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Summary/Keyword: 인간 중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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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과학기술의 책임과 기후변화윤리 - 책임을 중심으로 - (The Responsibilities of the Science Technology and the Ethics of the Climate Changes)

  • 변순용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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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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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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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기후변화와 관련된 윤리적인 문제는 지금까지 인류가 겪어왔던 유형의 문제와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 기후변화의 예측, 완화 및 적응을 위한 인간의 행위에서 요청되는 윤리의 문제를 접근하는데 있어서 우선 기후변화윤리의 담론에서 나타나는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야 한다. 강한 의미의 인간중심주의는 인간 종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거세게 받고 있으며, 대부분의 환경교육에서는 약한 의미의 생태학적으로 계몽된 인간중심주의 논리로 환경윤리적 요청을 정당화하고 있다. 기후변화윤리의 담론에서는 이러한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를 지양해야 한다. 기후변화의 윤리와 과학기술에서 탈인간중심주의화를 통해 인간의 도덕적인 고려의 대상범위를 확장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후변화윤리에서 제기되는 요청들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합의는 과학적인 근거와 사회구성원들의 가치에 기초해야 한다. 둘째, 기후변화로 파생되는 문제는 시급한 문제이면서도 장기적인 성격의 문제이다. 그리고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인 사실의 전달도 중요하지만, 윤리교육을 통해 기후변화가 갖는 윤리적 의미가 지속적으로 강조되어야 한다. 끝으로, 기후변화윤리교육에서 지속 가능성은 기후변화윤리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당위적 요청들을 정당화하는데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조형공간의 다원성에 대한 생태학적 접근

  • 최성렬
    • 조형예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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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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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5-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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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21세기는 과학적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과거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물질문명의 풍요를 이끌어 냈으며, 컴퓨터, 메스미디어의 발달로 인하여, 인간 문명의 관심은 지구계를 벗어나 우주론적으로 확장되어 마침내 우주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과 함께 영원하리라 믿었던 과학적 합리성은 20세기 초두에 제국주의적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이성 파괴 현상이 드러나게 되었다. 급기야 20세기말에 이르러 다원주의라 칭하기도 하는 후기산업사회의 병적 증후군들, 국가간의 경제전쟁, 컴퓨터 및 각종 정보매체를 통한 신속한 정보교환의 이면에는 인간의 자기정체성의 혼돈을 아울러 초래하게 되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생태계 및 환경은 오염되고 파괴되었다. 20세기말에는 산성비, 엘니뇨, 라니냐 현상으로 인하며, 환경의 재앙을 초래하면서 이제 인간은 문명에 대하여 여태껏 가져왔던 확고한 믿음에 회의를 갖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인간의 주체적 인식과 과학적 믿음의 지나친 숭배로 인하며 자연도 인간에 의하여 지배되고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인간과 자연의 이원론적인 생각 즉,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 "근대적 주체"에 대한 맹신의 결과인 것이다. 이렇듯 20세기의 문제점은 21세기로 전가되어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세계내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전쟁, 기아 등 보다 이제는 오히려 환경. 생태문제로 귀결되어 지구의 생존권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되었다. 미술도 서구문명의 근대주의적 영향에 의해서 모더니즘 등 이성위주의 미술인 "근대 주체적 미술"로 발전하였지만 포스터모더니즘에서 보여 지듯 이미 인간의 순수한 이성을 근간으로 한 미술에 있어서의 주체성 주장은 상당부분 무너졌으며, 이제는 장르의 해체와 다원화 현상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환경파괴에 직면하여 이제 주체는 자연이라는 타자를 새롭게 등장시킨다. 그리하여 생명중심주의, 전체론, 감각 중심주의 등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생하는 자연을 향한 생태적인 미술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이에 본 연구논문은 무비판적 서구미술에 동요되지 않고, 지극히 자연적이고 동양적이기도 한 끊임없이 생명력을 창출해 내는 자연에 관심을 같게 되었으며, 환경의 중요성과 함께 생태학적 미술, 즉 생태미술에 본인의 작업을 관계시키고자 한다. 근대적 문명사에 의해 매장된 생태적 유기성의 흔적을 고고학적 탐사방법을 통하며 발굴해 내며, 환경윤리와 생태학, 심층 생태학, 북친의 '사회 생태학'을 수용하여 물질성의 생태적 복원과 함께 조형공간의 다원성에 대한 생태 미술의 일단을 규명코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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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의 생명주체환경윤리 (Bioautonomous environmental ethics of Taoism)

