와 '사명'의 범주로 특화되며, 일암 이기지는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타문화의 일상 문물과 교유로까지 넓어진다.

조경(趙璥) 시(詩)의 천기유로양상(天機流露樣相)과 그 의미(意味) (The aspect of the revelation of profound secrets of nature in the Poetry of Jo Gyeong[趙璥] and its meaning)

  • 유호진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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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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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5-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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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하서(荷棲) 조경(趙璥) 시(詩)의 특징은 우선 신선, 꽃의 신, 귀신, 주조(朱鳥), 용(龍) 등 신이한 존재가 등장하는 환상적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하서가 도학의 정치이상과 사회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간극을 인식하고 그로 인한 비애(悲哀)를 표출한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그가 당대 현실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시에는 여느 도학자의 시처럼 '봄'이라는 상징이 출현하는데, 이는 절망 속에서도 세상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는 자연물을 형용함에 있어 그 배후에 놓인 우주의 이법(理法)과 함께 자연물 자체의 활처(活處)를 선명하고 예리하게 묘사하였다. 조선전기 도학자들이 궁극적으로 천리(天理)와 본성(本性)의 체인(體認)이라는 주제를 겨냥한 데 비하여 그는 사물의 천기(天機)를 묘파하는 쪽으로 시세계를 더 확장했던 것이다. 특히 산수(山水)의 정신(精神)을 묘사한 시들은 강인한 힘과 역동적인 운동을 형상화 함으로써 쇠잔해가는 세상에서 용맹스럽게 전진하려는 인생태도를 암시하였다. 자연물의 천기(天機)에 주목한 하서는 새로운 매화의 형상을 그려냄으로써 더욱 풍부하게 자신의 인생이상(人生理想)을 제시하였다. 이전의 매화시와는 달리 하서의 매화시에서는 매화의 모습이 도를 체득한 도인(道人)의 형상, 동시대인을 감화시키는 대인(大人)의 형상, 그리고 천기(天機)를 발현한 처사(處士)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어두운 사회 현실을 의식하면서 매화의 모습을 도인(道人)과 대인(大人)의 형상으로 그려냈다는 점도 특이하지만, 매화를 천기(天機)를 발현한 존재로서 묘사하였다는 점은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는 천진(天眞)한 인격에 대한 지향과 그러한 인격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드러내어 인간적인 자아 형상을 선명하게 그려냈다고 할 수 있다. 하서는 당대의 천기론적 사유를 도학시 창작에 수용하여 보다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인격이상(人格理想)을 창조했던 것이다. 이는 18세기 도학시의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봉은사 수륙재의 역사적 전개 (Historical development of The water and land ceremony performed by Bongeunsa temple in Joseon Dynasty)

  • 탁효정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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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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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9-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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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논문은 봉은사의 기원과 조선시대 봉은사에서 설행된 수륙재의 역사적 의미를 고찰한 연구이다. 봉은사는 원래 경기도 광주군 학당동(오늘날의 선릉 능역 내)에 위치했던 견성암이라는 이름의 암자였다. 견성암의 창건시기는 불분명하나, 조선전기에 광평대군의 재암(齋庵)으로 지정되면서 크게 중창되었다. 광평대군부인 신씨는 남편의 무덤 근처에 있던 견성암에 70결의 대토지와 1000여 구의 노비를 시주하여 대찰(大刹)로 중창하였다. 이후 견성암은 견성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1450년 성종의 능(선릉(宣陵))이 광평대군묘와 견성사가 위치한 곳에 들어서면서 광평대군묘는 인근의 대모산 자락으로 이장되었다. 하지만 견성사는 그대로 남아 성종의 능침사로 역할하게 되었고 절 이름은 봉은사로 개칭되었다. 1562년 중종의 능(정릉(靖陵))이 선릉 부근으로 이장되면서 봉은사는 선 정릉의 능침사를 겸하게 되었다. 1563년 순회세자가 요절한 뒤에는 세자의 원당이 봉은사 내에 마련되었다. 견성암 때부터 봉은사로 개칭된 이후까지 이 절에서는 수륙재가 계속 설행되었다. 하지만 수륙재의 성격은 시기별로 조금씩 달라졌다. 세조대부터 성종대까지 견성암과 견성사에서 설행된 수륙재는 광평대군과 세종, 소헌왕후의 명복을 비는 천도재의 성격과 왕실 및 사부대중의 안녕을 기원하는 대중법회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이후 연산군~명종대에 이르러 선정릉의 능침사로 역할할 당시 봉은사에서 설행된 수륙재는 왕의 천도재 성격이 강했다. 조선후기에도 봉은사는 순회세자의 원당으로 역할하였기 때문에 봉은사는 왕실 수륙재도량으로 계속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병자호란 이후 봉은사는 남한산성에서 전사한 희생자들을 위무하는 국행 수륙재도량으로도 역할하였다.

