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선비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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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화가 윤덕희(尹德熙)·윤용(尹愹) 부자(父子)의 변유적(變維的) 회화심미(繪畵審美) 고찰 (The Newly changed Painting's Aesthetic of Seonbi painter Yoon DeokHee and Yun Yong Father and Son)

  • 김도영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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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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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9-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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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와 낙서(駱西) 윤덕희(尹德熙)(1685~1776), 그리고 청고(靑皐) 윤용(尹愹)(1708~1740)으로 전해져 온 해남윤씨 3대의 화맥과 학문사상은 해남에 본거지를 두었지만, 주로 한양을 무대로 예술혼을 펼쳤고 가법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선비출신 서화 가문으로 명망을 쌓았다. 공재(恭齋)의 장남으로 태어나 82세를 살았던 낙서(駱西)는 친부 및 남인(南人)계열 이서(李漵)에게서 다양한 학문과 서화를 익혔다. 조선 초·중기 화풍을 섭렵하고 남종화법을 수용하면서 서양식 음영법을 가미하여 대상의 사실성과 입체감을 추구했는데 미법산수(米法山水), 원말(元末) 사대가(四大家), 명대(明代) 오파(吳派), 동기창(董其昌), 청대(淸代) 안휘파(安徽派) 등 다양한 화법을 융복합하여 변유적 회화심미를 이루었다. 그는 특히 말 그림과 도석인물화에서 탁월한 재능을 드러냈는데, 박학(博學) 실득적(實得的) 가풍에 비덕적(比德的)으로 구현한 독창적 진경미(眞景美)를 발현하였다. 낙서(駱西)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32세로 요절한 청고(靑皐)는 다양한 수지법(樹枝法)을 구사한 남종산수화에 능했는데, 물상의 정확한 사실묘사를 위해 세밀한 관찰과 깊은 탐구심, 그리고 화보 화제시의 새로운 시정(詩情)을 펼치면서 독창적 구성의 시의도(詩意圖)를 그렸다. 또한, 가전된 화풍을 변유적으로 재해석하여 진경(眞景)을 넘어 이형사신(以形寫神)의 진정미(眞情美)를 발현하였다. 공재(恭齋)를 계승한 낙서(駱西)와 청고(靑皐) 부자의 서민풍속화는 조선 후기 새로운 장로로 자리잡게 되는 등 이들 부자의 변유적 회화심미와 화법은 녹우당 화풍을 이루어 조선 회화풍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한국회화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유가 문인예술에 나타난 선비정신의 특질 -조선조 유가 문인의 문인화를 중심으로- (The review of characteristic for 'SUNBI'spirit, seen literati arts of confucian scholar -focused on literati paintings of confucian scholar for chosun dynasty-)

  • 권윤희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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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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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7-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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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유가의 문인은 자신의 성정을 수양하고 학문을 바탕으로 한 인본주의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들은 지고와 지선의 삶을 추구하며 예술을 통하여 열락의 경계에서 삶을 향유하였다. 유가 문인의 예술은 주로 문인화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시서화가 어우러진 문인화는 문인의 인품과 학문을 전제로 한다. 이는 보통 여기(餘技)와 묵희(墨戱)·석묵(惜墨)으로 인한 신사(神似)의 기법을 바탕으로 한다. 유가 문인예술의 지향은 사의성(寫意性)의 추구(追求)·정신성(精神性)의 추구(追求)·유·도가미학의 혼융추구에 있다. 이는 유가 문인예술이 존재하는 이유가 학문을 바탕으로 한 그들의 고매한 정신세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조 유가 문인의 선비정신은 우선 절의는 절개와 의리 그리고 충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의병활동과 구국을 위한 강학활동, 성정을 자연과 함께 한 풍류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즉, 선비의 절의(節義)·충절(忠節)·의병(義兵)·강학(講學)·풍류(風流)등이 조선조 선비들의 정신경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문인화에 담겨진 화제이다. 여기에 유가 문인의 흉중을 바로 읽어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선비정신의 미의식은 풍류·충절·실학·애민·의리·사랑 등에서 그 미학을 새겨볼 수 있다. 선비정신의 예술적 구현을 위한 예술의 심미체험은 주로 감성지능에 의한 심미의 체험과 개인의 성향에 따른 심미체험이 있다. 이는 우리의 여러 문인화에서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조선조 유가 문인예술에 드러난 선비정신은 정신 지향성이었으며 여유 지향성이었다. 나아가 사의 지향성과 실득 지향성이 있어 선비정신의 특질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하수처리시설 대수선비 자산화 영향분석 및 제도개선 방안 (Improvement for Asset Management of Sewage Treatment Facilities)

  • 박하진;안만선;조남호;김경주
    • 대한토목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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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2D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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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85-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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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국내 하수처리시설의 발전으로 인해 최근 유지관리 측면에서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으나, 국내 여건의 부족으로 인해 하수처리 시설의 자산관리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수많은 하수처리시설이 가동 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영비용의 정확한 통계와 분석, 특히 대수선비와 보수비에 있어서는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일반 경상수선비 또는 보수비 하나로만 집계하고 있으며, 민간투자사업으로 시행되고 있는 사업들은 정부기관이나 어떠한 민간기관에서도 운영비용 산정에 있어 명확한 기준에 의해 분석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 있다. 본 연구에서는 현재 수행된 하수처리시설 대수선비를 자산화 할 경우의 영향을 분석하여 자산관리의 효율성을 분석하였다. 또한 대수선비 산정에 있어서의 현행 문제점을 분석하고, 제도개선 방안을 제시하였다.

