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동경성(東京城)

검색결과 239건 처리시간 0.032초

황비창천명 삼족오문(三足烏紋) 고려 동경에 새겨진 배의 국적

  • 김성준
    • 한국항해항만학회:학술대회논문집
    • /
    • 한국항해항만학회 2017년도 추계학술대회
    • /
    • pp.94-96
    • /
    • 2017
  • 2017년 5월 필자는 황비창천명 항해도문 고려 동경에 새겨진 배가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고려의 배가 아닐 가능성이 있음을 입증하였다. 황비창천명 항해도문 고려 동경의 원 도안은 북송대에 유래하여 금대에 크게 유행한 뒤 무역을 통해 고려에 유입되어 크게 유행하였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황비창천명 항해도문 고려 동경은 중국에서 유래한 원도안을 모방하여 재주조, 변형, 재창조한 것이므로 뒷면에 새겨진 배는 고려의 배라기 보다는 중국의 배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된 삼족오문 고려 동경(덕수 4927; 덕3194)에 새겨진 배는 평면형 저판 및 선수미, 중첩된 삼판, 최상부 삼판에 보이는 가룡목의 흔적 등 여러 면에서 원양항해용 평저선형 고려선박으로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황비창천명 항해도문 동경이 기원지인 중국에 비해 고려에서 널리 모방, 변형, 재창조되어 활발하게 주조 및 유통되었다는 점이다. 유리판(于力凡)의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황비창천명 항해도문 동경은 북송의 휘종(徽宗)(재위 1100-1125) 황제의 성덕(聖德)을 찬양(讚揚)할 목적으로 주조되었다. 그러나 이배근의 견해를 원용하면, 고려에서는 항해도문안을 태조 왕건의 조부인 작제건(作帝建)의 설화로 해석하여 태조 왕건을 룡손(龍孫)으로 지체를 높이기 위한 상징물로 활용했을 개연성이 있다. 이것이 황비창천명 항해도문 동경이, 북송과 금을 통해 유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에서 이를 모방 및 변형하고 독창적으로 재창조하여 널리 유통되게 된 사회문화적 배경이 되었을 수 있다. 이는 차후의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할 과제다.

  • PDF

동경에너지회의발표자료

  • 이봉서
    • 석유와에너지
    • /
    • 3호통권73호
    • /
    • pp.6-7
    • /
    • 1987
  • 이 자료는 지난 3월 5~6일 양일간 일본 동경에서 외무성과 통산성의 공동 주최로 열린 제2회 태평양지역 에너지협력회의에서 이봉서동력자원부 차관이 행한 영문발표문을 번역한 것이다. (편집자 주)

  • PDF

중국 오대~송대 탑 내 동경 봉안 사례와 양상 (The Cases and Patterns of Bronze Mirrors Enshrined in Pagodas during the Five Dynasties and the Song Dynasty)

