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검색결과 2건 처리시간 0.015초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의 「만주기사(滿洲紀事)」 분석을 통해 본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의 하급교육기관 실태 - 유하(柳河)·통화현(通化縣)을 중심으로 - (Actual Condition on Preliminary Educational Organizations of Sinheung Military Academy Confirmed from Manjugisa by Yi Sang-nyon - Focused on Liuhexian·Tonghuaxian)

  • 박성순
    • 동양고전연구
    • /
    • 제67호
    • /
    • pp.173-201
    • /
    • 2017
  • 신흥무관학교는 신민회 인사들의 숙의에 따라서, 국망 직후 서간도에서 독립전쟁을 위한 배후기지로서 가장 먼저 설치된 곳이었다.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부터 1920년대까지 약 10년 간에 걸쳐서 무려 3,500명의 독립운동 간성들을 배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10년 세월 동안 많은 수의 학생들이 어떻게 충원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다. 필자는 신흥무관학교의 학생 충원문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상룡(李相龍)의 "만주기사(滿洲紀事)"를 주목하게 되었다. "만주기사"는 총 16편에 이르는 연작 시이다. 이상룡은 신흥강습소를 설치한 후부터 양성한 군사가 오륙백에 이른다고 회고하였으나, 지금까지 연구자들은 이 부분을 단지 문학적 수사로 치부하여 간과한 측면이 있었다. 한편 제6편에서는 추가가에 정착한 후 8년 동안 건립한 소학교가 30개 소에 이른다고 회고하였다. 필자는 이를 바탕으로 신흥강습소 초기부터 길러낸 5백 명 이상의 학생들이 신흥무관학교 학생들을 포함하여 인근의 하급교육기관, 즉 소학교 학생들을 통칭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그 소학교들을 구체적으로 증명하였다. 유하 통화 지역 소학교 학생들은 졸업 후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은 학규에 따라서 2년 간 의무적으로 인근 소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군사교육을 포함한 소학교 교육을 담당하였다. 결국 신흥무관학교와 그 인근의 소학교들은 독립전쟁이라는 큰 목적 하에서 서간도 한인들에 의해서 유기적으로 운영되었던 커다란 독립운동의 군영이었던 셈이다.

기념 뮤지컬과 독립운동의 기억 -<신흥무관학교>, <구>, <워치>를 중심으로 (Musicals and Memories of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 Centered on the musical Shingheung Military School, Ku: Songs of the Goblin, Watch)

  • 정명문
    • 공연문화연구
    • /
    • 제43호
    • /
    • pp.229-261
    • /
    • 2021
  •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방식에는 기억 주체와 당대의 권력 관계 즉 기억의 정치학이 반영된다. 본고는 2019년에 공연된 기념 뮤지컬 <신흥무관학교>, <구: 도깨비들의 노래>, <워치>를 통해 변화된 지점들을 분석하였다. 위 작품들은 만주 독립운동, 홍코우 공원의거를 배경으로 하되 기록되지 않은 것을 채우면서 독립 운동에서 기념해야 할 것들을 조정하였다. <신흥무관학교>의 경우, 공식 기록 속 인물을 배경으로 하되 이름 없는 이들을 전면에 내세워 기념 대상을 확대하였다. <구 : 도깨비들의 노래>는 타임 슬립을 통해 망각된 대상을 재현하고 사죄하면서 기억을 수정한다. <워치>는 사진, 뉴스 릴, 신문기사 등 다큐멘터리 기법을 통해 팩션의 스펙터클을 강화하였지만, 기록에 한정되는 한계도 드러난다.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뮤지컬에서는 '민중의 움직임'이 현재와 연결되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들이 발견된다. 이를 위해 공식적 기록에 새로 생산된 가치와 기억을 반영하였고, 군중의 일상과 감정에 공을 쏟았다. 또한 실증적 고찰과 호명하기를 동시에 활용하여 신뢰성을 높였다. "100주년 기념"으로 호출된 뮤지컬에서는 독립운동가와 함께 움직인 군중의 일상과 감정 즉 미시문화사적 접근이 담겨 있다. 기념해야 할 목표와 목적의 이동이 나타난 것이다. 이 시도들은 동시대적 공감대 형성이란 성과를 얻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