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시조[時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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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변이 양상 (The Aspects of Change of Sijo)

  • 강명혜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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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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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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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시조는 발생초기부터 당대의 역사 시대적 배경에 따라 그 틀과 내용이 조금씩 변하면서 융통성 있고 유연하게 적응해 왔다. 이런 점이 당대의 시대적 배경이나 사상, 실태 등을 반영해서 당시의 독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시조를 시조답게 하는 시조성만은 그대로 고수해 왔기에 '시조'라는 장르가 현재까지도 생존할 수 있었다. 어느 시대나 어떤 배경에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3장이라는 정형성은 지켜졌으며, 3, 3조나 3, 4조를 유지했고, 또 종장의 첫 구 3자도 고수했다. 이러한 시조성은 시대적인 간극에도 불구하고 '시조'라는 공분모 안에 모두 수렴시킬 수 있는 동인을 마련했다. 한국시가에 있어서 시조는, 공적 기능에서 사적 기능으로 변모가 이루어진 최초의 양식으로서. 그 변이과정을 살펴본 결과. 고려말${\sim}$조선조의 평시조는 그 당시 조류에 부합해서 시조 텍스트를 재도지기(載道之器)로 보아 이중적인 의미의 채색, 상징성 부여, 다채로운 문장 수식 등은 나타나지 않지만, 명천도(明天道) 정인륜(正人倫) 지향하는 성현의 가르침을 온유돈후(溫柔敦厚)하게 나타내고자 노력했다. 주제는 주로 그 당시 상황과 부합되는, 송축, 절의, 정쟁, 훈민, 한정, 강호도가, 안빈낙도, 애정 등이었다. 조선조 후기에 오면서는 사설시조(辭說時調)가 활성화하기 시작한다. 사림파의 득세와 양란(兩亂), 실학의 도입 등으로 조선조 후기에는 인식의 변화를 겪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가 시가 양식에도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설시조는 당대의 봉건주의 파괴, 유교적 모랄에 대한 반발, 근대적 특성 보유 남녀평등등 사상, 지배층에 대한 고발 및 저항정신 둥이 주축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저항적 리얼리즘적 현실지향적인 성향을 띠며 특히 고발문학 저항문학의 지반을 형성하는 장르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무엇보다도 잡다한 일상사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현실 생활에 대한 깊은 관심, 그에 대한 사실적, 구체적 표현은 사실주의 정신의 매개항이 된다는 점에서 근대성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았다. 1905년 이후 신문에, 형식이나 내용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기존의 평시조나 사설시조에서 변이된 형태를 취하는 일군의 시조가 등장했다. 변이된 형태는 시조 텍스트의 형식과 내용뿐만이 아니라, 수용적 측면에서도 일어났다. 이때부터 시조는 '읊고 부르는 형태'에서 주로 '읽는 기록물'로 인식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변이 된 시조 형태란, 당대의 시대를 풍자하는 '흥, 내지 흐응'이 삽입된 것, 종장의 어미가 생략된 것 등을 말한다 이러한 형식은 긴박한 상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특성을 지니기는 하지만, 고시조의 틀, 즉 율격이나 자수에서 많이 이탈되어서인지, 그 생명은 길지 못했다. 그러다가 192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해서 시조부흥운동이 일어나면서부터 시조 창작은 다시 활기를 띠게 되는데, 시조부흥운동은 최남선에 의해 주도되었다. 시작(詩作) 초기에는 서구지향의 시와 시조들 병행해서 쓰던 육당 최남선이, '조선국민문학(朝鮮國民文學)으로서의시조(時調)'라는 글을 통해 시조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언급하면서 시조부흥 운동을 선도한다. 그는 시조집, '백팔번뇌'도 출간하는데. 그의 전 시조집을 관통하는 것은 '조국 사랑'이라는 일 주제였다. 결국 육당은 고시조를 민족정신의 일환으로 보고, 시조양식을 채택하여 그 당시의 역사 사회적인 상황에 부합되는 주제를 표출한다. 결국 육당도 시조 텍스트를 재도지기(載道之器)로 여겼음을 알 수 있었다. 현대의 시조는 현대성(現代性)과 시조성(時調性)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는 어려움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전자에만 치중한다면 자유시와의 변별성이 문제가 되며, 후자를 고수하려니 고루하고. 시적 묘미가 없다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많은 작가들에 의해 평시조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시조가 지니는 원형성에 대한 매력을 감지해서일 것이라고 보았다. 그들 중 특히 선정주의 작품에 주목했는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특히 근대의식, 사회비판정신, 고발의식, 사실주의 정신 구현, 서민의식, 산문체 ·일상어 지향 등, 사설시조의 특징 및 성향을 잘 구현, 반영하면서 그 맥을 잇고 있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렇듯이 현대의 시조 작가들은 우리의 고시가 형식을 다양하게 선택해서 다양한 주제를 표출하고 있었다. 여기서 추정할 수 있는 사실은 이러한 시조의 유연성은 앞으로 시조의 생명을 항구적으로 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역사 시대적 변화와 상황 하에서 다시 새로운 양상을 취할 가능성을 보인다는 것, 그리고 이 '시조'는 한국인의 '영원한 정형시 장르'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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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광』의 시조 연구 (A study on SiJo in Dongkwang magazine)

