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신념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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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보존에 나타난 과거인식에 대한 고찰 - 19세기 영국의 교회 건축복원의 사상적 배경과 보존사례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Change of Perspectives on the Past in Heritage Conservation - Focusing on the 19th Century Restoration of Religious Buildings in England -)

  • 이수정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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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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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8-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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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홈스봄의 '만들어진 전통'은 최근에 등장한 역사인식의 한 방법론이다. 그에 따르면 만들어진 전통의 특수성은 과거와의 연속성을 인위적으로 내세우려 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전통들을 구성하는 데 낡은 재료들을 이용한다. 또한 그는 만들어진 전통은 사회화나 신념, 가치체계, 행위규범을 주입하는 데에 그 목표가 있다고 보았다. 본 논문은 그러한 인식틀을 가지고 19세기의 문화재 보존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그리고 단순히 이를 적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한 단계 더 발전적으로 나아가 그러한 현상들의 사상적 배경은 무엇이며, 그러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과거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사례를 통해 분석하였다. 19세기 중반에 카톨릭의 교리와 의례를 새로운 신념과 가치체계로 주입하여 영국 국교의 종교적인 부활을 이루고자 했던 옥스퍼드 운동과 이를 실천하기 위한 행위규범으로 고딕양식을 종교적 공간에 재현하고자 한 캠브리지캄덴협회의 활동은 홈스봄이 제시한 전통을 만드는 행위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리고 그것이 종교건축의 보존에 있어서 그대로 적용되고 실천되었다는 점에서 전통과 보존은 같은 축 선상에 존재한다. 당시에 과거는 종교적 목적을 실천하기에 적합한 특정시대와 특정한 건축양식으로만 이해하는 단층적인 재료였으며, 과거를 인식하는 틀 역시 종교적인 목적이나 사회적, 정치적인 이념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19세기 후반의 반복원 운동은 전대의 무분별한 양식적 복원을 막고자 했던 행위이다. 그리고 그 사상적 배경에는 변화된 과거 인식의 틀이 존재한다. 복원이라는 행위에 대한 개념정의가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행위의 속성을 인식하는 관점에서 전대의 과거에 대한 인식이 수정되었다. 전통은, 혹은 과거는 현재에 되살려야 하는 대상이 아니고 현재에도 살아있는 생명체이며, 복원은 그러한 생명력을 오히려 빼앗는 행위라는 관점으로 과거에 대한 인식이 변화된 것이다. 즉, 있는 그대로의 과거,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는 과거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그러한 태도가 문화재 보수에 적용되기 시작하는 시대이다. 이러한 고찰을 토대로 향후, 국내에서도 보다 다면적인 관점과 충분한 자료를 축적하여 우리의 문화재 보존사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기록관리전문가의 양성교육에 관한 사례연구 -이탈리아의 기록관리학 전통과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case of education to train an archivist - Focus on archival training courses and the tradition of archival science in Italiy -)

  • 김정하
