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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미제라블」 의 극적, 음악적 구성 방식 (Dramatic and Musical Composition in the Musical Comedy Les Misérables)

  • 조만수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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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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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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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극 장르에 속하면서 동시에 음악 장르인 뮤지컬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는 뮤지컬에서는 음악이 극에 봉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극전개를 위한 서술적인 에피소드들의 연속이 존재하고, 음악은 각 에피소드에 부합하는 분위기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음악은 극에 종속되는 부차적인 요소가 된다. 뮤지컬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음악적 구성이 극의 전개와 긴밀히 결합되어 있으며,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음악적 전개에 의해 극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본 논문은 이와 같은 입장을 뮤지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었던 작품 중 하나인 "레미제라블"을 통해서 입증해보고자 한다. 소설 "레미제라블"의 뮤지컬로의 각색은 단지 소설을 에피소드의 연속으로 축약하는 것이 아니다. 소설을 극화는 뮤지컬 창작자들이 원작 속에서 무엇을 극적 행위로 추출하는가를 관찰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뮤지컬 창작자들의 해석이 그들의 음악적 구성 속에 어떻게 반영되는가에 관심을 기울인다. 본 논문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이루는 40편의 노래들의 음악적 구성을 분석하여 도표로 제시하였다. 이 도표는 작품에 사용된 음악적 모티브들의 반복을 시각화함으로써 음악적 구성과 극적 전개의 관계를 설명한다. "레미제라블"을 관통하는 주제는 장 발장이라는 인물의 변모이다. 그의 변모는 도둑으로부터 예수로 변모하는 과정이며, 죄인임을 부정하는 단계에서 죄인임을 고백하는 단계로의 변모이다. 비참, 사랑, 이름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장 발장의 변모라는 극적행위가 음악적으로 구축되는 방식을 고찰하였다. 본 논문은 극의 갈등을 구성하는 대립항으로서 장 발장과 자베르의 관계, 장 발장과 테나르디에의 관계가 음악적으로 구성되는 방식을 설명하였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성공은 원작에 대한 심도있는 해석을 성공적으로 음악적 구성으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기반 음성치료 프로그램 개발연구 (Development of smartphone-based voice therapy program)

  • 이하나;박준희;유재연
    • 말소리와 음성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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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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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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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연구는 음성장애환자를 위한 스마트폰기반 음성치료프로그램을 개발하고자 하였다. 국내 음성치료관련 모바일 콘텐츠분석, 전문가 및 사용자 수요조사를 통해 음성치료에 필요한 콘텐츠를 수집하였고, 프로그램은 안드로이드 스튜디오를 사용하여 개발하였다.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사용자 만족도 평가는 기능적 음성장애인 5명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연구결과 국내 음성치료관련 모바일 콘텐츠는 주로 호흡과 관련된 애플리케이션이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음도와 노래 순으로 분포되었으나 실질적으로 음성치료를 위한 애플리케이션은 13개에 불과하였다. 전문가 및 사용자 수요조사 결과 환자와 치료사 모두 치료실 이외에 장소에서 음성훈련을 할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요구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황분석을 토대로 스마트폰기반 음성치료프로그램인 '홈 보이스 트레이너'를 개발하였다. 홈 보이스 트레이너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음성치료 및 관리용 애플리케이션이다. 기존 오프라인에서 훈련한 음성치료활동을 가정에서도 훈련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또한 환자의 음성훈련 기록을 온라인으로 관리하여 음성치료 종결 후에도 지속적인 음성컨설팅을 통해 환자의 음성개선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사용자 평가 결과 환자는 홈 보이스 트레이너에서 제공하는 음성치료프로그램의 난이도, 내용은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홈 버튼 및 화면 간 연계성에 대한 부분과 같은 유저인터페이스에 대한 부분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추후 연구에서는 음성장애 환자에게 홈 보이스 트레이너를 사용한 임상 적용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음성치료관련 스마트 콘텐츠에 대한 개발 연구와 임상적용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밀양 금시당(今是堂) 12경의 문화경관 해석 (Interpretation of Cultural Landscape at the Geumsidang(今是堂) sibigyung(12 Landscapes) in Miryang, Gyungnam)