  • 안영길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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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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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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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일제 강점기 간행된 "동광" 잡지에 게재된 시조를 분석하여 당대 시조의 특징과 문화현상을 파악하려 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연구 순서로 진행하였다. "동광"에 게재된 시조의 내용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는데, (1)임에 대한 정한의 표출 (2)역사 회고 (3)농촌의 정취 (4)사향(思鄕) (5)삶에 대한 성찰과 각오 (6)신의에 대한 성토 (7)이별의 정한 (8)계절 예찬 (9)귀전원과 정감 등으로 대별할 수 있었다. 이중에서도 당대의 특징을 잘 반영하는 주제로 선별하면 대체로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그 근거는 통계적 기준(작품 수)과 당대 시대상(일제 강점기)을 고려해서 나눈 것이다. 즉 농촌의 정취, 귀전원과 정감, 역사 회고 등이다. 먼저 농촌의 정취를 살펴보면 표면적으로는 평화롭고 정감서린 농촌의 정경을 읊조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세금을 내고나면 남는 것이 없는 소작농의 궁핍한 생활을 토로하고 있다. 또 감각적인 표현을 활용하여 농촌 특유의 정감을 유감없이 그려냈다. 다음으로 귀전원과 생활의 정감에 관한 것을 담고 있는데, 전원에서의 정취와 낭만을 노래했다. 즉 1930년대는 전원으로 돌아가는 사회 현상을 시조문학을 통해 살펴 볼 수 있었다. 특히 선경후정(先景後情)의 작법을 활용하여 쉽고 평탄하게 내용을 전개하였으며 이따금 탈속적 정취를 노래했다. 또 도연명의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의 배경을 활용하고 농촌 정착의 의지를 표출하였다. 마지막으로 역사 회고 시조인데, 현실에 움추린 조선인들을 일깨우기 위해 위국충절과 호연지기를 노래했다. 그리고 여전히 국권회복의 가능성을 갈망하고 있다. 특히 종장에서 밑줄 처리를 통해 고조된 감정을 표출하고 종래에 없던 새로운 시조의 작법을 보여 주기도 했다. 역사 회고 시조는 부당한 현실에 대한 반감을 전제한 것이며, '애달프다'라는 시어는 당대를 바라보는 지식인들의 심정을 압축적으로 대변한 것이다. 1930년 이후는 시조는 이전의 감성적 낭만적인 시조와 달리 논리적이고 사회문제를 전달하려는 스토리를 갖고 있는 것도 있다. 즉 기존의 음악적 요소나 감정에 호소하는 성향보다는 이치적이고 산문적 성향을 갖고 있다. "동광(東光)"의 시조를 통해 당대의 시의성을 반영하고 동시에 우리 문학의 전통성과 정감을 여전히 발산하고 있는 시조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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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보 애정류 사설시조의 구조 고찰 - 성적 내용을 다룬 세 작품을 대상으로 - (A Study on Sasulsijo by Lee Jeon-Eo)

  • 김성면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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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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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1-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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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이정보의 시조가 $\lceil$해동가요$\rfloor$ (주씨본)에 82수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 사설시조가 20수이다. 이 사설시조 중에서 본고에서 분석한 작품은 '남녀의 성행위', '육욕'. '상대의 유혹'을 다룬 작품 3수이다. 이 작품들의 구조를 분석한 결과를 다른 사설시조들 중에서 임의로 추출하여 비교하였다. 이 비교는 이정보의 세 작품들이 갖는 특징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내용을 이루는 글감들은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유형화되었다. 둘째, 의도한 의미를 아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치밀함을 찾아 볼 수 있다. 셋째, 의도한 의미를 표현하는 데 사용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다루어 완전무결하게 표현하여 최고, 최상의 효과를 노렸다. 넷째, 그러한 의도가 일정한 구조의 틀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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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素月)과 지용(芝溶)의 시조(時調) (A Study of Sowol's and Jiyoung's Sijo)

