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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가네코 후미코 사건과 퍼포먼스 (Park Yeol·Kaneko Humiko Case and Performance)

  • 백현미
    • 대중서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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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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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7-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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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박열·가네코 후미코 사건이란 일본에서 1923년부터 1926년까지 약 3년 동안 식민지 조선인 박열과 제국 일본의 '무적자' 가네코 후미코가 대역 사건 피고인으로 받은 재판과 '괴사진' 사건 등 그 전후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말한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관련 사건은 종종 보도가 금지되었지만, 식민지조선에서 그들에 대한 기사는 간헐적이지만 끊임없이 드라마틱하게 이어졌다. 본고는 식민지조선에서 발행된 신문에서 이 사건이 기사화된 방식을 퍼포먼스의 관점에서 살펴 사건이 전달·수용된 양상과 의미를 밝혔다. 퍼포먼스의 주인공답게,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1923년 구속된 이후 형무소 독방에 갇혀 있었음에도 형무소 바깥 세상을 향해 '행동하는 자'였다. 그들의 '행동'은 기민하고 파격적이었다. 1926년 박열은 세 가지 요구 조건을 걸고 재판 방식을 조율했고, 그래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조선예복을 입고 일본 재판정에 등장해 조선말로 자신들의 이름을 알렸다. 대역 사건은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재판 자체를 하나의 사건으로 만든 것은 그들이었다. 또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1925년 5월 예심 조사실에서 앞뒤로 밀착해 앉은 자세로 괴사진을 찍었고, 1926년 7월 이 사진이 괴문서와 함께 신문에 실리면서 사법부와 내각을 뒤흔들었다. 그들은 불온한 사진을 남겨, 자신들을 가두고 재판한 일본 사회에 문제를 일으켰던 것이다. 식민지조선의 신문이라는 '무대'의 특성에 따라 이들의 행동은 특별하게 전달되고 수용되었다. 우선 보도 금지 때문에 관련 보도가 간헐적으로 그러나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사건이 플롯화된 채 알려져 긴장감이 증가했고, 조선인 또는 무산계층이 연루된 사건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둘째, 재판 전후의 진행 과정을 공연 관람기처럼 기사화하며 재판극을 경험하도록 했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의상과 움직임, 그들이 사용한 언어를 밝히고, 그들과 재판관이 주고받는 문답을 대본처럼 기술하였다. 셋째, 재판부 판사의 '담화'를 되받아 쓴 '사설'과 괴사진의 이야기성을 확대 재생산하는 기사를 통해, 박열·가네코 후미코 사건이 일본 사회에 일으킨 논란과 분란을 문제적으로 드러냈다. 박열·가네코 후미코 사건은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의 조화가 깨진 사태를 보여주는 사회적 드라마였다. 본 연구는 이 사회적 드라마에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한 역할과 이 사회적 드라마가 식민지조선에서 갖는 의미를 밝혔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행위자로서 이 드라마를 직간접적으로 기획·추진했으며, 일제에 대한 피압박 민족의 당당한 저항을 드라마틱하게 수행했다.

시조의 변이 양상 (The Aspects of Change of Sijo)

