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Summary/Keyword: 승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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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s Status Reflected in The Joseon Dynasty's Document transmission System (조선 문서행이체제에 반영된 국왕의 위상)

  • Lee, Hyeongjung
    • The Korean Journal of Archival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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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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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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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This article explores the influence of the king in the Joseon dynasty's document transmission system, focusing on some exceptional cases. According to the Joseon's law, the form of official documents depended on rank differences between receiver and sender. However, there were cases of not following the general principles such as Byungjo(兵曹), Seungjeongwon(承政院) and Kyujanggak(奎章閣). Byungjo was a ministry in charge of military administration. Seungjeongwon was a royal secretary institution which assisted the king and delivered king's orders that existed from the early Joseon. Kyujanggak was a royal library and an assistant institution of the king that was established in the JeongJo(正祖) era. Byungjo was regarded as a relatively high-ranking institution when it sent and received military-related documents. Seungjeongwon and Kyujanggak could use Kwanmoon(關文) to upper rank institution. Kwanmoon was the document form used for institutions of the same or lower rank than itself. Conversely, higher rank institutions used Cheobjeong(牒呈) which was stipulated as a document form to using upper rank institution in law to send them. The reason that they could have privileges in transmission document system was that Joseon had an administrative system centered on the king. Byungjo was an institution entrusted with military power from King. Seungjeonwon and Kyujanggak took charge of the assistance and the delivery of King's order. so they could have a different system of receiving and sending document than the others. In conclusion, the Joseon Dynasty operated exceptions in document administration based on the existence of the king, it means Joseon's transmission document system was basically operated under the Confucian bureaucracy with the king as its peak.

A Study on the Architectural Space of Seungjeongwon in the Early Joseon Dynasty (조선전기 승정원의 건축공간에 관한 연구)

  • Yi, Jeong-Kuk
    • Journal of architectural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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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20 no.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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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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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the architectural space of Seungjeongwon (承政院), the Royal Secretariat, in the early years of Joseon Dynasty. The Royal palace can be divided into three parts, political space, living space for king and his family and offices for government official in the palace. So first, we should to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of each space in the Royal Palace. The result of this study is following. Seungjeongwon of the Joseon Dynasty was where Seungji (承旨), Juseo (注書), Sagwan (史官), Seungjeonsaeg (承傳色), Seori (書吏) and Harye (下隷) worked together. The architectural space of Seungjeongwon was separated into Jeongwon-Cheong (政院廳) and Juseo-Cheong (注書廳). Jeongwon-Cheong was the office for Seungji, where Sagwan worked as well as Seungji and Juseo. The form of Jeongwon-Cheong (政院廳) in Kyung-bok Palace was similar to that depicted in Eundaegyecheop (銀臺契帖), which was painted the meeting of Seungjis. Juseo-Cheong was the office for Juseo and Sagwan and there was a break room. Apart from Jeongwon-Cheong there were rooms where Seungji could work or take a rest. As with the office of Seungji, the space for Juseo also had rooms for Juseo. There were also rooms for Seori and Abang (兒房) which were rooms for servants.

세계기록유산 1

  • Korean Printers Association
    • 프린팅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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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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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8-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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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이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세계 각국의 '세계기록유산'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관심이다. 2003년 8월말 현재 33개국 68점이 세계기록유산에 올라 있는데 우리나라는 '직지' 를 비롯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훈민정음 해례본이 등재되어 있다. 이에 세계 각국의 기록유산에 대해 청주 고인쇄박물관 이승철 학예연구사의 기고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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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록유산 2

  • Korean Printers Association
    • 프린팅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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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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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6-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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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이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세계 각국의 '세계기록유산'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관심이다. 2003년 8월 말 현재 33개국 68점이 세계기록유산에 올라 있는데 우리나라는 '직지'를 비롯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훈민정음 해례본이 등재되어 있다. 이에 세계 각국의 기록유산에 대해 청주 고인쇄박물관 이승철 학예연구사의 기고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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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록유산 3

  • Korean Printers Association
    • 프린팅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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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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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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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이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세계 각국의 '세계기록유산'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관심이다. 2003년 8월 말 현재 33개국 68점이 세계기록유산에 올라 있는데 우리나라는 '직지'를 비롯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훈민정음 해례본이 등재되어 있다. 이에 세계 각국의 기록유산에 대해 청주 고인쇄박물관 이승철 학예연구사의 기고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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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od Stage Reconstruction from the Historical Documents in the Joseon Dynasty (조선시대 하천 수위 관측 자료의 복원)

  • Kim, Hyeon-Jun;Cho, Han-Bum;Noh, Seong-Jin;Jang, Cheol-Hee
    • Proceedings of the Korea Water Resources Association Con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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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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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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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조선시대에 도성의 개천과 한강변에서 하천 수위를 측정하였다. 세종 23년(1441년)에 측우기와 수표(水標)를 제작하여 강우량과 하천수위를 측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표는 지금의 청계천과 한강변두 곳에 설치하였다. 와다유찌는 조선고대의 관측기록을 정리하면서 측우기 기록을 분석하였고, 수표 기록을 정리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고문헌 자료에서 수표 관측 기록을 복원하여 조선의 도성인 개천(청계천)과 한강의 홍수 기록을 복원하는데 활용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에서 복원한 승정원일기와 기우제등록에 수록된 수표의 관측기록은 와다유찌가 조사한 기록을 상회한다. 와다유찌가 조사한 기록은 명종 1554년부터 영조 1778년까지인데, 1554년의 기록은 1회에 그치며, 인조11년(1633) 이후의 기록이 대부분이다. 이 점은 기우제등록의 경우도 유사하다. 기우제등록은 인조 11년부터 고종 26년(1889)까지의 기우제, 기청제, 기설제에 대한 기록을 정리한 것으로 전체 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우제 기록과 함께 수표기록(중부, 남부, 한강 및 수표)이 포함되어 있다. 기우제등록에 수록된 수표기록은 총 690회에 이르지만, 1779년 6월 11일의 3척 5촌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숙종의 재위 기간에는 1669년부터 1791년까지 매년의 홍수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한강의 수위와 도성안 개천에서 중부수표와 남부수표 2곳의 수표 기록을 있으나, 숙종 23년(1697)부터는 중부수표만 기록되어 있다. 이 지점에서의 10척을 상회하는 홍수는 20번의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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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ther and Climatic Environment of Seoul Area in South Korea during 1623~1800, Reconstructed from 'The Daily Records of Royal Secretariat of Joseon Dynasty(承政院日記)' (1623~1800년 서울지역의 기상기후 환경 -'승정원일기'를 토대로-)

