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어칸과 퇴칸 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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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무량수전 측면 지붕부 결구의 구성방식에 관한 재고(再考) - 중국 원대(元代) 이전 목조건축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Hipped-and-Gable-Roof Framework of Muryangsujeon of Buseoksa Temple)

  • 차주환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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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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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8-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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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는 부석사 무량수전의 측면 지붕부 결구 구조에 관한 연구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일제시대에 해체 보수한 기록이 있으며, 팔작지붕의 측면 지붕부 결구 구조기법과 추녀, 귀서까래 등의 결합 수법들이 정연한 형태로 결구되지 않고, 조선시대 팔작지붕의 측면 지붕부 결구구조와 이질적인 요소가 많아 원형이 아닌 것으로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또한, 그 편년에 대해 다양한 의견(13세기, 12세기 건축)들이 국내외 학자들에 의해 제시되어 왔었다. 본 연구는 동아시아 목조건축 구조틀이라는 관점에 근거하여, 중국 당 송대 팔작지붕에서 부석사 무량수전과 측면 지붕부 결구구조 기법과 유사한 건축을 대상으로 평면비 및 어칸과 퇴칸의 비례를 상호 비교하여 살펴 본 결과 부석사 무량수전의 측면 지붕부 결구구조는 팔작지붕에서도 볼 수 있는 기법으로 판단하였다. 부석사 무량수전처럼 측면 서까래가 내부 보(량(梁))에 직접 접하는 기법은 중국 당 송대 팔작지붕 건축에서도 흔하게 볼 수 없는 수법으로, 중국의 팔작지붕은 당대(唐代) 이후에 산화(山花, 합각) 양가(梁架)를 구성하여 팔작지붕의 측면을 구성하는 기법이 발달되어, 명청대 이전까지 크게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귀서까래의 발달과정 중 평행서까래에서 말굽서까래로 전환되기 이전 방식인 평행복사연(平行輻射椽)이 현재 부석사 무량수전의 귀서까래 방식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추녀의 중간부분부터 귀서까래가 걸치지 않는 부석사 무량수전의 방식은 중국에서도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은 방식으로 부석사 무량수전의 특성으로 보인다. 이런 기법들을 살펴본 결과 부석사 무량수전의 측면 지붕부 결구구조는 중국 남방지역에서는 볼 수 없으며, 북방 지역의 당 송대(唐 宋代) 및 요대(遼代) 시기에 볼 수 있는 기법으로, 건축물의 편년시기와 평면에서 어칸과 퇴칸의 비례 관계를 고려해볼 때 동아시아 북방지역에서 볼 수 있는 고식(古式)의 구조 기법으로 판단된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측면 지붕부 결구구조가 변형된 것이 아니고, 팔작지붕 고유의 방식일 가능성이 있는 만큼 향후 부석사 무량 수전의 평면과 어칸 및 퇴칸의 비례, 측면 지붕부 결구구조를 중심으로 고려시대 이전 폐사지 중 팔작지붕으로 추정되는 건물의 측면 지붕부 결구구조에 대해 복원 설계에 좋은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합각지붕 사찰 주불전의 규모에 따른 기둥 및 처마부 관계분석 연구 (Properties of Components for the Dapogye of Hipped and Gable Roof Wooden Buildings)