  • 김태용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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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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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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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이 글은 도가·도교의 생명주체주의를 기초로 도교의 환경윤리를 고찰한다. 동아시아 전통사상 가운데 생명 개념을 가장 포괄적이고 심도 있게 발전시킨 것은 도교이다. 도교에서 모든 개체생명은 도성을 갖기 때문에 인간의 가치평가와 무관하게 내재적 가치를 갖는다. 그런데 도교에서 인간은 다른 개체생명과 달리 생명주체성을 갖는다. 도교에서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타율적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식 아래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주체적 능동적 존재이다. 자신의 요절과 장수는 하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체자아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인간의 생명주체성은 두 가지 상이한 의미를 내포한다. 하나는 인간이 다른 개체생명을 자신의 불로장생의 도구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우주생명의 내재적 가치 즉 각 개체생명간의 조화로움을 실현하는 주체라는 것이다. 그런데 도교는 우주생명의 조화로움을 상위가치로 본다. 따라서 개체생명으로서 인간의 가치 실현은 우주생명의 조화로운 질서 유지와 다른 개체생명의 가치 실현이 전제되어야 한다. 도교의 환경윤리는 생명중심주의가 아니다. 생명중심주의는 존재의 선과 생명의 목적론적 중심이라는 측면에서 인간과 다른 생명체를 동등하게 취급함으로써 인간이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축소시킨다. 그러나 도교는 우주생명의 조화 실현에 대한 인간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도교의 환경윤리는 생명중심주의가 아니라 생명주체주의이다. 도교의 생명주체환경윤리는 인간이 다른 개체생명과의 관계에서 책임적 존재가 되어야할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생태환경회복의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형식주의 영화 <Dogville>이 구성하는 인간과 인간다움의 경계 (Boundary between Human and Humanism Constructed by Formalism Film <Dogville>)

  • 강승묵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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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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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8-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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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인간다움은 인간적 또는 보다 인간다운이라는 의미와 함께 인간다움의 존엄과 존중을 동시에 함의한다. 본 논문은 영화의 영상이미지가 재현하는 인간과 인간다움의 문제에 천착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영화가 인간과 사회에 대해 성찰적 태도를 견지하는 방식을 그 고유의 예술형식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특히 형식미학에 기반을 두는 형식주의와 작가주의의 이론적 논의를 배경으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의 시공간 구조의 구성 방식을 분석했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은 시각중심주의적 미학을 영화 형식으로 전유해 연극적 무대의 회화적 상상화를 통해 영화예술의 개념적 규정에 일정한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것은 영화적 시공간을 가상의 것으로 전환시켜 인간의 성선과 성악의 구분, 인간다움의 정의가 허구일 수도 있음을 즉물화함으로써 기존의 제도적 재현 형식을 전복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맥락 중심 접근법을 통한 인간주의적 과학 교육 (Humanistic Science Education through Context-Rich Approaches)