신숙주(申叔舟) 시(詩)에 나타난 인생이상(人生理想)의 전변(轉變) (The Change of Iife's ideal in the Poetry by Shin Suk-Ju)

  • 유호진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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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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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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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이 논문은 15세기 후반 한시의 특성을 조명하고자 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신숙주 시에 나타난 시인의 의식을 고찰한 것이다. 신숙주의 시는 작가의 문학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처신, 소위 '변절'의 문제로 인해 연구자들의 관심권 밖에 밀려나 있었다. 그러나 신숙주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위해서도 그의 시는 자세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신숙주의 시는 세조의 정변이 일어났던 시기를 중심으로 양분할 수 있다. 그의 전기 시는 시인이 자족적인 세계 속에서 충만한 자긍심과 여유로운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의 경세이상은 실은 불후(不朽)의 공명(功名)을 성취하려는 영웅의식(英雄意識)의 소산이었다. 이 영웅의식(英雄意識)과 평생 그의 의식을 지배했던 순명의식(順命意識)에 의해 그는 세조의 정변에 동조하게 된다. 그러나 후기 시는 공명(功名)을 성취했던 시인의 삶이 그 자신에게 정신적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또렷이 보여준다. 그는 세조의 정변에 동조함으로 인해 배태된 양심의 괴로움을 호소하였고 자신이 성취한 공업(功業), 나아가 인생 자체가 허무함을 토로하고, 세상에서 말하는 시비(是非) 진위(眞僞) 선악(善惡) 등이 주관적이고 허망한 것이라는 인식에 도달하였다. 더 나아가 세상 만물 자체도 환영(幻影)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이러한 인식은 불가의 공(空) 사상(思想)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그러한 사유 과정을 거쳐 시인은 허명(虛明)한 마음과 한가로운 삶에 대한 지향을 노래하게 된다. 신숙주의 시에 나타난 영웅의식, 불가적 사유, 허명(虛明)한 마음에 대한 지향 등은 서거정을 비롯하여 15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주요 문인들의 시에서 자주 나타나는 사유들이다. 결국 양심의 괴로움과 인생에 대한 허무감을 넘어서려 했던 시인의 진지한 모색은 15세기 관료문인들의 인생태도와 그들의 문학에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당대 주요 문인들이 신숙주 문학의 전통을 이었다는 성현(成俔)의 진술은 의례적인 수사가 아니었던 셈이다.

패턴전사 프린팅을 활용한 리튬이온 배터리 양극 기초소재 Li2CO3의 나노스케일 패턴화 방법 (Nanoscale Pattern Formation of Li2CO3 for Lithium-Ion Battery Anode Material by Pattern Transfer Printing)

  • 강영림;박태완;박은수;이정훈;왕제필;박운익
    • 마이크로전자및패키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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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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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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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지난 수십년간 인류에게 핵심적인 에너지 자원이었던 화석연료가 갈수록 고갈되고 있고, 산업발전에 따른 오염이 심해지고 있는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친환경 이차전지, 수소발생 에너지 장치, 에너지 저장 시스템 등과 관련한 새로운 에너지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리튬이온 배터리 (Lithium ion battery, LIB)는 높은 에너지 밀도와 긴 수명으로 인해, 대용량 배터리로 응용하기에 적합하고 산업적 응용이 가능한 차세대 에너지 장치로 여겨진다. 하지만, 친환경 전기 자동차, 드론 등 증가하는 배터리 시장을 고려할 때, 수명이 다한 이유로 어느 순간부터 많은 양의 배터리 폐기물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폐전지에서 리튬 및 각종 유가금속을 회수하는 공정개발이 요구되는 동시에, 이를 재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사회적으로 요구된다. 본 연구에서는, 폐전지의 재활용 전략소재 중 하나인, 리튬이온 배터리의 대표적 양극 소재 Li2CO3의 나노스케일 패턴 제조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Li2CO3 분말을 진공 내 가압하여 성형하고, 고온 소결을 통하여 매우 순수한 Li2CO3 박막 증착용 3인치 스퍼터 타겟을 성공적으로 제작하였다. 해당 타겟을 스퍼터 장비에 장착하여, 나노 패턴전사 프린팅 공정을 이용하여 250 nm 선 폭을 갖는, 매우 잘 정렬된 Li2CO3 라인 패턴을 SiO2/Si 기판 위에 성공적으로 형성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패턴전사 프린팅 공정을 기반으로, 금속, 유리, 유연 고분자 기판, 그리고 굴곡진 고글의 표면에까지 Li2CO3 라인 패턴을 성공적으로 형성하였다. 해당 결과물은 향후, 배터리 소자에 사용되는 다양한 기능성 소재의 박막화에 응용될 것으로 기대되고, 특히 다양한 기판 위에서의 리튬이온 배터리 소자의 성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자연과학적 분석을 통한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論山 灌燭寺 石造彌勒菩薩立像) 청동풍탁(靑銅風鐸)의 제작 기법 연구 (The Manufacturing Techniques of the Stone Standing Maitreya Bodhisattva Bronze Wind Chimes of Gwanchoksa Temple, Nonsan)

