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더늠

검색결과 3건 처리시간 0.018초

더늠 개념의 역사적 변천 (Historical Transitions in the Definitions of Deonum)

  • 송미경
    • 공연문화연구
    • /
    • 제32호
    • /
    • pp.243-267
    • /
    • 2016
  • 더늠은 그것이 더늠이라는 말로 명명되기 그 이전부터 존재했을 것이다. 물론 당시 더늠이라는 말이 지칭했던 대상은 현재 더늠이라는 말로 부르는 대상과 같지 않았다. 더늠이라는 용어의 개념, 이것이 지칭하는 대상의 성격 및 범주에는 나름의 역사적 변천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더늠의 어원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다시 추적해 보았다. 이 용어가 일상어로 쓰였을 가능성 및 판소리 외의 다른 예술 분야에서 쓰였을 가능성을 검토한 결과, 본래 가락을 범범하게 지칭하는 말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늠은 국악계에서 널리 쓰이는 '-드름'과 같은 범주에 드는 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기팔명창 시대 초창기 및 그 이전에 통용되었던 '가락으로서의 더늠' 개념은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점차 약화되어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일상어로 쓰이던 더늠이라는 말이 판소리로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명창이 구사하는 독특한 가락을 지칭하는 정도의 용어로 쓰였으나 판소리가 예술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점차 독립적인 소리 대목 단위를 지칭하는 용어로 바뀌게 되었고, 전기팔명창 시대에는 이러한 용례가 완전히 일반화되었다. 한편 전기팔명창 시대에 더늠으로 인정되었던 소리 대목 대부분은 명창이 새로 만들어 판소리에 편입시킨 창작 레퍼토리, 즉 '창작으로서의 더늠'이었지만, 후기팔명창 시대로 접어들면서는 기존의 더늠을 탁월한 기량으로 소화해 장기화(長技化)한 인기 레퍼토리, 즉 '장기로서의 더늠'도 더늠으로 인정되기 시작했다. 더늠의 용례에 일종의 분화가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근대오명창 시대 및 그 이후에 더늠으로 인정받은 소리 대목 대부분은 '장기로서의 더늠'에 포함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정노식은 더늠 개념의 역사적 변천을 세심하게 고려하면서 "조선창극사"의 서술에 임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창극사"에는 '가락으로서의 더늠', '창작으로서의 더늠', '장기로서의 더늠' 용례가 모두 확인되기 때문이다.

19세기 수궁가의 더늠 형성에 관한 연구 (The Study on Formation of Deoneum of 19th Century's Sugungga)

  • 이진오
    • 공연문화연구
    • /
    • 제36호
    • /
    • pp.185-221
    • /
    • 2018
  • 본 연구는 19세기 활동했던 판소리 명창들이 남긴 기록과 흔적을 통하여 수궁가의 더늠 형성 과정을 고찰하고 변화의 경향성을 검토한 것이다. 판소리사에서 본격적으로 수궁가 명창이 등장한 것은 19세기 전반 무렵으로 추정된다. 19세기 전반기에 수궁가의 초기 명창들이 등장한 이후, 19세기 중후반에는 동편제와 서편제로 유파를 달리하는 명창들이 등장했다. 19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수궁가의 초기 명창은 권삼득, 송흥록, 염계달, 신만엽을 들 수 있다. 이들이 남긴 기록으로 볼 때, 이들은 '방게'와 '호랑이'의 등장처럼 극적인 작중인물 대한 묘사와 소릿조를 활용했으며, 특히 주로 토끼가 용왕을 속이는 장면과 토끼의 육지 귀환을 담고 있는 '관대장자', '가자 어서가', '소지노화', '앞내 버들은', '토끼가 욕하는 대목' 등을 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 판소리 명창들의 수궁가에 대한 관심은 대체로 작품의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19세기 중후반 판소리는 동편제와 서편제의 분화가 이루어진 때다. 동편제 명창으로는 송우룡, 박만순, 송만갑, 신학준, 유성준이 활동하였고, 서편제 명창으로 박유전, 김거복, 김수영, 백경순 등이 수궁가를 불렀다. 동편제의 명창들은 초기 명창들과 마찬가지로 수궁가의 후반부에 관심을 두어서 '토끼기변'과 같은 더늠을 개발하기도 했으나, 이들은 점차 '토끼화상', '고고천변', '토별문답'처럼 수궁가의 전반부와 중반부에 해당하는 대목을 개발하는 데도 관심을 두었다. 서편제 명창들은 '용왕탄식'처럼 용왕과 관련한 수궁가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더늠을 개발하는 한편, '토사호비', '고국산천' 등 수궁가의 중반부와 후반부에 해당하는 사설을 다듬기도 하였다. 본 논의를 통해서 19세기 판소리 명창들이 개발한 더늠을 검토할 수 있었다. 초기 수궁가 명창들은 수궁가 후반부의 더늠을 개발하였고, 동편제 명창에 이르러 수궁가 전반부의 대목에 관심을 두게 되었으며, 서편제 명창들은 다시금 수궁가의 전반적인 사설을 다듬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향으로 볼 때, 수궁가 명창들은 초기에는 토끼에 관심을 두었다가 별주부를 비롯한 수궁의 신하들, 용왕으로 관심의 무게를 옮겨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사회 문화콘텐츠로서 산조의 활용 방안 연구 (A Study of Utilizing Sanjo as Cultural Contents in Modern Society)

  • 조석연
    • 공연문화연구
    • /
    • 제32호
    • /
    • pp.399-426
    • /
    • 2016
  • 본고는 산조는 음악적 완성도뿐 아니라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담아 낸 곡으로서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시대적 변화에 따라 신봉하는 가치의 중심이 변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가치가 정립되기 때문에, 산조 역시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에서 요구하는 동시대적 가치를 보유하기 위해 또 다른 변화와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이러한 '대중과의 소통'에 중점을 두고, 산조의 발전방향을 시대적가치의 실현, 실험과 사회적 변신, 21세기형 창조적 축제, 융합융화의 도약, 콘텐츠의 사회화라는 다섯 가지 관점에서 고찰해보았다. 첫째, '시대적 가치'로서의 산조는 크게 전통과 계보를 고수하며 이 시대의 새로운 '더늠'으로서 창작활동을 하는 것과, 산조가 제시하는 기본 형식과 틀 안에 머물면서도 자유롭게 이탈을 일삼는 창작활동을 가리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어느 쪽이든 산조는 새로운 창작에서 '시대적 가치'를 갖는다. 새로운 선율이 가미된 새로운 유형의 산조만이 현대의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대적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가치가 사회적으로 실현될 때, 비로소 산조는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될 것이며, 그 무한한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둘째, 실험과 사회적 변신으로서 '21세기 전통악기의 변모'를 살펴보았으며, 서양음악어법을 연주하기 위해 우리 악기가 변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음악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 악기가 변모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셋째, 창조성의 사회 확산은 '21세기 새로운 산조축제'로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축제의 장을 소개하고 설명하였다. 넷째, 융합융화의 도약과 관련해서는 '스토리텔링 산조'와 '미디어아트 도입'을 통해 산조 공연을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매개물로서 대중들과 소통시킬 수 있는 공연문화를 제안하였다. 다섯째, 콘텐츠의 사회화에서는 대중매체를 이용하는 방법을 통해 산조가 대중매체의 콘텐츠로 자리 잡아야 함을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