  • 이태희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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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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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3-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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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이 논문은 한국 현대시의 개척자인 소월과 지용의 시조를 살펴보았다. 두 시인은 한국 현대 자유시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인들의 시조 창작이 자유시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고찰하고자 했다. 소월은 8편의 시조를 발표하였는데. 이 중 6편은 초기에, 2편은 후기에 발표하였다. 소월의 초기 자유시는 규칙적인 형태를 지닌 작품이 많다. 6편의 시조들은 기본적으로 고시조의 형식을 유지하고 있으나,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주제에서는 고시조의 관념적 측면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반면. 후기에 발표된 2편의 시조의 경우, 형식적 측면에서 큰 변화를 보이지 않으나. 주제면에서는 고시조와 달리 현실의식이 강하게 부각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지용은 9수의 시조를 발표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초기에 발표된 것이다. 그런데, 지용의 시조는 소월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즉, 소월의 초기 시조가 형식적 실험을 위주로 하고 있는 반면, 지용은 형식적 차원의 실험보다는 시적 심상을 새롭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지용의 마지막 발표 작품인 $\ulcorner$사사조오수(四四調五首)$\lrcorner$는 시조는 아니지만, 4.4조의 정형성을 띤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소월과 지용의 시조 창작과 실험은 그들의 자유시를 발전시키고 개척하는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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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삼동에 베옷 입고>의 문헌 전승 양상 연구 (A study about literary traditional aspects of Korean verse, 'In hemp clothes in winter')

  • 김명순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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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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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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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시조 <삼동에 베옷 입고>는 30여 종의 가집에 수록되어 있고 10여 종이 넘는 문집류 문헌에 시조 원문 한역시, 작가, 창작 배경 둥에 관한 기록이 들어있다. 오랫동안 조식의 작품으로 알려져 온 이 시조의 작가가 김응정이라는 주장이 제기었으나 일부 학술논저와 대부분의 교양도서 및 학습참고서류에서는 조식의 작품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작가 시비가 논의되고 있다는 이유로 교과서에서 삭제되었다. 가집류의 대다수에 이 시조의 작가가 조식으로 표기되어 있고 일부에 양응정으로 나오지만 이를 객관적 자료로 삼기는 어렵다. 문집류 문헌에는 길재(吉再) 김인후(金鱗厚), 이몽규(李夢奎), 김응정(金應鼎), 김령(金玲) 등이 작가로 나오는데, 저마다 해당 인물의 생애와 창작 배경 등을 제시하며 서로 다른 주장을 내세우고 있어서 혼란스럽다. 가집류의 경우는 원작자 김응정이 양응정으로 잘못 기록되고. 행적과 명성이 (삼동에 베옷 입고)의 내용과 배경에 가까운 조식으로 바뀌어 전승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집류 문헌의 경우는 대상 인물의 생애와 행적, 일화와 명성, 시문 창작, 시대 배경과 역사적 사건 등이 (삼동에 베옷 입고)의 내용 및 배경과 쉽게 결부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행적이나 일화가 전승되면서 이 시조의 작가로 알려지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 시조의 작가로 내세워진 인물의 가문의 후손, 향리 후배, 학파나 정파의 후진 등이 선조나 선배의 절의를 드러내기 위해 집안이나 향리, 학파 등에 전승되던 (삼동에 베옷 입고) 창작설을 특정 기록으로 정리하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관련된 문헌자료를 광범위하게 검토한 결과 이 시조는 김응정이 명종의 승하시에 지었다는 사실을 구체적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삼동에 베옷 입고)의 원문 표기 창작 배경 어휘 풀이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살펴보았다. 시조 (삼동에 베옷 입고)와 관련된 다양한 문헌자료의 전승은 해당 시조 뿐 아니라 시조문학의 수용과 전승양상을 보여주는 자료로서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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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텍스트성(textuality) 연구 (A Study on the Textuality of Sijo Poetry)