  • 이소연;정광용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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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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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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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풍탁은 한국, 중국, 일본에서 오랜 기간 사용되고 있는 불교 장엄구이다. 하지만 풍탁은 제작 시기를 추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며 유물의 수가 많지 않아 기초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므로 본 연구에서는 미술사적 연구를 참고하여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의 보개에 장식되어 있는 청동풍탁 8점을 형태학적으로 분류하였으며, 이에 따른 제작 기법 및 제작 시기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규명하였다. 연구 결과를 종합해볼 때 보개의 위치에 따라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청동풍탁은 형태 및 제작 기법의 특징이 나타났다. 대형인 하부 보개 청동풍탁 4점은 Cu-Sn-Pb 삼원계 합금을 주조 기법으로 제작하였으며, 서산 출토 동제풍탁과 형태가 매우 흡사하여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확인된다. 중형인 상부 보개 북측 청동풍탁 2점은 Cu-Sn 또는 Cu-Sn-Pb 합금을 단조 기법으로 제작하였으며, 고려 후기~조선시대에 나타나는 원통형 풍탁과 형태가 유사하다. 소형인 상부 보개 남측 청동풍탁 2점은 미량의 아연(Zn)이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Cu-Sn-Pb 삼원계 합금을 주조 기법으로 제작하였으며, 합금 성분 및 치게의 형태 등을 통해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미세조직 관찰 및 성분 분석을 통해 하부 보개 청동풍탁 2점은 Cu:Sn:Pb≒80:15:5의 합금비를 지닌 삼원계 합금을 주조 후 서냉하여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상부 보개 동북측 청동풍탁은 방짜유기와 유사한 합금비인 Cu-Sn 이원계 합금을 소재로 단조 기법으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된다. 이를 국내 풍탁의 선행 연구와 비교·분석한 결과, 하부 보개 동측 청동풍탁 2점은 타명기에 적합한 주석 함유량을 지닌 고려시대에 제작된 강진 월남사지 출토 금동풍탁의 합금 조성비와 유사하게 확인된다. 방짜유기와 유사한 합금비를 지닌 상부 보개 동북측 청동풍탁은 현재까지 연구된 풍탁 중 유일하게 단조 기법으로 제작된 사례이다. 본 연구를 통해 풍탁의 제작 시기를 형태학적 특징으로 구분하는 데 있어 과학적인 근거를 통해 보다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개성 인삼상인의 근대기업화와 ESG 경영이념 (Modern Enterprise & ESG Management philosophy of Gaeseong Ginseng Merchant)

  • 옥순종
    • 인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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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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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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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개성은 18세기 들어 성행한 인삼 재배와 교역으로 막대한 자본이 축적되면서 근대적 자본주의가 발달할 조건을 갖추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인삼 상인들은 인삼에서 나온 자본을 단순히 지주자본에 묶어두지 않고 산업자본, 금융자본으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근대 기업가로 활동한다. 20세기 초반 설립된 개성전기주식회사, 대한천일은행, 개성양조주식회사, 송고실업장 등은 인삼상인들이 주축이 되어 공동 투자하고 공동경영을 맡았다. 이들은 기업이윤만을 추구하지 않고 사회 지도층으로서 개성상업학교 건립, 고려시보 창간, 개성좌 운영 등 개성의 교육, 문화발전을 위해 후원자로 나서 지역발전을 견인한다. 자유주의 경제학에서는 주주이익 우선이 기업의 목적이었지만 21세기 들어와서는 이해관계자(stakeholder)에 대한 사회책임을 강조한다. 또 재무적 성과를 중시하는 던 경향에서 비재무적 요소가 더 중시되는 ESG(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경영이 중요해지고 있다. ESG 경영은 환경을 생각하고 사회가치를 창출 공유하며 기업의 투명성을 중시한다. 과거에는 돈을 잘 버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사회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좋은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20세기 초반 인삼상인들의 기업활동에서는 현대 경영의 필수요소인 기업가 정신과 ESG 경영이 실현되고 있었다. 이들이 시대를 앞서 현대적 경영이념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개성의 지역성에서 비롯된다. 개성인들은 조선왕조의 정치적 차별로 관직 진출의 길이 막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엄격한 신분제하에서 양반, 지식인이 상업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우수한 인력이 대거 상업으로 진출하면서 개성의 상업은 더욱 활발했고 상인의 가치관도 선진적이었다. 대표적인 인삼상인 손봉상, 공성학은 상인이면서 유학자, 문인이었다. 인삼상인 2-3 세대들은 해외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개성으로 돌아와 삼업을 잇고 인삼에서 나온 자본을 기반으로 근대적 기업을 설립했다. 20세기 초반 인삼상인들의 상업활동을 분석하면 ESG 경영이념이 배여 있는 선구적 기업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인삼처럼 개성 인삼상인의 상업활동과 근대 기업화에서는 사람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