  • 강명혜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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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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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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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시조는 발생초기부터 당대의 역사 시대적 배경에 따라 그 틀과 내용이 조금씩 변하면서 융통성 있고 유연하게 적응해 왔다. 이런 점이 당대의 시대적 배경이나 사상, 실태 등을 반영해서 당시의 독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시조를 시조답게 하는 시조성만은 그대로 고수해 왔기에 '시조'라는 장르가 현재까지도 생존할 수 있었다. 어느 시대나 어떤 배경에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3장이라는 정형성은 지켜졌으며, 3, 3조나 3, 4조를 유지했고, 또 종장의 첫 구 3자도 고수했다. 이러한 시조성은 시대적인 간극에도 불구하고 '시조'라는 공분모 안에 모두 수렴시킬 수 있는 동인을 마련했다. 한국시가에 있어서 시조는, 공적 기능에서 사적 기능으로 변모가 이루어진 최초의 양식으로서. 그 변이과정을 살펴본 결과. 고려말${\sim}$조선조의 평시조는 그 당시 조류에 부합해서 시조 텍스트를 재도지기(載道之器)로 보아 이중적인 의미의 채색, 상징성 부여, 다채로운 문장 수식 등은 나타나지 않지만, 명천도(明天道) 정인륜(正人倫) 지향하는 성현의 가르침을 온유돈후(溫柔敦厚)하게 나타내고자 노력했다. 주제는 주로 그 당시 상황과 부합되는, 송축, 절의, 정쟁, 훈민, 한정, 강호도가, 안빈낙도, 애정 등이었다. 조선조 후기에 오면서는 사설시조(辭說時調)가 활성화하기 시작한다. 사림파의 득세와 양란(兩亂), 실학의 도입 등으로 조선조 후기에는 인식의 변화를 겪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가 시가 양식에도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설시조는 당대의 봉건주의 파괴, 유교적 모랄에 대한 반발, 근대적 특성 보유 남녀평등등 사상, 지배층에 대한 고발 및 저항정신 둥이 주축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저항적 리얼리즘적 현실지향적인 성향을 띠며 특히 고발문학 저항문학의 지반을 형성하는 장르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무엇보다도 잡다한 일상사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현실 생활에 대한 깊은 관심, 그에 대한 사실적, 구체적 표현은 사실주의 정신의 매개항이 된다는 점에서 근대성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았다. 1905년 이후 신문에, 형식이나 내용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기존의 평시조나 사설시조에서 변이된 형태를 취하는 일군의 시조가 등장했다. 변이된 형태는 시조 텍스트의 형식과 내용뿐만이 아니라, 수용적 측면에서도 일어났다. 이때부터 시조는 '읊고 부르는 형태'에서 주로 '읽는 기록물'로 인식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변이 된 시조 형태란, 당대의 시대를 풍자하는 '흥, 내지 흐응'이 삽입된 것, 종장의 어미가 생략된 것 등을 말한다 이러한 형식은 긴박한 상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특성을 지니기는 하지만, 고시조의 틀, 즉 율격이나 자수에서 많이 이탈되어서인지, 그 생명은 길지 못했다. 그러다가 192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해서 시조부흥운동이 일어나면서부터 시조 창작은 다시 활기를 띠게 되는데, 시조부흥운동은 최남선에 의해 주도되었다. 시작(詩作) 초기에는 서구지향의 시와 시조들 병행해서 쓰던 육당 최남선이, '조선국민문학(朝鮮國民文學)으로서의시조(時調)'라는 글을 통해 시조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언급하면서 시조부흥 운동을 선도한다. 그는 시조집, '백팔번뇌'도 출간하는데. 그의 전 시조집을 관통하는 것은 '조국 사랑'이라는 일 주제였다. 결국 육당은 고시조를 민족정신의 일환으로 보고, 시조양식을 채택하여 그 당시의 역사 사회적인 상황에 부합되는 주제를 표출한다. 결국 육당도 시조 텍스트를 재도지기(載道之器)로 여겼음을 알 수 있었다. 현대의 시조는 현대성(現代性)과 시조성(時調性)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는 어려움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전자에만 치중한다면 자유시와의 변별성이 문제가 되며, 후자를 고수하려니 고루하고. 시적 묘미가 없다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많은 작가들에 의해 평시조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시조가 지니는 원형성에 대한 매력을 감지해서일 것이라고 보았다. 그들 중 특히 선정주의 작품에 주목했는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특히 근대의식, 사회비판정신, 고발의식, 사실주의 정신 구현, 서민의식, 산문체 ·일상어 지향 등, 사설시조의 특징 및 성향을 잘 구현, 반영하면서 그 맥을 잇고 있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렇듯이 현대의 시조 작가들은 우리의 고시가 형식을 다양하게 선택해서 다양한 주제를 표출하고 있었다. 여기서 추정할 수 있는 사실은 이러한 시조의 유연성은 앞으로 시조의 생명을 항구적으로 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역사 시대적 변화와 상황 하에서 다시 새로운 양상을 취할 가능성을 보인다는 것, 그리고 이 '시조'는 한국인의 '영원한 정형시 장르'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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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마이닝과 소셜 네트워크 분석을 이용한 재난대응 용어분석 (Analyzing Disaster Response Terminologies by Text Mining and Social Network Analysis)

  • 강성경;유환;이영재
    • 경영정보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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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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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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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세월호 침몰사고,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 등 재난은 점차 복합적이고 대형화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재난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한 기관들의 협업 또한 중요해지고 있다. 다수기관 간 협업과정에서는 다양한 용어를 바탕으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의사소통은 '용어'를 기반으로 하므로 '용어'에 대한 중요성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재난현장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선정하여 텍스트 마이닝 및 소셜 네트워크 분석(SNA: Social Network Analysis)을 이용해 어떤 용어가 대응과정에 있어 핵심적인 용어인지를 파악해보았다. 텍스트 마이닝의 TDM을 이용하여 역문헌 빈도수를 산출해 용어와 문서 간의 관계를 알아보고, SNA를 통해 노드(용어)와 노드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였다. 용어분석의 결과 표현은 용어 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시각화할 수 있는 마인드맵(Mind Map)을 이용하였다. 용어는 미국의 NIMS, EMR, 그리고 우리나라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토대로 온톨로지 개념에 따라 계층적(Class, Object, Instance)으로 분류하였으며. 신문기사와 사설, 정책보고서 등의 정부 간행물에서 선정하였다. 이러한 재난대응 핵심용어의 파악은 재난현장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표준화하기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으며, 온톨로지 개념에 따라 용어들을 계층적으로 분류하였기 때문에 재난 대응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을 축적하고 검색하는데 용어의 분류체계를 활용할 수 있다. 이 밖에 사고대응 시나리오 작성 시에도 핵심용어를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판소리의 영화적 해석과 변모의 과정 (The cinematic interpretation of pansori and its transformation process)