  • 엄태건;김수진;박정임;강한민;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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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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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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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조선 중기 밀양의 부호세력이었던 여주이씨 일가의 금시당 이광진 유적을 중심으로 그림, 시문, 기문 등에 나타나고 있는 문화경관으로서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금시당 이광진은 사회적 혼란기였던 문정왕후의 죽음 이후 중기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응천강변의 백곡에 터를 잡고 금시당을 건립하여 별서를 경영하고자 하였는데, 그가 경영한 금시당은 숙부이자 스승인 월연 이태로부터 자연관과 효행, 산수경영 등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금시당십이경도는 이경홍이 병환으로 위중한 아버지 이광진을 위로하고자 금시당 주변의 아름다운 12경관을 그린 것으로 구전되며, 꾀꼬리봉, 용두산, 무봉사, 마암산, 월연대, 사인당 마을, 영남루, 밀양읍성, 배나무 소, 밤나무 숲, 밀양강변, 삼문동들 등 당시 여주이씨 일가가 소유하고 있었던 땅과 관아를 경관 대상으로 하여 소상팔경이나 사시팔경의 관념적인 산수화가 아닌 실경을 담고 있는 산수화이다. 금시당십이경시는 금시당십이경도에 근거하여 작성된 제화시로서 이광진의 11대손 이용구가 지은 것으로 시간과 계절 그리고 기상의 변화를 노래하였다. 시 12수 모두 칠언절구로 글자 수가 모두 28자로 이루어졌으며, 단순히 그림의 외형적인 묘사가 아닌 작자의 개성에 의해 재산출되었기 때문에 그림에서 보이는 요소들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금시당십이경도는 단순히 효행의 의미뿐만 아니라 밀양의 부호세력으로서 여주이씨 일가 소유의 장원을 나타내고 있으며, 금시당십이경시는 그림을 재산출하여 특정한 명승지로 변화시켜 여주이씨 일가 소유의 영역성을 보다 강화시킬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아리랑유산 가창자의 전승과 공연 (Traditions and performance of oral folk song singers - focusing on the case of Taebaek Ararei singers for 3 generations /Lee Chang-Sik(Semyung Uni. Prof))

  • 이창식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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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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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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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구비민요의 여성구연자 곧 여성가창자는 향토적 요소를 의식하지 않지만 향토성을 구연하는 현장의 소리 사설에 자연스럽게 반영하고 있다. 태백아라레이 가창자는 태백방언 어투. 토리와 지역적 요소, 창곡 등을 살려 연행한다. 황지 화전마을 쪽의 여성가창자들이 전통 아라레이를 연행하였다. 철암과 장성 쪽은 탄광지역인 관계로 족보 있는 토박이 노래가 적으며, 경북 북부 봉화 등 외지에서 유입되어 변질된 소리 각편이 남아 있다. 사설이나 창곡에는 정선아라리와 삼척메나리의 요소가 많았다. 현장성으로 볼 때 태백아라레이 각편들이 화전민들의 오래된 화전형 아리랑소리인데 강원도 구전민요 중 매우 고형임을 확인하였다. 태백아라레이 정체성을 전승하는 구연자집단은 생업 관련 소리 각편 부르기에 익숙하였다. 이러한 사정을 문화옥, 김금수, 김효정 3대의 여성가창자들은 아라레이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합하여 보여주고 있다. 이들 주도의 태백아라레이보존회는 가창자들의 시연적 공연활동과 전승 계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문화옥 가창자는 평안남도 태천에서 출생하여 다섯 살 때 남한으로 내려와 삼척 하장에서 살다가 장성으로 들어와 재문곡에서 살았다고 한다. 6남매를 두고, 평생 농사일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2015년에도 태백시 문곡동에 거주하며 마을잔치를 비롯해 동네 행사가 있는 날이면 아라레이를 즐겨불렀는데 옛날에는 태백일대 아라레이가 많이 불려졌기 때문에 자연스레 배워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생업 밀착형의 전형적인 토종 아리랑구연자인 셈이다. 김금수 가창자는 문화옥 딸인데 현재 태백아라레이보존회를 이끌며 태백의 소리(태백아리랑)를 찾아 연구하고 전수, 보급해 오고 있다. 어머니 문화옥의 가창맥락을 잇고 보존회 회원들과 지역민에게 광부아리랑, 태백아라레이 등을 전수하고 있다. 박효정 가창자는 문화옥 손녀로서 앞선 할머니, 어머니 세대의 장점도 온전히 받아들이고 미래 아리랑콘텐츠도 적절히 대응하고 있어 아리랑공연 차원으로 보아 고무적이다. 3대 여성가창자 사례는 아리랑유산의 창조적 계승 국면-원형 보존과 활용 재현국면-에서 전승론 시각에서 주목하였다.