  • 고정주;이정수
    •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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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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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92-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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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연구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목조건축물 중 합각지붕 형식을 가지고 있는 사찰의 주불전 32동을 대상으로 규모에 따라 규모별 구성요소의 구체적 특성을 분석하고, 주요 부재 상호간 미치는 영향이나 비례관계 등을 분석하여 향후 문화재 복원 및 보수를 위한 객관적인 기초자료를 제공하는데 목적으로 하고 있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평면비례는 3칸 건축물에서 도리통(전면)과 양통(측면)의 평균비례는 1.31:1 정도이며, 5칸 건축물 평균비례는 1.70:1로 이루어져 있다. 둘째, 주칸비례 및 위치별 기둥 굵기를 분석한 결과, 3칸 및 5칸 건축물 모두 어칸이 퇴칸이나 협칸에 비해 주칸을 넓게 형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3칸 건축물 평균 기둥 굵기는 귀기둥 491mm, 평주 433mm 정도이며, 5칸 건축물에서는 귀기둥 595mm, 평주 511mm 정도의 굵기로 분석되었다. 귀기둥 굵기가 평주보다 평균 60mm~80mm정도 굵게 이루어진 것은 구조적인 안정성과 착시현상을 고려한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건물규모(면적)에 따른 기둥 굵기, 처마 내밀기, 차마높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3칸 건축물에서는 건물규모(면적)가 큰 건물일수록 크게 나타나는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5칸 건축물에서는 건물규모(면적)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넷째, 기둥과 처마와의 관계 분석 결과, 3칸 건축물과 5칸 건축물에서 모두 기둥 길이가 긴 건물일수록 처마높이와 처마 내밀기를 크게 둔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처마높이는 기둥 길이와 아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또한 3칸 건축물과 5칸 건축물에서 모두 처마 내밀기가 큰 건물일수록 처마높이도 높게 형성된 것으로 분석되었다.

한국 고대목탑 낙수받이 고찰 (A Study on the 'Naksubaji(horizontal gutter)' of Ancient Wooden Pagodas in Korea)

  • 탁경백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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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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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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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목탑의 기단부는 기단토와 이를 둘러싸는 외장, 계단, 그리고 기타 시설물로 구성되며 각각의 구성 요소들은 만들어진 시기, 장소, 조영세력에 따라 그 외형을 달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한 백제, 신라~통일신라의 목탑지에서는 고구려의 목탑지에서 확인된 물받이시설, 중국 건축물의 산수(散水), 일본 목탑지에서 확인된 이누바시리(犬走り)가 확인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지붕에서 떨어지는 우수로부터 기단부를 보호하기 위해 서까래는 기단선 이상으로 내밀어져야 하며 이 때 떨어지는 낙수 등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상기한 시설들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본 고에서는 이 시설을 낙수받이로 명명하였다. 기 발굴조사된 5~7세기의 한국, 중국, 일본 목탑지 검토를 통해 6세기에 조영된 백제 목탑지와 7세기에 조영된 신라~통일신라 목탑지에서 낙수받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백제의 경우 6세기에 조영된 군수리사지, 능산리사지, 왕흥사지 목탑지에서 낙수받이가 설치되었으며, 특히 왕흥사지 목탑지의 경우 기단토의 굴광 범위가 당초 백제시대의 기단으로 보이는 부분까지 실시되어 일본 초기 목탑지에서 확인된 경우와 유사하다. 목탑지 조영에는 고려척이 사용되었고 서까래내밀기를 검토하기 위해 평면을 복원한 결과 기단부 길이: 일층탑신 길이:어칸:퇴간의 비례는 군수리사지와 왕흥사지 목탑지가 4.9:2.7:1:0.9로 동일하게 나타났으며 왕흥사지 목탑지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군수리사지 목탑지와 왕흥사지 목탑지의 주망관계는 어칸 2.49m, 퇴칸 2.14m로 동일하게 나타나 당시 목탑 조영에 있어서 일정한 척도 적용 및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7세기에 들어서면서 용정리사지, 제석사지, 미륵사지 등 전사기는 다른 대형 기단부를 가진 목탑지가 출현하면서 더 이상 낙수받이가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신라~통일신라 목탑지의 경우 영묘사지, 황룡사지, 사천왕사지 목탑지에서 낙수받이가 설치되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영묘사지 목탑지의 경우 폭 1.8m 할석렬이, 황룡사지 목탑지는 제2탑구석의 범위가, 사천왕사지 목탑지에서는 하층기단 지대석의 설치 형상이 능산리사지 목탑지와 유사함을 검토하여 낙수받이임을 확인하였다. 신라~통일신라 목탑지는 그 조영 자체가 7세기에 들어오면서 시작되어 초기에는 비교적 목탑의 구성요소를 충실히 표현하였지만 사천왕사지 목탑지 조영 시점을 경계로 이러한 낙수받이는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