    • 한국기록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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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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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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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기록들은 이전 사회의 모든 분야의 삶에 대한 기록된 흔적이자 증언이다. 기록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것은 물론 우리 모두의 사명이지만, 특히 관리 및 보존의 임무는 기록물관리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기록관리전문가들의 몫이다. 기록관리전문가는 단지 오래된 기록물만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문서를 오늘날의 역사기록물로 정의하기, 위한 미래적 안목의 평가와 선별작업을 수행하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기록관리학의 범위는 기록물의 생산에서 영구보존에 이르기까지 방대하며, 내용적으로는 크게 업무 및 행정기록물관리와 역사기록물관리의 두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18세기말과 19세기초 구지도의 종말과 복원의 시대를 배경으로 원래의 질서를 상실한 채 방치된 수많은 문서들에 대한 정리작업의 필요성을 계기로 성립된 '역사기록물관리'가 기록관리학의 전통영역으로 대변된다. 이 당시의 오늘날의 십진법적 분류와 유사한 '주제별 정리방식'이 실험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기록물정리방식과 그 이론적 배경, 대규모 기록보존소의 설립, 그리고 기록물의 법칙, 문화적 가치 및 활용 등의 개념들이 기록관리전문가의 포괄적이고 전문적인 활동내용으로 규정되었다. 특히 이 시대에는 기록관리학이 중세문서들의 형태와 내용, 그리고 문서들의 다양한 서체와 기록배경에 대한 학문적 해석을 통해서 기록물을 역사연구에 활용하려는 고문서학 및 고서체학적 전통의 보조수단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근현대의 기록관리는 고문서관리라는 전통영역이외에도 업무 및 행정기록물의 생산에서 등록, 분류, 편철, 활용, 선별 그리고 이관 등에 관한 종합적인 관리를 포함하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기록관리전문가의 활동영역은 기록물의 행정적 가치에서 역사, 문화적 가치에 이르는 전과정의 흐름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기록관리학에 대한 기본교육의 핵심은 역사와 법으로 구성된다. 기록관리전문가에게 법연구가 필요한 것은 기록보존소가 법적 행정적인 활동으로 생산된 문서들을 대상으로 과학적 관리활동을 수행하는 연구기관이기 때문이다. 비록 기록관리전문가들이 어떤 분야의 전문지식과 학위를 취득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지만 기능성 차원에서 역사관련 학문분야를 선호하며, 기록관리전문가 자신의 신념이나 이념의 보편적인 테두리를 갖기 위해 법학연구도 강조되고 있다. 20세기 접어들면서 기록보존소가 문화기관에 예속되는 경향이 우세해져 행정기관들이 기록보존소를 관리하던 과거의 전통에 대한 반발이 커지기도 하였지만 이러한 현상은 큰 영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였다. 이탈리아의 기록관리 교육은 토리노, 밀라노, 베네치아, 베노바, 볼로냐, 파르마, 로마, 나폴리, 팔레르모 등 대략 9곳의 국립기록보존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 시기의 교육과정은 대부분 고서체학과 고문서학 강의가 대부분이었으며, 여전히 기록관리학에 대한 교육은 실시되지 않았다. 1884년에 바티간의 비밀기록보존소는 '고서체학 교육과정'을 설치하였으며, 이 과정은 40년 후인 1923년에야 1년 단위의 기록관리학 과정으로 재편성되면서 명실상부한 <<고서체학, 고문서학, 그리고 기록관리학>>의 교육과정으로 발전하였다. 19세기말 20세기에 접어들면 국립기록보존소들의 교육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과목은 고서체학과 고문서학이 아니라 오히려 기록관리학임이 재차 강조되었다. 특히 고서체학과 고문서학에 대한 기록관리학은 우월을 강조하는 카사노바의 소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고서체학, 고문서학, 그리고 기록관리학이 모두 필수적이며, 문장학, 가계학, 그리고 인장학에 대한 교육과 더불어 완성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기록보존소의 모든 기록들의 고서체학자와 고문서학자 등의 개입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반면에 모든 문서들은 기록관리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기록관리학의 목적은 기록 보존소에 기록물을 이관한 제도와 기관들을 연구하고, 관리들이 어려움없이 모든 것을 쉽게 이해하고 각 기관들의 고유한 업무절차와 업무분단에 대한 무지속에서 헤메지 않고 자신들의 할 일을 분명하게 알게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문서를 생산한 기관과제도들의 역사에 대한 연구는 이미 몇십년부터 기록관리학의 한분야로 자리잡았다. 기록관리학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학문으로서의 길고 어려운 여정을 겪는 동안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여러 국가의 기록보존소들은 역사를 비롯한 타학문가의 전문가들을 포함한 기록관리학의 버전문가들에 의해 운영됨으로써 많은 폐단을 겪게 되었다. 