화가(和歌)와 한시(漢詩)의 혼효(混淆) 양상과 특징 (Aspects and Characteristics of the Combination(混淆) of Waka(和歌) and Chinese Poetry(漢詩))

  • 최귀묵
    • 고전문학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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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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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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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 글에서 필자는 대략 10~17세기에 걸쳐서 일본의 상층 귀족이 화가(和歌)와 한시(漢詩)를 '혼효(混淆)'하여 창안해서 향유한 세 가지 양식의 양상과 특징을 살펴보았다. 세 가지 양식이라고 한 것은 '화한낭영(和漢朗詠)', '시가합(詩歌合)', 그리고 '연구연가(聯句連歌)'를 가리킨다. '화한낭영'은 10세기에, '시가합'은 12세기에, '연구연가'는 14세기에 각각 등장했으며, 그 후 일본 문학사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화한혼효가 진행되면서 화가와 한시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지더니 마침내 둘이 결합해서 한 작품을 이루게 되었다. 즉 화가와 한시는, 낭영하기에 적합한 작품이라고 해서 한데 모였고(화한낭영) 경합을 위해 작품 대 작품으로 맞섰으며(시가합) 종국에는 장시(長詩)를 구성하는 행으로 갈마드는 데까지 이르렀다(연구연가). 화한혼효는 자국어 노래를 한시에 손색이 없게 만들고자 하는, 중세 동아시아 문학사의 공통된 움직임의 일본 버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한시가 화가와 병렬, 경합 교대, 결합되면서 어떤 위상 변화가 나타났는지 확인함으로써 세 가지 양식이 존재한 시기의 한시에 대한 일본인의 태도, 거기에 상응해서 발현된 일본 한시의 특징에 대해서도 논의할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나'가 아닌 '좌중'의 기호, 시인의 내면이 아닌 시대가 숭상하는 내용과 표현, 자기표현이라는 서정시의 본령이 아닌 즐거운 오락을 위한 수단이라는 점이 중세 전 후기 일본 한시의 특징이고, 이러한 특징은 일본 한문학사의 저층을 흐르는 흐름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동아시아 문학사의 관점에서 중세 시기 일본 한문학사를 논할 실마리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소림일다(小林一茶)의 ≪시경≫ 배구화(俳句化) 양상 고찰 (Kobayashi Issa's ≪Shi jing≫ Hiku-ka and that meaning)

