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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ual Condition on Preliminary Educational Organizations of Sinheung Military Academy Confirmed from Manjugisa by Yi Sang-nyon - Focused on Liuhexian·Tonghuaxian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의 「만주기사(滿洲紀事)」 분석을 통해 본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의 하급교육기관 실태 - 유하(柳河)·통화현(通化縣)을 중심으로 -

  • Received : 2017.06.08
  • Accepted : 2017.06.21
  • Published : 2017.06.30

Abstract

Sinheung Military Academy was the first one which prepared for independence war built by members of Sinminhoe in Western Manchuria. Sinheung Military Academy is known that nurtured 3,500 independence soldiers during 10 years from 1911 thorough 1920. Nevertheless no people know how it recruited so many students for 10 tears. In the course of studying the recruit of Sinheung Military Academy, I became to focus on Manjugisa by Yi Sang-nyog. Although Yi Sang-nyon remembered that there were over five hundred students in Sinheung Military Academy from just after it's set up in Manjugisa, scholars overlooked that mention so far. In addition, in the Sixth poem of Manjugisa, Yi Sang-nyong recollected that there were 30 preliminary educational organizations in 1918 after installation of Sinheung Military Academy in 1911. Therefore I concluded that the over 500 students nurtured from just after installation of Sinheung Military Academy were summed up students of preliminary educational organizations over Sinheung Military Academy's and proved it. The students of preliminary educational organizations in Liuhexian Tonghuaxian entranced into Sinheung Military Academy after graduation. The graduates of Sinheung Military Academy taught the students of preliminary educational organizations a common and military educations in duty for two years. In conclusion, Sinheung Military Academy and nearby preliminary educational organizations were an wide military camp organically maintained by Korean in Western Manchuria for big purpose of independence war.

신흥무관학교는 신민회 인사들의 숙의에 따라서, 국망 직후 서간도에서 독립전쟁을 위한 배후기지로서 가장 먼저 설치된 곳이었다.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부터 1920년대까지 약 10년 간에 걸쳐서 무려 3,500명의 독립운동 간성들을 배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10년 세월 동안 많은 수의 학생들이 어떻게 충원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다. 필자는 신흥무관학교의 학생 충원문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상룡(李相龍)의 "만주기사(滿洲紀事)"를 주목하게 되었다. "만주기사"는 총 16편에 이르는 연작 시이다. 이상룡은 신흥강습소를 설치한 후부터 양성한 군사가 오륙백에 이른다고 회고하였으나, 지금까지 연구자들은 이 부분을 단지 문학적 수사로 치부하여 간과한 측면이 있었다. 한편 제6편에서는 추가가에 정착한 후 8년 동안 건립한 소학교가 30개 소에 이른다고 회고하였다. 필자는 이를 바탕으로 신흥강습소 초기부터 길러낸 5백 명 이상의 학생들이 신흥무관학교 학생들을 포함하여 인근의 하급교육기관, 즉 소학교 학생들을 통칭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그 소학교들을 구체적으로 증명하였다. 유하 통화 지역 소학교 학생들은 졸업 후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은 학규에 따라서 2년 간 의무적으로 인근 소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군사교육을 포함한 소학교 교육을 담당하였다. 결국 신흥무관학교와 그 인근의 소학교들은 독립전쟁이라는 큰 목적 하에서 서간도 한인들에 의해서 유기적으로 운영되었던 커다란 독립운동의 군영이었던 셈이다.

Keywo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