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내륙 수운

검색결과 6건 처리시간 0.022초

금강하류의 포구 취락-웅포를 중심으로- (River port settlement along the lower Keum River in Ungpo Region)

  • 방갑주
    • 대한지리학회:학술대회논문집
    • /
    • 대한지리학회 2004년도 춘계학술대회
    • /
    • pp.95-95
    • /
    • 2004
  • 웅포는 금강의 배후 습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일찍이 나루 기능과 내륙 수운을 통해 다른 지역과 내륙지역을 이어주는 포구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서해안과 가까운 하류부에 위치하고 있어 어선의 입항으로 수산물의 거래가 활발하고, 정기시장이 열리면서 육상 교통이 발달되기 전까지 포구 기능이 유지되었다. 우포는 백제시대에 포구가 형성되어 중국과 해상으로 교역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중략)

  • PDF

경인운하갑문의 개도와 개폐속도에 관한 수리모형실험

  • 김규한;박창근;편종근
    • 한국해안해양공학회:학술대회논문집
    • /
    • 한국해안해양공학회 1997년도 정기학술강연회 발표논문 초록집 Annual Meeting of Korean Society of Coastal and Ocean Engineers
    • /
    • pp.143-146
    • /
    • 1997
  • 우리나라 인천항의 적체현상은 그 한계를 초과한 상태여서 체선율이 약 40%에 이르고 있다. 아울러, 수도권 대량화물의 대부분이 인천항을 경유하여 내륙수송방법을 통해 운송되므로 수도권의 심각한 교통체증을 가중시키며, 물류가격경쟁력의 저하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운하를 건설하여 연안해송, 내륙수운 등의 수송수단을 통해 대량화물 운송을 원활히 하여 내륙교통량을 완화시키고 수송비를 절감시킬 필요성이 있다. (중략)

  • PDF

경인운하 충배수시설(fill/empty system)의 효용성 검토

  • 박정욱;김규한;박창근;편종근
    • 한국해안해양공학회:학술대회논문집
    • /
    • 한국해안해양공학회 1998년도 정기학술강연회 발표논문 초록집 Annual Meeting of Korean Society of Coastal and Ocean Engineers
    • /
    • pp.45-50
    • /
    • 1998
  • 우리나라 인천항의 적체현상은 그 한계를 초과한 상태여서 체선율이 약 40%에 이르고 있다. 아울러, 수도권 대량화물의 대부분이 인천항을 경유하여 내륙수송방법을 통해 운송되므로 수도권의 심각한 교통체증을 가중시키며, 물류가격경쟁력의 저하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운하를 건설하여 연안해송, 내륙수운 등의 수송수단을 통해 대량화물 운송을 원활히 하여 내륙교통량을 완화시키고 수송비를 절감시키는 방법도 이상과 같은 문제점해결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 PDF

구한말${\sim}$일제강점기 한강 중류지역에 있어서 교통기관의 발달에 따른 유통구조의 변화 (Changes of Periodic Markets by Transportation Facilities Development in the Middle Stream Region of Han-River during the Late Chosun dynasty and Japanese Colony Period)

  • 김재완;이기봉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 /
    • 제6권3호
    • /
    • pp.1-36
    • /
    • 2000
  • 구한말과 일제시기 동안 조선 후기의 유통구조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는데, 한강 중류지역의 변화를 통해 그 변화 모습의 대강을 찾아볼 수 있었다. 구한말과 1900년대 초반 원거리 운송은 주로 한강 수운에 의해, 단거리 운송은 소와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 따라서 포구가 원거리 운송의 결절점으로서 물자 이출입의 통로 역할을 하였다. 1905년 경부선 철도의 개통과 1911년부터 대대적으로 벌어진 신작로 개설 및 우마차의 본격적인 사용은 한강 원거리 유통구조에 일대 혁신을 불러왔다. 이출부분에서 경부선 철도의 개통으로 현재의 이천시와 용인시 안성시의 행정적 경계가 경부선과 남한강 수운 영향권의 경계선으로 등장하였다. 이입부분에서는 경부선 철도의 개통으로 철도역과 관계되어 있는 안성장, 오산장, 수원장 등이 고차중심지로 새롭게 떠오르고, 우마차의 본격적인 사용으로 중 단거리 운송비가 1/4 정도로 절감됨에 따라 서울 한강변 포구와의 경쟁력이 급속히 강화되어 남한강 서쪽지역의 대부분까지 그 영향권을 확대한 것으로 보인다. 1927년 천장선(天長線)(천안${\sim}$장호원), 1932년 수려선(水驪線) 철도(鐵道)가 개통(開通)됨으로써 원거리 유통구조는 다시 한번 변화를 겪게 된다. 이들 노선의 개통으로 이출부분에서 여주 이천 남쪽 지역의 대부분을 철도가 장악함으로써 남한강 수운에 대한 결정적 타격을 입히게 되었다. 이입부분에서는 한강 중류지역으로부터 유입되던 물자가 경부선 철도역 장시들을 통하지 않고 직접 들어오게 됨에 따라 안성장, 오산장, 수원장의 한강 증류지역에 대한 고차중심지적 성격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양평 지역은 1930년대까지도 철도의 영향권 밖에 있었기 때문에 남한강 수운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앙선이 1939년 양평까지, 1942년 원주까지 개통됨에 따라 비슷한 변화가 나타났을 것으로 예상된다.

  • PDF

충주 금천창 연구 (The Study of Keumcheonchang in ChungJu)

  • 조길환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41권1호
    • /
    • pp.35-55
    • /
    • 2008
  • 이 글은 탄금대 서쪽에 위치하는 충주 창동유적 발굴조사 결과와 조선왕조실록의 금천창으로부터 시작한다. 벼루가 연결된 좁고 경사가 급한 지형에 자리잡은 주칸거리 420cm의 여러 동의 건물지 조사는 구전으로 전해온 금천창에 대한 일부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태종 11년(1411)에 낙동강과 한강을 잇는 충주 금천(金遷)에 새로이 200여 칸의 창고를 지어 금천창이라고 이름하고 충주인근의 전세 뿐만 아니라 경상도 전세도 함께 수납하여 경창으로 운송하게끔 하였다. 세조는 강력한 중앙집권을 위해 관선조운체계를 구축하였고, 이것은 조선 중기까지 이어진다. 조선은 적은 인구와 낮은 도시화율에 의해 하삼도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다. 하삼도 토지에 부과된 세곡은 국가재정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조운은 삼면이 바다인 지리적 잇점에 의해 서구자본이 밀려오기 전까지 가장 효율적인 물류체계였다. 조선은 고려의 조운을 근간으로 하는 물류체계를 구축하였다. 조선의 9조창은 왜구에 의해 파괴된 고려의 13조창을 개편한 결과이며, 특히 내륙 물길인 수운(水運)을 강화하여 왜구의 노략질 및 해난사고 등의 망실을 해결하고자 하는 고민이 담겨 있다. 금천창은 태종 11년(1411)에 건립되어 세조 11년(1465)까지 54년간 사용된 좌수참임을 알 수 있다. 가흥창으로 전세 수납처가 옮겨지면서 그 중심적 지위를 잃게 된다. 금천창은 조선이 고려에서 벗어나 사회안정과 새로운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관선조운에 의해 선택된 내륙수운개발의 결과물이다.