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일본의 근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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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극의 구조와 현실 인식 -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와 <장한몽>을 중심으로 - (Structure and Actual Cognition of Korean 'Sin-Pa' Play - Focusing on and )

  • 류경호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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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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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5-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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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신파극은 식민지라는 사회적 정황을 근거로 필연적 발생배경을 갖고 있으면서 국민들의 반일 감정을 삭이는 삶의 분출구 역할을 해왔다. 신파극에 대한 연구는 신파극이 '개화'라는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며 우리 민중 기저의 흥미와 위안의 대중 문학적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파극이 보여준 당시 사실주의 근대극이 추종할 수 없이 많았던 공연 횟수라든가 당대의 청관중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서 연극의 대중화 공로를 무시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본고는 신파극이 존재했던 사회 정치 환경 속에서 신파극의 구조의 특이성들을 바탕으로 당시의 문화적인 장을 검토하여 신파극이 식민지 문화 '장' 내에서 지배이데올로기와 반응하면서 수행한 이데올로기적인 기능과 효과가 무엇이었는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그 동안 연구사에서 간과되어온 신파극의 구조와 양식적 특성 그리고 연극사 혹은 문화사적인 위치의 규정이 요구된다. 이러한 현실은 식민지시대의 국민적 정서를 도외시한 채 신파극단장들이 상업적인 측면의 번안 작품 공연에 주력하여 실질적인 우리나라 전통연극과의 단절을 가져왔으며, 한일 합방에 따라 일본 연극을 곧바로 직수입해서 모방한 오점들에 너무 지나치게 주목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런 점에서 이 논문은 신파극의 구조와 식민지에서의 현실인식을 연관지어 살폈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신파극을 우리나라 근대 연극사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한 연극적 양식으로 보고, 이를 위해 대표적인 신파극 대본들로부터 그 구조적인 특징을 분석추출하였다. 또 그러한 신파극의 양식적 구조가 당대 사회와 어떠한 관련이 있는가를 분석했다. 그 결과,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장한몽>을 중심으로 한 당시의 대표적 신파극은 종래의 학자들의 주장과 서양의 멜로드라마의 일반적인 '자극-고통-벌칙'의 구조와는 달리 '자극-고통-패배'의 양식적 구조를 이루며 당대 사회의 식민지의 정치-사회적 맥락과 서로 필연적 상호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파악하였다. 신파극에 의해 생산된 이미지들은 근대의 문턱에서 변화하는 사회의 서열화 된 위계구도를 수동적으로 반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러한 위계구도를 반영하는 양식적 구조 속에서 식민지 제국주의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인식하였다. 또한 민중집단의 관계의 측면에서, 식민지 문화 '장'의 구조로서 신파극이 갖고 있는 이중성과 신파극의 사회-문화적 위치를 살펴야 한다. 신파극을 하나의 공연 혹은 문화현상으로 고려할 때, 공연 전체는 공연의 부분들 사이의 관계들로 빚어진 특징적인 귀결로 고려될 수 있다. 사회가 부분들의 유기적 관련들로 구성된 하나의 총체이듯, 신파극은 사회와의 관련 속에서 문화현상으로 표현된 또 하나의 총체이다. 이러한 신파극이라는 문화현상은 사회 안에 있는 하나의 구성물이다. 그러므로 좀 더 큰 구조들 즉 문화 '장'내에서 그것의 기능적 연관성을 밝혀낼 필요성이 존재한다.

대순진리회의 '세계종교' 가능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Possibility of 'World Religion' in Daesoon Jinrihoe)

  • 권동우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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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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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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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대순진리회는 교단 내부 구성원들에 있어서나 학계에 있어서나 '민족종교'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이 민족종교의 성격이 꽤 복잡하다. 곧 민족종교로서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한민족의 선민사상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류와 세계를 구제하겠다는 세계종교의 보편성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민족종교의 특수성과 세계종교의 보편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특수성과 보편성의 논리는 단지 대순진리회에만 국한된 특징이 아니다. 이미 세계적으로 많은 종교들이 민족종교와 세계종교의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가진다고 하는 이중성을 보여 왔다. 그 가운데 본고에서 주목한 것은 근대 일본에서 형성된 교파신도다. 근대 일본 정부가 국가신도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교파신도는 총 13개 종파가 형성되는데, 이들의 대부분은 일본인의 민족적 전통을 계승하는 민족종교라고 하면서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세계종교를 표방하면서 해외포교에 나선다. 그렇다면 이처럼 민족종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세계종교를 지향했던 교파신도의 해외포교는 어떻게 귀착되었고, 이들의 세계종교화는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본고에서는 이처럼 민족종교와 세계종교의 이중성을 보여 왔던 교파신도의 사례를 통해 대순진리회의 세계종교의 가능성을 살펴보고, 이를 위해 대순진리회가 지향해야 하는 길에 대해 약간의 제언을 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던 '민족종교'론 또는 '민중종교'론의 역사적 흐름에 대해 살펴볼 것이며, 한국에서 민족종교이면서 세계종교를 지향하고 있는 원불교의 사례도 점검하는 것으로 민족종교와 세계종교의 경계에 서 있는 대순진리회의 새로운 지향점에 대해 검토해 보고자 한다.