많은 기록물들이 도서관 사서들의 방식과 스타일에 따라 혹은 역사가들이 주장하는 주제별 분류방식에 따라 정리되었기 때문에 자국의 경험에 기초하여 마련된 기록물의 본래의 구조 즉 원 질서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20세기 미국의 경우에도 도서관에 관련된 학문에 있어서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당히 앞서 있었지만, 기록관리학에 있어서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기록관리전문사 양성을 위한 전문교육과정은 1925년 로마 국립대학교의 사회과학대학원을 배경으로 성립되었다. 대학의 기록관리교육은 역사, 법, 경제에 대한 열정으로 여러 국립기록보존서들에 기록관리교육이 정식 전문교육과정으로 정착되었다. 볼로냐 국립기록보존소의 '기록관리학, 고서체학 그리고 고문서학의 전문교육과정'은 이탈리아의 17개 국립기록보존소들에서 실시하고 잇는 교육과정들 중의 하나이다. 본 교육과정은 무료이며, 2년동안 8개의 과목(기록관리학, 고서체학, 고문서학, 기록보존소의 역사, 공증인제도와 사문서, 중세의 제도사, 근대의 제도사, 현대의 제도사 등) 중에 7개의 과목을 이수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2년의 학위과정은 2회의 필기시험관 1회의 구두시럽으로 마감된다. 최종시험성적이 문화환경부에 의해 종합되면 볼로냐 국립기록보존서의 소장은 시험을 통과한 수강생들에게 '기록관리학, 고서체학 그리고 고문서학 학위'를 수여한다. 이 학위증은 도, 지방 그리고 지방의 행정수도에 위치한 기록보존소와 특별히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자치도시의 조합기록보존소 및 다른 기관들의 기록 보존소에 근무할 수 있는 필수적인 자격조건을 구성한다. 바티칸의 기록보존소에서 교수되는 내용은 다른 교육과정들과 비교하여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에서 독립된 영토단위와 영적, 세속적 권력을 행사하였던 관계로 과목게 있어서 보다 전문적이고 세밀한 교육내용을 추구하고 있다. 필수과목으로는 기록관리학, 필사본학, 일반 고문서학, 교황청 고문서학 그리고 라틴 고서체학이 있다. 이외에도 강독실습과 구두를 통한 이론연습이 있으며, 문장학, 인장학, 상식문자의 역사, 교황청의 역사 등 인접분야 혹은 보조학문에 대한 교육도 선택적으로 실시된다. 이탈리아의 기록관리전문가를 위한 전문교육은 현장실습을 통해 과거의 문화유산에 대한 직접적인 접촉을 유도하고, 기록물 전체에 대한 관심에 앞서 각 문서에 대한 쵠화력을 가오하하려는 의도는 반영하고 잇다. 또한 기록관리 현장에서 기록관리전문가의 양성을 위한 교육을 실시한다는 발상은 역사적으로 해당지역의 독특한 발전과정을 증언하는 국립기록보존소들의 고유한 특성과 연계하여 지역문화유상을 보존하려는 보다 적극적인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이탈리아 기록관리전문가를 위한 교육과정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탈리아의 교육과정 대부분이 역사기록물에 대한 관리를 중심으로 계획된 반면에 업무 및 행정기록물에 대한 프로그램은 상당히 미미하다. 그러나 기록물 생산에서 영구보존에 이르기까지 역사기록물의 정리방식으로 원 질서 즉 생산당시에 부여된 최초의 질서를 존중하는 원칙이 채택되고 있으므로 업무 및 행정기록물에 대한 관리 역시 역사기록물의 관리체계와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둘째, 17개의 국립기록보존시를 배경으로 기록관리전문가를 위한 전문교육과정이 운영되고 있다. 비록 대학의 기록관리교육이 활성화되지 못한 것이 자격과 능력을 겸비한 전문가의 부족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이탈리아 국립기록보존소들이 교육과 이론보다는 기록관리의 일선에서 활동할 인력을 양성하는데 치중한 결과이다. 셋째, 역사문서들에 대한 연구를 위한 고문서학과 고서체학이 기록관리학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넷째, 이탈리아의 과거사 연구가 기록보존소를 중심으로 기록관리전문가와 역사가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통해 진행되고 잇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보존소의 역사기록물을 공통문모로 하는 역사연구의 방법론은 거시사연구보다는 각 지역이나 소단위 연구주제의 독특한 역사발전상황을 존중하는 미시사적 연구방법론이 정착되는데 기여하였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기록물을 관리할 주체에 관한 논쟁이 아니라 기록물의 다양한 그리고 그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문서들을 책임질 능력과 통찰력 그리고 탄력적인 사고를 가진 기록관리전문가를 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전문가들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을 준비하고 이들이 기록관리의 현장에서 신념을 갖고 종사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다.