  • 송진웅
    • 한국초등과학교육학회지:초등과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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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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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3-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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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흔히 학교 교육은 학습자의 관심과 필요와 지나치게 동떨어져 있으며 인간 중심적 접근보다는 과학자 중심의 접근법을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로 과학이 주로 교실 안에서 교과서에 기초하여 가르쳐지지만, 과학의 학습이 교육과정과 학교의 울타리에 국한될 수는 없다. 먼저, 이 논문은 일련의 비유를 통해 과학 교육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간략히 요약 특징화하고, 이어서 과학 교육의 인간주의적 측면과 상황의 차원을 강조하는 소위 'Hearts-On' 과학교육의 새로운 비유를 제안한다. 둘째로, 본 논문은 내용의 상황(즉, 물리적, 개인적, 사회적, 전 지구적)과 학습의 상황(즉, 교과서적, 실험실적, 교실적, 지역사회적, 전 지구적)의 측면에서 전통적인 학교 과학(특히, 물리)교육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가를 비판적으로 점검한다. 셋째로, 저자 및 동료들이 최근 수행하고 있는 시도들을 Hearts-On 과학교육의 예로 소개한다. 특히, 일련의 지역 사회-기반 과학 프로그램과 상황 물리 책자(즉, 몸물리, 걸치는 물리, 식탁 물리, 스포츠 물리)의 개발 과정들을 요약한다. 마지막으로, 과학적 인간주의라는 아이디어 가 과학 교육의 상황중심적 접근법과 관련하여 논의된다. 이 논문이 과학 교육을 어떻게 교육과정과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는 보다 인간주의적인 것으로 확장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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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즘의 경계를 넘어서 - 근대 인간학의 종언과 인간의 새로운 변형 - (Beyond Humanism - The End of Modern Humanity and the New Transformations of Human Being)

  • 최진석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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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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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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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이 논문의 목적은 근대적 지식의 중심범주로서 인간과 휴머니즘(인간주의)에 대해 문화철학적 관점에서 비판적 반성을 시도하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휴머니즘은 인류의 자연적이고 영원한 이상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상정되어 있으나, 푸코에 따르면 이는 최근 수백 년간 성립된 근대적 지식의 산물일 뿐이다. 지식은 객관적이고 불변적인 실체로서 영구적으로 존재해 왔던 게 아니라, 인간이 무엇을 '지식'으로서 인식하는가에 따라 그 외연과 내용이 변화해 왔으며, 16세기 이래 수차례의 범주적 변동을 겪어 왔다. 이 과정에서 지식 범주의 '바깥'에 있던 인간은 점차 그 중심부로 이동하였고, 19세기에 이르면 모든 지식의 구성적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 오늘날 인간과학 혹은 인문학이 성립하게 된 배경은 인간이 지식의 중심범주에 도달하게 되었다는 문화사적 사실에 힘입은 바 크다. 이러한 인간학 혹은 인간주의(휴머니즘)의 역사화는 거꾸로 인간이 다시 지식범주의 바깥으로 밀려날 가능성을 열어둔다. 지식 지평의 확장과 새로운 관점의 전환은 근대적 의미에서의 인간학을 대신하여 다른 인식의 구조를 열게 될 잠재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최근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 '기계주의', '비인간'이나 '포스트휴먼' 등은 이러한 인간(학)의 변형에 대해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고, 이에 대한 단초를 살펴보는 일은 현대 인문학의 당면과제이지 않을 수 없다.

재즈의 낭만주의-Summertime과 Annabel Lee의 표현을 중심으로 (Romantic period in Jazz Music-Case from Summertime and Annabel Lee)

  • 김형천
    • 한국산학기술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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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산학기술학회 2011년도 춘계학술논문집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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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8-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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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의 표현방식의 전환은 인간개성 표출에 대한 자유라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크다. 형식이 중요했던 시기는 감정보다 이성적인 면이 발전하게 되고, 인간감정이 우선되는 시기에는 기존형식이라는 틀이 무너지면서 방종에 가까운 표현 방식도 나타나게 된다. 문학이나 음악에서도 특정시기에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표현방식이 존재하게 된다. 이 연구에서는 19세기 미국의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에드거 앨런 포우의 작품과 마일즈 데이비스의 20세기 중반 모달재즈의 태동에서 나타난 표현 양식의 변화에서 그 유사점을 찾고, 변화과정상 50년대 후반 모달재즈의 시기를 재즈 낭만주의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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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도덕 교육과 환경 윤리 (Moral Education & Environmental Ethics in High School)

