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선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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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꽃피우는 협회 - 발전하는 우리 협회 - 강화도 유적지 답사 협회 발전 마음 담아 한걸음, 한걸음

  • 한국건강관리협회
    • 건강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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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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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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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강화도는 '지붕없는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선사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많은 문화유산과 역사적 유적지가 보존된 곳이다. 선사시대의 고인돌과 단군왕검께서 하늘에 제를 올리던 참성단을 비롯되어 고려 시대에는 대몽항쟁 39년간의 도읍지로서 팔만대장경판각, 고려청자, 금속활자 주조 등 민속 문화의 황금기를 꽃 피워 온 산실이며, 조선 말기에는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양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 체결 등 외세 열강의 침입에 의연히 맞서 싸웠던 국난극복의 현장이기도 하며 방위를 위한 5진7보53 돈대(墩臺)가 강화도 해안가 전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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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V 시장동향 및 국내기업 진출방안

  • 박광서;이정아
    • 한국항해항만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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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항해항만학회 2012년도 추계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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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5-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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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OSV는 해양플랜트 운영을 지원하는 선박으로, 해저 석유가스 산업의 성장으로 동반성장하고 있는 산업이다. 2008년 글로벌 경기침체 이후 경영난에 빠져있는 구내 해운선사, 중소조선업체, 기자재업체가 동반성장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국내기업의 경쟁력을 극히 미흡한 수준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OSV 시장의 전반적인 동향을 살펴보고 국내기업, 특히 해운선사가 진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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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V 시장 조선.해운 동반진출 전략

  • 안요한
    • 한국항해항만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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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항해항만학회 2012년도 추계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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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8-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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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조선사와 해운사의 경영악화가 심화되고 있다. 해양플랜트 시장의 성장에 맞춰 OSV의 성장도 두드러지는 실정이지만, 우리나라의 조선사와 해운사의 진출은 아직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다. OSV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의 한 축을 담당했던 조선-해운의 동반성장 모델과 마찬가지로 OSV건조-운영은 침체에 빠져있는 우리나라 조선사와 해운사에 좋은 성장기회를 제공하여 동반성장이 가능한 좋은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본 원고에서는 국내 조선사와 해운사가 OSV 시장에 동반진출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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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P 기법을 활용한 해운선사 서비스의 상대적 중요도 평가에 관한 연구

  • 김도윤;권기남;권순영;김재민;박영준;박두진
    • 한국항해항만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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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항해항만학회 2014년도 추계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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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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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최근 해운고객 업체의 높은 서비스 기대에 따른 다양하고 질 높은 서비스 개발이 필요하다. 해운사업의 4대영역인 운임시장, 신 조선시장, 중고선 매매시장 및 해체시장의 점진적 확대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해운선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관련된 문헌연구를 고찰하여 해운선사의 현황을 파악하고,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전략 수립 시 사용할 수 있는 평가요인을 도출하여 요인 간의 상대적 중요도를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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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 고승 만공(滿空)과 적휴(適休)의 요동(遼東) 월경(越境)과 중국사찰 중창 (The crossing the border into Liadong by Mangong and Jeokhyu, the high priest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the rebuilding of the Chinese, Buddhist temples)

  • 황인규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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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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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07-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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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고는 한국 불교사에서 거의 주목되지 않은 조선초 요동 월경과 월경승 만공(滿空)과 적휴(適休)의 중국 불교행적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조선초 태종과 세종대의 대대적인 불교탄압 시책에 대하여 불교계가 속수무책으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불교계 나름대로 저항을 하였던 것이다. 특히 조계종의 나옹혜근과 태고보우의 문도 계열이 두드러졌다. 보우의 문도들이 주로 신문고를 치거나 불교의 자정을 주창하였으며, 나옹의 문도 계열은 무학을 중심으로 불교계를 재편하거나 탄압에 맞섰으며, 명(明)의 황제의 도움을 받아 불교계를 수호하고자 하거나 아예 요동으로 월경(越境)하기도 하였다. 월경을 시도하다가 해선(海禪)처럼 체포되기도 하였으나 태종대 만공(滿空)과 세종대 적휴(適休)처럼 월경하여 중국 불교계에 뚜렷한 행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만공(滿空)은 태종대 요동으로 월경한 11명 가운데 한 고승으로 홍도(洪道) 홍인(洪因) 등과 함께 하였는데 무학의 문도이자 나옹의 문손인 듯하다. 나옹의 문도인 듯한 만공은 월경후 북경에서 다시 해로로 이동하여 금릉 금릉(金陵) 천계사(天界寺)에 주석하다가 조선과 친근하며 유서가 있는 산동(山東) 태안(泰安)으로 이주하여 죽림사(竹林寺)와 보조선사(普照禪寺)를 중창하면서 불법을 널리 홍포하였다. 적휴(適休)는 세종대에 승려 신내(信乃)와 신휴(信休) 신담(信淡) 혜선(惠禪) 홍적(洪迪) 해비(海丕) 신연(信然) 홍혜(洪惠) 신운(信雲) 등 총 10명과 함께 요동으로 월경하여 북경에서 명 황제의 보호속에 산해관을 거쳐 금릉 천계사(天界寺)에 이주하였다. 그후 그들의 행적은 더 알 수 없으나, 적휴는 북경 곡적산(穀積山)에서 고려 승속이 거주하였던, 특히 나옹과 문도 무학 등이 머물렀던 영암선사(靈巖禪寺) 근처에 반야선사(般若禪寺)를 창건했다. 이와같이 이와같이 조선초 승려들은 국가의 탄압에 저항하거나 월경하였는데 태종과 세종대 만공과 적휴는 중국 불교계를 유력하면서 사찰을 중창하며 중국불교의 발전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