고차 조건화와 믿음 기반 약화 (Higher Order Conditionalization and Undermining)

  • 박일호
    • 논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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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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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7-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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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이 논문의 목표는 표준적인 베이즈주의가 믿음 기반 약화 증거(undermining evidence)에 의해서 촉발된 믿음 갱신을 잘 다룰 수 없다는 와이즈버그의 주장에 답변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식론적인 직관에 따르면, 믿음 기반 약화 증거는 몇몇 관련된 신념도를 감소시켜야 하는 듯하다. 하지만 와이즈버그에 따르면 그런 믿음 변화는 표준적인 믿음 갱신 규칙, 즉 (제프리) 조건화를 통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 이유는 (제프리) 조건화를 통해서는 일부 명제들 사이에 성립하는 확률적 독립성 관계가 보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논문에서 그러한 반베이즈주의적인 결론은 다소 성급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특히, 나는 다른 종류의 조건화가 또 있으며, 그 조건화를 이용하면 믿음 기반약화 증거를 통한 믿음 갱신도 충분히 베이즈주의적 이론틀 속에서 다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논증할 것이다. 그러한 조건화는 종종 '고차 조건화'라고 불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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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자유로운 상상의 연결 패러다임

  • 이호영
    • 의학교육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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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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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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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의사는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권한이 있으니까 마치 생명을 죽이는 권한도 포함된 것 같은 생각에 그야말로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것 같이 보인다. 오늘의 한국에서는 과거와 달리 의사의 사회적 위상에 많이 떨어져 있지만 아직도 미국이나 독일 같은 선진 사회에서 의사의 위상은 준신에 가깝게 높고 그의 말과 판단이라면 비록 건강에 관한 이슈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지혜로도 존중되고 수용된다. 의사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진 것은 의학이라는 특수한 학문과 이와 연결된 의술의 그동안의 엄청난 발달과 무관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 희랍시대부터 의학은 인간의 질병을 고치고 생명을 건강하게 보존하는 특별한 지식 그리고 이 지식을 기반으로 응용되는 치료기법으로 기예 (techne)라는 존칭으로 불리었다. 즉, 건강의 회복이라는 실질적인 목적을 가진 지식과 테크닉을 합친 이른바 귀중한 실천 (praxis)이다. 의학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은 시대와 문화가 바뀌면서 또한 의학 자체가 좀 더 발달하면서 도전을 받는다. 20세기에 들어서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또 고통을 주는 질병의 종류와 양상이 변하고, 의 과학이 앞으로 인류의 병들을 퇴치시킬 수 있다는 기대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일찍이 1960년도 말부터 의학교과목 개혁의 일환으로 인문학의 과목들을 같이 가르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과목들이 윤리학, 철학, 역사, 문학 등이다. 인문학의 보강은 의학과 기술과 인간성의 연결을 위해 의사들이 쓸 수 있는 인지적 도구 (cognitive tools)를 갖추게 하는 목적에서이다. 인문학의 도입으로 의사들이 인간의 삶을 좀 더 깊게 이해하고 풍부한 인간성으로 지식과 기술을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기 위해 각자의 마음과 머리 속에 포용통합능력을 발달시키자는 데 있다. 즉 의사들의 의식과 자유로운 상상력이 확장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 선진국의 의학교육에서 이 같은 교육이 좋은 의사를 만든다는 신념을 굳혀가고 있다. 성과를 증명하는 연구결과가 없어 아직도 회의적인 반응도 있으나 이와 같은 교육이 윤리적 상황에 대한 예민도를 높이는 것은 확실하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은 기독교 이념이 기본 교육철학이다. 인간성을 강조하고 의사들이 자신의 인간성을 개발 강화하는 교육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사 지신의 인간성과 그의 인간애로 내재화 시킬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정신을 의학과 의술에 연결시키는 고귀한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생태관광활동 참여에 따른 관광환경태도의 변화 - 우포늪 습지 방문객을 중심으로 - (A Change in Tourism Environmental Attitudes through Ecotourism Activities - Focusing on Ecotourism Participants in Upo Wetlands -)

