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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정보보호법(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개정안상의 잊혀질 권리와 현행 우리 법의 규율 체계 및 앞으로의 입법방향에 관한 소고 (A Thought on the Right to Be Forgotten Articulated in the European Commission's Proposal for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 하정철
    • 디지털융복합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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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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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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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최근 유럽연합이 잊혀질 권리를 폭넓게 인정하는 정보보호법 개정안을 공표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이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관련된 논의가 이루어지고 일부에서는 입법화 움직임까지 있다. 현행법상 정보주체는 제한적으로 개인정보처리자나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수집한 개인정보에 대해 정정 내지 삭제를 요구할 수 있을 뿐, 자신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은 경우에는 온라인 게시판 등에서의 자신의 개인정보의 삭제를 요구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앞으로의 입법과정에서는 정보주체 자신이 직접 올린 정보의 경우에만 잊혀질 권리를 한정할 것인지, 그리고 자신이 직접 올린 것이라면 제3자가 차후에 복사 등을 한 모든 경우에 대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등에게 삭제할 의무를 부여할 것인지 충분히 검토되어야 한다. 최근 사이버 공간을 통한 국민 일반의 참여가 확장되고 직접민주주의를 향한 목소리도 커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의 보장은, 설령 그것이 거대 미디어로 인한 정보를 통한 개인통제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쉽게 포기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정보주체 자신이 직접 올리지 않은 정보에 대해서 잊혀질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자칫 사전검열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히 접근될 필요가 있다.

미취학 아동의 영어 역할연기를 위한 UCC 활용의 효과 (Utilization of UCC for English Role-playing of Preschoolers)

  • 어일선;조성희
    •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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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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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09-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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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최근 영어 조기교육의 중요성이 증대되면서 미취학 아동들을 위한 많은 교육기관들에서 영어교육이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 특히 역할연기(Role-play)는 미취학 아동들의 언어에 대한 관심을 증진시키고 자연스럽게 영어권 문화를 접할 수 있어 아동들의 영어학습에서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본 논문에서는 미취학 아동들을 대상으로 영어교육을 위한 역할연기에서 UCC의 효과적인 활용방법을 알아보도록 하였다. 먼저 연구를 위해 미취학 아동들에 대하여 사전, 사후 검사를 위한 설문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이를 SPSS로 분석하여 아동들의 UCC에 대한 이해, 영어에 대한 흥미, 역할연기에 대한 흥미, 연기에 대한 관심 등 알아보았다. 분석 결과, 대부분의 아동들은 UCC를 잘 알고 있었으며 시청이나 제작에 관한 흥미도 강함을 알 수 있었다. 제작된 콘텐츠 시청과 교사의 피드백을 통해 더 발전된 영어와 연기를 보이고 싶어 하였다. 따라서 미취학 아동의 영어교육에서도 교사의 통제하에 역할연기를 통해 UCC를 제작하고 활용하는 것으로써 언어와 연기의 발전을 보일 수 있으며 유튜브 등을 통해 콘텐츠를 배포함으로써 이에 대한 흥미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역할연기를 통한 영어 교육을 계획할 때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기업정보화와 정보인권보호 (The information of the businesses and the protection of information human rights)

