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시기 조선의 인구동태는 한반도 안과 밖에서 역동적으로 진행되었다. 한편으로 자연성장률이 크게 성장하였고, 국내외 이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연구는 식민지 시기 동안 정확히 얼마만큼의 조선인의 인구성장이 이루어졌고, 그 동태의 특성은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다. 식민지 조선 인구 동태의 중요한 특성은 무엇보다 조선 안에서의 완만하거나 정체된 인구성장과 대비하여 만주와 일본에서의 조선인의 급속한 증가로 요약할 수 있다. 식민지 시기 조선내 인구의 자연성장율은 1910년-1915년 사이 10.57%o에서, 1935-1940년에는 20.4%o, 1940-1944년에는 24.4%o로 증가하였다. 그런데 식민지 시기 자연성장율이 실질적으로 크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내 인구성장이 1930년대 중반부터 떨어지고 이후 정체되었다. 이는 많은 인구가 만주와 일본에 이출한 때문이다. 식민지 기간 동안 조선의 인구는 1,260만 여명이 증가하였는데 그 중 약 69%인 870 만여 명이 한반도 안에 있고 31%가 만주와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집단적인 디아스포라의 경험은 해방 이후의 정치 역학과 사회 구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귀환하지 않은 해외 조선인들의 국적과 민족 정체성을 둘러싼 긴장은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Eunsa Memorial Science Museum is a political space to justify ruling colony. Japanese imperialism made use of science museum in ruling colony under the cloak of propagating science thoughts. The science museums made it natural to rule the inferior Joseon(Korea) by bring the concept of 'Great Science Empire' into relief. The exhibition, lecture, experiment and science movies propagated those colonial ruling ideology. This transplantation of the colonial science museumraised the following problems. First, the science museum was used as means for the propagation of political power. All the aspects of the architecture, exhibition, and operation of the colonial science museum propagated and supported the direction of political authority, and furthermore planted a rosy phantasm of 'Development' and 'Progression' into the colony. Second, The science technology of science museum was treated as 'Result' and 'Instrument'. Japanese imperialism denied that the science is a historical and cultural staple product; it instilled only the 'Instrumental Rationality' in the colony. Third, the science technology dealt in the colonial science museum was below the level. What they educated and set forth as domestic science was to cultivate the laborers people for the political power by internalizing modernistic discipline.
또세인꼬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식민지 버마의 지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남긴 중요한 인물이지만 잊혀졌던 인물이다. '미얀마 연구'의 몇몇 뿌리가 식민지 시대에 있음을 고려할 때, 또세인꼬의 저작은 미얀마를 연구하고 이해하려는 오늘날의 노력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는 고고학적 저술로 잘 알려져 있긴 하지만, 그의 저작과 경력을 검토해 본 결과 그는 식민지사회에서 공적 지식인으로 활약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시아 연구(특히 버마 연구)의 발전이 제국주의적 틀 속에서 이루어질 때, 또세인꼬는 식민지 버마에 존재했던 혼성적 저술전통을 따라 저술했다. 또세인꼬는 버마인의 관점이나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도회지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방법과 같은 그 어느 길에서도 벗어났던 스콧, 오코너, 그리고 필딩-홀과 같은 영국학자들의 그룹에 속한다. 또세인꼬의 저술을 연구하는 것은 식민지적 지식과 버마에 관한 영국인의 저작에 관한 연구가 유용하게 재개념화 될 수 있는 기초를 갖추는데 도움이 된다.
Journal of Korean Library and Information Science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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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32
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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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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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Japanese colonial library policy was to interfere with the library activities by Korean leaders to enlighten Korean people as a form of independence movement, and through the government library to colonize Korean people into Japanese culture. This study investigates and analyzes the background of foundation and activities of the Taegu Burip Library which was officially founded first in Korea by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It tries to find the hided intention of the Japanese colonists to establish the libraries in Korea as a part of their colonial policy.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study on colonial modernity of commercial space in the case of commercial companies in Kyungsung(Seoul) during Japanese colonial period. Commercial companies in Bonjung2jungmok had the greatest growth in the numbers and the scale of company's capital from 1920s to 1930s. Japanese's commercial companies had concentrated in Bonjung1jungmok and the scale of Japanese's capital had been the greatest in Hwanggumjung2jungmok. Korean merchants had tried to change their commercial organization to modern and capitalistic system in the face of infiltration of Japanese merchant capital in Kyungsung. They had established some modern stock companies and had managed a few companies of large capital such as Hwasbinyeonshejum(a multiple shop) in Jongro2jungmok. We may observe the modernity of commercial companies in some modern stock commercial companies and the activities of commercial merchants in Kyungsung. But Korean's commercial companies had been small-scale businesses in comparison with Japanese's commercial companies. Colonialism in commercial space in Kyungsung had been appeared doubly in ethnical segregation of commercial activities and the scale of commercial capital.
This article aims to inquire into the decision making system and the sources of the original documents made by means of it in Imperial Japan, the colonial Chosun, GHQ, and the occupied Japan in terms of the post-war treatments of compensation on the Japanese colonial rules. It deals with them from 1910 to 1952 in the perspective of history and archivistics. This article attempts to establish the foundation on which the perception of the documents made in the Imperial Japan, its colony, and the occupied territory would be widened by placing the colonial rules and the compensation on them into a continuous line. The records of Japan's forced occupation of Korea during 1910-1945, and the original records documenting the decision making process of post-war compensation under GHQ, 1945-1952, have been dispersed in Korea, Japan and the United States. This dispersed preservation was mainly due to the complicated decision-making process among Governor-General of Chosun, the Japanese Imperial government, and the GHQ. It was the top-down styled, dual decision making system, in which the critical policies, personnel, and budget had been decided in Imperial homeland, while their implementations were made in the colonies. As a result, the records documenting the whole process of domination have been preserved dispersedly in Japan and its colonies. In particular, the accounts of not yet paid Korean workers that was forced to mobilize in Japan's colonial periods, which is emerging as the diplomatic conflict between Korea and Japan, had been dealt in the decrees of the Japanese government and policy-making of GHQ. It has already been changed to the problem as 'economic cooperation' from the 'debt'. Also, the critical records for post-war compensation were preserved dispersedly in the United States and Japan under the top-down decision making process of GHQ-Japan. Therefore, the dispersed records of 1910-1952 about the colonial rules by the Imperial Japan and the post-war compensation on them must be re-investigated for the adequate documentation in the context of time and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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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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