  • 김진;고동완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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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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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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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생태관광은 환경을 보존하고 지역주민의 복지를 유지하는 자연지역으로의 책임 있는 관광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지속가능한 관광을 위한 대안관광의 하나로 최근에 들어 생태관광에 대한 연구와 생태관광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본 연구는 정교화 가능성 모형(elaboration likelihood model: ELM, Petty and Cacioppo, 1986)이론을 바탕으로 생태관광활동에 참여하는 관광객은 높은 정교화 수준의 고관여 집단으로 이미 친환경 태도를 형성하고 있는 집단이며, 이들의 신념과 태도에 일치하는 생태관광활동 참여는 순환적으로 친환경 태도를 강화할 것으로 가설을 설정하였다. 이를 검증하기 위하여 2010년 9월에 람사르 등록 습지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생태관광지라 할 수 있는 우포늪 습지에서 방문객 183명을 대상으로 실증적으로 생태관광활동에 따른 관광환경태도의 변화를 논의하였다. 생태관광활동 참여 이전과 이후의 관광환경 태도의 변화는 '반환경적 행위동조 요인' > '추억 표상 요인' > '반환경적 일탈 요인'의 순으로 유의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생태관광활동 참여자는 관광활동 중에 생태관광 자원의 본질적 속성에 의한 영향과 다양한 환경교육 및 체험프로그램 등을 제공받음으로써 방문 전에 형성하고 있는 친환경적인 태도를 보다 정교하게 강화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본 연구의 조사대상지인 우포늪 생태관광지는 생태관광 개발 및 운영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친환경 태도의 형성과 강화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요인별 변화에서 생태관광활동 참여가 양극단의 환경태도보다는 '반환경적 행위동조'라는 중간적 환경태도 변화에 더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생태관광활동 참여를 통하여 '반환경적 행위동조'태도를 친환경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는 것으로 생태관광의 역할을 확인하는 중요한 결과이다.

뉴스서비스별 전자투표시스템 관련 가짜뉴스가 뉴스 이용자의 이용 태도, 선거 참여 의도, 뉴스서비스 신뢰도에 미치는 영향 (The Effect of the Fake News Related to the Electronic Voting System each News Service on News Users' Attitude of Using System, Intention to Participate through System and Reliability of News Services)

  • 진소연;이지은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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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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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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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 연구의 목적은 가짜뉴스가 크고 작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전자투표시스템 관련 가짜뉴스가 뉴스 이용자의 시스템 이용에 대한 태도, 시스템을 통한 선거 참여 의도, 뉴스서비스 신뢰도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치는지 실험을 통해 확인하는데 있다. 연구결과, 부정적인 내용으로 프레임된 가짜뉴스는 이용자의 태도와 선거 참여 의도 수준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보였다. 특히 각 뉴스서비스에 따른 가짜뉴스 영향력 차이를 검증한 결과, 이용자가 일반 인터넷신문을 통해 가짜뉴스에 노출되고 해당 뉴스가 가짜임을 인지한 경우에는 태도와 선거 참여 의도 수준이 감소 후 다시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네이버와 페이스북 가짜뉴스에 노출된 이용자들은 가짜뉴스에 담긴 부정적인 내용을 더욱 강하게 형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짜뉴스가 이용자의 인지적 차원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최초 노출 정보와 일치하는 방향으로 인식을 강화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확인하였다.