  • 하우영
    • 한국정보보호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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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정보보호학회 2003년도 동계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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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3-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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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기업의 정보화 추진은 첨단의 정보처리기술이 기업영역으로 흡수되면서 기업사회에 기업의 효율성 제고라는 효과와 함께 노동자의 정보인권보호라는 문제가 서로 충돌하는 위험성도 확대되고 있어 대책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보호에 대한 무감각은 경영의 효율성을 요구하는 왜곡된 사회구조에 의해 뒷받침된다. 자본과 언론이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하게 되면 이 불안감에 정치권은 정보보호의 측면을 외면하고 경영의 효율성에 지향된 법정책을 채택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정보보호의 중요성은 경영의 효율성보다 작은 이익으로 평가되기 마련이며,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인권침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정보처리기술의 발전과 함께 기업의 정보화는 노동자의 행동을 보다 더 철저히 감시·통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산업현장에 새로이 파생된 정보인권 침해문제는 한편으로 정보보안의 확립과 함께 정보처리기술을 이용한 노동통제를 규제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의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정보의 활용이 많은 효율성을 가진다 해도 인권의 침해가 없는 기업생활의 보장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정신의 구현이며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정보인권 시대에 걸맞은 관련 법률의 제정과 개정 등의 정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산재된 정보보호 관련규정을 통합하고 온-오프라인의 접목 등 다양한 영역을 포괄할 수 있는 공통원리를 적용하여‘개인정보보호기본법’(가칭)을 제정할 것을 제안한다. 그 기반 위에 노동법상으로 산업현장 이라는 특수영역에서의 정보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의 주도적 참여를 보장하는 등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정보인권보호 방안을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측면에서 매우 경제적인 Uncoupled scheme이 추천된다.는 못하였다.달팽이에서는 거의 검출되지 않은 반면 왕우렁이에서 다소 높게 검출되었다. 중성지질의 지방산 조성은 식용달팽이 경우 $C_{18:2}(16.80{\sim}17.74%)$, $C_{20:2} (12.15{\sim}12.59%)$, $C_{18:1}(9.79{\sim}10.37%)$$C_{18:0}(7.71{\sim}12.43%)$$C_{16:0}$, $C_{20:4}$ 함량이 많으나 그밖에 melanic type에서 $C_{18:3}(20.90%)$ 함량이 매우 높았으며, 또한 polyene산 함량도 가장 높게 나타났다. 왕우렁이는 $C_{16:0}(16.96{\sim}17.46%)$, $C_{18:1}(13.79{\sim}13.95%)$, $C_{18:2}(12.90{\sim}15.70%)$$C_{18:0}$, $C_{20:4}$, $C_{22:6}$이 주성분으로 type별로 그 조성이 비슷하였다. 당지질은 식용달팽이 경우 $C_{18:2}(19.01{\sim}19.72%)$, $C_{16:0}(12.89{\sim}18.76%)$, $C_{18:0}(12.68{\sim}17.52%)$$C_{18:1}$이 주요 지방산이었으나 이중 $C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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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통치정책과 영화의 활용에 관한 연구 (The study about the ruling policy of Government-General of Chosun and its use of films for the political propagand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1910-1945))

  • 조희문
    •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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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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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07-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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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일본은 1910년, 한국과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한 것을 계기로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 통치를 시작했다. 조선총독부는 한국 내에서 입법, 사법, 행정력을 독점한 최고 권력기관이었다. 일본의 한국지배는 1945년까지 계속되었으며 조선총독부 또한 그때까지 존속했다. 조선충독부는 일본의 한국통치 정책을 충실하게 집행하는 기관이었으며 한국인의 반일, 항일 행위를 무마하고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갖도록 하기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나갔다. 이를 위해 일본은 일본과 한국은 같은 뿌리에서 탄생한 공동운명체라는 개념을 의식화하여 '내선일체(內鮮一體)' 정책을 주요 수단으로 삼았다. 궁극적으로는 일본과 한국이 하나의 국가라는 개념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이같은 방침에 따라 일본은 한국인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기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나갔는데, 1910년부터 1919년까지는 억압적인 통제에 의존했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는 1919년 3월 1일을 기해 대대적으로 일어난 항일 민중봉기에 의해 전면적인 전환을 하기에 이른다. 이후에 취임한 3대 총독 사이토(濟藤實)는 보다 우호적인 문화정치를 표방하며 한국인을 적극적으로 회유하고자 했다. 정책의 변화는 여러 가지 후속 조치들로 구체화 되었는데 민영 언론매체의 설립 허용, 시찰단 구성, 박람회 개최 같은 일들이 그것이다. 일간신문의 경우 이전에는 매일신보 경성일보, Seoul Press 등 총독부 기관지만 발행되었으나 이후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한국어 신문이 허용되었으며 잡지들도 발간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일본파 한국의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조치로서 일본과 한국시찰단을 구성하여 상호방문하는 사업을 펴기도 했고, 박람회를 개최해 일본의 우수한 문물을 한국인들에게 과시하려는 시도도 나왔다. 이같은 조치의 기저는 '주지(周短)와 선전(宣衝)을 보다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이 영화였다 조선총독부가 활동사진반을 설치하고 홍보 선전 영화의 제작과 배급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 것은 영화의 선전기능과 효과를 십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만주), 미국과 차례로 전쟁을 시작한 1937년 이후에는 민간의 영화제작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한편 선전영화 제작을 위한 영화사를 별도로 설립했다. 1942년부터 1945년 사이에 는 조선총독부의 조종을 받는 한개 영화사만이 존재해 선전영화만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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