  • 최주연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55권2호
    • /
    • pp.24-48
    • /
    • 2022
  • 탑에서 발견된 동경은 단순 공양품으로 여겨져 동경 연구에서도 크게 관심 받지 못했다. 그리고 탑 내 봉안 동경 연구는 오월국 탑에서 발견된 선각불상문경에 집중되어 있어, 탑 내 봉안 동경에 대한 전반적 특징을 알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본고는 오대~송대 시기 많은 탑들에서 발견된 동경이 목적을 갖고 봉안되었을 것으로 생각했으며, 이를 파악하기 위해 봉안 위치와 방식에 중점을 두었다. 오대 오월국시기에 탑 내 동경을 봉안하는 사례가 증가했고, 동경은 단순한 공양품이 아닌 목적을 갖고 불교와 관련된 도상이나 명문이 새겨져 있는 봉안품이었다. 이는 동경의 사용 목적이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송대까지 영향을 끼친다. 송대는 오월국의 영향이 꾸준히 이어지면서도 송대 문화와 사회 분위기로 인해 동경 봉안 양상도 변화한다. 봉안된 동경의 종류는 소문경이 다수를 차지하며, 당대 동경도 꾸준히 사용되었다. 소문경은 오월국의 영향으로 선각불상문과 같은 도상과 명문을 새기기 용이했기에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또한 당대 동경은 송대 방고동기에 대한 관심과 황제의 영향으로 인해 귀하게 여겨져 탑을 조성할 때 당경을 공양품으로 봉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대~송대 탑 내 동경 봉안은 그 방식에서 변화가 있었다. 당대 지궁 바닥이나 철함 내 놓아두던 동경은 의도적으로 벽에 붙이거나 천장에 매달아 놓았다. 이 방식을 크게 두가지로 구분하여 벽이나 천장에 감입하는 방식(감입경: 嵌入鏡)과 천장에 매달아 놓는 방식(현경: 懸鏡)으로 분류했다. 천장에 매달아 놓는 방식으로는 대표적으로 하북 정지사탑(靜志寺塔)이 있으며, 천장에 감입한 예로는 하남(河南) 복승사탑(福勝寺塔)이 있다. 이렇게 동경을 천장에 매달고 감입하는 방식은 중국 묘실과의 관련성이 높다. 송대 묘실은 넓고 높은 구조를 갖고 있어, 벽사용 동경을 이용해 묘실을 지키고자했다. 그렇기에 높은 곳에 동경을 두어 묘실을 비추게 했으며, 이는 앞서 언급한 두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탑 역시 지궁이 넓고 높아짐에 따라 지궁의 중요한 부분을 지키고, 내부를 밝게 비추고자 했다. 따라서 오대~송대 탑 내 동경 봉안방식은 당시 묘실에 동경을 봉안하던 방식을 차용했던 것으로 생각되며, 이후 섬서(陝西) 묘각사탑(妙覺寺塔)과 같이 적극적으로 설계 때부터 감입을 고려하여 동경을 놓을 자리를 마련해 놓은 예도 등장하게 된다.

'75 동경 모오터어쇼오 견학기

  • 일본 월간타이어 사
    • 타이어
    • /
    • 통권64호
    • /
    • pp.27-30
    • /
    • 1976
  • 제 21회 「동경모오터어쇼오」는 75년 10월 31일 (금)부터 11월10일 (월)까지 11일간의 일정으로 동경 청해에서 개최되었다., 74년은 차를 위요한 사회환경의 가혹성으로 해서 중지가되고 75년의 모오터어쇼오는 여하히 받아들여지느냐하고 걱정하는 소리도 있었다. 연이나 약 98만명이라고하는 입장자의 수만으로서 보는 한에 있어서는 예상(85만명)보다 입장자가 많으며 모오터어팬의 의연한 인기를 말해주고 있다. 이하는 그 견학기이다.

  • PDF

폐암 환자의 수술 전 병기 결정에서 종격동경의 임상적 의의 (The Clinical Value of Mediastinoscopy in Preoperative Staging of Non-small Cell Lung Cancer)

  • 함석진;김도형;전세은;이두연;백효채
    • Journal of Chest Surgery
    • /
    • 제40권11호
    • /
    • pp.745-751
    • /
    • 2007
  • 배경: 폐암환자에서 수술 전에 종격동 림프절의 전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종격동경이 많이 이용되고 있으나 수술의 적응이 되는 모든 환자에서 종격동경을 시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모든 비소세포성폐암 환자에서 통상적으로 종격동경을 시행하는 것이 임상적으로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대상 및 방법: 2002년 3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비소세포성폐암으로 진단받고 수술을 시행한 9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방사선학적 검사와 종격동 검사를 시행하여 각 검사의 민감도, 특이도, 양성예측치, 음성예측치, 정확도를 비교하였고 방사선학적 N0/1기군과 N2/3기군에서 이들 수치를 분석하여 각 군에서 종격동경 검사가 임상적으로 의미를 가지는가를 후향적으로 분석하였다. 결과: 방사선학적 검사와 종격동경의 민감도, 특이도, 정확도를 비교하였을 때 민감도에는 차이가 없었으나 특이도, 정확도는 종격동경 검사가 우수하였다. 방사선학적 N0/1기군은 62명으로 이 군에서 시행한 종격동경의 민감도는 28.6%였고 방사선학적 N2/3기군은 28명으로 이 군에서의 종격동경의 민감도는 72.7%로 방사선학적 N0/1기군에서의 민감도가 N2/3군에 비해 아주 낮았다. 종격동경으로 진단이 되지 못한 N2/3 양성인 환자 8명 중 7명의 환자에서 수술 시 용골하 림프절의 전이가 확인되었다. 결론: 술 전 병기결정에 종격동경이 종격동 림프절의 전이를 진단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지만 침습적 방법이라는 점과 일부 림프절만이 검사가 가능하다는 점, 방사선학적 N0/1기군에서 특히 낮은 민감도를 고려할 때 모든 군에서 종격동경을 시행하는 것은 임상적 의미를 찾기 어려웠으며 방사선학적 병기 N2/3군에서 선택적으로 종격동경 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유용할 것으로 생각한다.