소수서원(紹修書院) 건립의 문화적 토대 연구 - 회헌(晦軒) 안향(安珦)의 선비정신을 중심으로 - (A Study of the foundations of culture established the Sosu Seowon)

  • 이정화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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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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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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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회헌(晦軒) 안향(安珦)은 우리나라 선비들이 성현(聖賢)의 학문을 잘 실천하여 수기(修己)의 공을 이룰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선지자(先知者)였다.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은 선비의 학문을 좋아하여 오래도록 배움과 교육에 힘썼는데, 특히 백운동서원을 건립하여 선비들의 마음을 학문으로 진작(振作)시켰다는 점에서 학자의 소임에 충실하였다. 또한 서원 교육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조정에 상소를 올림으로써 백운동서원의 입지를 최초의 사액(賜額) 서원인 소수서원으로 재정립한 퇴계(退溪) 이황(李滉) 역시 학자의 소임에 충실하였다. 회헌은 생전에 왕명에 의해 초상화를 갖게 되는데, 가문에서 소장해오다가 백운동서원이 건립되면서 이곳에 봉안하게 된다. 후학들이 영정에 찬문(贊文)과 시를 헌정(獻呈)하기 시작하면서 회헌의 학문정신을 근간으로 한 소수서원의 선비문화가 구축된다. 회헌의 시대는 장기간의 무인(武人) 집권과 몽고군의 침입 등으로 인하여 국운이 쇠망하고 있었다. 태평성세를 간절히 염원하였던 회헌은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힘겨운 삶에 주목하게 된다. 궁핍한 백성들이 오가는 사찰이 황금과 보석 등으로 치장한 것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형상화한 것이 회헌시에 나타난 사실주의적 기법이다. 회헌은 백성들의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이것이 곧 주자학을 국내에 수입한 까닭이다.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염려한 회헌의 충심(忠心)이야말로 실천하는 선비상(像)의 발로였다. 회헌은 우리나라 지성사에 획기적인 역할을 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가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의 임무를 띠고 합포에서 공무를 수행할 때 조정에서 지공거(知貢擧)를 맡으라는 명이 내려진다. 회헌의 염원은 태평성세가 이루어지는 것인데, 빼어난 자질과 학문을 갖춘 선비들을 기르는 것도 태평성세를 실현하기 위함이었다. 이로써 보면 회헌에게 있어 '교학(敎學)이란 인재를 기르는 힘의 원천이며 백성들을 구제하여 나라를 살릴 수 있는 원동력이다.

함께 뛰는 상하수도인(人) - 깨끗한 물을 위한 남다른 생각으로 - 경기도평택시 상하수도사업소 -

  • 한국상하수도협회
    • 한국상하수도협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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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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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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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고귀하고 순결했던 선비들의 모습에 종종 비유되었던 백로는 평택시의 시조이기도 하다. 또한 평화를 상징하는 터라 평택의 넓은 평야와 드넓은 하늘 아래에서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가는 순박한 평택인들과도 딱 들어 맞는다. 조용한 듯하지만 평택은 지금 국제화 중심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큰 움직임을 분비 중이다. 그 중에 선진 수도행정을 보여주는 평택시 상하수도사업소 역시 늘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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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들의 행락공간으로서 세검정 일대의 문화경관 (Cultural Landscape of Saegumjeong Area as a Recreation Place of Scholars in Joseon Dynasty)

  • 이제이;성종상;손용훈;김태균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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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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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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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세검정 일대는 조선시대에 절경을 찾아 풍류활동을 한 당시 선비들이 즐겨 방문하였던 곳이다. 세검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전통사회의 행락문화는 경관과 인간의 활동이 상호작용하여 만들어낸 문화경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연구는 첫째, 고서, 지도 등의 자료를 통하여 세검정이 복원되기 이전, 당시 선비들이 세검정을 중심으로 어떠한 행락활동을 즐겼는지를 밝혀냈다. 둘째, 세검정 일대의 주된 경관요소들을 추출함으로써 선비들이 주변 자연경관과 상호작용하며 향유한 당시 세검정의 문화경관을 파악하였다. 관련 기록을 통해 탕춘대 및 연융대 바위를 세검정 일대로 포함시키고, 이 일대에서 이루어진 주요 행락을 유람, 조망, 시 서 화 창작, 모임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세검정의 경관이 정자를 중심으로 근경의 시냇물, 너럭바위, 돌, 소나무숲 및 원경의 탕춘대와 연융대 바위 등의 경관요소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하였다. 이를 종합한 결과, 세검정 일대에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찾아 떠나 온 유람, 시원한 폭포가 흐르는 개천을 향해 세워진 정자에서의 조망, 자연경관에서 받은 감동을 읊거나 그린 창작활동, 너럭바위(차일암)에서의 연회 및 탕춘대에서의 모임 등의 문화경관이 형성되었음을 파악하였다. 이로써 세검정 일대가 조선시대 선비들이 지속적으로 찾는 유관의 장소이며, 유람의 거점이자 문인과의 교류 및 국가적 모임의 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이 확인된다. 이는 세검정 일대를 이루는 자연경관에 인간의 활동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문화경관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우리나라 풍토와 정서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행락공간의 문화경관을 이해하는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