한국의 유전적 정보 생산 구조 (The Production Structure of Genetic Information in South Korea)

  • 이정호
    • 과학기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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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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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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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한국에서 중요한 과학적 개념의 형성과 그 사회적 유통에 기여하는 것은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에서 형성, 성숙, 정립된 후에 한국으로 유입되고 수용되는 과학 지식과 한국 사회가 근대화의 과정에 형성한 제도이다. 유전적 정보라는 개념도 이러한 맥락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유전적 정보 개념은 고전적 유전학의 틀에서 이해되는 유전, 또는 계승성의 개념에서 인간유전체 연구사업의 와중에서 등장하여 성숙한 유전체학과 생물정보학에 의해 확대 심화된 것이다. 본 연구는 서구적 개념 및 지식 생산 구조를 모델로 하는 개념적, 과학지식적, 제도적 통합성을 기준으로 한국에서 유전적 정보의 생산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한국에서 1980년대 중반에 나타났던 유전공학 담론은 한국에서 분자생물학의 발달은 촉진시켰지만, 생화학-생화학교실과 같은 균형성이 없이 유전공학-유전학교실의 불균형성이 존재하게되었다. 주로 의과대학의 (인간)유전학과 혹은 유전학교실의 수와 질에 있어서의 부족함 때문에 생명과학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에서도 크게 성공하지 못했고, 통합적, 거시적 발전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유전학의 발전적 재구성이라고 할 수 있는 유전체학은 한국에서는 유럽, 미국, 일본의 인간유전체연구사업의 발전 궤적의 '기초단계' 혹은 '제 1기' 형태에는 거의 인프라, 투자, 연구개발이 없었고 기능유전체학과 단백체학을 중심으로 하는 '성숙단계' 혹은 '제 2기' 형태를 주축으로 하여 한국의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유전체학과 같이 발달한 생물정보학에는 내적 구조에 이미 정보학과 연결되는 논리와 내용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정보기술(IT)의 아류 정도로 보는 편협하고 왜곡된 시각이 주도적인 가운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한국 생물정보학은 유전학 및 생명과학과의 통합적인 면에서는 결함을 노출하고 있다. 이러한 유전적 정보의 생산 구조가 가지는 문제점으로 인하여 한국에서 유전적 정보는 기초가 부실한 편이며 파편화된 유형으로 생산되어 나올 개연성을 가진다. 개념적, 제도적인 파편화의 사례는 개인식별의 유전학이 기존의 유전공학-유전학교실 체제로 흡수되지 못하고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에서 전문성과 연구실천을 확보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유전적 정보의 생산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은 한국의 생명공학과 시민사회운동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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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화재 인력거 재질분석 연구 (Study on Material Characteristic of Modern Cultural Heritage Rickshaw)

  • 김수철;최재완;이지은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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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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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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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근 현대문화재는 다양한 재질의 재료가 공존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문화재를 보존하고 관리함에 있어 근 현대문화재에 대한 재질분석이 미비한 실정이었다. 본 연구에서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인력거를 대상으로 각 재질별로 분석을 실시하였다. 금속, 목재, 도료, 섬유 및 가죽에 대해서 P-XRF, 수종분석, 도막층분석, FT-IR, 현미경 관찰을 통해 분석을 실시하였다. 분석결과 금속은 대부분 구리(Cu), 아연(Zn) 합금이 확인되었고 부분적으로 철(Fe)과 니켈(Ni)이 측정되었다. 특히 니켈(Ni) 합금은 근대시기에 와서 사용된 금속으로 인력거에 사용된 금속이 근 현대에 제작된 것으로 유추할 수 있었다. 목재는 참나무속, 대나무류, 편백나무류가 식별되었다. 편백나무류는 일본 자생종으로 목부재의 일부분이 일본에서 제작되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도막층은 인력거 외부에 5회 이상 도료가 칠해진 것으로 확인되었고 내부에서는 3회 정도 도료가 칠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내부에서 더 간단한 도색작업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섬유 및 가죽 분석결과 면(Cotton)과 양모(Wool)가 사용되었고 가죽은 우피(牛皮)를 이용한 것으로 사료된다. 본 연구 결과를 토대로 근 현대문화재 재질에 대한 기초 자료 및 진정성 있는 보존 연구에 활용될 것이라 기대한다.