  • 유정란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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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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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9-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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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글은 소림일다(小林一茶)(고바야시 잇사, 1763-1827, 이하 '잇사'라고 칭함)의 ${\ll}$시경${\gg}$ 배구(俳句)(이하 '하이쿠'라고 칭함)화(化) 양상을 살피고 그 의미를 도출한 것이다. 잇사는 1803년 ${\ll}$시경${\gg}$을 공부하고, 이를 하이쿠로 재창작하여 ${\ll}$향화구첩(享和句帖)${\gg}$을 작성했다. 현재까지 이에 대한 국내의 연구는 없으며, 일본과 중국에서 잇사의 ${\ll}$시경${\gg}$ 수용 양상을 다룬 바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주로 국풍(國風)에 한정되었으며 연구자들 사이에 용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등 다양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작품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번역이라는 관점을 지양하고 배구화(俳句化)라고 명명하였다. 나아가 두 장르간의 심층적인 교류와 영향 관계를 문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하여 ${\ll}$시경${\gg}$ 배구화(俳句化) 양상을 주제의식의 재현, 시어와 이미지의 변용, 의경 전화와 제목 차용의 층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주제의식의 재현에서는 주로 고향이나 부모를 그리워하는 작품이 선별되어 배구화(俳句化) 되었다. 이때 단순한 주제 차용의 수준이 아니라 핵심 의미를 도출, 주석을 고려하여 해석하거나 잇사 개인의 원작 이해가 많이 개입되었음을 살폈다. 시어와 이미지의 변용에서는 해당 원천들의 의미를 절취하거나 조합하여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한 작품이 두드러졌다. 의경 전화에서는 일본적 정경으로 그 분위기를 바꾸는 작품이 있었는가하면, 제목 차용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작품도 존재했다. 배구화(俳句化)의 의식 지향은 ${\ll}$시경${\gg}$의 감정이나 격앙된 어조, 비난 등을 의도적으로 탈락시키고 이치를 배척하거나 시교(詩敎)의 관점을 탈피한 것, 도덕적 이상을 담아내지 않는 작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잇사는 ${\ll}$시경${\gg}$을 하이쿠로 옮겨 올 때 매우 많은 부분에서 하이쿠적인 감상과 습관을 자각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잇사가 ${\ll}$시경${\gg}$을 배구화(俳句化)한 것의 의미는 우리의 ${\ll}$시경${\gg}$ 수용과 대조해볼 때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조선에서는 ${\ll}$시경${\gg}$을 언해하였지만 의역이 아닌 직역을 하였기 때문에 ${\ll}$시경${\gg}$ 원문의 글자가 유지되었다. 일본의 경우도 훈독체로 ${\ll}$시경${\gg}$을 수용하였기 때문에 원 글자가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나 잇사는 ${\ll}$시경${\gg}$의 출발점인 민요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하여 일본의 민족어 시가 형태로 그 내용을 옮겼다.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ll}$시경${\gg}$ 수용 방식을 벗어나 잇사는 민족어 시가로 ${\ll}$시경${\gg}$에 대응한 것이다. 따라서 잇사의 ${\ll}$시경${\gg}$ 배구화(俳句化)의 의미를 본래 ${\ll}$시경${\gg}$의 출발점인 노래 그 자체로 인식하여 받아들인 태도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보았다.

신숙주(申叔舟) 시(詩)에 나타난 인생이상(人生理想)의 전변(轉變) (The Change of Iife's ideal in the Poetry by Shin Suk-Ju)

  • 유호진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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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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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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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이 논문은 15세기 후반 한시의 특성을 조명하고자 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신숙주 시에 나타난 시인의 의식을 고찰한 것이다. 신숙주의 시는 작가의 문학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처신, 소위 '변절'의 문제로 인해 연구자들의 관심권 밖에 밀려나 있었다. 그러나 신숙주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위해서도 그의 시는 자세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신숙주의 시는 세조의 정변이 일어났던 시기를 중심으로 양분할 수 있다. 그의 전기 시는 시인이 자족적인 세계 속에서 충만한 자긍심과 여유로운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의 경세이상은 실은 불후(不朽)의 공명(功名)을 성취하려는 영웅의식(英雄意識)의 소산이었다. 이 영웅의식(英雄意識)과 평생 그의 의식을 지배했던 순명의식(順命意識)에 의해 그는 세조의 정변에 동조하게 된다. 그러나 후기 시는 공명(功名)을 성취했던 시인의 삶이 그 자신에게 정신적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또렷이 보여준다. 그는 세조의 정변에 동조함으로 인해 배태된 양심의 괴로움을 호소하였고 자신이 성취한 공업(功業), 나아가 인생 자체가 허무함을 토로하고, 세상에서 말하는 시비(是非) 진위(眞僞) 선악(善惡) 등이 주관적이고 허망한 것이라는 인식에 도달하였다. 더 나아가 세상 만물 자체도 환영(幻影)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이러한 인식은 불가의 공(空) 사상(思想)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그러한 사유 과정을 거쳐 시인은 허명(虛明)한 마음과 한가로운 삶에 대한 지향을 노래하게 된다. 신숙주의 시에 나타난 영웅의식, 불가적 사유, 허명(虛明)한 마음에 대한 지향 등은 서거정을 비롯하여 15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주요 문인들의 시에서 자주 나타나는 사유들이다. 결국 양심의 괴로움과 인생에 대한 허무감을 넘어서려 했던 시인의 진지한 모색은 15세기 관료문인들의 인생태도와 그들의 문학에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당대 주요 문인들이 신숙주 문학의 전통을 이었다는 성현(成俔)의 진술은 의례적인 수사가 아니었던 셈이다.

