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宜寧 全義李氏墓 출토복식에 관한 고찰 (The Excavated Costume of Jeon-Ui Lee Unearthed in Ue-Ryoung)

  • 박필순;박윤미;정복남
    • 복식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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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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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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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Three Jang-Ue's and eleven drapery were investigated in the excavated costume in Ue-Ryeong, Gyeong-Sang-Nam-Do. Three Jang-Ue's have three different colors. the length, the width, and the wide of quilting are different as well. The outer collar of a coat is a double collar while the inturned collar is a single collar. In case of Dark blue and Pink Jang-Ue. The large section of cloth forming the body of a Korean coat is getting narrower while the reinforcing cloth strip is getting wider as the time is passing by. All the three Jang-Ue's have the different handling methods of a attached to the top border of a Korean coat, and Pink Jang-Ue doesn't have a attached to the tip border of a Korean coat. The handling method of the hemline are all different. And the handling method of the cuffs are all different. The silk is main in the woven goods, partly hemp, mixed fabrics and cotton. Especially complex gauze with supplementary wefts that were found unusually in Cho-Sun Dynasty are very import to study the complex gauze. The fond relics of the Jeon-Ui Lee family reveal various formational methods and specific characters of the excavated costume. There fore these that bring the Jang-Ue shape and the textile's feature in Gyeong-Sang-Nam-Do region, from 16th to 17th are very valu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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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공암풍벽과 거연정(Geoyeonjeong) 별서원림의 재조명 (A Resurrection of Gongampungbyeog Cliff and Geoyeonjeong Byeolseowonlim in Cheongdo)

  • 김정문;정푸름;노재현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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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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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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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의 목적은 국내 원림에 관한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소외되어 잊혀져 가는 청도 거연정을 재조사하여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고 그간 정원의 변화상과 실태를 검토하는 한편 향후 원림내 구성 요소의 기초자료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또한, 거연정원림 영향권인 공암풍벽까지 확대하여 재조명하였으며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청수헌유고』에 배를 타고 노는 선유풍류(仙遊風流)를 읊은 내용으로 볼 때 동창천과 공암풍벽은 거연정과 일체감을 갖는 정원 영역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거연정 경영 내력에 "병암(병풍바위) 아래로 나아가 작은 정자를 짓고 거연정이라 편액했다. 원림을 개간하고 화훼를 북돋아 심었다."고 하는 기록으로 보아 청수헌 윤봉한은 공암풍벽 일대를 거연정의 경관적 영향권인 외원(外園)으로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셋째, 공암과 관련된 다수의 시는 공암이 운문 일대를 대표하는 승경으로 인식되었으며, 이곳에 설정된 청도팔경이나 운문구곡의 양상은 공암풍벽의 전래 승경적 면모에 매우 충실하다는 방증(傍證)이기도 하며 거연정원림 외원으로서의 특성이 함축된 장소성의 결정체이다. 넷째, 거연정원림에서 공암으로 이르는 잔도(棧道) 및 풍벽 일대의 동창천 하상에는 풍호대, 모성암, 부앙대, 곡천대, 사간정, 학가대, 형제암 등 암대(巖臺)로 구성된 명소로 채워져 있으며, 이는 이 지역 승경의 요처(要處)이자 조망처으로서 거연정원림 외원의 성격을 보다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섯째, 『청수헌유고』의 "물을 끌어다가 방당으로 흘리고 다시 들판의 시내로 보낸다"라는 표현으로 볼 때 거연정의 지당은 원래 방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영자 청수헌 또한 주자를 존숭하고 주자와 같은 자연관을 추구하고자 했을 것으로 추론된다. 여섯째, 『청수헌유고』의 『거연정만영(居然亭晩影)』에 샘물에 대한 묘사와 버드나무 등을 심었다는 기록과 『상국설(霜菊說)』에는 자신이 국화를 심고 가꾼 사실을 논한 글로 심한 서릿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외로이 절개를 지킨다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을 국화를 빌어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일곱째, 거연정원림 내원에 존재하는 바위글씨는 1844년 원림조성기의 청수헌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판단된다. 거연정 원내의 바위글씨는 수신 및 경물의 명칭을 제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구절은 주자의 무이도가를 비롯한 원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군자의 덕과 은자의 자연관을 이입한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경(敬)'이나 '의당(義堂)'바위글씨는 특별한 숭배대상이나 내면의 성찰을 대신한 것으로 거연정원림의 의미경관적 속성을 더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