국가신도의 국체신학과 공사(公私)관념: 《국체의 본의》를 중심으로 (The Kokutai Theology of State Shinto and Notion of Public-Private : Focusing on Kokutai no Hongi)

  • 박규태
    • 종교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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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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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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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근대일본 국가신도의 사상적 핵심은 천황제 이데올로기와 결부된 이른바 '국체'(國體)개념에 있다. 천양무궁의 신칙과 만세일계 및 현인신으로서의 천황관을 내용적 기축으로 삼는 이 국체개념은 1937년 문부성이 펴낸 ${\ll}$국체의 본의${\gg}$(國體の本義)로 집약되는데, 그 밑그림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형식적 기축이 바로 멸공봉사적 공사관념이다. 본고의 목적은 이런 멸공봉사적 공사관념에 입각한 국체 이데올로기를 '국체신학'으로 규정하면서 그것이 ${\ll}$국체의 본의${\gg}$에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어 나오며 그 신화적/신학적 의미가 국가신도의 종교성과 어떻게 결부되어 있는지를 규명하는 데에 있다. 나아가 본고는국가신도가 전후 일본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미학적 방식을 '공과 사의 공모'라는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하며, 이때 국가신도의 주요 텍스트로서 ${\ll}$국체의 본의${\gg}$를 비롯하여 <대일본제국헌법>(1889), <교육칙어>(1890), ${\ll}$유신의 대도${\gg}$(1940), ${\ll}$신민의 도${\gg}$(1941), ${\ll}$국사개설${\gg}$(1943), ${\ll}$신사본의${\gg}$(1944) 등에 주목할 것이다.

조선 후기 유리거울의 수입과 공예품의 특징 (A Study on Glass Mirror Trade and its Characteristics of Craft after Joseon Dynasty)

  • 박진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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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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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6-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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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조선시대 문헌에서는 유리거울을 서양경(西洋鏡), 양경(洋鏡), 파리경(玻璃鏡), 파려경(玻瓈鏡), 석경(石鏡)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렀고, 이를 경험하고 느꼈던 당시의 상황과 교역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살필 수 있다. 이를 통해 17세기 이후 청·러시아와의 교역을 중심으로 유리거울이 수입되었고, 조선 후기에 들어와 수입금지 품목에 포함되는 등 18세기에 들어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신문물로 확인되었다. 19세기에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상품으로 더 크게 확대되었고, 특히 일본과의 교역이 눈에 띄게 성장하였다. 18~19세기의 유리거울은 개인이 용모를 확인하는 기본적인 용도에서 벗어나 상업적인 용도로까지 폭넓게 활용되었다. 당시 중국이나 일본을 방문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에 관한 시각적 충격과 경험들을 글로 남겼고, 유리거울에 대한 유용함은 조선의 소비 욕구로 이어져 유리거울의 수입을 자극하였다. 이로 인해 18세기 이후 유리거울은 조선의 청동거울을 빠르게 대체하였고 유리거울을 이용한 새로운 공예품들이 제작 및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실내에서 사용하는 공예품으로 일체식 유리경갑(一體式 琉璃鏡匣)을 개발해 전통적으로 사용해왔던 빗접과 함께 이용해 편리하였다. 당시 경갑의 인기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를 비롯해 조선시대 풍속화에서도 잘 볼 수 있다. 또한 중국의 기형으로 볼 수 있는 경대(鏡臺)도 조선에서 많이 제작했는데 서랍 개수와 크기, 상자 형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한 여러 형태의 경대를 살필 수 있다. 또한 휴대용의 작은 면경도 조선만의 미감으로 표현한 길상 문양, 장식 기법을 통해 품격 있는 공예품들로 제작되었다. 19세기에 들어와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등 유럽에서도 유리거울을 수입했지만 19세기 말 이후에는 일본식의 공예품들이 성행하였다. 일본 명치~대정시대에 유행했던 유리경대가 수입되었고 대형의 유리거울을 이용한 공예품들이 사용되었다. 이른 시기부터 있었던 경병의 경우 응접실처럼 큰 공간에 진설하거나 연회를 위해 중국·일본으로부터 수입했으며, 서양식으로 거울을 벽에 걸거나 부착해 공간의 밝기를 조절하고 외부의 풍경을 들여와 실내를 장식하는 방법이 도입되었다.