공간정책수단으로서 부동산개발과 장소마케팅전략 - 동경대도시권을 사례로 - (Real Estate Development and Place Marketing Strategy in Dimension of Spatial Policy - A Case Study of Tokyo Metropolitan Area -)

  • 이정훈
    • 대한지리학회지
    • /
    • 제37권1호
    • /
    • pp.61-74
    • /
    • 2002
  • 1980년대. 동경 권에서는 공간구조 다핵화를 표방하고 지방자치단체 주도로 교외지역에 대규모 업무지구 개발에 착수하였다. 이 개발사업을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지방자치단체는 장소마케팅 전략을 도입한다. 다양한 민간의 참여를 이끌어 내며, 대중성, 고유성. 중심성. 쾌적성을 장소 이미지로 설정하여 공간 인프라 구축에 반영함으로써, 기업과 소비자에게 매력있는 장소로 전환을 시도한다. 지방자치단체의 노력과 도심 입지여건 악화등의 결과 1920년대. 근대도시 동경이 성립된 이래 처음으로 교외지역에 본사기능을 비롯한 고타 업무기능이 이전하게 되었다. 아직 교외의 개발이 미완성 상태에 있으며, 재정 문제 등 어려움에 봉착해 있기는 하지만, 이 지역이 향후 지식기반경제의 거점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임은 분명하다.

북송 동경 변량성의 조영과 특징 (The characteristics of capital city plan of the BianLieng palace, the Dongjing Walled Town (東京城), the Northern song Dynasty)

  • Dashu, Qin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45권3호
    • /
    • pp.114-159
    • /
    • 2012
  • 송대는 정치 경제 그리고 문화를 통틀어 중국 역사상의 중요한 전환기이며, 정치제도와 경제체제, 사상의식과 문화특징 등 모든 면에서 중요한 변혁이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대부분 당대(唐代) 후기에 시작되어 북송시기에 완성되었다. 물론 그 발전이 비교적 긴 과정을 거쳤지만, 그 변화는 거대하고도 본질적인 것이었다. 때문에 각 분야의 제도에 비교적 강력하게 나타났으며, 그 가운데 도성의 조직체계와 특징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송대 정치제도 변화의 핵심은 동한(東漢) 이래 형성된 사족문벌제도(士族門閥制度)가 철저하게 붕괴되고 황제를 중심으로 긴밀하고 완벽한 관료체제가 형성되었다는 것으로, 송대는 고도로 집중된 중앙집권체제를 이루었다. 이는 대략 재상(宰相)집단의 형성, 중앙정권의 권력분화, 황제의 지방통제 강화, 관리선출과 과거제도의 개선 등의 내용을 포괄한다. 이로부터 황제는 전 분야에 뻗치는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되었으며, 각종 제도의 제정은 황제의 권력과 지위 강화라는 목적으로 직결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동시에 송대는 경제가 고도로 발전한 시기로, 농촌에서는 조전제(租田制)를 핵심으로 하는 생산구조가 형성되어 농업발전이 극대화되었고, 만당(晩唐) 시기부터 농업과 수공업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상품경제의 발전이 가속화되기 시작하여, 송대에 이르러서는 상업의 사회경제적 위상이 크게 향상되고 나아가 도시경제체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정치제도의 변화와 경제적 발전이 각종 도시제도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 글에서는 1980년대 초기 이후로 북송 동경 변량성(東京 지금의 河南省 開封市)에 대해 진행된 고고학적 작업을 정리하고, 또한 그 성과에 근거하여 북송 동경 변량성의 특징을 간략하게 종합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