정읍 무성서원과 선비문화 원류 최치원 (Choi Chi-won, the Originator of Jeongeup Museongseowon and Scholar Culture)

  • 안영훈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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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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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3-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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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전라북도 정읍은 한국 사상사에서 주목을 요하는 지역이다. 또한 정읍은 문학사에서 '최초'를 기록한 작품이 많은 지역이다. 백제 노래 <정읍사>가 그렇고 조선시대 사대부 가사 <상춘곡>이 그렇다. 그리고 이 지역 태수를 지낸 최치원(857~?)의 선정과 풍류의 전통이 전해오는 고장이기도 하다. 이 논문에서는 정읍의 무성서원의 성립과정과 선비문화에 있어서 최치원의 연관성을 살펴보았다. 최치원이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고을 사람들이 선정에 보답하는 의미로 태산사라는 생사당을 건립하였고 그것이 근원이 되어 후대에 무성서원으로까지 이어졌다. 최치원은 자신의 포부와 역량을 정읍에서 실현하였다. 특히 조선중기 무성서원의 건립과 사액 과정에 최치원의 역할은 결정적이었기에 최치원은 이 지역의 상징적 인물로 되살아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무성서원을 중심으로 영정의 이안(移安) 작업을 통해서 최치원의 형상도 보다 유학자, 유학적 선비의 모습으로 좌정해나가는 것도 볼 수가 있다. 최치원이 남긴 시문을 통해서도 유학적 선비(지식인)로서 자각을 읽을 수 있다. 그의 시세계가 다양하지만 특히 유학자 지식인으로서 현실에서 오는 시름과 고뇌, 비판적인 내면의식 등을 표출한 작품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최치원은 남다른 포부와 각고의 노력으로 당대의 우뚝한 문사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는 하였으나, 그 자신 주변국의 한 시인으로서의 지역적, 정신적 소외감을 극복하지 못했다. 따라서 세계인식 면에서의 치열성은 자연히 내면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그의 작품으로 하여금 강한 서정성을 가지게 한 요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치원의 문집에는 당대의 말기적 현상에서 초래된 다양한 형태의 병리적 현상을 강한 어조로 비판한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는 가난하고 곤고한 삶을 살아가는 민중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가 하면, 왜곡된 생산관계 속에서 결국 희생되고 마는 가련한 백성들의 삶의 실상을 형상화함으로써 당대의 잘못된 사회의 단면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것은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로 읽을 수 있다. 선비의 사전적 정의가 '학식과 인품을 갖춘 사람에 대한 호칭으로, 특히 유교이념을 구현하는 인격체 또는 신분계층을 가리키는 유교용어'이고, 오늘날 의미로는 '신분적 존재가 아니라 인격의 모범이요, 시대사회의 양심으로서 인간의 도덕성을 개인 내면에서나 사회질서 속에서 확립하는 원천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할 때, 최치원의 문학에서 고뇌하는 모습은 곧 선비(지식인)의 고뇌이고 '선비(士)'로서의 책무를 자각하였기에 나오는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최치원은 가장 이른 시기의 선비(지식인)의 원류라고 보아도 크게 잘못이 없을 것이다.

삼중고 탈피 후 대역전의 성공을 이끈 걸 그룹'카라'의 차별화 전략 (The Korean Girl Group Kara's Differentiation Strategy Which Overcome the Trilemma and Led to the Great Reversal Success)