  • 송소라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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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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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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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 연구는 판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대상으로 영화 속에서 판소리가 수용된 양상을 살핌으로써, 판소리에 대한 현대사회의 인식과 기대의 변화를 탐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선후기 상하층의 사랑을 두루 받았던 판소리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으며 그 위상이 꺾이게 된다. 일본에서 유입된 신문물의 영향과 미국 문화의 유입으로 대중적 관심을 잃게 되며, 고루하고 낡은 전통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이에 국가는 점차 사라지는 판소리를 보호 및 계승하기 위해 1964년 판소리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지만 1980년대까지도 판소리의 자생적 대중성 확보는 어려웠다. 그러나 판소리는 국가의 꾸준한 지원과 명창들의 판소리 전승 노력,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우리의 것을 세계화하자는 사회문화적 담론 속에서 점차 동시대의 대중과 호흡하는 노력을 해왔고, 문화콘텐츠의 주요 소재로도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팝밴드 '이날치'와 현대무용그룹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선보인 뮤직비디오 형식의 'Feel the Rhythm of KOREA'가 보여주듯 현재의 주목받은 대중문화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현대사회 속에서 점차 변화해가는 판소리에 대한 대중적 인식과 판소리의 위상은 영화라는 대중매체 속에서도 엿볼 수 있다. 본 연구는 1993년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를 비롯하여 최근의 <소리꾼>까지 판소리를 소재로 한 6편의 영화를 선별하여 이와 같은 변화의 추이를 탐색하였다. 먼저 1990년대에 제작된 영화 <서편제>와 <휘모리>이다. 이 두 편의 영화는 모두 당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대의 판소리, 즉 20세기 초중반 전승의 위기와 대중적 관심에서 멀어진 판소리의 현실을 보여주며, 그 속에서도 판소리 자체의 예술적 완성을 위해 치열하게 분투하는 소리꾼의 모습을 영화에 담아내었다. 판소리가 가진 정서로써 '한'과 북과 소리의 조화를 통한 판소리 미학을 강조함으로써 우리 소리의 숭고함과 특수함을 대중에게 선보였다. 판소리에 관해 관심이 적었고, 따라서 이의 가치를 잘 모르던 대중은 즉각 이에 화답하며 우리 음악과 우리의 정서에 대한 폭발적 지지를 보여 이른바 '<서편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서편제>와 <휘모리>는 우리 소리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부족한 시기, 그러나 그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요청되던 199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이 영화의 내용과 구성에 반영되며 당대 판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기대를 드러내었다. 다음으로 2008년에 제작된 영화 <소리, 아이>와 2012년의 <두레소리>이다. 두 영화는 판소리와 국악을 하는 동시대의 어린이, 학생을 주인공으로 하여 예술을 하는 아이들의 성장기를 그려나가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들 영화에서 판소리는 '요즘 세상에 누가 그것을 하냐'의 소리를 듣는 옛 음악도 아니고, 혹독한 수련과 고통 속에서 완성이 되는 숭고한 음악으로 묘사되지도 않는다. 부모님의 권유, 집안의 사정 속에서 판소리를 시작한 아이들이 소리를 익히고 성장하고, 갈등하고, 고민하는 이야기를 통해 판소리는 동시대의 하나의 자연스러운 예술로 그려질 뿐이다. 판소리를 비롯한 국악의 정통성을 신념화하여 강조하지 않고, 교조적으로 이를 대중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이는 동시대의 예술로 판소리를 바라보는 2000년대의 달라진 대중적 인식을 반영하는 속에서 판소리가 해석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2015년의 <도리화가>와 최근 상영된 2020년의 <소리꾼>이다. 흥미롭게도 두 작품 모두 판소리가 민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던 조선후기를 영화의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영화의 이야기를 판소리의 역사를 토대로 구성하였는데, <도리화가>의 경우는 실존 인물인 신재효와 진채선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덧붙인 서사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소리꾼>의 경우는 광대의 소리가 판소리 사설의 원류가 되었다는 판소리 이론과 판소리 <심청가>의 서사를 활용하여 당대 존재했을 법한 소리꾼의 삶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두 영화는 판소리의 역사에서 이야기의 소재를 찾아 이를 영화화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전통을 문화콘텐츠의 소재로 삼고자 하는 시대적 분위기와 연결된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국가 간의 문화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때에, 콘텐츠의 소재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역사를 활용한 이야기가 그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통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문화콘텐츠의 소재로 삼고자 하는 시도는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되었고, 판소리의 음악뿐만 아니라, 판소리의 역사 또한 활용 가능한 콘텐츠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의 판소리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옛것도, 낡은 전통도 아닌 동시대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예술이자, 다양한 콘텐츠의 소재로 활용 가능한 자리에 온 것이다. 상기 영화들은 현대 판소리가 걸어온 길과 변모하는 위상, 그리고 이에 따라 달라지는 대중적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판소리 문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기초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