소셜미디어에서 에코챔버에 의한 필터버블 현상 개선 방안 연구 (A Study on the Improvement of Filter Bubble Phenomenon by Echo Chamber in Social Media)

  • 조진형;김규정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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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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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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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최근 소셜미디어로 접하는 정보 증가로 알고리즘 기반 추천 형식은 사용자 정보에 기반하여 선별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데, 이러한 알고리즘은 자주 에코챔버(Echo Chamber)에 의한 필터버블(FilterBuble) 효과를 일으킨다. 에코챔버는 밀폐된 시스템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으로 인해 신념이 증폭되거나 강화되는 현상을 의미하고 필터버블은 정보 제공자가 이용자의 관심사에 맞춰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여 이용자는 필터링된 정보만 접하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이러한 에코챔버에 의한 필터버블 현상을 개선하는 방안으로 정보를 효율적으로 선별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연구 진행 방법은 유튜브, 페이스북, 그리고 아마존에서 사용되는 추천 알고리즘을 분석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추천 알고리즘으로 생기는 문제점에 대해서 소셜미디어 사용자의 비판적 사고능력 훈련이나 자기보존법칙에 따른 객관적 윤리 기준 강화 등의 인문학적 해결 방안과 모델 기반 협력 필터링이나 교차적 추천 방식의 기술적 해결 방안을 제시하였다. 결과적으로 추천 알고리즘은 지속적 기술 보완과 새로운 기법 개발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하며, 소셜미디어를 대하는 사용자는 비판적 사고 훈련과 정치적 의사소통 교육을 통해 인지부조화를 이겨내고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인문학적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천초(川椒)에 관(關)한 연구(硏究) - 1. 신미성분(辛味成分)과 정유성분(精油成分) - (Studies on the Zanthoxylum piperitum $D_E$ $C_{ANDOLIE}$ - 1. Pungent principles and Essential oil composition -)

  • 정현숙
    •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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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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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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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7
  • 천초(川椒)나무를 과피(果皮) 및 수피(樹皮)로 구분(區分)하고 Chloroform으로 추출(抽出)한 신미성분(辛味成分)은 HPLC로, 수증기(水蒸氣) 증유(蒸溜)하여 얻은 정유성분(精油成分)은 GC로 각각(各各) 분리(分離)하였다. 과피(果皮)에서는 미지(未知)의 신미성분(辛味成分) 2가지와 함께 70.3%의 가장 높은 함유율(含有率)을 보인 Sanshool III를 비롯하여 SanshooI (17.2%) Sanshool IV(11.0%) Sanshool V(0.8%)가 분리되었으며, 수피(樹皮)에서는 미지(未知)의 신미성분(辛味成分) 4가지와 함께 53.9%의 가장 높은 함유율(含有率)을 보인 Sanshool III를 비롯하여 Sanshoo lVI(10.9%), Sanshool I(7.9%), Sanshool V(3.3%)가 분리되었는데, 과피(果皮)의 신미성분(辛味成分) 총함량(總含量)이 樹皮의 12배나 되었다. 과피(果皮) 및 수피중(樹皮中)의 정유성분(精油成分) 총함량(總含量)은 각각(各各) 1.8%와 0.5%로 과피(果皮)에서 더 높았는데, 과피(果皮)에서는 37.7%의 Cineol+Limonene이 주된 정유성분(精油成分)을 이루었으며, 수피(樹皮)에서는 16.5%의 D-Terpineol과 15.5%의 Pinene이 대부분이었다. 과피(果皮) 및 수피중(樹皮中)의 정유성분(精油成分)은 Pinene, Myrcene, Cineol+Limonene, Linalool, Isopulegol, Terpinen-4-ol, ${\alpha}-Terpineol$ 그리고 Piperitone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외에 7가지 미지(未知)의 성분(成分)도 분리되었는데, 이 중 dl-Limonene은 천초(川椒)의 된 향기성분(香氣成分)이라 판정(判定)할 수 있는 것으로서 이의 함량(含量)은 수피(樹皮)에서보다 과피(果皮)에서 더 높았다.baryl 및 permethrin 처리구(處理區)에서 증대(增大)되었다.밝혀진 것 보다 더 많은 종류의 버섯이 초파리와 번식적인 면에서 상관관계를 가질 것으로 판단된다.의 쓴맛을 완화시켜 기호도를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미삼추출분말 첨가군의 저장성이 향상되었던 것과는 달리 미삼추출분말과 오미자즙을 함께 넣은 처리구에서는 대조군과 비슷한 발효 양상을 보이는 결과가 나타났는데 이는 미삼과 오미자즙의 상호작용에 의한 결과라고 생각되며, 이에 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다.