  • LEE, Joon Ho
    • Journal of the Korean association of regional geograp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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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22 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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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6-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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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This study aims to figure out the weather and climate environment of Seoul area in S. Korea during 1623~1800, which has not been studied so far, by using daily records of weather conditions and meteorological phenomena in the Daily Records of Royal Secretariat of Joseon Dynasty(承政院日記) together with records of abnormal weather conditions and natural disasters in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朝鮮王朝實錄). During 1500~1760 as a period of the Little Ice Age it was generally cold and dry, particularly cool summers of Seoul area. Changes in weather conditions and meteorological phenomena and climate changes appeared prominently at around 1650, 1710, 1770. The annual numbers of rain days and of snow days began to change largely in the 1640s. The rain(and snow) days reduced significantly in the 1710s~1650s, but increased sharply in the 1710s and later. The rain days in summer rapidly increased after the late 1710s, while the snow days greatly reduced after the mid 1770s. The cloudy days around the 1710s greatly reduced in summer, while slightly increased in winter. The hail days increased significantly in the late 1720s and lasted until the 1760s. The fog days began to reduce after 1770 to the fewer days than the climatic normals of 1981~2010. These times are overall consistent with findings of historical climatological cross-checking data and geophysical biological proxy data, accompanied by a trend of relatively enhanced colder and drier of Seoul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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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elopment of Input System for Digitalizing Handwritten Hanja Historical Documents (필기 한자 고문서의 디지털 라이브러리화를 위한 입력 시스템 개발)

  • 장만대;김민수;이택헌;김진형;곽희규
    • Proceedings of the Korean Information Science Society Con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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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1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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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5-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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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본 논문에서는 필기 한자로 쓰여진 고문서를 보다 효율적으로 디지털 라이브러리화하기 위한 입력 방법을 제안한다. 제안한 입력 방법은, 문자 인식 방법과 수작업을 병행하는 방법으로서, 인식 및 기각 방법을 사용하여 유사한 글자들을 자동 군집화한 후, 수작업으로 교정 및 검증을 거쳐 최종 입력하는 방식이다. 한국학 고문서인 승정원일기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제안한 방법이 높은 정확률과 낮은 기각 비율을 보임으로써, 기존의 수작업 입력 방법을 대체할 경우 상당한 시간 및 노동력의 절감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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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성은 어느 별인가?

  • Kim, Dong-Bin;An, Sang-Hyeon;Song, Du-Jong;Lee, Yong-Sam
    • Bulletin of the Korean Space Science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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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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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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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견우와 직녀의 사랑 이야기가 얽혀 있는 두 별은 여름철을 대표하는 별들로서 중국 문화권에서는 지난 수 천 년 동안 매우 인기가 높은 별이었다. 두 별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노래를 모아 놓은 시경(詩經)에 이미 등장하고 있고, 서기 408년에 조성된 고구려의 덕흥리 고분 속에 있는 벽화에도 그려져 있다. 고려시대에는 이 별들에 대한 국가적인 제사를 지냈으며, 조선 시대에는 칠월칠석에 국왕이 신하들과 어울려 잔치를 베풀고 칠석시(七夕詩)를 지어서 책으로 편찬하는 일도 있었다. 한편 견우성은 주로 농사와 관계된 별점을 가지고 있었고, 시각제도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28宿(수)의 하나였으므로 천문학자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관측한 별이다. 그러한 관측의 결과는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에 다수가 남아 있다. 그런데 동양 천문학에서 이미 널리 다루어졌던 문제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 문학적 견우성과 천문학적 견우성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일반 시민들에게 견우성은 독수리자리의 알테어(Altair)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모든 사서와 고대 천문서 및 천문도가 지칭하는 견우성은 염소자리의 다비(Dabih)라는 별이다. 견우성이 28宿(수)의 하나라는 사실은 그 별(별자리)이 황도와 백도 근처에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알테어는 적위가 높아서 도저히 28宿(수)에 속할 수가 없다. 게다가 알테어는 은하수 속에 들어가 있으므로,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는 일반적인 설화와도 어긋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다수의 서적과 매체, 그리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행사와 천문관에서 상영되는 프로그램들에는 모두 알테어를 견우성으로 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불일치는 상당한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연구에서는 이러한 불일치가 천문학적인 견우성과 인문학적인 견우성의 불일치로 보고, 이 문제를 실증적으로 접근해 본다. 즉,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에 실려 있는 견우성 엄폐 관측 기록을 조사하여 한국사에서 전문 천문학자들은 어느 별을 견우성이라고 보아왔는지 알아보고, 또한 일반인들이 지은 시문에는 어떤 별을 견우성으로 여겼는지 고찰한다. 아울러 역사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선인들의 생각을 짚어보고, 중국과 일본의 학자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살핀 다음, 마지막으로 현실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고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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