  • 황광욱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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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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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5-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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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환경 윤리에 대한 윤리학적 의견이 분분하기는 하지만 인간과 자연에 관한 관계의 재정립, 인간의 자연에 대한 의식 및 인식의 전환, 도덕적 의무와 책임의 확대 등이 도덕·윤리과에서 담당해야 할 환경 윤리 교육의 공통된 주제로 모아진다. 곧 '환경 교육'은 전 교과에서 시행될 수 있지만, '환경 윤리 교육'은 도덕·윤리과의 정체성적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도덕』 교과서에서 환경 문제에 관한 단원은 외형적인 틀은 체계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순되는 관점의 병렬적 진술, 문명과 자연의 이분구도, 동양 사상에 대한 비주류적 접근 혹은 개인적 태도에 초점을 맞춘 진술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윤리와 사상에서도 생태주의와 인간 중심주의의 대결구도, 인간을 환경 혹은 생태계의 암적인 존재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교수-학습 과정에 있어서 윤리 교육은 '지정행(知情行)'의 통합 교육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환경 문제의 근원적인 원인을 '인식'에 둔다면, 고등학교 환경 윤리 교육의 교수-학습의 중요도는 '인지>정의, 행동'으로 되어야 한다. 고등학생은 환경 윤리학에 대한 고차의 지식과 관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 동양 사상의 자연관도 기왕의 환경 윤리학의 '관점'의 틀을 통해 동일차이를 설명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또 유학, 도가, 불교를 묶어서 '동양'이라는 틀로 설명할 것이 아니라 각각의 사상이 갖고 있는 자연에 대한 관점이 비교되어야 한다. 즉 환경 윤리학의 관점과의 동일-차이/ 유, 불, 도의 동일-차이가 종횡으로 설명된다면 기왕의 환경 윤리학을 보완 내지는 제3의 방식이 제시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데리다(Jacques Derrida)의 동물 타자 시선에서 본 현대 형상 예술 표현 연구 -본인의 작품을 중심으로- (A Study on Modern Shape Art Expression with an Animal Third Perspective of Jacques Derrida)

  • 이희영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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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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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9-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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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인류는 오랜 역사에 걸쳐 타자를 만들어내고 그들을 차별, 배제해왔다. '우리'와 '타자'를 구분하는 현대사회의 대립 구조에 대해 데리다(Jacques Derrida)는 그만의 시적 사유를 통해 동물 타자를 향한 인간 존재의 깊은 성찰을 질문한다. 본 논문은 데리다의 "동물, 그러니까 나인 동물(The Animal That Therefore I Am)"을 중심으로 동물 타자의 확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연구자는 오늘날 동물을 바라보는 현대인의 시선을 통해 '인간-외-동물'의 지위에 관한 메시지를 던지고자 한다. 이를 위해 연구자의 작품에 등장하는 반려동물 이미지를 분석함으로써 '인간-외-동물'의 지위에 관한 고찰을 통해 앞으로 우리 사회가 추구해 나가야 할 공생, 공진화의 길에 대한 방식을 제안하고자한다. 데리다는 샤워 후 밖으로 나온 고양이의 집요한 응시 앞에 느꼈던 '수치심'이라는 정념을 통해 동물 타자를 우리에게 불러내고 그리하여 타자의 영역에서 배제되어왔던 기존 담론의 관행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 수치심이라는 정념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데, 여기서 데리다는 이 수치심을 통해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경험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연구자는 '인간이 되는 경험'에 초점을 맞추어 문화 속의 인간과 자연 속의 동물의 역설을 '발가벗음'의 양가성으로 살펴본다. 이러한 모색은 '우리' 공동체의 바깥에 있는 자는 고통 받아도 괜찮은 집단으로 여기는 종차별주의(Speciesism)를 비판하며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동물 그 자체로 보려는 시도이다. 오늘날 동물 타자의 위치를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이론 및 제인구달(Jane Goodall), 수잔 손택(Susan Sontag)의 철학을 통해 바람직한 인간과 동물의 관계, 동물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동물로 향하는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데리다의 동물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 연구자의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본 연구 논문이 새로운 텍스트로 거듭나 인간중심적 사고의 경직을 완화하고 기존의 이분법적 사유를 탈피하여 인간과 동물 사이의 수평적, 횡단적 관계 시도로 확대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