근대 부산에서 대정공원의 성립 과정과 공간 구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Establishment Process and Spatial Composition of TaiSho Park in Modern Busan)

  • 강영조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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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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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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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대정공원은 운동장과 휴양 위락 시설을 겸비한 운동공원이다. 1910년 당시 부산 이사관 카메야마가 대만으로 이동할 때 그를 기념하기 위한 도시 시설로써 운동장의 건립에 관한 최초의 발의자는 당시 경제인들이었다. 하지만 운동장 건립은 카메야마의 죽음 이후인 1915년 무렵부터는 타이쇼 천황의 즉위 기념사업으로 진행하게 된다. 1917년 부산 부윤의 제안으로 운동장 건립이 본격화하고, 부지 선정 작업에 들어간다. 부지 선정지 후보를 두고 논의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운동장 부지 선정의 조건으로 먼저 운동장에 합당한 유효 부지 면적, 시가지와의 거리 다시 말해서 접근성, 그리고 예산이었다. 수차례의 논의와 실제 부지 조사의 결과, 전염병원이 이전하고 난 뒤 소학교가 들어오기로 한 부지를 공원 부지로 선정한다. 대정공원의 공사비는 모두 부산부민들의 기부금으로 마련하게 된다. 지역 상공인과 회사, 관공서, 지역별로 기부금 모금 위원회를 구성하여 조직적으로 모금하였다. 그 결과, 공사비 전액을 부민의 기부금으로 조성하게 된다. 대정공원은 크게 운동공간과 휴양, 위락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공원의 세 방향에 입구를 두고, 외주는 식재를 하였다. 야구장은 공원의 중앙부에 자리 잡았고, 테니스 코트 2곳도 마련하였다. 일본 스모장도 공원의 북쪽에 마련하였다. 대정공원은 한국 근대 최초의 체육공원이었다. 그리고 공사비 전액을 주민의 모금으로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1910년 당시 부산에서 운동장을 건립해야만 했던 이유를 밝히는 것이 남은 연구 과제다.

일본 농업분야 정보기술활용 성공사례와 전망 (Prospective for Successful IT in Agriculture)

  • Seishi Ninomiya;Byong-Lyol Lee
    • 한국농림기상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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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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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7-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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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농업분야에서의 IT역할에 대한 요약과 함께, 일본의 경험을 살펴보는 한편 당면 현안의 파악, 그리고 정보기술 활용의 성공사례를 들어 문제해결 방안의 하나로 신기술을 소개하였다. IT 활용능력 여부는 성공적인 IT현장활용의 매우 중요한 요소로,. IT 관련 교육/훈련의 강화 외에, 사용이 용이한 인터페이스 여하는 IT활용력 제고의 커다란 도전이기도 하다. 기존의 자판형 PC 인터페이스는 대다수 농민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면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최종사용자들에게 사용이 보다 쉬운 컴퓨터시스템을 제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기술들이 현재 개발되어 있다. 예를 들어 휴대폰기반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의 하나로 매우 유망한 기술임에 틀림없다. 휴대폰 사용은 개도국에서도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단 몇 개의 키만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농민들은 복잡한 의사결정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휴대폰의 이러한 단순한 화면도 대개 충분한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제2, 3세대 휴대폰은 인터넷에 대한 무결성 접속을 제공하므로, 휴대폰인터페이스에 적합한 활용물을 개발한다면 기존 PC의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지로 현재 휴대폰은 자료수집 뿐만 아니라 포장에서의 현장 의사결정지원에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로렌슨 등과 사사끼 등은 휴대폰기반 기상정보취득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농민이 항상 자신의 포장내 기상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병충해예찰시스템과 같은 보다 실용적인 응용 프로그램도 이미 초기모형이 개발되어 있다. PC보다 사용이 용이한 인터페이스와 포장에서의 기동성 등이 농민들에 의해 환영받고 있는 점이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농촌의 미진한 네트워크 하부구조에 기인한다. 불행히도 농촌지역에서는 상업통신업자간 치열한 경쟁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문제는 결국 정부의 책임일 수 밖에 없다. 거대한 산맥에서 금을 채굴하는 것과 유사한 정보탐색이라는 기술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근대농업이 시작된 이래 약 한세기에 걸친 농업 생산과 실험연구의 결과, 일본은 방대한 농업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장기자료는 농업생산에서의 신지식을 생산제공하는 데 필수적인 결정적인 정보원일지 모른다. 정보탐색 기술은 이러한 방대한 자료의 분석을 통한 미지의 사실을 추론하는 유망한 기술로 이용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IT기술에 의해 농업이 힘을 얻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실용적인 IT 대응책이 농업을 강화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는 궁색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보편적인 해답이 없기 때문이다. 농업은 전형적으로 기후와 토양조건, 작부양식, 시장요구도 등에 좌우되는 지역 특이적 특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이는 개별 여건에 알맞는 유연한 기술 적용 여부를 결정하는 IT활용시 의사 결정자을 하는 사람의 몫이 될 것이다.