  • 김정섭
    •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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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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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9-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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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걸 그룹 '카라'는 데뷔 성적 부진, 팀 해체 위기, 소속사 경영 위기란 삼중고에 시달렸지만, 모두 극복하고 회생해 한국 대중음악사에 위업을 남겼다. 그러나 그 성공전략은 이들의 앨범·공연 프로젝트에 참여한 내부자들에 의해 전혀 공개된 적이 없다. 따라서 본 연구는 사실상 활동 종료 상태인 '카라'의 성과 요인을 분석해 학술적 시사점을 제공하고 고인이 된 경영자 이호연 대표와 '카라'의 핵심 구성원 구하라의 업적을 기리고자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자료 분석을 선행한 뒤 2020년 11~12월 프로젝트에 참여한 매니저, 작곡자, 스타일리스트, 멤버 구하라(그녀만 생전인 2019년 별도 인터뷰)를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실시했다. 분석 모델은 포터(Porter)의 경쟁 우위 전략과 음악 산업의 가치사슬 모델을 결합해 '상품 혁신 차별화'(프로듀싱, 음원·앨범 제작, 공연활동)와 '마케팅 차별화'(표적시장 설정, 이미지 특화, 홍보·소통)의 범주로 나눠 설정하였다. 연구 결과, 상품 차별화에서 무모한 스타 가수 모방하기 대신 힐링을 유발하는 '밝은 에너지의 발산'을 목표로 구성원들이 지닌 고유의 개성과 진솔함의 가치를 재발견해 창작한 밝은 노래 및 댄스들과 완전히 조화시키고, 마케팅 차별화에서는 일본의 10~20대를 표적시장으로 정해 팬·미디어와 친화성을 높여 역전에 성공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본 연구는 포터의 차별화가 아이돌 그룹의 육성, 흥행, 그리고 부활 실현에서도 유의미한 전략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일본 배우 게키단 히토리의 호명은 '카라'의 일본 흥행을 이끈 강력한 점화효과를 유발했기에 초기 또는 명사 팬덤의 활동이 차별화 실현의 유효한 촉매제가 될 수 있음을 재확인시켜준다.

로컬, 룸펜, 경제적 인간, 곽하신 소설의 세 좌표 (Local, Jobless Person, Homo Economicus, Three Axis of Kwak Hashin's Works)

  • 김양선
    • 대중서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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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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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1-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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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이 논문은 현대소설사 연구에서 잊힌 작가 곽하신의 소설세계의 전체 면모를 복원, 분석함으로써 문학사의 외연을 확장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곽하신 작품세계의 단절 내지 비연속성에 주목하여 식민지기와 전후로 시기를 크게 분절하고, 각 시기 작품세계의 특징을 로컬(식민 시기), 룸펜(전후), 경제적 인간(전후 일부 단편, 장편대중소설)이라는 세 좌표를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2장 '로컬-『문장』지의 세계관'에서는 30년대 후반 『문장』지에 집중 발표된 곽하신의 소설이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비애, 전근대적인 시간의식, 로컬-향토에 대한 지향성을 뚜렷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일제 말기 문학의 한 흐름인 반(反)근대의 미의식을 구현하였다고 평가하였다. 3장 '룸펜-전후 남성(성)의 형성(1)'과 4장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 경제적 인물의 등장-전후 남성(성)의 형성(2)'에서는 50년대 말 전쟁이라는 비상시국을 경유해 전후 저개발 자본주의 국가에 진입한 한국사회의 현실이 한편으로는 룸펜, 루저 남성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공리주의나 승자독식의 세계관을 체현한 남성이라는 대조적인 남성-젠더의 출현으로 형상화 된다고 파악했다. 50년대 말 '룸펜' 소설들은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허약한 남성(성)을 통해 보여주었다. 남성-젠더/지식인은 삶의 토대가 마련되지 못 한 전후 현실에서 자신의 무능력과 불안을 여성/아내에게 투사하거나 도덕이나 친밀성보다 생존을 도모하는 길을 취한다. 특히 4장에서 분석한 대중소설 <여인의 노래>, <무화과(無花果) 그늘>에는 입신출세를 위해 동료를 배신하거나, 음모를 꾸미거나, 연애관계를 이용하여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성취지향적인 남성인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체현한 경제적 인간들이 등장한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하는 약육강식의 경제적 인간이 전후 남성 젠더로 구축되는 과정을 선악의 대립이라는 대중소설의 형식을 빌려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곽하신은 식민 시기 한국어로 글쓰기, 문학 하기의 마지막 세대에 해당한다는 점, 저널리즘적 세태묘사, 대중소설의 양식을 빌려 전후문학의 범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문학사의 주변에서 외연을 확장한 작가로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