  • 임종찬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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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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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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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시조를 문으로 짜여진 text라고 보고, 그 짜임 (textuality)을 1) 각 장의 수사적 표현 2) 각 장끼리의 연결성 3) 각 장의 통사적 짜임의 측면에서 고시조와 현대시조를 살펴보았다. 고시조에 있어서 1)은 논리 정연한 문장으로 되어 있고 논리를 방해할 수 있는 수식어를 극도로 배제하고 있음을 알았다. 2)는 각 장끼리의 응집성 혹은 응결성을 확보하여 확실한 연결을 이루고 있음을 알았다. 3)은 통사적으로 안정된 짜임을 갖고 있어 3장 6구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았다. 현대시조에 있어서 1)은 수식어를 남용하여 정연한 논리로서의 시조가되지 못 할 뿐더러 3장 구성까지도 만들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2)는 각 장끼리의 연결성이 애매하여 장과 장끼리의 유기적 결합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3)은 3장 6구를 이루는 통사적 짜임을 몰각하여 시조형식을 파괴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와 같은 현대시조의 경향은 현대시조의 존립근거를 위태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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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씨니[네]~' 시조의 검토와 "각시니 내 첩이 되나"의 해석 (A examination of 'Gakssi (각씨)~' Sijo and interpret of $\lceil$Gaksine nae cheobi doena(각시니 내 첩이 되나)$\rfloor$)

  • 이영태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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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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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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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이 글은 '각씨니[네]$\~$' 계열의 사설시조(평시조 포함)를 검토하는 데 목적을 둔다. '각씨'라는 단어가 술과 안주, 그리고 음악이 있는 공간과 밀접하다는 점은 조선후기 이전 기록에도 있었고 그것이 시조에 그대로 재현되었다. 시조에 등장하는 '각씨'는 '주연석이나 풍류장‘에서 가창공간의 분위기를 돋우게 하는 재미있는 '허튼소리'와 관계하는 인물이지 일반 아녀자를 지칭하는 게 아니었다. '각씨니[네]$\~$' 시조에서 가장 앞서는 $\lceil$각시네 내 첩이 되나$\rfloor$($\#48$)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이를 통해 보건대 '각씨니[네]$\~$' 시조는 태생적으로 '주연석이나 풍류장‘이라는 공간과 밀접하다고 규정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48$ 이후의 '각씨니[네]$\~$' 시조도 그런 공간을 출입할만한 여건을 갖춘 자들과 관련된 노래로 판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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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한역 자료의 현황과 그 성격 (The literary characteristics and material status about the translation of Sijo into Chinese poetry)

  • 김명순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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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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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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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고의 연구 목적은 한국 전통시가의 대표적인 장르인 시조를 한시로 번역한 시조한역시 자료의 전체 현황을 정리하는 것이다. 시조의 한역은 주로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이루어졌다. 본고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시조를 한역한 문인은 120명 정도이다. 한역 된 시조는 작품이 밝혀진 것이 759수이고 원시조를 확인하지 못한 것이 135수이다. 따라서 900여수에 가까운 시조가 한역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시조 1수가 여러 편의 한역시로 번역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실제 시조 한역시는 더 많다. 본고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전체 한역시는 1356수에 달한다. 결국 시조 900여 수가 한시 1400여 수로 한역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조의 한역은 한두 편씩 단편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10여수에서 100수가 넘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연작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연작시에는 유행하는 시조 가운데서 임의로 수집에서 한역한 경우와 원래 연작형을 이루고 있는 특정 작품이나 특정 인물의 작품만 한역한 경우가 있다. 전자는 신위의 <소악부>를 비롯해서 22인의 한역시 연작 27편이 있고 전체 한역시는 652수이다. 후자는 송시열이 번역한 <고산구곡가번문> 10수를 비롯해서 30인의 연작26편이 있고 전체 한역시는 525수이다. 그리고 1수에서 5-6수 정도로 단편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는 시조 한역시 단편은 70여 인의 작품에 한역시는 180수 정도가 된다. 본고를 통하여 방대한 시조한역시의 규모와 자료 문헌적 성격이 드러났다. 한시 양식으로 번역되어 전승된 시조 한역시 자료는 시조의 창작과 전승과정 등을 연구하는 데 필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며, 국문문학과 한문학이 상호작용한 교섭양상과 조선후기 한시사의 변화 양상을 파악하는 데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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