이능화의 전통사상 연구와 그 의미 (A Study on the Research of tradition thought and its implications of Lee Neung Hwa)

  • 조한석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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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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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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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능화는 일제강점기 한국학 연구의 선구자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의 한국학 연구 분야는 유 불 도는 물론 기독교 등 종교 분야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민속학분야에까지 걸쳐있으며, 그 영향력은 현재도 유효하다. 이 논문에서 이능화의 종교 연구 가운데 전통사상으로서 유교와 불교에 대한 그간의 연구를 정리하고 그 의미에 대하여 재평가했고, 그가 주장했던 '조선민족 고유의 종교'인 '단군신교'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마련해보았다. 다른 구한말의 개화 지식인의 경우처럼 이능화도 근대화 실패에 대한 역사적 반성에 고뇌하였고, 그 원인을 조선후기 정권과 주자학에 돌리면서 '주자만능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조선후기 주자학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역사적 반성을 시도하였다. 또한 이능화는 일제 강점기 거사불교 운동에 영향력을 미쳤던 불교인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불교계에서도 정치계의 경우처럼 친일행보를 보이며 현실적 이득과 세력을 넘보는 승려들이 더러 있었지만, 이능화는 이런 문제에 중립적 태도를 보이면서 학문적 성과를 세간에 선보이게 된다. 특히 그의 "조선불교통사"는 그의 대표적 업적으로 꼽힌다. 이능화는 조선불교를 거론하는 과정에서 조선불교의 일본 불교에 대한 독립성과 장점을 지적하면서 '민족주의적 성향'의 단초를 표출하였다. 한편 그의 조선민족의 정체성과 독립성에 대한 민족주의적 성향은 단군신교 연구를 통해서 여과 없이 표출된다. 이능화에게 있어서 건국신화와 문화적 정체성은 단순히 역사적 실증과 학문적 고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국가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성립에 대한 이념적 문제였다. 이능화의 단군신교는, 건국신화와 조선민족의 문화적 독립성과 정체성을 확보하여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대응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구축의 측면에서 재평가해야 할 것이다.

동북아 물류체계구축에 관한 연구 - 장보고 해상물류체계의 교훈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Construction of the Logistics System in Northeast Asia - Focusing on a Lesson from the Chang Po Go Period -)

  • 방희석;박근식;양현석
    • 한국항만경제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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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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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7-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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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본 논문에서는 9세기 신라 청해진에 본거지를 두고 일본, 중국, 신라 등 동양 삼국 해양을 경영하며 통합물류체제를 구축했던 장보고시대를 고찰하여 시사점을 도출하고 현재 동북아 물류체계의 구축 필요성을 알아보며 장보고시대의 물류체계를 오늘날 근대적 물류개념에 입각하여 현대적 응용 방안을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러한 동북아 3국의 물류협력의 필요성이 증가함에 따라 새로운 물류협력의 패러다임 장보고시대의 교훈을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장보고의 장기적 비전을 갖춘 CEO의 지도력, 물류활동의 통합체제 구축, 민간기업을 지원해 주는 정부의 정책 지원이 있어야 동북아물류체계구축의 전망이 밝은 것으로 연구되었다. 동북아시아가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시점에서 9세기 해상물류네트워크를 구축한 장보고의 국경을 초월한 물류분야의 협력 모델이 동북아지역의 물류협력체계 구축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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