육(肉)의 평균 보존 일수는 비첨가육 보다 2 % 첨가육이 7일 (돈육(豚肉), 8일), 5% 첨가육이 9일(돈육(豚肉), 10일) 그리고 10% 첨가육은 12일(돈육(豚肉)도 동일(同一))까지 연장 가능하였다. 2당류인 maltose, lactose, saccharose를 첨가 하였을 경우 pH의 저하 효과는 있었으나 첨가 농도가 높을수록 산패 경향이 높았으며 보존 기간 연장을 위한 효과는 단당류인 glucose에 미치지 못하였다.성적은 돼지와 가토의 뇌동맥에서 ACh은 내피세포-의존성 이완반응을 일으키며그 이완반응은 muscarinic receptor를 통해 나타났고, 가묘뇌동맥에서 ACh은 혈관수축제의 역할을 갖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an Evidence Based Medicine (EBM)3 for acupuncture)을 채택 공표한다. 독일 보험 회사들도 침의 효과와 효율성을 검증하기 위해 대규모 실험을 시작했다. 100,000 명이 넘는 환자들이 무작위 표본추출 대조군 실험을 통해 평가되고 있는데 이 실험은 병원이나 일차의료기관의 외래에서 진행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이 분야의 유력한 Edzard Ernst가 위의 개념과 비슷한 구도를 설정 공표하는데 보완의학 분야의 많은 다른 전문가들의 견해를 무릎 쓰고, 그는 증거기반 의학에 대한 그의 신념을 표방한다. "무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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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능비(陵碑)의 건립과 어필비(御筆碑)의 등장 (Formative Stages of Establishing Royal Tombs Steles and Kings' Calligraphic Tombstones in Joseon Dynasty)

  • 황정연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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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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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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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논문은 조선 초 중기, 조선후기, 대한제국기 세 시기로 나누어 조선왕릉에 건립된 신도비와 표석의 시기별 건립추이와 양식적 특징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그 결과 왕실 능비(신도비와 표석)는 일반 사대부가와 달리 건립한 시기와 주체, 후계왕의 의도에 따라 시기별 차이를 보이며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15~17세기는 왕릉 신도비의 건립과 재건이 이루어진 시기, 18세기는 신도비가 표석으로 대치되어 다수 건립되었고 국왕의 어필을 직접 돌에 새긴 어필비가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이며 대한제국기는 황제국으로 격상됨에 따라 조선 개국자인 태조와 왕후, 선조들에 대한 추숭(追崇) 사업이 활발해지면서 표석 중건이 이루어진 시기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본다면, 결국 우리나라 능비의 역사는 조선후기를 기점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왕릉 신도비의 형식은 삼국시대의 부정형한 석비의 초보적인 형태에서 벗어나'귀부이수'형의 당비(唐碑) 형식을 수용한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 말 탑비의 퇴화된 양식에서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15세기 건립 당시부터 선왕에 대한 숭모 예를 표현하고자 하는 국왕과 왕의 치적이 국사(國史)에 모두 기록되어 있으므로 신도비를 별도로 세울 필요가 없다는 신료들의 입장이 대치되면서 건원릉 제릉 헌릉 구 영릉 4곳에만 건립된 채 왕릉에는 한동안 석비가 건립되지 않았다. 신도비 건립이 중단된 이후 17세기에 이르러 왕릉에 아무런 표(表)를 해 둘 수 없다는 의견이 제기됨에 따라 형식이 간소한 표석이 건립되기 시작했으며, 1682년 작 영릉(寧陵)의 표석은 최초로 왕릉에 건립된 표석이자 장대한 규모, 섬세한 조각기법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왕릉의 능표는 영조 재위 기간인 1740년대부터 대규모로 건립되었다. 열성(列聖)에 대한 추숭과 어필간행 등을 통해 자신의 왕위 계승의 전통성을 공표하고자 했던 영조는 제릉의 신도비를 재건하는 한편, 의릉(懿陵)을 비롯하여 총 20곳에 달하는 곳에 표석을 세우는 역사(役事)를 추진했고, 처음 친필 글씨를 돌에 새긴 어필비를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 어필비 제작 현상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소실된 어필을 보존하려 한 숙종의 신념을 계승한 영조에 의해 제도적으로 추진되면서 어필을 새긴 능비가 등장한 배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시대사적으로 주목할만하다. 이러한 표석은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다시 한번 다량 제작된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특히 고종은 대한제국의 정통성을 태조의 조선 건국에 두고 태조와 그 4대 선조에 대한 추숭과 기념물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고 전면과 후면 모두 자신의 글씨로 채움으로써 역대 어느 왕보다 통치자로서 권한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었다. 이상 언급한 왕릉의 신도비와 표석의 건립 추이는 동시대 원 묘에 건립된 신도비, 표석과 비교 고찰을 통해 시대별 특징과 왕실 조각품으로서 성격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